章石 個人展 跋文

 

重五 書展 !

書展을 펼치는 族弟이자 同學인 장석에게 먼저 하례를 하며, 淺學非才한 내게 발문을 청하기에 사양할 수 없어 두어마디 적고자 한다. 生平始終一貫하기도 어려운데 이제 終始一貫의 멋진 모습으로 잔치를 연다하니 더욱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장석이 漢詩書藝의 길이 내가 걸어온 자취보다 더욱 정성으로 매진함으로 준비된 오늘에 慶宴이라 그 기쁨을 담는다.

 

靑雲 志學

유년시절 志學에 어찌 書堂을 찾은 길이 남다른 길이 아니런가! 大器晩成의 재질을 보아 先親蔭補와 은혜의 發露, 鄕學에서 嚴師相面이 바탕이 되었음이다. 본시 書堂風月이라 해도 前途에 비친 才氣가 있지 않으면 不可한일이려니, 이는 현대교육의 爲人之學함이요, 儒士가 추구하는 君子務本이니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교육에 더욱 절실한 모범의 삶이다.

 

他鄕 而立

누구나 問汝何所思라 하면서 그 自問속에서 찾는 길은 바로 修己治人의 길이다. 여기에 書室의 운영은 敎學相長의 길을 택하였으니 바로 同道에 매진하게 된 所致이다. 富貴名譽 출세가 衆人들의 꿈이지만 속에 찾은 부귀는 千萬金에 해당하지 않을까! 여기에 時間의 한계를 克服하였으니 그 孤軍奮鬪는 현재의 장석이며, 미래의 大家로서 흔쾌한 足跡豫見하게 한다.

 

師傅 不惑

의혹을 풀어주는 師傅 한사람이 그 사람의 행복한 운명이다. 福緣善慶이라 했으니 만날 사람만나는 것 또한 동행의 業報이다. 最高, 最初가 무슨 所用이리, 爲己之學에 보배요 良知良能의 첩경이다. 장석에게 운명처럼 만난 서예의 師傅, 漢詩師傅를 만남은 博學多識뿐만아니라 日就月將의 행로인지라 오늘의 金字塔을 쌓아 올리게 된 榮光이 아닐까 의심할 나위가 없다.

 

以文 知名

그래도 부족한 것은 보다는 이라 여기고 麟社에서의 활동은 以文會友旅程이다. 특히 나와의 麟社에서 同學으로 만남은 繪事後素의 자세와 博文約禮行路로 무한한 즐거움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가질 수 없는 至樂이며 누릴 수 없는 행복이다. 때문에 이러한 悠悠自適의 시간을 보냄은 知天命의 삶이니 더욱 漢詩의 세계를 펼쳐 여타의 詩壇에도 별이 됨이다.

 

斯文 從心

이제 자신만의 文質彬彬하게 될 餘生이다. 同道의 벗들과 同行하는 知己들이 있음은 建學立師의 여정이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자신만의 文字香으로 靑史에 남길 수 있는 書卷氣를 표출할 일 뿐이다. 모쪼록 健康과 알맞은 飮酒賦詩 속에서 자신만의 수많은 傑作을 기대할 뿐이다. 同學으로서 몇 마디 傳言할 수 있음에 感謝를 표하며 餘韻을 남긴다.

 

臥石深山秀麗鄕 와석 깊은 산골의 수려한 고향에서

嚴師嚴父導仁强 엄부와 엄사가 인강으로 이끌었네.

王歐仰慕臨池路 왕희지와 구양순 우러러 임지하였고

李杜崇思賦詠行 이백과 두보 숭배로 부영을 행했네.

書塾三餘金字塔 서숙엔 삼여로 금자탑을 이루었고

君家一路玉光香 집에는 한 길로 옥빛 향을 비쳤네.

佳詩秀品江湖展 좋은 시 명품으로 강호에 펼치나니

唯願生平有瑞祥 오로지 생평에 서상만이 있기를....

 

乙未菊香節 淸秘精舍에서

文學博士 玄史 徐東亨 識

 

 

章石雅號記及頌詩

 

吾友而同學徐明澤甫作號曰章石하여 屬余爲記러니 客有問於余曰 夫章者詩云維其有章也라한데

章石以儒者不然騷人인데 何取於章하여 而欲躬修斯道歟曰否否盖章石所居以號也章石生則

寧越臥石里하여 而與金蘭皐同鄕이라 自號臥石也筆法先覺이신 摩河宣公曰 臥石以起也라하여

因改字章石하니 豈不所居以號哉리요 夫學者之所當先務子曰斐然成章이라하고 易曰品物咸章이라하

書經又曰平章百姓이라하니 其章足以明矣聖賢相傳躬行之要訣只在於是古人云 博涉經史

性愛篇章하여 以驗未發氣象하고 章聞揚和하여 每稱道之其明時工夫러니 又如此矣然則章石之爲

不亦深意於其間歟今君但知文章之爲章이면 則可謂淺之爲知章石也章石讀書臨池數十

躬行實踐하고 動靜皆得力而深有戒於燥妄輕儇者之喋喋利口어늘 平日言行以章爲佩符

無一言過하여 幾至身無過하고 而心過亦如黑荳之幾希矣況値今日亦足以有容於世러니 則其守

身之道不出於章之一字이니 是奉讀聖經者也余欲學焉이나 而不能하여 聊以爲記하고 兼欲自修

한데 客曰

唯唯客去端坐하고 代銘詞律蟹吟이러니

 

顧名思義古今眞 避諱別稱文士身

章石生居方以號 奈城幽邃自成珍

書壇篤志夢鸞鳳 吟社潛心驚世人

明則難强當擬鐵 尤醒本質大祈伸

 

乙未重陽際 晉州 蘇秉敦 蚯

 

 

 

 

 

 

장석 아호기 및 송시

 

내 벗이면서 동학인 서명택이 장석이라 아호를 지어 나에게 아호기를 지어줄 것을 부탁하였으매, 객이 나에게 물어 말하길 무릇 장<>이라는 것은 시경에 이르길 오직 밝음이 있는 것이다라고 했거늘 장석이 유생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시인묵객인데 어찌 장<>에서 취하여 몸소 유학을 닦으려고 하는 것인지요?” 라고 했다.

내가 말하길

그렇지 않다. 대개 장석은 거처를 아호로 삼은 것이다. 장석은 강원도 영월 와석리에서 태어나 蘭皐 김병연과 고향이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와석으로 아호를 삼았는데, 서예의 스승이신 마하 선주선 선생께서 누운 돌은 일으켜야 한다라고 하심에 글자를 바꿔 장석이라고 하였으니 어찌 거처함으로 아호를 삼은 것이 아니겠는가?

대저 배우는 자가 마땅히 먼저 힘써야 할 것을 공자님은 찬란하고 밝게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고 주역에선 만물이 다 밝아야 한다라고 했으며 서경에서 또 말하길 백성을 밝게 다스린다라고 하였으니, 그 장<>이란 밝음을 충족하는 것이다. 성현들이 서로 궁행의 요결을 전함에 다만 이것에 있게 했던 것이었다.

고인이 이르기를 널리 경서와 사서를 섭렵하고 마음으로 책을 아껴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기상을 체험하고 듣는 것을 밝게 하고 온화함을 드날려서 매번 도리가 밝을 때의 공부를 칭송한다는 것이 또한 여기에 뜻이 있다. 그런 즉 장석이 아호를 삼음에 뜻이 그 사이에서 깊지 않으리오? 지금 그대가 다만 문장 속의 밝음만을 안다면, 즉 장석을 아는 것이 천박한 것이다. 오호라! 장석이 독서와 서예공부 수십 년에 몸소 실천하고 행동거지에 다 힘을 얻고서 조급하고 경망스런자들의 재잘거림을 깊이 경계함이 있거늘 평소 언행을 장<>으로써 부절의 신표처럼 여겼던 것이다. 그런고로 말 한마디에도 허물이 없고 몸에 허물이 거의 없으며 마음에도 허물이 또한 티끌 한 점 없음과 같은 것이다. 하물며 금일에 또한 세상에 용납됨이 있으니 그 수신의 도는 장<>의 한 글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성인의 경서를 봉독한 사람이다. 내가 배우고자 하나 능숙치 못하여 아호기를 짓고 겸하여 나 스스로 닦아가고자 하는 것이니라라고 하니, 객이 알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객이 돌아가고 단정히 앉아 명<>을 대신하여 율시 한 수를 지었으니

 

이름 살펴 뜻 생각함은 고금의 진리인데

윗분의 함자 피해 달리 부름 선비이니라.

장석은 태어난 곳으로 아호를 삼았나니

영월의 그윽한 경치 절로 보배로다.

서단에선 뜻을 독실히 해 난봉을 꿈꾸고

시회에서 마음 다져 세인을 놀라게 하네.

밝으면 강하기 어려우나 늘 쇠에 견주어

더욱 본질을 깨달아 크게 펼치길 빈다오.

을미년 중양즈음에 진주인 소병돈 짓다

'心眼齋 > 작문. 한문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불 선주석 작 이풍익시 해석  (0) 2016.04.26
章石 個人展 跋文  (0) 2015.11.27
축사 장석거사의 개인전에 부쳐  (0) 2015.11.27
개인전 자서  (0) 2015.11.27
王羲之《樂毅論》原文  (0) 2015.02.14

寄章石居士個人展

 

章石生於寧越臥石里 幼年誦讀書堂 弱冠卜居議政府 而入書路 以是圖生 把筆人生已有四十個星霜.

時在八十年代中盤 溺思毫端於堅志大廈四層之際 尋覓而晤 意欲十足 相投書法正路 已近三旬. 此漫長之間 則能得慣看章石面面之光陰 無他焉 其與是雨居士 麗澤相磨之餘 嘗爲善墨會一員 每土曜 來山房 相論文史哲藝園之生 一感一覺 . 又有時以赴臥石書室 或特講臨池偶得 或參門生展而相觸 此外 眷屬相會 時登旅程故也.

章石其人天性淳朴 如遲如鈍 無以假飾 善心誠一 是乃其爲資禀風姿. 然則書藝如何? 一言以盡之曰憨實. 蓋初遠小巧 又惡怪奇 始終愚直 恰似牛步 千里黙黙 可言憨厚之極 書如其人云 此之謂也. 苟與雅號相連 頑夫鈍夫以添 則不爲掩映乎! 今次所出風格一切 顯露其典型 卽無有華態 不求才氣是也. 胎生江原 果不其然 猶如江原土豆然 自厚而有情 是以不醜 可喜可賀.

淸代傅山嘗曰 寧拙毋巧 寧醜無媚 寧支離毋輕滑 寧眞率毋按排云. 此言之義 章石生而知之乎 本是了解乎 抑與天賦冥合乎? 莫是附合此言之最者 有史以來 斷言章石 則爲過乎?

又有以無得不說 則琢磨詩文 能用自作詩 而爲作品素材 可貴多少! 鋪天蓋地 只有所不知詩文之重 惟在所塗墨亂筆之輕 如今斯界 豈非碌碌如玉也哉!

然而一個書家 焉能無瑕! 濁畫如如 見之久矣 常爲惋惜 今次以示所悛之痕 而應爲平生所念之事焉. 又加添詞 則雖傅翁曰毋按排 切求布白之新穎 此爲書訣 自問莫非枉接鈍之美學也已. 蓋可言是亦章石本身之個性 而所謂獨具面目 惹起具眼共鳴 叡智閃光之境 於此 欲以忠告章石之書自今云爾. 其實 從其幷筆之力 進入一層 將爲書壇屈指 孰能疑之. 再復開端 必然宿命也夫!

如今我國 書藝敝屣 已近三旬 捐棄初中 大學邊緣 雖一角云云書藝進興法 信恐未可期. 噫 姑舍書之孤高 無論解句. 曩者 人雖不識 補壁一作 旣盡其風 甚至畵壇 嫌忌墨光 是誰之愆.

然而 書藝悠久 億劫靑史 如活火山然 綿綿動蕩. 眞理之源 暫塞泉口 而非不腐不竭 滔滔浩然 畢竟沛然 孰能禦之!

無論如何 章石今雖正盛 日日剛健 樂以忘憂爲事 須脫舊殼 推陳出新 藝道妙奧之處 永久同伴逍遙 趁以首次個人展 懇切念願而已.

仰望江湖諸賢 淸覽若叱正矣.

乙未晩秋於靑霞山房 寶城 宣柱善 記

 

 

 

 

章石居士個人展에 부쳐

 

章石寧越 臥石里에서 태어나 어려서 書堂에서 글을 읽었고 弱冠에 의정부에 터를 잡아 書家의 길에 들어서 이것으로 살아가니 붓을 잡은 지 어언 40개성상이다.

80년대 중반 내가 조계사 근처 코오롱쟈스트 4층에서 글씨에 몰두하고 있을 때 찾아와 의욕적인 서예의 正路를 향해 의기투합 한지도 근 30년이다. 漫長의 기간은 章石의 가정, 서예, 학구, 지도, 교육 등등의 대체적인 일상을 면면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세월이었다. 時雨선생과 같은 지역에서 麗澤相磨 하면서 일찍이 같이 善墨會員이 되어 매주 토요일 山房을 찾아 시와 문장 그리고 글씨 또 인생을 논하면서 느끼고 깨달아오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다. 또 때로 와석서실을 찾아 특강을 한다든지 회원전을 누차 참석하여 그의 제자들과 어울리면서 보고 듣고 느껴온 것도 한 이유이다. 이 밖에도 식구들과의 모임 여행길 등도 한 몫 하였다.

장석은 본시 천성이 순하고 순박하다 무딘 듯 어눌한 듯 꾸밈없는 모습과 한결같은 선한 마음이 그 만의 특징이요 매력이다. 글씨는 어떨까? 한마디로 무던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약삭빠른 교묘한 재주가락이나 같은 것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우직하다고나 할까 牛步千里를 연상케 하는 글씨 행보의 형상화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書如其人이라 한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일게다. 아마 호 뒤에 頑夫, 鈍夫 같은 것을 붙여 쓴다면 어울리지 않을까! 이번에 선보이는 한문서예 각체와 한글의 전반에서 그 전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華態가 드러남도 아니요 재기가 튐도 아니다. 누가 강원도 출신 아니랄까봐 마치 강원도 감자바위 같은 투박함과 정감 그대로다. 그렇기에 밉지 않다.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다.

淸代傅山차라리 졸박 할지언정 교묘하지 말며, 차라리 추할지언정 예쁘게 말며, 차라리 지리 할지언정 경활하지 말며, 차라리 진솔할지언정 안배하지 말라라고 설파하였다.

이 말의 본의를 장석은 나면서 알았을까 본시 깨닫고 있었던 것일까 아님 천부적인 若合符節일까! 아마도 이 부산의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사람이 有史以來 다름 아닌 章石이라고 단언한다면 지나침일까?

게다가 오랜 동안 갈고 닦은 自作詩를 작품소재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보배로움인가! 온천지에 시 한귀 글 한 줄을 지어 쓸 수 없는 명색이 서예가가 뒤덮여 있고 먹만 바르고 경망히 날려 쓰는 글씨로 포장된 지금의 서예계에 실로 귀하디귀한 존재라 할 것이다.

書家로서 어찌 흠인들 없으리요! 장석의 글씨에서 평소 획이 탁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늘 그러하다. 이번의 전시 작품에서 이를 의식한 자취가 보이기는 하지만 평생을 두고 깊이 숙고해 봐야 할 일일게다.

또 아무리 안배하지 말라고 부산은 외쳤지만 작품에서 남다른 포치 감각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서예의 요체일진대 혹여 거기에까지 무딤의 美學을 접목하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문해야 될 것이다. 이것도 모두 장석만의 개성이라고 하겠지만 獨具面目이란 具眼者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번득이는 경지가 바로 그것이기에 장석의 글씨는 정작 이제부터라고 충고하고 싶다. 학문의 기초와 서사능력의 기반으로부터 한 차원 진일보 한다면 서단에 우뚝한 굴지의 서가가 될 것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러려면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또 숙명이리라.

우리나라는 지금 서예를 버렸다. , 중등의 교육에서 내동댕이쳐 버렸고 대학에서도 거의 끝자락이다. 일각에서 서예진흥법을 운운하지만 지금 같은 국가적 정서 속에서는 실로 恐未可期이다. 서예의 고차원은 고사하고 작품내용의 접근은 물론 잘은 몰라도 서예작품 한 점쯤은 걸어 놓던 풍토까지 다 없앴다. 심지어 동양화, 문인화에서 조차 먹색을 혐오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글씨의 유구한 생명은 역사 속에 활화산 같이 요동치는 진리의 샘이다. 잠시 샘구멍이 막혀있다고 해서 썩거나 고갈이 아닌 이상 세찬 물결은 다시 터져 나올 것이다. 그 세참을 누가 막으랴!

끝으로 장석거사가 지금 비록 한창때라지만 내내 건강하고 앞으로도 더더욱 樂以忘憂하여 구태에서 벗어나 出新의 경지를 열어 길이길이 藝道深處에서 함께 소요하기를 첫 개인전을 맞아 간절히 염원하는 바이다.

강호제현의 淸覽叱正을 바라마지 않는다.

 

乙未 晩秋靑霞山房에서 寶城 宣柱善 쓰다.

 

 

'心眼齋 > 작문. 한문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章石 個人展 跋文  (0) 2015.11.27
장석 아호기 및 송시  (0) 2015.11.27
개인전 자서  (0) 2015.11.27
王羲之《樂毅論》原文  (0) 2015.02.14
그림협서 해석  (0) 2014.06.12

自 序

歲在乙卯(1975) 余年志學 住於江原道寧越郡金笠面臥石里僻村時 先親携手 入門黌堂 侍奉於月堂師 安義東先生 畏任接長 庶經三年餘 雖走馬看山 夜以繼朝 經書一瞥也.

年至十七 孤棲議政府 晝耕夜讀 新學屢年而與世不相當 戢鱗委翅 煩憫蹉跎之餘 近郊書塾輾轉 至於丙寅(1986)之冬 開于臥石書室 然以弱冠蚊負 書歷亦賤 焉敢敎人也哉 是時 乙巳(1989)以午樵李康模先生推薦 得見摩河宣柱善先生 方入正路 臨池偶得 從吾所好也.

韓愈云古之學者 必有師 師者 所以傳道授業解惑也 人非生而知之者 孰能無惑 惑而不從師 其爲惑也 終不解矣人而無師 焉得正向哉. 然胎生懶怠 躁急遑遑 未嘗了得其奧賾 塗墨弄筆 自愧自嘆 是誰之愆乎?

愈硏書愈感知其襟裾 己卯(1999)早春 幸晤玄岩蘇秉敦先生 再耽詩文 調簾合對 重重推敲 已經二八 雖啻裝配字句 然韻律從遊 聊得消愁也. 夫士之欲致遠者 不明乎孔孟之道 不知乎漢唐之詩則烏可謂致遠乎? 向後晩節 尤親名家之痕 亦近古人之書 但望始終 不違也耳.

今年雙五 乙未劈頭 因以知人之邀 與同學 臥石硏書會陳漢雄會長以下會員諸位以襄助 遂爲首回書展 感荷無盡也. 愚本以淺學菲才 拙品示于世 江湖諸賢 叱正仰望 夫以題乙未新年所望 取代其所感添吟已.

驅隙天時乙未還

吾懷書展滿愁顔

尋常擦墨多飜冊

遊逸揮毫數閉關

筆仰羲翁心盡恪

詩從杜叟意無慳

當年大計知人促

但願功成自得閑

 

乙未暢月旣望於心眼齋南窓下 利川 徐明澤 蟹

 

 

자 서

을묘(1975)년 내 나이 15세에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벽촌에 살적에 선친의 손에 이끌려 서당에 입문하여 월당 안의동 스승님을 모시고 외람되이 접장을 맡아 삼년동안 비록 주마간산 격이나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서를 접해 볼 수 있었다.

17세가 되어 홀로 의정부에 정착하여 주경야독으로 여러 해 신학문을 하였으나 세상과 맞지 않아 비늘과 날개를 접고 번민하며 세월만 보내며 근처 서숙을 전전하다가 병인(1986)년 겨울에 이르러 와석서실을 열었으나 약관의 나이로 짐이 무겁고 서력 또한 미천하여 어찌 감히 타인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이때 을사(1989)년 오초이강모선생의 추천에 따라 마하 선주선 선생을 뵙게 되어 바야흐로 바른 길로 접어들어 글씨 쓰는 법을 터득하여 내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 살 수 있었다.

한유는 이르기를 옛날의 학자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술업(術業)을 가르쳐주며 미혹됨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닐진대 누가 능히 미혹됨이 없으며, 미혹되면서도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미혹됨이 끝내 풀리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사람이면서 스승이 없다면 어찌 올바른 길로 갈수 있겠는가?

그러나 태생이 게으르고 조급하여 허둥거리다가 일찍이 그 심오한 뜻을 터득하지 못하고 먹과 붓만 희롱하였으니 스스로 부끄럽고 한숨만 나오니 이는 누구의 허물인고? 글씨를 연마하면 할수록 그 무지함을 느낄 수 있어서, 을미(1999)년 이른 봄에 다행이 현암 소병돈선생을 만나게 되어 다시 시문을 즐기며 염을 고르고 대를 맞추며 퇴고를 거듭 한지 벌써 16년이 지났으나 비록 글자를 장식하고 배열할 뿐이나 운율에 따라 노니 이에 시름을 덜 수 있었다. 무릇 선비가 원대함을 이루고자 하는 자가 공·맹자의 도에 밝지 못하고 한·당나라의 시를 모르면 어찌 원대함을 이룰 수 있겠는가? 향후 늘그막에는 더욱 명가의 글씨를 친히 하고 또한 고인의 책을 가까이하여 다만 시종일관 어김이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금년에 55세가 되는 을미년 벽두에 나의 지인들의 권유와 동학인 와석연서회 회원제위의 도움으로 인하여 마침내 첫 번째 개인전을 행하게 되었으니 고맙고 감사하기 그지없다. 내 본래 배움이 얕고 재주가 없으나 졸한 작품들을 세상에 보이니 강호제현의 질정을 우러러 바라며, 무릇 을미신년소망이라는 시를 써서 그 소감을 대신하여 운을 붙이노니...

 

(구극천시을미환) 하늘의 빠른 세월 을미년 돌아오니

(오회서전만수안) 나의 서예전 생각하니 시름이 가득하네.

(심상찰묵다번책) 평소에 먹을 갈며 많은 책 뒤척이고

(유일휘호삭폐관) 편안할 때 휘호하며 서실 문 걸었다오.

(필앙희옹심진각) 획은 왕희지 쫓아 마음의 정성을 다하고

(시종두수의무간) 시는 두보 따라 뜻을 아낌이 없게 했네.

(당년대계지인촉) 금년의 큰 계획 지인들이 재촉하니

(단원공성자득한) 다만 공을 이뤄 절로 한가하길 빈다오.

을미년 1116일 심안재 남창 아래에서 이천 서명택 삼가 쓰다

'心眼齋 > 작문. 한문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석 아호기 및 송시  (0) 2015.11.27
축사 장석거사의 개인전에 부쳐  (0) 2015.11.27
王羲之《樂毅論》原文  (0) 2015.02.14
그림협서 해석  (0) 2014.06.12
1麟社漢詩學會集 發刊辭  (0) 2013.03.18

王羲之樂毅論原文

. 世人多以樂毅不時拔營即墨為劣是以敘而論之 夫求古賢之意宜以大者遠者先之必迂回而難通然後已焉可也今 樂氏之趣或者其未盡乎而多劣之是使前賢失指於將來

. 不亦惜哉觀樂生遺燕惠王書其殆庶乎機合乎道以終始者與其喻 昭王曰伊尹放太甲而不疑太甲受放而不怨是存大業於至公而以 天下為心者也夫欲極道之量務以天下為心者必致其主於盛隆合其趣於先

. 茍君臣同符斯大業定矣於斯時也樂生之誌千載一遇也亦 將行千載一隆之道豈其局跡當時止於兼並而已哉夫兼並者非樂生 之所屑強燕而廢道又非樂生之所求也不屑茍得則心無近事不求 小成斯意兼

. 天下者也則舉齊之事所以運其機而動四海也討齊以明燕主之義此兵不興於為利矣圍城而害不加於百姓此仁心著於遐邇矣舉國不 謀其功除暴不以威力此至德令於天下矣邁至德以率列國則幾於湯

. 武之事矣樂生方恢大綱以縱二城牧民明信以待其弊使即墨莒 人顧仇其上願釋幹戈賴我猶親善守之智無所之施然則求仁 得仁即墨大夫之義也任窮則從微子適周之道也開彌廣之路以 待田單之徒長容

. 善之風以申齊士之誌使夫忠者遂節通者義著昭之東海屬之華 裔我澤如春下應如草道光宇宙賢者托心鄰國傾慕四海延頸思戴燕主仰望風聲二城必從則王業隆矣雖淹留於兩邑乃致速 於天下不幸

. 之變勢所不圖敗於垂成時運固然若乃逼之以威劫之以兵則 攻取之事求欲速之功使燕齊之士流血於二城之間侈殺傷之殘示 四國之人是縱暴易亂貪以成私鄰國望之其猶犲虎既大墮稱兵 之義而喪濟弱之仁

. 虧齊十之節廢廉善之風掩宏通之廢棄王德之隆雖二城幾於可拔覇王之事逝其遠矣然則燕雖兼齊其與世主何以誅哉其與鄰敵何 以相頃樂生豈不知拔二城之速了哉顧城拔而業乖豈不知不速之致 變

. 顧業乖與變同由是言之樂生之不屠二城其亦未可量也

永和四年十二月廿四

 

왕희지의 악의론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악의 장군이 당시에 즉묵에서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것을 잘못한 것으로 서술하여 논했으니 무릇 고대의 성현의 뜻을 찾아 크고 원대한 것을 먼저 행함이 마땅하니 반드시 멀리 돌아서는 통달하기 어려우니 그렇게 한 뒤에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악의의 뜻을 혹자는 극진하지 못하여 잘못 되었다고 한다.

이를 전대의 현인들에 의하여 장래에 잘 못 가르친다면 이 또한 애석한 일이 아니리요. 악의에게 남겨준 연혜왕의 글을 보면 거의 틀에 가깝고 도리에 시종일관 합당하다. 이를 비유하여 소왕이 말하기를

 

 

 

 

 

 

 

樂毅論釋文  世人多以樂毅不時拔營即墨為劣是以敘而論之夫求古賢之意宜以大者遠者先之必迂回而難通然後已焉可也今樂氏之趣或者其未盡乎而多劣之是使前賢失指於將來不亦惜哉觀樂生遺燕惠王書其殆庶乎機合乎道以終始者與其喻昭王曰伊尹放太甲而不疑太甲受放而不怨是存大業於至公而以天下為心者也夫欲極道之量務以天下為心者必致其主於盛隆合其趣於先王茍君臣同符斯大業定矣於斯時也樂生之誌千載一遇也亦將行千載一隆之道豈其局跡當時止於兼並而已哉夫兼並者非樂生之所屑強燕而廢道又非樂生之所求也不屑茍得則心無近事不求小成斯意兼天下者也則舉齊之事所以運其機而動四海也討齊以明燕主之義此兵不興於為利矣圍城而害不加於百姓此仁心著於遐邇矣舉國不謀其功除暴不以威力此至德令於天下矣邁至德以率列國則幾於湯武之事矣樂生方恢大綱以縱二城牧民明信以待其弊使即墨莒人顧仇其上願釋幹戈賴我猶親善守之智無所之施然則求仁得仁即墨大夫之義也任窮則從微子適周之道也開彌廣之路以待田單之徒長容善之風以申齊士之誌使夫忠者遂節通者義著昭之東海屬之華裔我澤如春下應如草道光宇宙賢者托心鄰國傾慕四海延頸思戴燕主仰望風聲二城必從則王業隆矣雖淹留於兩邑乃致速於天下不幸之變勢所不圖敗於垂成時運固然若乃逼之以威劫之以兵則攻取之事求欲速之功使燕齊之士流血於二城之間侈殺傷之殘示四國之人是縱暴易亂貪以成私鄰國望之其猶犲虎既大墮稱兵之義而喪濟弱之仁虧齊十之節廢廉善之風掩宏通之廢棄王德之隆雖二城幾於可拔覇王之事逝其遠矣然則燕雖兼齊其與世主何以誅哉其與鄰敵何以相頃樂生豈不知拔二城之速了哉顧城拔而業乖豈不知不速之致變哉顧業乖與變同由是言之樂生之不屠二城其亦未可量也。 

 

參考譯文:  世人大多認為樂毅不能按時攻克即墨是錯誤的因此,(我在此記敘並論述他。  探求古代賢能的心意應該先從大的方面和遠的方面想一定是先感覺曲折難懂然後方可領會啊如今樂毅之事的曲折有人還未能徹底了解因而大多認為他錯了這樣讓前代賢人在將來被人誤解不是很可惜嗎看樂毅贈給燕惠王的信他大概在謀略上是差不多了合乎於仁道而且能始終如一他告喻昭王說伊尹流放太甲而沒有猜疑太甲被流放而沒有抱怨這是因為把大業放在最公正之處並且是以天下為考慮了如果想極盡仁道的度量一定要以天下為己任一定要使得他的君主興盛發達與先君情趣相合君臣同心協力這樣大業就能穩定了在這個時候樂毅的誌向是千年一遇啊也將推行千年一遇的崇高仁道哪裏是他拘泥於時局僅僅為滿足兼並呢兼並齊魯不是樂毅所希望的使燕國強大而廢除仁道也不是樂毅所希望的不屑於茍且有成也就心中沒有眼前的小事情了不渴求小的收獲這是意在一統天下啊這樣看來攻打齊國是要借此機會來撼動天下討伐齊國的目的是要闡明燕王的仁義沒有動用武力是為了謀求更大的利益包圍城池而沒有加害於百姓這樣仁慈之心將傳播很遠攻打別國不為謀求私人功勞除掉暴君不用武力這樣最高尚的美德就能普遍天下率領其他諸侯國倡導仁道近乎於商湯和周武王了樂毅恰好弘揚仁道放棄攻打兩個城市讓百姓安生表明誠信來等待他們齊國出現弊端使得即墨縣和莒縣的百姓回頭怨恨自己的國君,(最後願意放下兵器像親人一樣依賴我們善於守衛的智慧,(不要隨便做什麽事情這樣想要仁道就能得到仁道,(也是即墨士大夫的仁義啊責任到了盡頭就會隨從只有他才是合適周全的方法開通更廣闊的渠道來等待田單一類人降服),助長容納善良的風氣申明齊國士人的誌向使忠誠的人實現節操明理的人顯著道義天下昭彰傳給後世我的恩澤就像春光百姓就如春草道義光耀宇宙賢能之人托付真心鄰國之人傾心羨慕天下引領向往,(想推戴燕王隨著眾人的呼聲兩座城邑一定會降服這樣霸王之業就可實現即使停留在兩城也會很快告喻天下不幸發生變故在當時形勢是不希望的功敗垂成乃是命中註定如果用威勢逼迫用武力攻打則攻城只為求的暫時的功勞讓燕國和齊國的士人在兩座城池間流血拼殺形成很多傷殘讓四個國家的人來看這樣用放縱殘暴替換戰亂貪婪私利鄰國看到我們就成了豺狼既丟失了用兵的意義也喪失了扶弱的仁道使齊國士人節操受損廢除清廉優良作風擁有的是大義廢棄丟棄的是崇高的王道即使兩座城池能夠攻克稱霸天下的事情也背離很遠了再說燕國即使兼並了齊國對世人又如何誅伐原來的鄰敵又怎樣相處樂毅難道不知攻克兩城很容易麽只是考慮到城池攻克時也就背離霸業了難道不知不能迅速攻克會產生變故只是考慮到背離了霸業與產生變故是一樣的因此說來樂毅沒有屠戮兩座城池那也不是沒有道理的。  田單生卒年不詳):媯姓田氏名單臨淄人漢族戰國時田齊宗室遠房的親屬任齊都臨淄的市掾秘書)。生卒年不詳後來到趙國作將相284燕國大將樂毅出兵攻占臨淄今山東淄博東北),接連攻下齊國七十余城最後只剩了莒城今山東莒縣和即墨今山東平度市東南),田單率族人以鐵皮護車軸逃至即墨

'心眼齋 > 작문. 한문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사 장석거사의 개인전에 부쳐  (0) 2015.11.27
개인전 자서  (0) 2015.11.27
그림협서 해석  (0) 2014.06.12
1麟社漢詩學會集 發刊辭  (0) 2013.03.18
懷舊寄辛德優<永僖>效演雅體  (0) 2012.11.02

 

잉어그림.jpg

 

眼似眞珠.hwp

잉어그림.jpg
1.79MB
眼似眞珠.hwp
0.02MB

'心眼齋 > 작문. 한문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전 자서  (0) 2015.11.27
王羲之《樂毅論》原文  (0) 2015.02.14
1麟社漢詩學會集 發刊辭  (0) 2013.03.18
懷舊寄辛德優<永僖>效演雅體  (0) 2012.11.02
重登烟雨樓 乾隆皇帝詩  (0) 2012.08.22

發刊辭

漢詩의 맛과 멋은 作詩를 해본 사람만이 그 意味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 시와 노래가 있고, 音樂과 춤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나 表意文字가 가지는 깊은 맛은 表音文字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본다.

이런 뜻에서 人生을 觀照하고 가장 壓縮된 言語로 自己의 感情을 表現했을 때 여기에는 寸鐵이 肺腑를 찌르는 切迫한 느낌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詩란 뜻이 가는 바이다. 마음에 있을 때는 뜻이며, 言語로 표현하면 詩이다. 情이 속에서 움직여 말로 형용되는데, 말이 충분하지 않은 까닭에 感歎하게 되고, 감탄으로도 不足한 까닭에 길게 노래하며, 길게 노래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면 자기도 모르게 손발이 춤을 추게 된다. (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 情動於中而形於言 言之不足 故嗟嘆之 嗟歎之不足 故永歌之 永歌之不足 不知手之舞之 足之蹈之也)

朱熹는 詩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혹자가 나에게 묻기를 시는 무엇 때문에 씁니까? 하기에 내가 응답하기를 『사람이 태어나면서 청정한 성품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본성이다. 물상에 느낌을 받아 움직이는 것은 본성이 하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며, 무릇 이미 하고자함이 있은즉 능히 생각이 없을 수 없고 이미 생각이 있은즉 말이 없을 수 없으며, 이미 말이 있은즉 말을 능히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게 되어 탄식과 한탄의 소리를 발하게 된다. 또 자연의 음향과 절주(리듬)가 반드시 있어서 능히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시를 쓰는 이유이다.』 라고 하였다. (或有問於予曰 詩何爲而作也 予應之曰 人生而靜 天之性也 感於物而動 性之欲也 夫旣有欲矣 則不能無思 旣有思矣 則不能無言 旣有言矣 則言之所不能盡 而發於咨嗟咏歎之餘者 又必有自然之音響節奏而不能已焉 此詩之所以作也)

今番 麟社漢詩學會 회원들은 한해를 虛送歲月하지 않고 每月 漢城一隅에 모여 玄岩 蘇秉敦先生님의 明快한 講義와 推敲를 거듭한 결과 外來文化의 汎濫속에 衰殘해가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漢詩의 命脈을 잇고자 孤軍奮鬪한 끝에 마침내 通卷第六號 癸巳吟 麟社集을 上梓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며 書家의 한사람으로서 간단히 평소의 소신을 밝히고자 한다.

자고로 유명한 書畵家들을 살펴보면 中國의 王維나 槿域의 秋史를 爲始하여 靑史에 得名하신 所謂大家들은 아마도 少時에 이미 文理를 攄得하여 文章家로 칭송됨과 동시에 書法과 運筆 또한 流暢하였으며, 그 筆力을 바탕으로 文人畵와 山水畵로 연결하여 마침내 詩․書․畵 三絶이란 명성을 얻게 되었으리라.

그런데 우리 서예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미 작고하신 한국서단의 1세대들은 그래도 어려서부터 한문에 造詣가 있어서 文字香 書卷氣를 담아낸 글씨를 남겼다 할 수 있겠지만, 이후 세대들은 대부분 기초 학문을 연구하기 보다는 섣불리 붓부터 먼저 잡은 세대들이다. 그들은 서예 연구와 弟子養成에 邁進하는 과정에서 정작 창작에 활용할 수 있는 古文書․金石文․簡札 등의 자료에 대한 解讀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더구나 畵家들은 더 심각한 水準이지만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다. 위에서 살펴본바 近者에 작가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역으로 畵詩의 순서를 밟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따라서 畵家들은 書藝의 點․劃을 깊이 있게 연구하여 화폭에 中鋒 運筆法을 접목해야 할 것이며, 書藝家들은 詩文에 보다 관심을 갖고, 漢詩와 文章의 해독은 물론 適材適所에 알맞은 문장이나 시를 지어서 서예 작품을 발표하여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작가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그 중심에 우리 麟社漢詩學會 會員들이 先頭에 서 있다고 自負하는 바이다.

끝으로 전임 총무로서 麟社에 공로가 큰 古院의 逝去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회원들의 輓詞詩를 실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賢明하신 玄史 徐東亨 新任會長님이하 임원진께서 향후 더욱 노력하시어 본 학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우리 회원들을 激勵와 鞭撻로 善導해 주신 은덕에 힘입어 全國漢詩白日場 等에서 及第 消息이 連月 들을 수 있게 지도해 주신 玄岩 蘇秉敦先生님께 再三 深謝드리며, 끝까지 소임을 다하고 린사집 발간에 도움주신 圖書出版 武松의 素潭 許甲均총무님의 노고에 致賀 드립니다.

2013년 3월 일

議政府 心眼齋에서 麟社漢詩學會長 章石 徐明澤 謹識

 

'心眼齋 > 작문. 한문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王羲之《樂毅論》原文  (0) 2015.02.14
그림협서 해석  (0) 2014.06.12
懷舊寄辛德優<永僖>效演雅體  (0) 2012.11.02
重登烟雨樓 乾隆皇帝詩  (0) 2012.08.22
병풍협서 낙관글씨 해석  (0) 2012.06.12

懷舊寄辛德優<永僖>效演雅體

憶曾同泛彩鷁舟 채익주 배 함께 타던 때 기억해 보니

魚鳥相忘汗漫遊 물고기와 물새 보며 유람하던 일 잊었었네.

輕風吹捲白鷗波 산들바람 불어올 때 갈매기 날고

江上數峰堆靑螺 강가에 여러 봉우리엔 소라껍질 널려있네.

波底遊魚大如犀 파도 속 큰 물고기 물소만하고

十里烏檣半垠堤 십여리 검은 돗대 재방에 가득하고

龍江近入麻布流 용강에서 비단 싣고 가까이 들어오네.

雲端寸碧露蚕頭 하늘의 흰 구름은 누에머리 모습이고

呼兒金龜換酒來 아이 불러 황금 주며 술로 바꿔오네.

引滿屢傾鸚鵡杯 앵무배 술잔에 가득 채워 기우리고

鼉鼓聲催百壺傾 악어북 두들기며 여러 병 마셨다네.

醉歌互答潛虯驚 취중의 노랫소리에 놀란 용이 화답하고

老我而今驥伏櫪 늙은 나 기다리는 천리마 마굿간에 누워있고

獨臥蝸廬空憶昔 홀로 초가에 누어 옛날을 추억하네.

羨君氣格鶻橫天 그대가 부러운 듯 송골매는 하늘을 날고

揮灑滿紙蛟蛇顚 종이 가득 휘호니 뱀인양 꿈틀대네.

想憶正中撫鸞絲 정중을 생각하며 비단을 쓰다듬고

月夜湖奏鳳凰詞 달밤의 호수에서 봉황사를 연주하에.

文淵身世託蠹魚 문연의 신세는 좀벌레에 의탁하고

擧酒且喜浮玉蛆 술잔들어 기뻐하니 밥알이 둥둥 떳네.

百源索居隣蛟室 근원을 찾으려고 강호에 접해 살고

長與琴鶴消永日 거문고 퉁기면서 세월을 허비하네.

安得此輩如蚷蛩 어찌 이무리들 벌레와 같은가

蹇驢到處相追從 당나귀 이르는 곳에 모두들 추종하네.

 

<按 辛公號 安亭 正中 秀泉副正貞恩字也 號月湖 又號雪窓 文淵 龍城副正援字也 百源 茂豊副正摠字也 號西湖主人 文淵之弟也 構別墅於楊花渡 自刺漁舟故云 索居隣蛟室 四公事行 俱詳於南秋江孝溫所著師友名行錄>

'心眼齋 > 작문. 한문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협서 해석  (0) 2014.06.12
1麟社漢詩學會集 發刊辭  (0) 2013.03.18
重登烟雨樓 乾隆皇帝詩  (0) 2012.08.22
병풍협서 낙관글씨 해석  (0) 2012.06.12
무송 장남 주례사  (0) 2012.04.16

 

重登烟雨樓 乾隆皇帝詩

不蓬萊島卽方壺 봉래도는 곧 방장산이 아닌데

酌柳新荑淸且都 버들가지 눈트는 곳에서 술 마시니 청아하고 또한 아름답네.

烟態依稀如雨態 안개는 어렴푸시 비오는 모습 같고

淑湖消息遞西湖 맑은 호수의 소식은 서호에 갈마드네

自宜春夏秋冬景 저절로 의당 춘,하,추,동의 경치인데

何必漁樵耕牧圖 하필이면 어,초,경,목의 그림이랴?

應放晴光補疇昔 응당 맑은 빛 발해서 지난날 보좌하여

奇區畢獻興眞殊 기구한 삶 다 바치니 흥겨움이 참으로 다르구나.

丁丑春二月重登烟雨樓御筆

정축년이월에 거듭 연우루에 올라서 황제가 쓰다.

 

蓬萊島 ; 봉래산 - 중국3산의 하나

方壺 ; 方丈山 - 瀛洲山을 포함하여 三神山

新荑 ; 새싹

都 ; 아름다울도

依稀 ; 헷갈릴 만큼 비슷한 모양

西湖 ; 중국 항주에 있는 호수 (봄에 가서 유람 ㅎㅎ)

春夏秋冬景 ;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경치

漁樵耕牧圖 ; 고기잡고, 땔나무하고, 밭갈고, 소먹이는 풍경화

疇昔 ; 옛날, 지난날

奇區 ; 팔자가 험악하고 사나움 (신하인 듯)

 

'心眼齋 > 작문. 한문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1麟社漢詩學會集 發刊辭  (0) 2013.03.18
懷舊寄辛德優<永僖>效演雅體  (0) 2012.11.02
병풍협서 낙관글씨 해석  (0) 2012.06.12
무송 장남 주례사  (0) 2012.04.16
린사집 발간사  (0) 2012.04.16

 

작가 : 雨馨 林景洙

 

우형 임경수는 예천 출신으로 지운영(池運永, 1832~1935)에게 그림을 배우고, 효정 심재섭(1937~2003)의 스승으로 알려졌다.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에 능했다. 상세한 이력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화가이다.

 

1. 梅 ; 매화

 

謂世無人欣共笑 (위세무인흔공소)

 

黃昏與月淡相知 (황혼여월담상지)

 

세상에서 기쁘게 함께 웃을 사람이 없다고 말 할 무렵

황혼(해질녘)에 뜬 달과 더불어 담박함을 (달과 매화)서로 안다네.

 

 

2. 蘭 ; 난초

 

蘭之氣淸 石之體靜 淸則香 靜則壽 (난지기청 석지체정 청즉향 정즉수)

 

난초의 기는 맑고, 돌의 몸체는 고요하니

맑으니 곧 (난초)향기롭고, 고요하니 (돌)장수 한다네.

 

 

3. 牧丹 ; 목단 꽃

 

江堤春雨歇 (강제춘우헐)

 

一朶正繁華 (일타정번화)

 

강 언덕에 봄비 그치니

한 송이 (목단)꽃이 바로 활짝 피었네.

 

 

4. 槐 ; 괴목(느티나무)

 

須得淸虛景 (수득청허경)

 

先種此樹來 (선종차수래)

 

모르지기 청허한 경지를 얻으려면

먼저 이(괴목) 나무를 심어야 한다네.

 

 

5. 芭蕉 ; 파초

 

太湖石畔新凉淡 (태호석반신량담)

 

何處吹簫月滿空 (하처취소월만공)

 

태호석 가에 새로이 서늘한 바람 맑은데.

어디선가 퉁소 부는 소리에 달빛만 허공에 가득하네.

 

* 태호석 ; 기형을 이룬 석회암 덩어리이며 정원석이나 관상용으로 많이 쓰임

 

 

6. 菊 ; 국화 꽃

 

胡賦獨秀閱風霜 (호부독수열풍상)

 

超出花林集衆香 (초출화림집중향)

 

무슨 구실로 홀로(국화) 빼어나 풍상을 겪었으며,

여러 꽃 중에 뛰어나서 온갖 향기 모은다네.

 

 

7. 竹 ; 대나무

 

貞姿曾冒雪 (정자증모설)

 

高節頂凌雲 (고절정릉운)

 

(대나무의) 곧은 자태는 일찍이 눈도 무릅쓰고,

높은 절개는 꼭대기에서 구름조차 능멸 한다네.

 

 

8. 松 ; 소나무

 

影搖千尺龍蛇動 (영요천척룡사동)

 

聲撼半天風雨寒 (성감반천풍우한)

 

일천자(尺)의 (소나무)그림자 흔들리니 용과 뱀이 움직이는 듯하고 하늘에서 소리(솔바람)가 진동하니 비바람도 차구나.

'心眼齋 > 작문. 한문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懷舊寄辛德優<永僖>效演雅體  (0) 2012.11.02
重登烟雨樓 乾隆皇帝詩  (0) 2012.08.22
무송 장남 주례사  (0) 2012.04.16
린사집 발간사  (0) 2012.04.16
현장 이훈상 주례사  (0) 2012.04.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