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唐

중국의 당시대(唐時代) 문학을 논함에 있어 편의상 초당(初唐성당(盛唐) ·중당(中唐만당(晩唐) 4()로 구분()나라의 고병(高棅)이 그의 당시품휘(唐詩品彙)에서 처음으로 시도하였던 시대 구분은 다음과 같다.

초당:고조(高祖)의 무덕(武德:618)으로부터 예종(睿宗)의 태극(太極:712)까지 약 95년간.

​② 성당:현종(玄宗)의 개원(開元:713)으로부터 대종(代宗)의 영태(永泰:765)까지 약 50년간.

​③ 중당:대종의 대력(大曆:766)으로부터 경종(敬宗)의 보력(寶曆:820)까지 약 60년간.

​④ 만당:문종(文宗)의 태화(太和:827)로부터 소선제(昭宣帝)의 천우(天祐:906)까지 약 80년간으로 구분된다.4기별로 배출된 저명한 시인을 들면 다음과 같다.

초당:왕발(王勃양형(楊炯노조린(盧照鄰낙빈왕(駱賓王심전기(沈佺期송지문(宋之問이교(李嶠두심언(杜審言진자앙(陳子昂장구령(張九齡) .

​② 성당:이백(李白두보(杜甫왕유(王維맹호연(孟浩然저광희(儲光羲잠삼(岑參고적(高適왕창령(王昌齡왕지환(王之渙왕한(王翰상건(常建) .

​③ 중당:전기(錢起사공 서(司空曙노윤(盧綸백거이(白居易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맹교(孟郊가도(賈島위응물(韋應物유우석(劉禹錫) .

만당:이상은(李商隱온정균(溫庭筠두목(杜牧한악(韓偓호증(胡曾)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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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五霸 戰國七雄

춘추오패(春秋五覇)는 중국의 고대춘추시대제후 간 회맹의 맹주를 가리킨다. 춘추시대의 5대 강국을 일컫기도 한다.

춘추오패

제나라의환공, 진나라의문공, 초나라의장왕, 오나라의 왕 합려, 월나라의 왕 구천이다. 기록에 따라서 진나라의목공,송나라의 양공 또는 오나라왕부차등을 꼽는 경우가 있다.

1.

()는춘추시대의춘추오패이자,전국시대의전국칠웅중 하나이다.()의문왕(文王)이 나라를 건국할 때 재상태공망(太公望)에게 봉토로 내린 땅이다. 이후제환공(齊桓公)시대에관중(管仲)을 등용하여패자(覇者)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제경공 때는안영을 등용하였다. 기원전 386년 전화(田和)가 제강공을 폐하면서 제후의 성씨가강()씨가전()씨로 바뀌게 된다. 기원전 221년진시황(秦始皇)에 의해 멸망당한다.

2.

()은주나라무왕의 둘째 아들 당숙 우가 세운 나라이다.문공(文公)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기원전 5세기에 대부 지백(智伯)이 실권을 장악했으나, , , 3가문의 협공으로 암살된다. 이후 이 3가문이 독립국의 기초를 닦았다.

3.

: ()는 현재의후베이성(湖北省)인장강중류 지역에서 일어난중국의춘추전국시대의 나라이며,춘추오패,전국칠웅의 하나이다. () 또는 형초(荆楚)로도 불린다.주나라초기의 작위(爵位)는자작(子爵) 이었으나,기원전 704년무왕(武王)때에 이르러 스스로 왕을 칭하였다.전국시대말인기원전 223년진()에 의해 멸망 했다.

4.

()나라는주나라왕실의 일족이 양쯔 강 하류, 지금의쑤저우에 세운 나라이다. 천자와 동성이라 자부하였으나, 다른 제후국들은 오랑캐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낮추어 여겼다.춘추오패중 하나인합려왕을 배출했으며, 그의 아들인부차(夫蹉) 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이웃월나라에게 멸망하였다.

5.

()나라는 무여(無余)가 주나라 왕실로부터 책봉받은 춘추 전국 시대의 한 나라이다.구천(句踐)왕 때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원래 춘추시대때는100개가 넘는 작은 나라들이 존재 이중에서 가장 강력한 전국칠웅(일곱나라)가나머지 나라들을 다점령함 전국칠웅은 제,,,,,,조나라.

각국별로 전쟁과 사회혼란이 가중되어 이때 이중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진나라인데,진나라가 나머지나라들을 다 통일합니다진나라의 시황제가 등장하여 천하를 통일(기원전221-207)진나라 황제로써 독보적 존재를 발휘

황제가 되어 춘추시대 제자 백가들의 의미없는 이론들이 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하고 이를척결한다고 일으킨 사건이분서갱유입니다. (분서:책을 태워없앰/갱유:선비를 파 묻어버림)

1.진나라()

기원전 900년대에서주의 왕으로부터 봉작을 받은영비자가 진읍에 나라를 세운 것이 진의 시초이다.

기원전 4세기부터 개혁정치로 국력을 갖추어 독일의프로이센처럼 전국 통일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드디어 진나라는기원전 221년까지 제31대 왕영정이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 역사 상 최초의황제(皇帝)에 오른 후 왕국 시대에서진제국 시대로 흐른다.

2.조나라()

()나라에서 분리되어 나온 나라로서위나라,한나라와 더불어 삼진(三晉)이라고 일컬어진다.전국시대의전국칠웅중 하나. 북쪽엔연나라와 붙어있고 남쪽에는 황하가 흐르고 있다. 중국에 처음 기마전술을 도입한 나라이기도 한다. 갑병 수십만과, 전차 천승, () 만필을 낼 수 있었다.

3.()

전국 시대의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나라에서 분리되어 나왔다.한나라,조나라와 더불어 삼진(三晉)이라고 일컬어진다. 전국시대의전국 칠웅의 하나이다. 토지가 사방 일천 리에 달했으며, 춘추전국시대의 국가 중 가장 인구가 많았던 나라이다.

갑병 20만과 창두(蒼頭) 20, 말 오천 필을 낼 수 있었다.

4.()

전국시대의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춘추오패의 하나인 진()나라에서 분리된 나라이며,위나라,조나라와 더불어 삼진(三晉)이라고 일컬어진다.전국시대의전국칠웅중 하나. 영토는 북쪽으로는 지금 중국의 하남성, 서쪽으로는 지금 중국의 호북성에 이르렀고 일천 리에 달했다고 한다. 갑병 수십만을 낼 수 있고, 무기가 뛰어났다.

5.()

춘추시대의춘추오패이자,전국시대의전국칠웅중 하나이며,()의문공(文公)이 나라를 건국할 때 재상태공망 여상에게 봉토로 내린 땅이다.

사방 2천여 리의 영토를 가졌으며, 곡식이 산과 같이 쌓였을 정도로 부유했다. 갑병 수십만을 낼 수 있었다. 특히 수도 임치에서만 이십만을 낼 수 있었다.

6.()

전국 시대의전국 칠웅가운데 하나이다.

동쪽으로는조선, 남쪽으로는 역수(易水)까지 영토가 이천여 리에 달한다.

갑병 수십만과 전차 칠백 승, () 육천 필을 낼 수 있는 정도의 병력이었다. 연나라는 춘추시대에는 선후가 제나라를 돕고 장공이 도움을 받은 정도만 나와 있고 소진이 문공 대부터 활약하였다. 그뒤 쾌 대에 혼란이 일어나나 소왕이 제를 거의 멸망시킨다. 그러나 그 아들 혜왕이 악의를 폐위시켜 진다. 그뒤 혜왕은 7년 만에 죽고 그 아들 무성왕이 왕위에 오른다. 17년 만에 죽고 효왕이 오르나 그는 3년 만에 죽고 희가 약 30여년 동안 해먹고 망한다.

7.()

양쯔강중류 지역에서 일어난중국의춘추전국시대의 나라이며,춘추오패,전국칠웅의 하나이다. () 또는 형초(荆楚)로도 불린다.주나라초기의 작위(爵位)는자작(子爵) 이었으나,기원전 704년무왕(武王)때에 이르러 스스로 왕을 칭하였다.전국시대말인기원전 223년진()에 의해 멸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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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聲賦(추성부)---가을 소리

                                          歐陽脩(구양수1007~1072)/

歐陽子方夜讀書러니= 구양수(자신)가 밤중에 책을 읽고 있는데,

聞有聲自西南來者하여= 서남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

悚然而聽之 曰 異哉!= 섬칫하여 이를 듣다가 말했다. 이상도 하도다.”

初淅瀝以蕭颯이라가= 처음엔 쌀 이는 듯 스산한 소리를 내다가

(쌀 일 석) (거를 력) (대쑥 소) (바람소리 삽)

忽奔騰而澎湃하고= 갑자기 솟구쳐 오르는 물결이 부딪치고(물부딛칠팽,)

如波濤夜驚하며마치 파도가 밤중에 일어나는 듯 하며 (놀날경)

風雨驟至하야= 비바람이 갑자기 몰려오는 것만 같아서 (말달릴취)

其觸於物也 鏦鏦錚錚하며물건에 부딪쳐 쟁그렁 쟁그렁하며(쇗소리창,)

金鐵皆鳴하고= 쇠붙이가 일제히 우는 것만 같고

又如赴敵之兵= 마치 적진을 향해가는 군사가

銜枚疾走하여 不聞號令하고=입에 재갈을 물고 내달려 호령은 들리지 않고

但聞人馬之行聲이라= 다만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 들리는 듯하다.

予謂童子라 내가 동자에게 물어 보았다.

"此何聲也汝出視之하라=."이것이 무슨 소리냐? 네가 나가 살펴보아라."

童子曰 "星月皎潔하고= 동자가 말하기를. "달과 별이 환히 빛나고,

明河在天이라=밝은 은하수는 하늘에 걸렸습니다

四無人聲하고= 사방에 사람 소리도 없고,

聲在樹間이라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

 予曰" 噫嘻 悲哉= 내가 말했다. ", 슬프도다! (탄식할희, ~)

此秋聲也胡爲而來哉= 이것은 가을의 소리로구나 어찌하여 왔는가?

蓋夫秋之爲狀也 其色慘淡하여=대개 가을의 형상이란, 그 색깔은 참담하여

煙霏雲斂하고= 안개는 부슬부슬 한데 구름은 걷히고, (눈펄펄내릴비)

其容淸明하여= 그 모습은 맑고 밝아 

天高日晶이라하늘은 드높은데 해는 수정과 같도다.

其氣慄冽하여= 그 기운은 오싹하게 차가워서 (두려워할률,차가울렬)

砭人肌骨하고= 사람의 살과 뼈를 저미는 것만 같은데, (돌침폄, 살기)

其意蕭條하여 山川寂寥= 그 뜻은 쓸쓸하여 산천이 적막하구나.

故其爲聲也凄凄切切하여=그러므로 그 소리는 처량하고 애절하여

呼號憤發이라울부짖고 분을 터트리는 듯하다. (분할분)

草綠縟而爭茂하고푸른 풀들이 우거져 무성함을 다투고, (번다할욕)

佳木蔥蘢而可悅이라=아름다운 나무도 울창하여 기쁘게 하구나.(푸를총)

草拂之而色變하고= 풀이 바람에 스치면 색깔이 변하고,

木遭之而葉脫이라= 나무가 이것과 만나면 잎이 떨어진다.

其所以摧敗零落者= 꺾어져 시들어 떨어지는 까닭은 (떨어질영)

乃其一氣之餘烈이라= 바로 그 한 기운의 남은 매서움 때문이다

夫秋 刑官也於時爲陰이요=대저 가을이란 형관이니, 시절로는 이 되고.

又兵象也 於行爲金이라=또 전쟁의 형상이니, 오행으로는 이 된다.

是謂天地之義氣라하니이를 일러 천지의 의로운 기운이라 하니,

常以肅殺而爲心이라항상 엄숙히 말라 죽는 것을 마음으로 삼는다

天之於物=하늘은 사물에 대해

春生秋實이라=봄에는 싹이 돋고 가을에 열매 맺게 한다.

故其在樂也商聲이라=그런 까닭에 음악에 있어서는 상성(商聲)이라

主西方之音하며=서방의 음을 주관하며

夷則爲七月之律이라이칙(夷則)7월의 음률이 된다.

傷也'이니= ()' 이란 '상심(傷心)' 이니,

物旣老而悲傷이며만물이 이미 노쇠하매 슬퍼하고 상심함이며,

戮也이니 = '()''죽인다'는 뜻이니 (죽일륙)

物過盛而當殺이라사물은 성대한 시절을 지나면 죽는 것이 마땅하다.

嗟乎草木無情하여= 아아! 초목은 무정하여 

有時飄零이라때로 나부껴 떨어진다. (나부낄표)

人爲動物惟物之靈이니=사람은 동물로서 오직 만물의 영장이 되니

百憂感其心이요= 온갖 근심을 그 마음에 느끼고,

萬事勞其形이라=갖은 일이 그 형체를 수고롭게 한다.

有動於中이면必搖其精이라=마음에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정신이 흔들린다.

而況思其力之所不及이요=하물며 그 힘으로 미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憂其智之所不能이라지혜로 능히 할 수 없는 것을 근심하는 것이다.

宜其渥然丹者爲槁木하고= 윤이 나게 붉던 낯이 마른 나무 같이 되고

然黑者爲星星이라=새까맣고 검던 머리가 허옇게 되는구나. (검을이)

奈何以非金石之質이면서= 어이하여 금석의 자질도 아니면서

欲與草木而爭榮?= 초목과 더불어 번영함을 다투려 하는가?

念誰爲之戕賊=  생각건대 누가 이를 해치고 죽이는 것인가? (죽일장)

亦何恨乎秋聲? 또한 가을 소리를 한하면 무엇 하랴?"

童子莫對하고垂頭而睡= 동자는 대답 않고 머리를 떨구고 졸고 있었다.

但聞四壁蟲聲喞喞하여=다만 사방 벽에서 풀벌레 소리만 찌륵찌륵 들려와

如助余之歎息이라= 마치 나의 탄식을 돕는 것 같구나. (벌레소리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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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文體의 種類  

 

    1. 檄書(격서): 급히 알리고 격려하는 글. 軍書也라

    2. 啓(계): 윗사람에게 여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          

    3. 敎書(교서): 主가 發表하는 諭告書. 大統領年頭敎書

    4. 記(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진술하는 글

    5. 露布(로포): 전쟁에 승리하면 비단에다 글을 써 장대에 달아 일반에게 선포하는 것

    6. 뢰:   追悼詞, 죽은 사람의 살았을 때의 기록   뢰: 제문 뢰

    7. 對(대):   經義같은 것을 시험으로 問對하는데 쓰이는 그 대답. 奏對

    8. 道場文(도장문): 佛家 및 道家의 慶道詞.

    9. 錄(록):  사물을 분변하여 책과 문적에 적는 글.

   10. 論(논):  사상을 분석하며 시비를 가리고 도리를 세움.

            天論, 正論, 禮論, 樂論이 있어 論文의 처음이 되는 것이다.             

            論은 辨, 議, 說, 難, 解, 釋, 原,등과 同類이다.              

            정치 논문 일 때는 議, 說과 같이하고 경서의 해석일 때에는 傳, 注와

            交錯하고, 歷史의 批評일 때는 贊, 評과 병행하고

            說明의 文章은 序, 引과 同類다.


  11. 銘(명):  금석기물에 새기는 글. 韻, 對句, 자신의 경계, 남의 업적과 삶을 讚揚

              自戒銘, 碑銘

  12. 文(문):  韻文, 散文, 楚辭의 模倣, 四六文, 盟誓, 諷諭, 祭文, 弔文등의 類가 있다

  13. 墓誌(묘지):죽은 사람의 이름, 신분, 행적 등을 記錄, 史記, 돌, 무덤 앞에 묻음

  14. 跋(발):  문서 뒤에 기술하는 문장

  15. 辨(변):  사리를 밝히어 알림. 죄인이 서로 더불어 소송하는 글.

  16. 賦(부):  鋪다. 根源은 楚辭에서 나온바 辭賦라 일컫는다.

  17. 批答(비답): 신하의 상소에 대한 왕의 하답. 올리는 말에 대한 主의  시비

  18. 碑銘(비명): 돌이나 판비에 기술하는 글. 序와 銘이 아울러서 正體가 된다.

  19. 辭(사):  楚辭의 이소를 말한다.

  20. 上樑文(상량문): 上樑式때의 祝文


  21. 序(서): 사물의 次第를 순서 있게 세워서 서술하는 글.

  22. 書(서): 本來의 書는 간독에 진수하는 문장이다.啓, 簡, 狀, 疏,전,등 오늘의 書札

  23. 說(설): 의리를 해석하며 자기의 의견을 진술함. 周易의 說卦로부터 시작함.

  24. 疏(소): 上疏文, 奏疏

  25. 頌(송): 神明, 임금 등의 成德을 讚美해서 그 용태를 서술.

  26. 諡冊(시책):왕이나 왕비의 시호를 올릴 때 생전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지은 글.

  27. 樂府體詩(악부체시): 吟, 歌, 行, 曲, 引

  28. 哀詞(애사): 죽은 사람에 대한 哀喪을 표시하는 文詞. 哀詞와 같다.

  29. 原(원):  本原을 물어 推論하는 글. 韓退之의 <原道> 등이 있다.

  30. 議(의):  諮謀하여 일의 의당함을 안내하는 글. 辨潔明핵(핵)을 주로 한다.


  31. 引(인):  공후引

  32. 箴(잠):  질병을 물리치기 위한 글. 경계하여 풍자하는 글

  33. 雜書(잡서): 종을 합하여 써서 실린 글. 所說雜駁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글.

  34. 雜著(잡저): 詩人이 지은 雜文, 賦, 表, 策, 箴, 銘, 序記 이외의 잡서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의견과 감상을 모아 쓴 책

  35. 雜體(잡체): 種種이 섞인 형태

  36. 狀(장): 奏疏의 類, 騈體, 散文의 2體가 있다.

  37. 長短句(장단구): 四六騈儷文

  38. 齋祠(재사): 명복을 빌기 위하여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 때의 글.

  39. 箋(전): 上에게 받들어 올리는 글. 천자에게는 表, 諸王에게는 啓,황후,

              태자에게는 箋과 통한다.

  40. 傳(전): 사람의 사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함. 列傳을 본 따서 史傳,家傳, 託傳,

             小傳, 別傳, 外傳 등이 있다.


  41. 祭文(제문): 신의 제사, 비에 대한 기도, 邪魅의 구축, 복을 구하고 사망자의 애통함

  42. 詔勅(조칙): 詔書와 같음. 임금의 宣志를 일반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

  43. 志(지):  誌, 사건을 기록하는 글

  44. 箚子(차자):간단한 서식으로 상소하는 글.

  45. 贊(찬):  讚, 稱述, 論評하는 글. 雜贊, 哀贊, 史贊의 세 가지로 나눈다.

  46. 冊(책):  后妃,諸侯를 세우는 勅書, 俸祿, 爵位, 祭祀 등에도 말함

  47. 策(책):  책에 써 가지고 묻고 또는 대답하는 것, 천자의 질문은 策問이며 이에 對答

                할 때 대책이 생기고, 선비들을 시험할 때 試策이라 한다

  48. 牒(첩): 관공서의 문서 글

  49. 靑詞(청사): 도교의 제사에 씀, 푸른 종이에 붉은 글자로 씀.

  50. 祝文(축문): 신을 제사 지내는 글.


  51. 致語(치어): 樂人이 받들어 頌詞하는 글

  52. 表(표):  出師表

  53: 解(해): 釋이다. 사람에게 의문이 있음으로 이를 해석하는 것이다

  54: 行狀(행장): 사람의 일생의 이력을 기술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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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연 - 옛 선비들의 블로그
㉓박세당 '서계집'

#우암의 학문 권력이 사문난적 굴레를 씌우다

1700년 4월 12일, 성균관 유생 홍계적 등 180명이 숙종에게 상소해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1703)이 지은 ‘사변록’(思辨錄)과 ‘이경석신도비명’(李景奭神道碑銘)을 불태워버리기를 청하면서 말한다.
 


온 세상으로 하여금 주자(朱子)의 말은 헐뜯을 수 없고 송시열의 어짊은 모함할 수 없으며, 성인을 업신여기고 정인(正人)을 욕하는 죄는 징계하지 않을 수 없음을 분명히 알도록 하소서.


 



▲박세당의 초상. 서계문화재단 제공

 


성인에 버금가는 주자를 헐뜯고 바른 사람인 우암 송시열을 모욕한 서계를 단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상소로 서계는 일흔다섯의 나이에 삭탈관작과 문외출송의 명을 받고 이어 전라도 옥과로 유배되는 처분을 받는다.

 


이 상소가 나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서계 생전에 마지막으로 지은 ‘이경석신도비명’ 때문이다. 이에 앞서 이경석은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뒤 “문자를 배운 것을 후회한다”면서 청 태종의 공덕을 찬양하는 ‘삼전도비문’을 지은 바 있다. 서계는 이경석의 신도비명에서 그의 ‘삼전도비문’ 찬술이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피력한다. 그리고 송시열과 이경석을 올빼미와 봉황에 견주면서 “불선한 자는 미워할 뿐, 군자가 어찌 이를 상관하랴”라고 해 송시열을 불선한 소인배로 깎아내린다.

 


성균관 유생이 서계를 단죄할 빌미로 삼은 것은 이경석의 신도비명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사변록’에 대한 노론의 의구심과 분노가 깔려 있었다. ‘사변록’은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주석한 주자의 ‘사서집주’를 서계가 비판적 시각에서 새로운 해석을 가한 책이다.

 



▲박세당이 벼슬을 버리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쓰던 의정부시 장암동 소재 박세당의 사랑채. 현재는 바깥사랑채만 남아 있다. 서계문화재단 제공

 


#현실에 끝내 고개 숙이지 않다

송시열을 모욕하고 주자에게 반기를 들었으니 주자를 성인시하고 송시열을 ‘조선의 주자’로 여기는 노론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노론은 서계를 이단으로 몰아 ‘사문난적’(斯文亂賊) 굴레를 씌웠다. 이때 송시열은 이미 죽고 없었지만 그의 학문 권력은 이토록 강고했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서계는 ‘사변록’을 완성하고 나서 ‘좀’이란 시에서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자조한다.

 


좀이라는 놈 평생 책 속에서 살면서
다년간 글자를 먹더니 눈이 문득 밝아졌네
뉘에게 인정받으랴 그래 봐야 미물인 걸
경전 망쳤단 오명만 영원히 뒤집어쓰겠지

 

그러나 시는 시일 뿐이다. 서계의 진짜 생각은 달랐다. 서계는 ‘사변록’ 서문에서 “육경(六經)의 귀결처는 하나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므로 다양한 견해가 수용되어야 육경의 대체가 온전해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주자만을 맹신하던 당시 학문 풍토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서계는 죽음을 몇 해 남겨 두고 스스로 묘표를 지어 또 이렇게 말한다.

 


맹자의 말씀을 매우 좋아한다. 차라리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며 남과 합치되는 바가 없이 살다 죽을지언정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에 맞춰 살면서 남들이 선하다고 해 주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자에게 끝내 고개 숙이거나 뜻을 굽히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여기서 “세상에 맞춰 살면서 남들이 선하다고 해 주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자”는 공자가 말한 ‘향원’(鄕原, 사이비 군자)에 대해 맹자가 그 의미를 부연한 말이다. 맹자는 또 향원을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요순의 도에는 들어갈 수 없는 자’로 묘사한다. 서계의 짧은 말 속에는 이런 의미맥락이 숨어 있다. 무덤에 들어가서도 향원에 불과한 자에게 고개 숙이거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미완의 꿈-석천동 은거

세상 사람치고 은거를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서계도 그런 꿈을 꾸었다. 서계는 마흔이 되던 1668년, 벼슬에서 물러나 양주 석천동에 은거한다. 지금의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수락산 골짜기다. 서계는 30년을 넘게 이곳에서 살다가 이곳 언덕에 묻혔다.

 

스스로 보기에도 재주와 역량이 보잘것없어 큰일을 하기에 부족한 데다 세상도 날로 도가 쇠해져 바로잡을 수 없다고 여겼다.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도성에서 30리 떨어진 동문 밖 수락산(水落山) 서쪽 계곡에 은거하였다. 그 계곡을 ‘석천동’(石泉洞)이라 이름하고, 이로 인해 스스로 ‘서계초수’(西溪樵)라 일컬었다.
-서계초수묘표(西溪樵墓表)

 

하지만 은거한다고 세상과 오롯이 멀어지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깊은 곳이라도 속세로 통하는 길은 나 있게 마련이다. 그 길 너머에는 가까운 피붙이가 있고 그리운 벗도 있으며, 학문적 동지도 있고 적도 있다. 서계는 소론의 거두인 윤증을 비롯해 8촌 아우 박세채, 처남 남구만 등과 교류했다. 우참찬 이덕수, 함경 감사 이탄, 좌의정 조태억 등은 서계의 문하로서 정계에서 활약했다. 이래저래 세상과 얽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서계의 은거는 미완의 꿈이었다. 사문난적으로 몰린 게 그 반증이다.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석천동 북쪽 언덕에 있는 박세당의 묘소와 묘표. 묘표는 최근에 조성됐다. 문화재청 제공

 


#두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의 슬픔

게다가 서계의 만년은 그야말로 기구했다. 환갑을 전후해서 4년 사이에 큰아들 박태유를 병으로 잃었고, 촉망받던 작은아들 박태보마저 잃었다. 박태보는 인현왕후 폐비를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 국문 끝에 죽었다. 박태보를 미워했던 송시열조차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박태보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도록 자손에게 경계하였다는 기록이 숙종실록에 보인다.

 

자식을 둘씩이나 앞세워 보낸 아비의 슬픔이 어떠했겠는가. 박태보를 잃은 이듬해 섣달에 서계는 ‘달자(達者)가 어리석다고 욕할까 봐 함부로 슬퍼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울음을 삼킨다.

 

일 년이 다하도록 아무런 의욕이 없고
종일토록 내내 기쁜 일 드물구나
자식이 죽으면 그래도 아비가 묻지만
아비가 늙으면 다시 누가 보살피랴
-섣달그믐에 소회를 털어놓다

 

#시인이기를 거부했던 서계

서계의 시와 문은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얼핏 보면 깡마른 고목 같다. 그러나 그 속에는 생명이 꿈틀댄다. 그렇지만 서계 자신은 시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시인이 되느니 차라리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게 낫다.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그마한 명성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성은 남이 주는 것이고 쓸모없음은 내가 하기 나름인 것이니, 남이 주는 명성에 얽매여 살까 보냐.
-한인(閑人)시의 시서(詩序)

 

서계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학문을 했다. 그래서 그는 시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쓸모없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서계가 현실에 고개 숙이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힘은 일견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완고함에서 나온 것이고, 그 문학적 성취와 학문적 결실은 문집인 ‘서계집’을 비롯해 ‘사변록’, ‘신주도덕경’, ‘남화경주해산보’, ‘색경’으로 남아 있다.

   


■서계집(西溪集)

조선 후기 소론계 학자이자 문인인 서계 박세당의 시문집이다. 1권에서 4권까지는 800여편의 시(詩)가, 5권에서 16권까지는 소차(疏箚), 서(書), 서(序), 기(記), 제문(祭文) 등이 실려 있다. 17권에서 22권은 2차에 걸쳐 추각된 것으로, 간독(簡牘), 시장(諡狀), 연보(年譜)가 실려 있다. ‘한국문집총간’ 134집은 추각본이 모두 포함된 22권본으로 정리됐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를 저본으로 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에 걸쳐 4권의 번역서를 완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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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勿箴(사물잠) -程伊川

視箴(시잠)
心兮本虛應物無迹(심혜본허응물무적)
마음이란 본시 비어있는 것이니 외부 사물에 반응하면서도 흔적은 없는 것이다.
操之有要視爲之則(조지유요시위지칙)
마음이 그것을 바르게 잡아두는 것에 요령이 있고, 보는 것이 그렇게 하는 법칙이 된다.
蔽交於前其中則遷(폐교어전기중칙천)
눈앞이 여러 가지로 가리어지면 그 속마음은 곧 옮아가게 된다.
制之於外以安其內(제지어외이안기내)

외부에 대하여 제어함으로써 그 내부를 안정시켜야 한다.
克己復禮久而誠矣(극기복례구이성의)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되돌아가게 한다면 오래도록 성실하게 될 것이다.

 

言箴(언잠)
人心之動因言以宣(인심지동인언이선)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은 말을 근거로 하여 밖으로 선포되나니
發禁躁妄內斯靜專(발금조망내사정전)
말을 할 때 조급하거나 경망스러워지는 것을 막음으로서 속마음은 고요하고 한결같게 된다.
.是樞機興戎出好(신시추기흥융출호)
하물며 이것은 사람들의 중요한 계기를 만드는 것이니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호로 나아가게도 하는 것이다.
吉凶榮辱惟其所召(길흉영욕유기소소)
사람의 길흉과 영욕은 오직 말이 불러들이는 것들인 것이다
傷易則誕傷煩則支(상이칙탄상번칙지)
말을 지나치게 쉽게 하면 불성실하게 되고 지나치게 번거로이 하면 지리멸렬하게 되고
已肆物.出悖來違(이사물오출패래위)
자기 멋대로 말하면 사물과 어긋나게 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면 위배된 보답이 오게 되나니
非法不道欽哉訓辭(비법불도흠재훈사)
법도에 어긋나는 것은 말하지 말고 공경하도록 해야 한다.

 

聽箴(청잠)
人有秉彛本乎天性(인유병이본호천성)

인간에게는 꼭 지켜야 할 떳떳함이 있어야 하니 그것은 천성에 근본을 두는 것이다.
知誘物化遂亡其正(지유물화수망기정)
다만 사람의 지각이 사물의 변화에 유인되어 그 올바름을 잃게 되는 것이다.
卓彼先覺知止有定(탁피선각지지유정)
탁월하였던 저 선각자들은 지각을 선의 경지에 머물게 하여 안정시켰도다.
閑邪存誠非禮勿聽(한사존성비례물청)
사악해짐을 막고 성실한 마음을 존속시켜서 예가 아닌 것은 듣지도 말아야 하느니라.

 

動箴(동잠)
哲人知幾誠之於思(철인지기성지어사)
명철한 사람은 일의 빌미를 알아서 그것을 생각에 정성스럽게 하고
志士勵行守之於爲(지사여행수지어위)
뜻있는 선비는 행동에 힘써서 올바른 도리를 지키는 일을 실천한다.
順理則裕從欲惟危(순리칙유종욕유위)
올바른 이치를 따르면 여유가 있게 되나 자기 욕망을 따르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造次克念戰競自持(조차극념전경자지)
다급한 순간이라도 이것을 잘 생각하여 두려워 조심하면서 스스로를 지탱하라.
習與性成聖賢同歸(습여성성성현동귀)
습관이 본성을 따라 이룩되면 성현들의 경지에 같이 귀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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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樑 文

 

내용에 따라 창건상량문, 중수상량문, 중건상량문 등으로 나뉜다. 원래 상량대에 간략하게 붓글씨로 썼다.

龍 歲在 OOO(상량일) OOO김개똥 成造運 竪柱上樑 應 天上之 三光, 備 人間之 五福 龜 ("성조운" 세글자는 생략해도 됨)

 

궁실, 관아, 학교, 사원 등에서는 써야 할 내용이 많아 따로 상량문을 써서 상량대에 홈을 파고 넣어 두었다. 종이 대신 비단에 적기도 하며 대나무나 나무·구리 통 등에 넣는데 통의 위아래에는 다음 중수 때 보태 쓰라는 의미로 패물이나 부적을 함께 넣었다.

일반 집에서는 장혀 배바닥에 먹글씨로 써서 마루에서 올려다 볼 수 있게 하지만 공공 건물에서는 마루도리 배바닥이나 받침장혀의 등덜미에 써서 결구(結構)하면 가려져 보이지 않게 하였다.
공공건물에서는 조영(造營) 사실과 집지은 뒤 좋은 일이 있기를 비는 찬문(讚文), 공역에 관계한 사람들의 이름과 글을 쓴 시기를 적어 둔다. 일반 집에서는 집의 좌향과 개기(開基), 입주, 상량 날짜와 시각을 한 줄로 내려 쓰고 그 아래 두 줄로 기원 내용을 적는다. 때로는 집주인의 방명(芳名)을 적어 두기도 하였다. 선비들은 자신의 문집에 자기가 지은 상량문이나 당대 명문장의 상량문을 싣기도 하였다. 상량을 올리는 날에는 성대한 상량고사를 지냈으며 이를 상량식이라고도 하였다.

雲山書堂重建上樑文

人傑鍾河岳之精每欽聲響之不泯

地靈畜海山之勝却歎廢興之相尋

居然築於舊疆美哉輪於新構

恭維淡庵 白先生

圭璋令質氷檗淸標

闢佛家勝大之言于韓表而不讓

陳聖人彝倫之敎與陸奏而同功

正直廉淸前史之紀載備矣

斥邪衛道後賢之稱述炳然

亦粤惺軒 白先生

名祖家肖孫大賢門高弟

蚤承一副旨訣,《敬齋箴之精要

猛着十分工夫,《近思錄之親切

資麗澤於講道月川之門

贊戎籌於臨機龍蛇火旺之旅

家傳緖業有是祖而是孫

山仰輿情匪自今而自昔

蓋此黃竹里一局實爲紫雲山名區

十折畫圖之形便是三十六元化之洞

一望浩淼之狀還勝七百里靑草之湖

豈徒地勝之亶然爰有主人之相得

惺翁之琴書有托地不秘而天不慳

退陶之詩筆竝輝山益高而水益洌

於是乎

兩賢俎豆之典公議足徵

同堂昭穆之倫古禮可據

卽依庚桑子尸祝之例謹用吳中書屛障之規

二仲登於香煙化榛莽而顏色

四時薦於和氣掃灰燼而光輝

俄驚百六之厄會適丁忍見千古之靈光幷毁

玄都葵麥之感春風助懷

白鹿荊榛之歎夕陽增咽

諸孫益切見羹之慕多士不忘採菽之思

乃就妥靈舊墟新修講學遺制

取屋材於城邑不待攻斲之煩

募役丁於村隣益見趨赴之敏

掃舊礎而星列依俙昔日光華

展彩屛於雲騰怳惚當年物色

涼軒燠室隨起居之各當

小闑大杗任規矩之相適

夫然後尊衛之粗效尙庶幾陟降之在玆

玆陳兒郞偉之短詞庸助呼邪許之大役

拋樑東滄溟旭日照心紅

先生家學元無貳直把惺惺喚主翁

拋樑西高臺超遞夕陽迷

隨時宴息眞功在更向明朝孶舜鷄

拋樑南靑螺秀色與天涵

祥雲瑞霱從中出產得南州幾善男

拋樑北屭屭巨岳參雲特

時行霖雨慰三農萬國黎元歌帝力

拋樑上晴天萬里奎星朗

文明初載露精華五百年今徵瑞象

拋樑下山簇川回只曠野

不穡不能三百廛誰是齊郊祈歲者

伏願上樑之後

山川眷騭雲物護持

周旋戶庭體淡翁廉潔之心法

俛仰堂牗述惺祖講磨之眞詮

而不佚乎前光且有俟於來哲

崇禎紀元後五周己亥三月日後學聞韶 金道和謹撰

 

운산서당 중건상량문雲山書堂重建上樑文[김도화(金道和)]

인걸은 산하의 정기가 모여 태어나니, 늘 유풍 여운이 없어지지 않음을 흠모한다. 신령한 땅은 산하의 빼어남이 모였으나 도리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흥폐를 탄식한다. 어느덧 옛터에 서당을 지으니, 크고 아름답구나, 새로 지은 서당이여!

삼가 보건대 담암 백 선생은 백옥과 같은 훌륭한 자질로 고난 속에서도 절개를 지키는 청렴한 의표를 지니셨다. 불가의 수승 방대한 말을 물리친 것은 한유(韓愈)의 표문(表文)에 뒤지지 않았고, 성인의 떳떳한 가르침을 진술한 것은 육 선공(陸宣公)의 주의(奏議)와 공이 동등하다 하겠다. 정직하고 청렴결백함은 이전 역사에 갖추어 기재되어 있고, 사악함을 물리치고 바른 도를 지킴은 후대 현인이 환하게 칭송하였다.

또한 성헌(惺軒) 백 선생(白先生)께서도 이름난 조상을 닮은 후손이며 매우 어진 가문의 훌륭한 자제로, 정미(精微)한 주희(朱熹)경재잠(敬齋箴)에 대한 일부 요결을 일찍 이었고, 친절한 근사록에 대한 충분한 공부에 용맹(勇猛) 착력(着力)하셨다. 도를 익힘에 학봉 김성일(金誠一), 서애 유성룡(柳成龍), 월천 조목(趙穆)과 더불어 붕우 간에 서로 학문을 강론하고, 임진년(1592, 선조25) 난리 때와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는 의병과 더불어 임기응변하여 싸움을 도왔다.

집안에서 대대로 유업(遺業)을 전해 이런 조상이 있었기에 이런 후손이 나왔고, 민심이 산처럼 우러러보는 것은 지금부터가 아니고 예부터이다. 대개 이 황죽리(黃竹里) 일대는 실제 자운산(紫雲山)의 유명한 지역이다. 수십 번 굽이치는 그림 같은 형상은 바로 삼십육동천(三十六洞天)이고 한 번 바라본 아득한 형상은 다시 700리 펼쳐진 청초호(靑草湖)보다 낫다. 어찌 다만 땅의 승경만 위대하다 하겠는가. 바로 주인과 융합됨이 있기 때문이다. 성헌(惺軒)의 금서(琴書)에 의탁함이 있으니 땅은 숨기지 않고 하늘은 아끼지 않았으며, 퇴도(退陶) 이황(李滉)의 시필(詩筆)과 나란히 빛나니 산이 높을수록 물은 더욱 세차다.

이에 두 분 제사의 예식은 공의(公議)로 밝힐 수 있고, 조손(祖孫) 소목(昭穆)의 차례는 고례에서 근거할 수 있다. 경상자(庚桑子)의 시동과 축관의 예에 따르고 오 중서(吳中書)의 병장(屛障)의 규범을 삼가 쓴다. 2월과 8월에는 향 연기를 올리고 잡초를 제거하고서 환하게 하며, 사계절에는 원기에 찬 음식을 올리고 재를 쓸고서 빛나게 한다. 잠시 백륙(百六)의 액운이 마침 성해지는 것에 놀라고 차마 천고의 신이한 빛이 아울러 사라짐을 볼 것이다. 신선이 사는 곳이 해바라기와 보리로 흔들리는 느낌은 봄바람에 마음을 자극하고, 주자가 강학하던 백록동(白鹿洞)이 가시덤불이 된 탄식은 석양에 더욱 목멘다. 자손들은 조상에 대한 사모의 정이 더욱 절실하고 선비들은 난리에 다시 정권을 잡을 생각을 잊지 못한다.

이에 옛터에서 신주를 섬겨 모시고, 남기신 제도를 새로 닦아 연마한다. 성읍에서 집을 지을 재목을 가져다 번거롭게 깎거나 다듬지 않았고, 이웃 마을에서 일할 사람을 불러다 민첩한 일 처리를 보여 주었다. 옛 주춧돌을 빼내니 별처럼 늘어서 있고 예전에 희미하던 것이 밝게 빛난다. 우뚝 솟아올라 채색 병풍을 펼친 듯하고, 당년의 경색이 황홀하다. 집은 서늘하고 방은 따뜻하게 하여 기거하는 데 각각의 마땅함을 따랐고, 문지방은 작게 하고 대들보는 크게 하여 규모가 서로 적절하게 하였다. 대저 그런 뒤에 높여서 지키는 대략의 효험이 드러나 이에 조상의 신령이 몰래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여기에 어영차하는 짧은 글을 진술하니, 야호하며 소리치는 큰일을 도와주소서.

 

들보의 동쪽에 던지니 / 拋樑東

바다에 돋는 해 마음을 비추어 붉네 / 滄溟旭日照心紅

선생의 가학은 원래 하나였으니 / 先生家學元無貳

곧 밝음을 잡고 주옹이라 부르네 / 直把惺惺喚主翁

 

들보의 서쪽에 던지니 / 拋樑西

높은 대 우뚝하여 석양에 혼미하네 / 高臺超遞夕陽迷

수시로 쉬며 조금 수고롭고 많은 공을 얻으니 / 隨時宴息眞功在

다시 내일 아침엔 부지런한 순 임금처럼 닭이 울면 일어나네 / 更向明朝孶舜鷄

 

들보의 남쪽에 던지니 / 拋樑南

푸른 산봉우리 빼어난 색 하늘과 같네 / 靑螺秀色與天涵

상서로운 구름이 그 속에서 나와 / 祥雲瑞霱從中出

남방의 선남선녀 몇이나 낳았나 / 產得南州幾善男

 

들보의 북쪽에 던지니 / 拋樑北

층층이 큰 산 높이 치솟아 우뚝하네 / 屭屭巨岳參雲特

때때로 지나가는 장맛비는 농민을 위로하고 / 時行霖雨慰三農

만국의 백성들은 황제의 힘을 노래하네 / 萬國黎元歌帝力

 

들보의 위쪽에 던지니 / 拋樑上

맑은 하늘 만리에 규성이 밝네 / 晴天萬里奎星朗

문명이 처음 정화를 드러내고 / 文明初載露精華

오백년 지금에 상서로운 상을 징험하네 / 五百年今徵瑞象

 

들보의 아래쪽에 던지니 / 拋樑下

산은 첩첩 물은 휘돌아 단지 광야뿐이네 / 山簇川回只曠野

심지 않으면 어떻게 삼백 다발을 거두리오 / 不穡不能三百廛

제나라 교외에서 풍년 비는 사람은 누구인가 / 誰是齊郊祈歲者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을 한 뒤에 산천은 은혜를 내려 주시고 경물은 보호해 지켜 주시며, 문밖 정원을 서성거리며 담옹(淡翁)의 청렴결백한 심법을 체득하고 집과 창을 내려다보고 우러러보며 성헌(惺軒)이 강구한 진실한 도리를 잇게 해 주시며, 전대의 빛을 잃지 않고 다가오는 밝음을 기다리게 해 주소서.

 

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오주(五周) 기해 3월 일, 후학 문소(聞韶) 김도화(金道和)는 삼가 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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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結構法

(首聯) () ()

 

(頷聯) () ()

 

(頸聯) () ()

 

(尾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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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笠與空虛僧共作 應酬詩六首

: 朝登立石雲生足(조등립석운생족)

: 暮飮黃泉月掛脣(모음화천월괘순)

: 潤松南臥知北風(윤송남와지북풍)

: 軒竹東傾覺日西(헌죽동경각일서)

아침에 '입석대'에 오르니 구름이 발밑에서 일고

저녁에 '황천샘' 물을 마시니 달그림자 입술에 걸렸도다.

소나무가 남쪽으로 누우니 북풍 심한 줄 알고

대나무 그림자 동으로 기우니 석양임을 알 수 있다.

 

: 絶壁雖危花笑立(절벽수위화소립)

: 陽春最好鳥啼歸(양춘최호조제귀)

: 天上白雲明日雨(천상백운명일우)

: 岩間落葉去年秋(암간낙엽거년추)

절벽은 무너질 듯 위태로우나 꽃은 웃으며 서 있고

봄은 더없이 좋은데도 새는 울며 돌아가네.

하늘 위에 흰 구름은 내일 비를 예고하고

바위틈의 낙엽은 지난 가을에 쌓였으리.

 

: 兩姓作配己酉日最吉(양성작배기유일최길)

: 半夜生孩玄子時難分(반야생해현자시난분)

: 影浸綠水衣無濕 (영침록수의무습)

: 夢踏靑山脚不苦 (몽답청산각불고)

남녀가 짝을 지으려면 기유일(己酉日)이 가장 좋고

야밤에 아이를 낳으려면 해시(孩時)가 가장 어렵도다.

그림자가 물에 잠겨도 옷은 젖지 않고

꿈에 청산을 올라가도 다리가 아프지 않다네.

 

: 群鴉影裡千家夕(군아영리천가석)

: 一雁聲中四海秋(일안성중사해추)

: 假僧木折月影軒(가승목적월영헌)

: 眞婦菜美山姙春(진부채미산임춘)

떼 까마귀 나는 그림자 아래 모든 집은 저물어 가고

외기러기 우는소리에 온 세상은 가을이더라.

'가중나무' 부러짐에 달그림자 난간에 어리고

'참며느리나물' 맛이 좋아 산은 봄을 잉태했도다.

 

: 石轉千年方倒地(석전천년방도지)

: 峰高一尺敢摩天(봉고일척감마천)

: 靑山買得雲空得(청산매득운공득)

: 白水臨來魚自來(백수임래어자래)

산 위의 돌은 천년을 굴러야 땅에 닿을 듯하고

봉우리 한 자만 더 높았더라면 하늘에 닿았을 것을,

청산을 사들이니 구름은 공짜로 따라오고

맑은 물이 임해오니 고기는 저절로 따라오네.

 

: 秋雲萬里魚鱗白(추운만리어린백)

: 枯木千年鹿角高(고목천년록각고)

: 雲從樵兒頭上起(운종초아두상기)

: 山入漂娥手裡鳴(산입표아수리명)

만리나 뻗은 가을 하늘 구름은 고기의 흰 비늘 같고

천년이나 묵은 고목은 사슴뿔처럼 높도다.

구름은 나무하는 아이 머리 위에서 일고

산은 빨래하는 아낙네 방망이 쥔 손에서 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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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製小學序

 

  小學何爲而作也古之人生甫八歲어든 必受是書하니 卽三代敎人之法也自嬴秦坑焚以來經籍蕩殘하야 存者幾希하니 此新安朱夫子之所以慨然乎世敎之陵弛하야 輯舊聞而牖來學者也鳴呼是書也 規模節次 粲然備具하야 有內外之分하고 有本末之序하니 曰立敎 曰明倫 曰敬身 玆三者內也本也次言稽古所以摭往行而證之也曰嘉言 曰善行 玆二者外也末也果於斯三者沉濳反覆하야 驗之于身하면 則二者不過推廣而實之而巳譬如綱擧則目張하고 根培則支達이라 此正小子入道之初程이요 蒙養之聖功이니 豈易言哉若夫敬身一篇儘覺緊切이라 盖嘗論之컨대 敬者聖學之所以成始成終 徹上徹下而敬怠之間吉凶立判이라 是以武王踐阼之初師尙父之所以惓惓陳戒者 不越乎是하니 學者誠有味于斯하야 動靜必於敬하고 造次必於敬하야 收吾出入之心하야 立吾正大之本하야 今日下一功하고 明日做一事하야於不知不覺之中靈臺泰然하야 表裏洞徹하면 則進乎大學하야 所謂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道特一擧而措之矣其於風化烏可少補云爾이리오

 

歲在甲戌春正月哉生魄하노라

通政大夫兵曹參知()李德成奉敎書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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