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書藝敎育의 問題點과 그 診斷
-서실 지도경험을 바탕으로-
徐明澤(경희대 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과정 지도교수)
Ⅰ. 들어가며 Ⅲ. 韓國書藝의 活性化 方案
Ⅱ. 韓國書藝의 問題點 1. 漢文敎育의 活性化
1. 書藝敎育의 不實 2. 公募展 文化의 再定立
2. 漢文敎育의 不在 Ⅳ. 마치며
3. 書藝文化의 歪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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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서예는 동양의 문학 역사 철학의 논리적 사유위에 예술의 감성적 요소를 접목시키는 학문이며, 실제에 있어서는 문자의 조형미에서 더 나아가 인간 내면의 세계를 토로해 내는 행위예술이다.
오늘날 물질문명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의 위기는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서예학, 즉 서예의 예술 정신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서예는 동아시아의 인문정신을 인류사회에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이자 예술이며, 이러한 ‘學藝一致’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이론의 정립과 창작의 사회적 응용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이러한 서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실천적 바탕으로서의 선결 조건은 서예술의 根幹인 漢文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보급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작금의 현실에서 한문을 알거나 관심을 두는 국민이 극소수에 불과한 만큼 그들이 한문 해독이나, 글씨가 필요할 때 서예인 들이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학문적인 역량을 갖추는 것이 최소한의 서예지도자의 자질이라고 하겠다.
Ⅱ. 韓國書藝의 問題點
1. 書藝敎育의 不實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서예는 공교육의 초, 중등교육과정에 서예 시간은 극히 적게 배정되었었고, 현재는 미술교과목에 통폐합되어 거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서예 교육은 아직도 과거의 서당식 ‘徒弟敎育’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한국서예 발전의 측면에서 본다면 서당식 ‘도제교육’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학원이나 교습소에서 서예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훈장님’(서예가)?들의 공로는 지대하다 하겠다.
이면을 살펴보면, ‘도제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수위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만약 가르치는 선생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 학생은 자기가 지금 무엇을 어느 정도 잘못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 채 편향된 시각으로 한국의 서예문화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제교육의 편향된 문제는 한국 서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한 선생을 정점으로 하는 이른바 ‘문중간의 싸움’이 치열하기도 하였고, 공모전에서의 한 문중을 중심으로 하는 천편일률적인 서풍은 서단의 수평적인 발전을 저해하였다. 나아가 서예를 배우려는 사람들이나 국민들에게 불신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도제식 교육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 먼저, 대학에 서예과가 개설되어 서예에 공교육이 적용되면서 도제식 교육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門戶開放 이후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서예 학습 자료들이 들어오는 한편 그 자료의 원류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이나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서예계는 스승이 독점하고 있던 서예에 대한 정보를 학생들이 스승과 공유하거나 심지어는 스승을 능가하게 됨으로써 밀폐된 도제교육의 권위가 무너지는 전환기적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학 서예과의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요즘 침체되고 있는 서예과의 문제점으로 대학을 중심으로 횡행하는 서예교육 메카니즘이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도제식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도제식교육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음으로는 공공기관에서의 사회 교육이다. 지방자치의 실시로 요즘 각 동사무소나 문화교실 등에서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서예 학습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각 지방 자치단체 담당자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소양부족 등으로 그 강의 수준이 문제시되고 있다. 특히, ‘재능기부활동’의 일환으로 무보수로 강의하는 강사들의 실력은 그 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고,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초빙된 서예 강사들에게 대한 처우 또한 봉사 수준 내지 무보수를 강요하다보니 전업서예가들은 강의를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양이 일천한 강사들이 포진한 사회 교육은 말이 교육이었지 도리어 문화 수준을 하향평준화 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들은 전통문화의 근간인 서예의 질적인 가치를 떨어뜨리고 서예에 흥미를 가지고 입문한 사람들이 아예 서예를 그만두거나 서예를 저급하게 인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고도의 정보화 시대의 도래는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서예를 외면하게 만들었고,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서예지도자들은 문명의 異氣를 서예 발전의 걸림돌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서예의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필자가 서예 교습소를 시작하던 8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컴퓨터 보급은 시작 단계였다. 그래서 관공서나 학교교육의 행정을 위한 서류철이나 표지, 상장 등 주로 실생활에서 필요에 의해, 서예를 익힌 경우도 적지 아니하였다. 이후 컴퓨터 보급의 확산과 컴퓨터로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글자체가 개발되면서 붓글씨를 대신하게 되었다. 컴퓨터의 등장은 비단 서예 분야에 국한된 것은 아니며 펜글씨․주산․부기․타자 학원 외에도 수많은 직업들이 함께 수난기를 맞거나 소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2. 漢文敎育의 不在
해방이후 남한에는 바로 미군이 주둔하였고 모든 정책은 미군정청에 의해 수립되었다. 1945년 11월에는 사회 각 계층의 인사 80여 명으로 ‘朝鮮敎育審議會’를 조직하고 교과서 분과위원회에서는 한자 사용을 폐지하고 초, 중등 교과서는 전부 한글로 하되, 다만 필요에 따라 괄호( ) 안에 한자를 倂記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내놓았다. 이 안이 통과되자 미군정청은 바로 이를 재가하여 각 급 학교의 교과서는 한글전용의 가로쓰기로 출간되었다. 그 후 5.16군사정변으로 탄생한 제3공화국에 이르러서는 소위 문맹퇴치라는 우민화 정책으로 인하여 한글전용 정책이 더욱 강력하게 시행되었다. 1968년 5월 2일 한글전용 5개년 계획안이 공표되어 초, 중등학교의 한자 교육이 완전 폐지되었다. 1977년 8월 18일 당시 여론에 따라 절대적 권력자는 현실적으로 상용되고 있는 한자를 없애자는 주장도 옳지 않지만, 상용한자를 현재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후 1979년 3월 상용한자 1,800자가 확정 발표되었으나 현실적으로는 1,800자 마저도 제대로 교육되지 못한 채 한자는 교육 현장에서 점차 멀어 지게 되었다.
우리말 중의 70%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문을 알아야만 한다. 한자교육의 폐지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점은 비단 서예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초, 중등학교는 물론 고등교육의 경우라도 한자를 알아야 우리의 역사․언어뿐만이 아니라 우리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하다. 진정한 민족 주체성 확립의 길은 한자 교육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게 하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일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서예 창작의 매체는 한문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자에 구비된 오체의 具象性과 抽象性을 畫을 통하여 동시에 표현하는 예술이 서예라면, 그 주요 매체인 한자 교육이 폐기 되었으니 어떻게 서예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한국 현대서예 1세대들은 이미 어려서부터 한문에 文理가 생겨서 ‘文字香 書卷氣’를 담아낸 글씨를 남겼다 할 수 있겠지만, 이후 세대는 대부분 한문이나 시문 등 기초 학문을 다지기보다는 섣불리 붓부터 먼저 손에 쥔 세대들이다. 그들은 서예 연구와 제자 양성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정작 서예창작에 활용할 수 있는 古文書․金石文․簡札 등의 자료에 대한 해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그 결과 작금의 현실은 서예가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한학자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서예가들은 그만큼 설 땅을 잃어버리고 글씨쟁이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자 교육의 부재 현상이 불러온 예는 수많은 공모전이나 단체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해 수백 개에 달하는 각종 공모전이나 단체전 등에 한결같은 소재가 한시이다. 이제까지 거의 모든 작품의 소재는 고인들의 시를 빌려 쓴다. 문제는 자신의 사상이나 정감하고는 아무런 관련성도 없이 그저 보기 좋고 쓰기 좋은 것만 무작위로 쓰는 것도 문제지만, 나아가 그 내용도 알지 못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최소한 서예가라고 자칭한다면, 작품구상 단계에서부터 자신이 쓰고자하는 내용의 대강을 정하고 뜻 모를 원전을 뒤적여서라도 적당한 글을 찾아내는 성의는 있어야 한다. 공모전이나 단체전이나 규격은 대체로 비슷하고 평소 많이 보았던 어울리는 시를 그대로 베껴 쓰는 것이 다반사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단순한 베끼기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어 자신이 쓴 작품의 해석조차하지 못한다. 또 공모전이나 전시회 뒤에는 늘 오자나 탈자시비가 심심찮게 제기된다. 건전한 서예 문화 발전이라는 공모전의 대의는 고사하고 웃지 못 할 寸劇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모든 예술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서예는 단순히 베끼고 쓰는 기예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精神을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 단순한 글쓰기 인가 아니면 서예술인가 하는 갈음의 중요한 척도는 작가의 온전한 心體의 발현에 있다. 그래서 겉모양을 제아무리 훌륭하게 모사했다고 하더라도 주체적인 가치관이 서있지 않는 작품이라면, 이미 혼이나 숨결을 느낄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체적인 가치관이 서있는 작품이 나올까? 필자는 주체적인 서예작품이란 작가의 학문 高揚과 문자와 대한 이해능력을 내면에 인지하고, 그것을 서예라고 하는 외적 형식에 조형적 미감을 불어 넣어 대중들과 소통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3. 書藝文化의 歪曲
1949년 제1회 《大韓民國美術展覽會(이하 국전)》가 개최된 이래, 국전은 1981년 제30회로 막을 내리고, 1982년 半 民展의 형태인 《大韓民國美術大展》이 개최되었다. 이후 1989년 서예인의 자주와 완전한 민영화를 내건 韓國書藝協會가 발족하고 곧 이어 제1회 《大韓民國書藝大展》이 개최되었다. 1993년에는 서단의 민주화와 서단의 화합을 기치로 韓國書家協會가 발족하고 《大韓民國書藝展覽會》가 열렸다. 각기 한국 서예의 발전을 내세운 3단체에서 개최하는 자칭? 국전이 거행되면서 서로간의 세 불리기와 허술한 협회 운영은 더욱 불신을 가중시켰을 뿐, 한국 서예 발전에 대한 비전은커녕 더욱 서예계를 혼란에 빠뜨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로 타 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든가, 각 단체마다 심사의 불공정 등으로 매스컴의 희롱거리-서예가 선비 노름인줄 알았건만?-가 되면서 더욱 위상이 떨어졌고, 많은 국민들에게 외면을 불러왔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공모전의 난립’이다. 한국 서예계의 모든 부정적인 일은 공모전의 난립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공모전의 폐해는 심각한 실정이다. 2011년 한 해 동안 어림잡아 200여 종의 공모전이 개최되었으나 오히려 축소 폐지되어야 할 공모전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런데 공모전의 개최 양상을 보면 하나 같이 千篇一律적이다. 출품자들로부터 출품료를 받아서 심사하고 전시하고 시상을 하고, 남은 돈은 주최 단체의 경상비로 활용하는, 상투적인 행사에 불과하다. 가장 권위가 있다는 이른바 ‘서예 3단체 공모전’도 그러한 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공모전이 난립하다 보니 지금 한국 서단에는 소위 ‘大家’를 自稱하고 自認하는 서예가들은 넘쳐난다. 이것은 난립한 공모전에서 상을 경쟁적으로 남발하고 세 불리기와 자기 사람 심기로 인한 초대작가의 남발로 야기된 현상이다. 화려한 수상경력과 초대작가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는 형편없는 실력을 가지고 유명작가 행세를 하며, 서예를 오도하는 사람들로 인해 한국 서예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부정 심사의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공모전이 서예 발전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모전의 정리 없이는 한국서예의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근래의 각종 공모전의 운영 행태를 보면 더욱 한심하다. 예를 들면 출품수를 늘리기 위하여 운영위원들에게 20-30점을 출품해야만 심사위원 위촉 자격을 준다고 한다. 운영위원들은 심사위원을 위촉하기 위해 문하생들에게 출품을 강요하고, 문하생 한사람이 2-3점의 출품을 강요받다 보니 문하생이 반발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일천한 실력의 지도자에다 일천한 실력의 문하생이 언제 어떻게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 내겠는가. 무슨 장인을 뽑듯이 서예 부문에서는 삼체장이나 오체장을 남발한다. 어떤 문인화 공모전에서는 의무적으로 3작품씩 출품시켜 출품수를 채운다음 그중에 1작품이 입, 특선이 되면 나머지 2작품은 낙선처리를 하다 보니 출품자 100% 전원이 입상한다. 문하생들도 그렇게 1-2년 공부하다보면 실상을 알게 되고 처음 입․특선의 기쁨마저 공허해 진다. 건전한 여가 생활이라 여겼던 서예․문인화가 거금의 출품료, 입상에 대한 인사치례 등으로 해야 할 공부에 오히려 환멸을 느끼거나 부담으로 인하여 그만두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수많은 공모전들은 이미 몇몇 작가들의 생존의 방편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비리와 부정, 그리고 그것에 관한 동조, 침묵, 외면의 결과 이미 너나 할 것 없이 서예인 누구도 자의반 타의반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Ⅲ. 韓國書藝의 活性化 方案
1. 漢文敎育의 活性化
國字가 ‘漢字’에서 ‘한글’로 바뀌는 20세기 초를 지나, 소위 현대식 교육제도의 정착으로 교육의 무대가 ‘서당’에서 ‘학교’로 바뀌는 과정을 거치면서, ‘雪上加霜’으로 한글전용의 문교정책이 한문학의 퇴보를 가져왔다. 또한 역사 이래로 유명한 서화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詩․書․畵 三絶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볼 때, 화가들은 서예의 점․획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될 것이며, 서예가들은 시문에 보다 관심을 갖고, 한시와 문장의 해독은 물론 적재적소에 알맞은 문장이나 시를 짓거나 사용하여 서예 작품을 발표하고 서예 이론을 체계화하여 서예학이 정립될 때까지 모두가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전국에 크고 작은 서예학원이나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는 서예가들은 한결같이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또한 절반 이상이 폐원을 하거나 직업 전환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원인을 보면 첫째, 서예 학원이나 교습소 운영자의 교육방법 미숙과 경험부족 등을 들 수 있겠다. 둘째, 문민 정부이후 지속되어진 세계화, 정보화의 구호와 가시적인 경제 성장위주의 정책에만 치중하여 문화예술 예산을 삭감하거나 축소 운영을 다투어 시행하였다. 예컨대 시, 도 단위의 사회교육 기관에서는 문화 강좌를 대부분 폐과하고 정보나 기술교육에 집중하는 한편 가시적인 실적을 보여주기 위한 수강생들이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는 교과 과목 위주로 바뀌었다. 이는 건전한 정서함양마저도 경제 논리가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시․도의 사회교육기관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젊은 어머니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멀리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자녀들에게도 암암리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중국을 비롯한 한자 문화권이 부활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는 멀리하고, 영어 沒入 교육을 시행하면서, 그나마 예․체능 교육을 지탱해 왔던 초, 중등 학생들의 예․체능 분야의 경시대회 가산점 제도는 물론이고 내신 성적 평가에서 예․체능 과목을 제외시켜 버렸다.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서예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물론 어려운 문제이다. 필자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가지 제안한다면 지금 남아있는 성인 교습생들에게 한문 특강을 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우선 수강생들과 상의하여 대다수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여 일주일에 1회 정도 이해하기 쉬운 四字小學, 推句, 啓蒙篇, 童蒙先習, 明心寶鑑, 五七言唐音, 小學, 大學, 論語, 孟子, 中庸 古文眞寶 등 순서에 따라 1-2시간씩 특강을 실시하고 그 교습생들이 점차 동양의 사상과 문화에 흥미를 갖도록 유도한다. 그들이 하나의 밀알이 되어 주위에 동참을 유도하게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양예술의 진수이자 ‘학예일치’의 전형인 서예를 건전하게 전수한다면 조금이나마 서예 활성화에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고 점차 수준을 높여간다면 ‘學行一致’ ‘敎學相長’의 진정한 ‘도제교육’의 토대가 굳건해질 것이다.
우리말의 특성과 동아시아 국가 간 교류가 긴밀해지는 국제 정세 등을 고려해 한자교육을 활성화하자는 내용의 공청회가 김광림, 이강래 국회의원 공동주최로 2011년 2월 24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이명학 성균관대(한문교육학) 교수는 “한자 교육 없는 40여년 한글 전용의 결과 사회 전 분야에서 한자 표기 오류가 생기게 됐다”고 주장하며 “사실상 한글만을 국어로 규정한 국어기본법을 개정해 한자를 국어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초등학교부터 한자를 교육하여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황명식 한국일보논설위원은 “同音異議語뿐 아니라 長短音 구분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소리글자가 아닌 한자어를 앞뒤 文脈에 따라 뜻을 가리려는 일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쓰지 않다 보면 현 세대들은 가까운 장래에 심각한 語彙 減少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주제 발표자들의 의견에 대해, 謀○○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연구관은 “학교가 자율 편성하는 현 교육과정 체계에서 교과부가 한자교육을 권장하거나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쓰는 것은 관련 부서는 물론 국어 공동체 전반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답변하였다. 이 말은 한문 교육을 활성화 하지 말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는 말이다. 각 급 학교는 교과부의 지시에 의해서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 하는데, 교과부의 고위 관료의 생각이 이러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는 요즈음 공무원들이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하다는 것을 여기서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만약 교과부에서 공청회를 거쳐 초, 중, 고생들에게 한문 교육을 하자고 발표하면, 예전과 같이 한글학회의 반발이 있을 것을 미리 예견한 언사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 관련 인사 및 단체, 한문․국문학자 및 관련 단체 모두가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우리가 동아시아 중심국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면에 어문정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국어민족문화과 소속 김선철 학예연구관은 “한글 전용 정책은 공문서에 한정된 것이지 학교 교육의 영역까지 포괄하지는 않았다”며 한자교육 활성화와 문자사용 문제를 구분하고, 한글 전용론과 국한문 혼용론 등에 대해선 각 입장을 객관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공청회를 준비한 김광림 의원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어휘의 상당수는 한자어”라며 “그 뜻은 엄연히 다름에도 소리가 같은 단어들이 많아 한자를 모르면 올바른 우리말 쓰기가 더 어려운 것이 이번 공청회를 준비한 계기였다”고 설명하며 “국제사회에서 한자문화권 나라들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한자 공부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김 의원은 덧붙였다.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필자가 한문 교육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단체인 한글 학회 관련자들에게 묻고 싶다. 한글로 표현되어진 문예 작품만 국문학이란 말인가? 한문으로 쓰여진 우리 문예 작품은 국문학이 아니란 말인가?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 한글이 한문의 장점을 더 많이 받아들일 때 오히려 더 발전될 것은 자명한 이치 아닌가? 주지하다시피 세계인구 4분의1이 한자문화권에 살고 있으며 한국․중국․일본․베트남․싱가포르는 한문권이며 외환보유액은 60%가량 되는 등 국제사회에서 한문 문화권 나라들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한자 교육이 없는 40년 동안에 학생들이 사회 전 분야에 한자표기 오류가 생기게 되었고, 컴퓨터기술이 발달해도 약16만개의 어휘 가운데 70%이상이 한자이고 그 대부분이 同音異義語인 것이다. 한 나라의 발전은 긴 안목으로 볼 때 경제정책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자정책이다. 학생들이 일간신문을 제대로 잃을 수가 없어 신문읽기를 기피하고 있으며, 대학생들도 국한혼용 서적을 읽을 때 한자는 거의 빼놓고 읽을 뿐 아니라, 부모님의 銜字도 한자로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자교육 실시현황을 보면, 현재 서울의 학교 수 587개 학교 중 267개 학교가 실시하고 있고, 인천은 228개학교중 62개 학교가 실시하고 있는데도, 과연 미루기만 해야 될 일인가?. 덧붙인다면 워드프로세싱을 하는 데 있어서도 간신히 한글로 타자해 넣으면 끝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한글로 초벌 입력만 하고, 즉 한글로 발음만 적고 끝날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同音異義語’같은 곳에는 한자를 넣는 노력을 해야 ‘읽는 이’들을 향한 ‘쓰는 이’로서의 의무가 끝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소한 ‘同音異義語’의 혼동을 풀어놓지 않고 글을 중도에 방치한다는 것이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고통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2. 公募展 文化의 再定立
공모전은 신인들의 登龍門임에는 틀림이 없다. 때문에 건전한 공모전 개최야 말로 건전한 서예 문화 발전을 도모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따라서 공모전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능력을 인정받는 대다수의 작가들도 공모전을 통해서 세인들의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실력으로 되었다고 자부할 사람이 누가 몇 명이나 되던가? 우수개 소리로 추사 아니 왕희지가 환생해도 소위 국전에는 입상이 불가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갓 서예과를 졸업하고 청운의 꿈을 품었던들 비빌 언덕이나 있던가? 한국 서단은 누가 이어갈 것인가?
필자가 수십 년간 경험한 바에 따르면 공모전 출품은 일 년에 봄, 가을로 2회 정도 참가하는 것이 적당하리라 생각 된다. 한 권의 범본을 5개월 여 연마하면 그 서체의 필획, 결구, 조형미 등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그간 연구한 서체를 근거 삼아 작품을 한다면 서예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공모전에 응모하는 출품자들도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겠다. 이미 5년 10년 20년을 공부한 선배들이 간혹 입, 특선을 하면 진심으로 축하 해주는 풍토와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다음 선배들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훗날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기다림의 미덕이 부족하고 자신의 짧은 안목이나 잣대로 자신의 얕은 견문을 높게 평가하고, 상대의 연륜이나 실력을 무시하는 태도는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선배들 같이 작가의 반열에 오를 것이며, 大器晩成임을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과연 200여개의 공모전은 어느 정도 폐지되거나 정리가 불가피하다. 그 숫자는 아마도 시 단위에 하나, 도 단위에 둘, 전국 단위에 네다섯이면 충분할 것 같다. 대신 중앙의 대표적인 3단체는 광역 단위의 공모전부터 통폐합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한 고을 한 집안에서 너는 어디 소속이냐? 너는 ○○도전 ○○협회 초대작가니, 나는 ○○시전 ○○협회 초대작가니, 하는 말이 어떤지 거북스럽지 아니한가? 그리고 중앙의 미술협회서예분과 초대작가니, 서예협회 초대작가니, 서가협회 초대작가니 하는 초대작가 제도를 없애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권위도 없고 온갖 오욕으로 얼룩진 공모전을 바로 새우는 길이요, 소위 전문서예가라고 자부하는 작가들의 粹․雜을 분별해 낼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그러면 기타 단체에서 내세우는 초대작가 제도는 자연히 虛名無實해 질 것이다. 최소한 초대작가라는 알량한 명예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자신의 역량을 평가받고자 하는 건전한 평가의 장으로써의 공모전의 역할이 부활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공모전 수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고, 학습자는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공부하고, 그 과정을 거쳐 응모하고 공정하게 평가를 받아 작가로 등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엔 공정한 심사가 문제이다. 심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미 3단체에서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각 단체의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기득권부터 내던지는 결단을 보여야 할 것이다. 다음에 범 서단적인 대의의 차원에서 여론을 수렴한 다음 장점들만 집약하고 보완한 뒤, 누구나 인정하는 심사 제도를 확정하여 수시로 변경할 수 없게 제도화 해야만 한다.
작금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이대로 방치한다면, 공모전 악습의 개선은 遙遠할 것이고 서예 발전을 위한 국민적 지지나 국가적 지원은 고사하고서라도 서예를 사랑하는 애호가들을 서예 전시회나 서예 작품 시장으로부터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서예인들은 이미 사회적 약자가 된지 오래다.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여러 사람들이 인정하는 ‘學問的 資産’과 ‘道德性 回復’이 관건이다. 서예인들의 학적인 切磋와 건전한 정신을 硏磨한 다음, 그 도덕적 학문적 자산을 밑 걸음 삼아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설득하고 점차 잃었던 서예의 내․외적 힘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Ⅳ. 마치며
한국 서예계를 되돌아보면 고질에 가까운 부정적인 일이 조금도 청산되지 않은 아쉬움이 있지만 긍정적인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이미 우리는 전 국민의 6-7할이 한자 교육에 찬성을 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김영삼 정권 말 김대중 참여정권 초에 국회의원 과반수가 서명을 하여 ‘漢字를 살려야 한다’는 취지의 ‘한글전용법 廢止法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법안을 ‘分科委員會’가 보류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러한 일은 한자교육 부활이 꼭 필요하다는 전 국민의 여망을 뚜렷하게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 2005년 9월 대전대학교 문과대학 서예학 전공에서는 ① 초․중․고교에 서예 독립 교과목 설정, ② 서예학과에서 교직 이수한 자에게 서예교사자격 부여, ③ 사범대학, 교육대학에 서예 교과목 편성 등을 목적으로 한국 서단의 대표적 단체인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한국서예협회․한국서가협회 등 3단체와 국회위원 일부가 참여하여 각 급 학교에 독립된 서예교과 설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였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05. 11. 3 국회의사당에서 서예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지속되는 한 머지않아 한자 교육이 활성화 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한국 서예도 다시금 비상의 나래를 활짝 펼 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가오는 2012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따라서 우리 서예인 들도 우리들의 여망을 한데 모아 각 대선 후보자들의 공약에 적극적으로 반영시켜야 할 것이며, 그들의 진정성을 유심히 살펴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만 될 것으로 본다.
국외적으로는 서예의 종주국을 자부하는 중국에서 그 희망의 싹이 이미 돋아났다. 중국 인민정부는 2007년 광동성에서 성내의 모든 초, 중등학교에 서예를 必修 과목으로 지정하였고, 얼마 후 상해 정부에서도 모든 초, 중학교에 서예를 필수 과목으로 교육하고 있다. 최근 중국 교육부에서는 초등학교 1-3학년은 먼저 펜으로 書寫訓練을 하고, 3학년이상은 펜과 毛筆을 겸하도록 하되, 국어 과목에 포함하여 일주일에 1시간 이상을 교육 하도록 지시하였고, 일반 고등학교에서도 서예를 선택과목으로 설치하도록 지시하였다. 현재 중국의 대학에서 서예를 졸업한 졸업생수가 점차 늘고 있어 국가차원에서 이들의 취업을 해결하기 위해 방안을 강구중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에 서예전공이 있는 대학은 예술전문대학 약 15개, 종합대학 약 29개, 사범대학 약 32개 등이고, 박사과정은 약 16개 대학에 개설되어 있고, 46개 대학에 석사과정이 설치되어 70여명의 석사 지도교수가 있고, 또 49개 대학에 서예 본과가 있다고 한다(송명신, 제15회 원광서예학회 추계 학술대회 발표문, 2011. 10 참조). 우리가 한발 늦은 느낌을 지울 수밖에 없지만, 中國書法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漢語 즉 중국어를 영어에 버금가는 세계어로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중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국내외의 사회 경제적 현실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다.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 세계제일의 경제교류 국가가 되는 것은 머지않았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이다. 한류 열풍을 보지 않았는가? 한문과 서예는 동아시아 문명의 뿌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중국인들의 알량한 자존심이던 ‘中華意識’이 지금 다시 부활하고 있다. 그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고서화 경매 시장이다. 중국의 고서화는 ‘종이 황금’이란 별칭이 붙었다. 2011년 6월 4일 베이징 바오리 경매에서 북송시대의 黃庭堅의 서예작품인 〈砥柱銘〉은 70여회를 거듭하는 경매 끝에 4억3천6백80만위안(한화725억원)에 낙찰되어 중국 미술품 경매시장의 두 번째 고가를 기록한 바 있고, 근현대의 서화가인 齊白石(1863-1957)의 1940년 작품인 〈松柏高立圖〉는 2011년 11월 23일 베이징 가디언 경매소에서 4억2천5백5십만위안(한화718억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현존 서예가인 沈鵬의 서예작품마저도 원화로 환산하여 약 천만 원에 거래 된다고 한다. 그 바람이 동으로 향해, 한국의 서단에도 머지않아 희망의 봄바람이 불어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인류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문자의 역사가 존재하고 문자가 존재하는 한 문자의 예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문자의 예술이 학문적 심화 및 예술의 발전을 이루어 낼 때 더욱 그 가치를 발하게 된다. 게다가 서예의 외적인 환경은 서예계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회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 서예인 모두가 진정으로 노력하고 공부하여, 서예계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기회를 잡음으로써 이 땅에 서예가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