寄章石居士個人展
章石生於寧越臥石里 幼年誦讀書堂 弱冠卜居議政府 而入書路 以是圖生 把筆人生已有四十個星霜.
時在八十年代中盤 溺思毫端於堅志大廈四層之際 尋覓而晤 意欲十足 相投書法正路 已近三旬. 此漫長之間 則能得慣看章石面面之光陰 無他焉 其與是雨居士 麗澤相磨之餘 嘗爲善墨會一員 每土曜 來山房 相論文史哲藝園之生 一感一覺 . 又有時以赴臥石書室 或特講臨池偶得 或參門生展而相觸 此外 眷屬相會 時登旅程故也.
章石其人天性淳朴 如遲如鈍 無以假飾 善心誠一 是乃其爲資禀風姿. 然則書藝如何? 一言以盡之曰憨實. 蓋初遠小巧 又惡怪奇 始終愚直 恰似牛步 千里黙黙 可言憨厚之極 書如其人云 此之謂也. 苟與雅號相連 頑夫鈍夫以添 則不爲掩映乎! 今次所出風格一切 顯露其典型 卽無有華態 不求才氣是也. 胎生江原 果不其然 猶如江原土豆然 自厚而有情 是以不醜 可喜可賀.
淸代傅山嘗曰 寧拙毋巧 寧醜無媚 寧支離毋輕滑 寧眞率毋按排云. 此言之義 章石生而知之乎 本是了解乎 抑與天賦冥合乎? 莫是附合此言之最者 有史以來 斷言章石 則爲過乎?
又有以無得不說 則琢磨詩文 能用自作詩 而爲作品素材 可貴多少! 鋪天蓋地 只有所不知詩文之重 惟在所塗墨亂筆之輕 如今斯界 豈非碌碌如玉也哉!
然而一個書家 焉能無瑕! 濁畫如如 見之久矣 常爲惋惜 今次以示所悛之痕 而應爲平生所念之事焉. 又加添詞 則雖傅翁曰毋按排 切求布白之新穎 此爲書訣 自問莫非枉接鈍之美學也已. 蓋可言是亦章石本身之個性 而所謂獨具面目 惹起具眼共鳴 叡智閃光之境 於此 欲以忠告章石之書自今云爾. 其實 從其幷筆之力 進入一層 將爲書壇屈指 孰能疑之. 再復開端 必然宿命也夫!
如今我國 書藝敝屣 已近三旬 捐棄初中 大學邊緣 雖一角云云書藝進興法 信恐未可期. 噫 姑舍書之孤高 無論解句. 曩者 人雖不識 補壁一作 旣盡其風 甚至畵壇 嫌忌墨光 是誰之愆.
然而 書藝悠久 億劫靑史 如活火山然 綿綿動蕩. 眞理之源 暫塞泉口 而非不腐不竭 滔滔浩然 畢竟沛然 孰能禦之!
無論如何 章石今雖正盛 日日剛健 樂以忘憂爲事 須脫舊殼 推陳出新 藝道妙奧之處 永久同伴逍遙 趁以首次個人展 懇切念願而已.
仰望江湖諸賢 淸覽若叱正矣.
乙未晩秋於靑霞山房 寶城 宣柱善 記
章石居士의 個人展에 부쳐
章石은 寧越 臥石里에서 태어나 어려서 書堂에서 글을 읽었고 弱冠에 의정부에 터를 잡아 書家의 길에 들어서 이것으로 살아가니 붓을 잡은 지 어언 40개성상이다.
80년대 중반 내가 조계사 근처 코오롱쟈스트 4층에서 글씨에 몰두하고 있을 때 찾아와 의욕적인 서예의 正路를 향해 의기투합 한지도 근 30년이다. 이 漫長의 기간은 章石의 가정, 서예, 학구, 지도, 교육 등등의 대체적인 일상을 면면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세월이었다. 곧 時雨선생과 같은 지역에서 麗澤相磨 하면서 일찍이 같이 善墨會員이 되어 매주 토요일 山房을 찾아 시와 문장 그리고 글씨 또 인생을 논하면서 느끼고 깨달아오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다. 또 때로 와석서실을 찾아 특강을 한다든지 회원전을 누차 참석하여 그의 제자들과 어울리면서 보고 듣고 느껴온 것도 한 이유이다. 이 밖에도 식구들과의 모임 여행길 등도 한 몫 하였다.
장석은 본시 천성이 순하고 순박하다 무딘 듯 어눌한 듯 꾸밈없는 모습과 한결같은 선한 마음이 그 만의 특징이요 매력이다. 글씨는 어떨까? 한마디로 무던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약삭빠른 교묘한 재주가락이나 怪와 奇같은 것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우직하다고나 할까 牛步千里를 연상케 하는 글씨 행보의 형상화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書如其人이라 한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일게다. 아마 호 뒤에 頑夫, 鈍夫 같은 것을 붙여 쓴다면 어울리지 않을까! 이번에 선보이는 한문서예 각체와 한글의 전반에서 그 전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즉 華態가 드러남도 아니요 재기가 튐도 아니다. 누가 강원도 출신 아니랄까봐 마치 강원도 감자바위 같은 투박함과 정감 그대로다. 그렇기에 밉지 않다.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다.
淸代의 傅山은 “차라리 졸박 할지언정 교묘하지 말며, 차라리 추할지언정 예쁘게 말며, 차라리 지리 할지언정 경활하지 말며, 차라리 진솔할지언정 안배하지 말라”라고 설파하였다.
이 말의 본의를 장석은 나면서 알았을까 본시 깨닫고 있었던 것일까 아님 천부적인 若合符節일까! 아마도 이 부산의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사람이 有史以來 다름 아닌 章石이라고 단언한다면 지나침일까?
게다가 오랜 동안 갈고 닦은 自作詩를 작품소재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보배로움인가! 온천지에 시 한귀 글 한 줄을 지어 쓸 수 없는 명색이 서예가가 뒤덮여 있고 먹만 바르고 경망히 날려 쓰는 글씨로 포장된 지금의 서예계에 실로 귀하디귀한 존재라 할 것이다.
한 書家로서 어찌 흠인들 없으리요! 장석의 글씨에서 평소 획이 탁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늘 그러하다. 이번의 전시 작품에서 이를 의식한 자취가 보이기는 하지만 평생을 두고 깊이 숙고해 봐야 할 일일게다.
또 아무리 안배하지 말라고 부산은 외쳤지만 작품에서 남다른 포치 감각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서예의 요체일진대 혹여 거기에까지 무딤의 美學을 접목하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문해야 될 것이다. 이것도 모두 장석만의 개성이라고 하겠지만 獨具面目이란 具眼者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번득이는 경지가 바로 그것이기에 장석의 글씨는 정작 이제부터라고 충고하고 싶다. 학문의 기초와 서사능력의 기반으로부터 한 차원 진일보 한다면 서단에 우뚝한 굴지의 서가가 될 것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러려면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또 숙명이리라.
우리나라는 지금 서예를 버렸다. 초, 중등의 교육에서 내동댕이쳐 버렸고 대학에서도 거의 끝자락이다. 일각에서 서예진흥법을 운운하지만 지금 같은 국가적 정서 속에서는 실로 恐未可期이다. 서예의 고차원은 고사하고 작품내용의 접근은 물론 잘은 몰라도 서예작품 한 점쯤은 걸어 놓던 풍토까지 다 없앴다. 심지어 동양화, 문인화에서 조차 먹색을 혐오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글씨의 유구한 생명은 역사 속에 활화산 같이 요동치는 진리의 샘이다. 잠시 샘구멍이 막혀있다고 해서 썩거나 고갈이 아닌 이상 세찬 물결은 다시 터져 나올 것이다. 그 세참을 누가 막으랴!
끝으로 장석거사가 지금 비록 한창때라지만 내내 건강하고 앞으로도 더더욱 樂以忘憂하여 구태에서 벗어나 出新의 경지를 열어 길이길이 藝道의 深處에서 함께 소요하기를 첫 개인전을 맞아 간절히 염원하는 바이다.
강호제현의 淸覽과 叱正을 바라마지 않는다.
乙未 晩秋에 靑霞山房에서 寶城 宣柱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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