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 序
歲在乙卯(1975) 余年志學 住於江原道寧越郡金笠面臥石里僻村時 先親携手 入門黌堂 侍奉於月堂師 安義東先生 畏任接長 庶經三年餘 雖走馬看山 夜以繼朝 經書一瞥也.
年至十七 孤棲議政府 晝耕夜讀 新學屢年而與世不相當 戢鱗委翅 煩憫蹉跎之餘 近郊書塾輾轉 至於丙寅(1986)之冬 開于臥石書室 然以弱冠蚊負 書歷亦賤 焉敢敎人也哉 是時 乙巳(1989)以午樵李康模先生推薦 得見摩河宣柱善先生 方入正路 臨池偶得 從吾所好也.
韓愈云“古之學者 必有師 師者 所以傳道授業解惑也 人非生而知之者 孰能無惑 惑而不從師 其爲惑也 終不解矣” 人而無師 焉得正向哉. 然胎生懶怠 躁急遑遑 未嘗了得其奧賾 塗墨弄筆 自愧自嘆 是誰之愆乎?
愈硏書愈感知其襟裾 己卯(1999)早春 幸晤玄岩蘇秉敦先生 再耽詩文 調簾合對 重重推敲 已經二八 雖啻裝配字句 然韻律從遊 聊得消愁也. 夫士之欲致遠者 不明乎孔孟之道 不知乎漢唐之詩則烏可謂致遠乎? 向後晩節 尤親名家之痕 亦近古人之書 但望始終 不違也耳.
今年雙五 乙未劈頭 因以知人之邀 與同學 臥石硏書會陳漢雄會長以下會員諸位以襄助 遂爲首回書展 感荷無盡也. 愚本以淺學菲才 拙品示于世 江湖諸賢 叱正仰望 夫以題乙未新年所望 取代其所感添吟已.
驅隙天時乙未還
吾懷書展滿愁顔
尋常擦墨多飜冊
遊逸揮毫數閉關
筆仰羲翁心盡恪
詩從杜叟意無慳
當年大計知人促
但願功成自得閑
乙未暢月旣望於心眼齋南窓下 利川 徐明澤 蟹
자 서
을묘(1975)년 내 나이 15세에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벽촌에 살적에 선친의 손에 이끌려 서당에 입문하여 월당 안의동 스승님을 모시고 외람되이 접장을 맡아 삼년동안 비록 주마간산 격이나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서를 접해 볼 수 있었다.
17세가 되어 홀로 의정부에 정착하여 주경야독으로 여러 해 신학문을 하였으나 세상과 맞지 않아 비늘과 날개를 접고 번민하며 세월만 보내며 근처 서숙을 전전하다가 병인(1986)년 겨울에 이르러 와석서실을 열었으나 약관의 나이로 짐이 무겁고 서력 또한 미천하여 어찌 감히 타인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이때 을사(1989)년 오초이강모선생의 추천에 따라 마하 선주선 선생을 뵙게 되어 바야흐로 바른 길로 접어들어 글씨 쓰는 법을 터득하여 내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 살 수 있었다.
한유는 이르기를 “옛날의 학자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란 도(道)를 전하고 술업(術業)을 가르쳐주며 미혹됨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닐진대 누가 능히 미혹됨이 없으며, 미혹되면서도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미혹됨이 끝내 풀리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사람이면서 스승이 없다면 어찌 올바른 길로 갈수 있겠는가?
그러나 태생이 게으르고 조급하여 허둥거리다가 일찍이 그 심오한 뜻을 터득하지 못하고 먹과 붓만 희롱하였으니 스스로 부끄럽고 한숨만 나오니 이는 누구의 허물인고? 글씨를 연마하면 할수록 그 무지함을 느낄 수 있어서, 을미(1999)년 이른 봄에 다행이 현암 소병돈선생을 만나게 되어 다시 시문을 즐기며 염을 고르고 대를 맞추며 퇴고를 거듭 한지 벌써 16년이 지났으나 비록 글자를 장식하고 배열할 뿐이나 운율에 따라 노니 이에 시름을 덜 수 있었다. 무릇 선비가 원대함을 이루고자 하는 자가 공·맹자의 도에 밝지 못하고 한·당나라의 시를 모르면 어찌 원대함을 이룰 수 있겠는가? 향후 늘그막에는 더욱 명가의 글씨를 친히 하고 또한 고인의 책을 가까이하여 다만 시종일관 어김이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금년에 55세가 되는 을미년 벽두에 나의 지인들의 권유와 동학인 와석연서회 회원제위의 도움으로 인하여 마침내 첫 번째 개인전을 행하게 되었으니 고맙고 감사하기 그지없다. 내 본래 배움이 얕고 재주가 없으나 졸한 작품들을 세상에 보이니 강호제현의 질정을 우러러 바라며, 무릇 을미신년소망이라는 시를 써서 그 소감을 대신하여 운을 붙이노니...
(구극천시을미환) 하늘의 빠른 세월 을미년 돌아오니
(오회서전만수안) 나의 서예전 생각하니 시름이 가득하네.
(심상찰묵다번책) 평소에 먹을 갈며 많은 책 뒤척이고
(유일휘호삭폐관) 편안할 때 휘호하며 서실 문 걸었다오.
(필앙희옹심진각) 획은 왕희지 쫓아 마음의 정성을 다하고
(시종두수의무간) 시는 두보 따라 뜻을 아낌이 없게 했네.
(당년대계지인촉) 금년의 큰 계획 지인들이 재촉하니
(단원공성자득한) 다만 공을 이뤄 절로 한가하길 빈다오.
을미년 11월 16일 심안재 남창 아래에서 이천 서명택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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