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華世系圖

*반고시대->천황,지황,인황.

유소씨-구목위소, 결승위정 수인씨-찬목취화, 립대전교, 교역흥기

갈천씨-시작악, 흥화폐     무회씨-풍조우순

*삼황시대

복희-획팔괘(선천팔괘), 조서계(목각), 제가취, 작력 하도>황하-용마출현-문양(55개의 점.周易의八卦의 근본, 창힐-조자설(조적)bc3386

신농-제의약, 교민경작,

황제-대발명가>화식, 견사착의, 주실, 교통, 교육, 제관, 승거, 제주

*오제시대

소호-(황제의 차자), 전욱-(소호의자), 제곡-(전욱의자)

제요-(제곡의차자), 도덕정치, 피요지자 양위제순

제순-작금, 명우치수, 피요지자 양위제우

*하-우>치수시 삼과가문이불입, 洛書- 夏禹)가 洛水의 거북의 등에서 얻은 글,

       木克土, 金克木, 火克金, 水克火 우주생성원리 bc2000

*은(상)-탕왕>정전제, 목축, 모필, 간서(죽간목간), 백서, 갑골문(구갑우골)

*주-문왕>팔괘(후천팔괘), 무왕(문왕의자)

 -서주-노자, 관중, 포숙(관포지교)

 -동주-춘추전국시대-칠웅>제초연한조위진외 노(공자, 추 맹자)월오정진>

  대전 금문(청동기)-종정문, 병장기 등이 주물

*진-시황제-천하통일, 분서갱유, 혹세무민, 평민혁명, 명승상이사-소전(주문)-석고   문 대산각석. 등 통합, 진말-옥리 정막설-예서창제>예인 정막설-고예, 팔분예창제

*한-유방(소열황제) 제갈량, 관우, 장비 등. -채륜제지, 허신(설문해자)-許愼:9,353자 수록, 異體字1,163자, 해설자 13만 3,441자 小篆으로 指事,象形,形聲,會意,轉注,假借-(六書)

  *후한-해서-예서 간편-(진서,정서,금예)

  *후한-초서-한간-장초(제도두), 금초(장지), 광초(당인장욱)=동진의 이왕이 완성

  *행서-유덕승이 시조-동진 이왕(왕희지,왕헌지부자) 완성

*서한- *동한-양분후 삼분>촉-항우. 위-조조,조비(고시시조). 오-손권.

*진-사마염-동진=왕희지 헌지, 도연명(오류선생 잠)=고시시인, 귀거래사

          -서진=오호십육국 *육조시대- 북위, 송제양진

  *북위-장맹룡비,정희하비, 조상기, 묘지명(방필) 성행  ->북주->

*수 문제(양견)

*당태종(이세민)-왕서수집입묘,당시인-이백,두보,백거이,유종원,왕발,한유(퇴지)사설,

                서법가-구양순,우세남,저수량(배세), 안진경,유공권(향세) 등

*송태조(조광윤)-송사-구양수,주돈이(렴계),사마광,정호,정이천,소식(동파)주희(주자)

*원 몽고족-조맹부(송설체)->고려말~조선초(관용사용)

*명 태조(주원장)

*청 세조(라복임)-강유위

*중화인민공화국-손중산,원세계,장개석,모택동(공산주의)-문화말살정책,등소평(천안문사건)-민주화 서화부흥

中華世系圖

*盤古時代->天皇,地皇,人皇. 구석기시대-선사시대(중국설화)


有巢氏-構木爲巢, 結繩爲政 신석기시대- 仰韶文化-陶器刻劃符號 섬서성 서안에서 출토

                                      大汶口文化-陶樽圖形符號 산동성 태안에서 출토

燧人氏-鑽木取火, 立臺傳敎, 交易興起


葛天氏-始作樂, 興貨幣    


無懷氏-風調雨順


*三皇時代

伏羲-?八卦(先天八卦), 造書契(木刻), 制嫁娶, 作曆 河圖>黃河-龍馬出現-紋樣(55개의 점.周易의八卦의 根本, 創詰-造字說(鳥迹)bc3386


神農-製醫藥, 敎民耕作,


黃帝-大發名家>火食, 繭絲着衣, 住室, 交通, 敎育, 制冠, 乘車, 制舟bc2698-2358=단군조선초기(한국설화)


*五帝時代

小昊-(黃帝의 次子), ?旭-(小昊의子), 帝?-(?旭의子)

帝堯-(帝?의차子), 道德政治, 避堯之子 讓位帝舜bc2357-2258

帝舜-作琴, 命禹治水, 避舜之子 讓位帝禹bc2257-2208


*夏(禹)>治水時 三過家門而不入, 洛書- 夏禹)가 洛水의 거북의 등에서 얻은 글,

       木克土, 金克木, 火克金, 水克火 宇宙生成原理 bc2207-1767


*殷(商)-湯王>井田制, 牧畜, 毛筆, 簡書(竹簡木簡), 帛書, 甲骨文(龜甲牛骨)bc1766-1121

        母戊方鼎銘, 母辛方鼎銘, 婦好方鼎銘, 小臣兪樽銘, 등 부호글자


*周-文王>八卦(後天八卦), 武王(文王의子)bc222-156


 -西周-老子, 管仲, 鮑叔(管鮑之交)

 

-大篆-商樽銘, 大盂鼎銘, 衛?銘, 墻盤銘, 大克鼎銘, 多友鼎銘, 散氏盤, 訟鼎銘, ?季子白盤, 毛公鼎, 西周末期-楚公家鍾銘

 

-東周-春秋戰國時代-七雄>齊,楚,燕,韓,趙,魏,秦外 魯(孔子, 鄒 孟子)越,吳,鄭,晉>


  大篆- 金文(靑銅器)-鐘鼎文, 兵仗器 等 鑄物 - 候馬盟書, 陳候?銘, 蔡候朱之缶銘, 曾姬無         ?壺銘, -春秋末期- 吳王孫無壬鼎銘

 

 楚簡- 包山楚簡, 靑川木牘


*秦-始皇帝-天下統一, 焚書坑儒, 惑世誣民, 平民革命,


命丞相李斯-小篆(?文)-石鼓文 泰山刻石. 낭야臺刻石, 等 統合,

            瓦當-羽陽千秋瓦當,

          -古隸-睡虎地秦簡,等 5片


秦末-獄吏 程邈設-隸書創製> 隸人 程邈說-古隸, 八分隸創製bc248-207


*漢-劉邦(昭烈皇帝) 諸葛亮, 關羽, 張飛 等. -蔡倫製紙, 許愼(說文解字)-許愼:9,353字 蒐錄, 異體字1,163字, 解說字 13萬 3,441字 小篆으로 指事,象形,形聲,會意,轉注,假借-(六書)bc206-서기217 =단군조선말기


  *後漢-楷書-隸書 簡便-(眞書,正書,今隸)


  *後漢-草書-漢簡-章草(齊人杜度), 今草(張芝), 狂草(唐人張旭)=東晋의 二王이 完成


  *行書-劉德昇이 始祖-東晋 二王(王羲之,王獻之父子) 完成


*西漢-東漢으로 兩分

 

*西漢隸書- 馬王堆帛書

 

*西漢簡- 阜陽漢簡, 定縣漢簡, 居延漢簡, 武威漢簡, 敦煌漢簡,

 

*西漢瓦當,?文- 富貴昌方?文, 人生長壽?文, 上林瓦當 衛字瓦當, 長樂未央, 千秋萬歲 등


*東漢- 隸書-祀三公山碑, 袁敞碑, 崇山少室石闕銘, 延光殘碑, 北海相景君碑, 石門頌, 乙瑛碑, 禮記碑, 鄭固碑, 孔宙碑, 封龍山碑, 西岳華山廟碑, 武榮碑 衡方碑, 史晨碑, 張壽殘碑, 西狹頌, 韓仁銘, 尹宙碑, 白石神君碑, 熹平石經, 曺全碑, 張遷碑, 趙?令碑, 劉熊殘碑,


**東漢- 三分> 蜀, 魏, 吳


*蜀-項羽. (東漢 楷書- 鍾繇-賀捷表, 宣示表


*魏-曹操, 曺丕 父子(古詩始祖). -隸書-受禪表, 正始石經, 曺眞碑,



*吳-孫權. 篆書-天發神讖碑, 禪國山碑,

          

 *北魏-張猛龍碑, 鄭羲下婢, 造像記, 墓誌銘(方筆) 盛行  ->北周->서기220-264 =고구려,신라, 백제초기


*晋-司馬炎-東晋=서법가;王羲之 獻之, 顧愷之, 王珣

                시인;陶淵明(五柳先生 潛)=古詩詩人, 歸去來辭서기265-419

          -西晉=五胡十六國

-西晉-草書-衛瓘(頓首州民帖), 陸機(平復帖)

      -楷書-般若心經, 法華經, 文書殘紙=尺牘


*六朝時代-東晋, 北魏, 宋,齊,梁,陳


-北魏-張猛龍碑, 鄭羲下婢, 石門銘, 牛?, 始平公造像記, 元羽, 奚智, 元顯儁, 孟敬訓, 元暉, 張玄墓誌銘, 龍門二十品(方筆) 盛行



  ->北周->서기220-264 =고구려,신라, 백제초기


-東晋-書聖王羲之, 獻之 父子 天下第一行書 蘭亭序=神龍本(馮承素) 定武本(歐陽詢)

     行草書 - 快雪時晴帖, 平安帖, 喪亂帖, 二謝帖, 孔侍中帖, 遠宦帖, 初月帖, 七月             帖, 都下帖, 十七帖.   楷書- 黃庭經

     -王獻之-楷書 洛神賦,   行草書 十二月帖, 卄九日帖, 舍內帖, 東山帖, 中秋帖,

그 외 ?寶子碑, 好太王碑-高句麗王朝 19大王(名;談安) 子 長壽王이 父 廣開土大王의 功績記述


 *隋 文帝(楊堅)서기589-617

 智永-眞草千字文, 楷書-龍藏寺碑, 董美人墓誌, 孟顯達碑, 蘇慈墓誌,


*唐太宗(李世民)-王書 蒐集 入墓,  서기618-906 = 고구려, 신라, 백제 말기


唐詩人-李白, 杜甫, 白居易, 柳宗元, 王勃, 韓愈(退之)師說,


書法家-歐陽詢-隸書-房彦謙碑. 楷書-化度寺碑, 九成宮醴泉銘, 昭仁寺碑, 皇甫誕碑

              行書-夢奠帖, 卜商帖, 張翰帖, 千字文

      -歐陽通-道因法師碑, 泉南生墓誌,

      -虞世南-孔子廟堂碑, 汝南公主墓誌稿, 臨蘭亭序,

      -李世民-溫泉銘, 晉祠銘,

      -?遂良(背勢)-孟法師碑, 雁塔聖敎序, 臨蘭亭序, 陰符經

      -懷仁 集字聖敎序, 釋大雅 集字興福寺斷碑

      -孫過庭-書譜, 

      -賀知章-草書 孝敬

      -李邕-?山寺碑, 李思訓碑,

      -張旭-郎官石記序, 嚴仁墓誌, ?痛帖, 古詩四帖, 自言帖,

      -李陽氷-篆書 三墳記  -徐浩-篆書 悟臺銘,

      -顔眞卿-楷書-多寶塔碑,東方朔畵讚碑,顔氏家廟碑,告身帖. 行書-爭座位帖, 祭姪文稿

 그 외 劉公權(向勢) 육간지, 배수진, 왕지경, 두회철, 심홍, 무칙천, 가방소, 설요, 설직, 허자옹, 사유즉, 종소경, 이륭기, 한택목, 회소(천자문), 심전사, 두목, 애거회, 배휴, 오채란, 등




*宋太祖(趙光胤)-宋詞-서법가 ; 歐陽修, 歐陽修, 蘇軾, 黃庭堅, 蔡襄, 米?, 米友仁, 張卽之, 徽宗, 吳踞, 張? 等

철학가 ; 周敦?(廉溪), 司馬光, 程顥, 程伊川, 蘇軾(東波), 朱喜(朱子)

서기960-1279 = 고려초기


*元 蒙古族-서법가 - 趙孟?(松雪體), 虞集, 張雨, 柯九思, 鮮于樞, 鄧文原, 楊維楨, 錢良右, 方回, 吳炳,  等->高麗末~朝鮮初(官用使用)서기1280-1370 = 고려말기


*明 太祖(朱元璋) 서법가 ; 宋克, 沈度, 劉眞, 沈周, 李應禎, 李東陽, 吳寬, 祝允明, 文征明, 唐寅, 王陽明, 文彭, 文嘉, 徐渭, 王問, 申時行, 王衡, 王世貞, 唐順之, 王谷祥, 董其昌, 張瑞圖, 倪元?,  等 

서기1368-1643 = 조선초기


*淸 世祖(羅福臨)-서법가 ; 康有爲, 順治帝, 康熙帝, 乾隆帝, 王鐸, 王時敏, 高士奇, 鄭燮, 劉墉, 王文治, 鄧石如, 桂馥, 伊秉綬, 翁方綱, 包世臣, 何紹基, 黃?, 趙之謙, 石濤, 吳熙載, 楊守敬, 李鴻章, 吳大?, 袁世凱 등 서기1644-1911 = 조선말기


*中華人民共和國-孫中山,袁世凱,張介石,毛澤東(共産主義)-文化抹殺政策,登小平(天安門事件)-民主化 書畵復興서기1912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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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結   論



  요즈음 書藝家라면 누구나 美術人(서양화, 한국화, 공예, 조각, 디자인 등)들과 접촉 할 때가 많을 것이다. 서예가 미술의 한 분야로 존재하는 한 많은 미술인과의 교류는 持續될 것이다.

  美術人들이 書藝를 바라보는 눈은 美術界의 제일 낮은 分野로 取扱하기 일쑤여서 筆者도 많은 言爭을 한 적이 있다. 대체로 서양화 같은 경우, 작품을 하는데 있어서 재료비가 서예 보다 많이 든다는 것은 인정하나 號當 價格을 懸隔하게 차이를 두고 얘기 할 때는 화가 치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들이 작품을 하기 위하여 투자한 시간과 정열보다 서예가들은 書作의 一劃을 얻기 위하여 그들 보다 더 많은 時間과 投資를 했음에도 국민들에게나 美術人들에게 외면 당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自古로 詩․書․畵 三絶이라 했거늘 그들이 과연 이런 말을 들어보기라도 했는지 의심스럽다. 이렇게 되기까지 서예인 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自省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은 敎育制度의 問題點을 指摘하지 않을 수 없겠다. 各 大學의 美術 大學에서 수많은 畵家들을 每年 排出하여도 그들은 大體的으로 就職이나 일자리가 많지만 書藝科를 卒業한 후에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 큰 問題로 擡頭되고 있다.

  앞으로 書藝人 들이 살아 남으려면 體系的인 理論이 定立되고 書藝學으로 발전하여 적어도 書藝家라면 詩文에 能通하여 모든 國民들이 어려워하고 궁금해하는 漢文이나 漢詩는 書藝家에게 가면 모든 궁금증이 解消될만한 資質을 갖추어 믿음을 심어 준다면, 수많은 국민들이 서예를 배우려 同參할 것이며 書藝科를 卒業한 학도들이 대우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서예 이론을 전공하여 博士學位를 받으시는 분들이 漸次 增加함은 곧 서예가 서예 학으로 발전될 것을 예견하는 것이어서 많은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며, 늦은 감은 있지만 敎育部의 爲政者들도 생각을 한번 돌이킬 때가 아닌가 한다.

  國語의 70%以上을 점하고 있는 漢文을 外面하고, 나아가 書를 畵로 나아가기 전의 기본으로 생각을 轉換해야 할 것이다. 國民의 政府 들어서 漢文을 初等學校 敎科書에 싣자는 움직임이 일었을 때 많은 서예인 들이 큰 기대를 한 적이 있었으나 한글 학회 일부 교수들의 반대에 부딪쳐 다시 後退한 것은 痛嘆할 일이라 하겠다.

  詩作은 人生에 있어서 事物을 낳는 큰 神靈의 作用이다. 詩 없는 世上이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理論을 밝히는 學問과 도를 깨닫는 宗敎들도 産靈인 것이나, 시는 그 어느 것보다도 큰 산령의 작용인 것이다.

  특히 孔子는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 할 수 없고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가 없다(不學詩無以言 不學禮無以立)고 했다. 이는 시로서 민심과 풍속을 바로 잡고 예로서 人間關係(Human relation) 改善과 道德의 體系를 바로잡으려고 弟子敎育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于先 漢詩를 익히기 위한 要諦요 捷徑은 첫째로 한시 중에서 唐詩를 많이 읽고 吟味하고 暗記하는 方法이다. 漢詩는 漢代 劉向의 說苑에서 일정한 해석이 없다(詩無通詁 易無通吉) 했고, 흔히 시는 그 맛을 얻을 뿐이요 가히 해독할 수는 없다(詩可得味 不可得解)라 했으며, 蘇東坡는 讀書萬卷始通神이라 읊었으며, 朱熹는 讀書百篇義自見이라 하였으니 解釋에 重點을 두지 말고 多讀에 重點을 두면서 공부하여야 한다.

  둘째는 作詩를 해보는 것이다. 작시법을 알고 시를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과는 감동을 주는 것이 전혀 다른 것이다. 또한 自吟詩를 體制로하여 書藝作品을 해보지 않고서는 진정한 書卷氣 文字香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셋째는 한시의 先覺者를 스승으로 모시고 꾸준히 修學하거나 훌륭한 詩友들과 자주 만나 듣고 보고하여 切磋 琢磨 하는 것이다. 詩會에 처음 참석하면 다소 어렵게 느껴지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겠으나 하루 이틀 한해 두해가 쌓이면서 귀가 열리고 문득 문득 閃光처럼 떠오르는 珠玉같은 詩語들이 많아질 것이다.

  嚴羽는 滄浪詩話에서 詩禪一致說을 주장(大抵禪道惟在妙悟 詩道亦在妙悟) 했으니 壁面七年에 無念無想으로 어느 날 문득 得道하는 것이나, 시를 배우고자 하는 자는 먼저 五俗(俗體, 俗意, 俗句, 俗字, 俗韻)을 제거하고 四不(不怒, 不露, 不暗, 不疎)을 警戒해야 한다고 했으니 一脈相通하지 않는가?

  賈島는 ‘獨行潭底影이요 數息樹邊身이라.’ 즉 홀로 물 속에 그림자와 함께 가고, 자주 나뭇가에 몸을 기대 쉬네, 라고 짓기를 3년이나 고심한 끝에 얻어서 말하기를 三句를 三年만에 얻었으니 한번 읊으니 두 줄기 눈물 흐르네. 친구들이 만일 좋다 하지 않으면 고향 가을 산에 돌아가 누으리라(二句三年得 一吟雙淚流 知音如不賞 歸臥故山秋)했으니, 과연 詩人 다운 관조의 소리가 아니던가.

  이렇듯 어렵게 得句한 自吟詩를 우리 書藝家들이 그 詩를 吟味하면서 一筆 揮紙한다면 錦上添花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筆者가 本 論考를 쓰게된 동기도 여기에 있으며, 微賤한 筆者에게 쓸 수 있는 용기와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摩河 宣柱善 先生님과 玄岩 蘇秉敦 先生님께 감사 드리며, 필자를 위해 敎務에 바뿐 가운데도 선뜻 나서서 編輯을 도와준 沙隱 陳漢雄 學友님께도 感謝 드린다.

參  考  文  獻


漢詩演習. 李炳基 著. 보고社 刊. 1996.

漢詩作法. 洪永善 著. 創元社 刊. 1963.

漢詩作法. 金銀容, 金信炯. 共著. 明文堂. 1979.

詩學. 張正體, 張婷婷. 共著. 臺灣商務印書館. 民國619.

東人詩話. 徐居正 著. 趙鍾業 編. 太學社. 戊辰年.

詩人玉屑. 宋代 魏慶編. 上海古籍出版社. 1978.

詩海韻珠. 崔海鍾 著. 學民文化史. 1994.

唐詩新評. 金澤 著. 蘇秉敦 編. 圖書出版 善. 1995.

漢詩槪說. 河永燮 著. 韓國漢詩協會. 2001.

中國詩論. 車柱環. 서울大出版部. 1989.

漢詩入門. 李東種. 保景文化史. 1986.

中國詩와 詩論. 蒼石李炳漢敎授 華甲紀念 論文集 刊行委員會, 玄岩社. 1993

韓國文學通史. 2,3. 조동일. 知識産業社 第2版. 1990.

漢詩美學산책. 정 민 著.  솔. 1996.

中國唐詩硏究. 上,下. 柳晟俊. 國學資料院. 1994.

中國文學史. 金學主. 新雅社. 1989.

中國藝術精神. 徐復觀 著. 權德周 譯. 東文選. 1990.

中國詩歌學. 肖馳. 北京大學出版社. 1986.

詩란 무엇인가. 유종호.민음사.1986.

中國書藝美學. 宋民 著. 郭魯鳳 譯. 東文選. 1995.

書藝槪論. 宣柱善 著. 美術文化院. 1986.

中國書藝80題. 楊震方外 著. 郭魯鳳 譯. 東文選. 1995.

藝舟雙輯. 包世臣 著. 鄭充洛 譯. 美術文化院. 1986.

書藝大觀. 祝敏申 著. 李奉俊 譯. 梨花文化. 1997.

中國書法史. 張光賓 著. 臺灣商務印書館. 民國70.

中國書道史. 神田喜一郞 著. 崔長潤 譯. 雲林堂. 1985.

書藝百聞百答. 閔祥德 著. 郭魯鳳 譯. 미진社. 1991.

書藝란무엇인가?. 閔祥德 著. 大邱書學會 譯. 1992.

中國古代書法家 劉詩 著. 北京文物出版社. 1991.

書法正傳 馮武 著. 上海書畵出版社. 1985.

書法新義 趙英山 著. 臺灣常務印書館. 1984.

法書要錄 張彦遠 著. 上海書畵出版社. 1984.

高等學校 漢文 自習書. 박천규 이신복 著. 塔出版社. 1986.

月刊까마. 石曲室. 2001年. 10.

斗山世界大百科辭典. 斗山東亞, 1998.






 

Ⅳ. 書藝作品 構成의 意義


      

   書藝作品의 構成에는 紙面의 모양과 크기를 于先 選擇한 후 좋은 文章이나 詩의 字數를 계산하여 書體(篆, 隸, 楷, 行, 草)를 정한다음 集字를 하거나 硬筆로 間架와 餘白을 어울리게 써본후에 實技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재료(紙, 筆, 墨, 硯)도 중요하겠지만 마음의 平正을 찾아서 심정의 변화 없이 初志一貫되게 써 내려가야만 行氣爽朗하고 精緻 工整하여  飄逸秀麗한 作品이 나올 것이다.

   서예에 처음 입문할 때 누구나 點. 劃을 먼저 시작하여 用筆의 藏露 ,方圓, 遲速, 曲直, 剛柔등을 익힌 후 한자의 計白當黑, 知白守黑등의 결구 법을 배우고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章法이라 하여 글자의 大小, 長短, 粗細, 濃淡, 肥瘦, 輕重, 斜正, 輕重, 行留, 布白等 全體文章에 흐름의 統一感과, 낙관글씨와 落款의 위치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 자기의 자신 뿐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虛實相間함이 一瀉千里 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審査의 基準이나 作品鑑賞法도 이와 같을 진데 어찌 一點 一劃을 소홀히 하랴?

一劃論을 說破한 明末 淸初의 石濤는 일찍이 老, 壯의 無爲 自然觀과 孔, 孟에 陰陽의 造化를 깨닫고 “太古의 순박함이 순화해서 一劃의 법이 확립되었다. 일획의 법은 모든 사물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니, 그런 까닭에 나는 일획으로써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1) 고 말했듯이 作品構成에 있어서 一劃뿐 아니라 一字의 位置나 어울림은 실로 엄청나다 하겠다.

 

1. 餘    白


   西洋의 繪畵를 제외하고 書藝와 文人畵 作品에서의 餘白의 필요성은 작가라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작품 할 紙面 그대로를 벽이나 책상에 놓고 앉으나 서나 그 면을 바라보며 글씨나 그림을 수 백번 메워 (胸中成竹)보다가 偶然得書 하여 일사천리로 써 내려갔을 때, 劃以外의 모든 공간도 하나의 자연스러운 造化를 이룰 것이다. 藝舟雙輯에서 鄧石如가 말하기를 字劃이 성근 곳에서는 말을 달리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하고 밀 한곳에서는 바람도 통할 수 없게 채워쓰고 항상 “白을 재어서 黑을 놓을 때에는 훌륭한 멋이 나온다.”2) 했고 笪重光은 書筏에서 “黑의 量度를 나누고 白의 虛靜을 편다”3)했다.  

  작품 전체의 置陳布勢로 말하면 知白守黑은 하나의 중요한 부분이다. 일폭중에서 字와 字, 行과 行間의 소밀이 적당하고 점획에서 정감이 있으며, 上下相通하고 정신과 기운이 始終如一 한다면 神采飛逸하고 俊美雄建하여 鑑賞者로 하여금 지극한 맛을 느끼게 할 것이다. 한 폭의 훌륭한 작품은 有墨處에 정채가 뛰어날 뿐 아니라 無墨處에 더욱 정신이 비약하여 볼수록 음미할 가치가 있다. 黑, 白과 虛實의 법을 초월하여 붓이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정신이 존재하고 붓이 이미 이르렀으나 기운이 다하지 않은 절묘한 경지라 말할 수 있다. 경험이 풍부하고 기법이 능숙한 서예가는 知白守黑의 妙한 境地를 깊이 인식하여 간결하면서도 側倒多安하여 한 점의 군 획도 없을 것이다.4)


2.   向    背

 

  向背란 글씨의 點劃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向은 顔體의 月, 同, 門等과 같이 서로 마주보고 向勢를 취함을 말함이고, 背는 亅字와 같이, 사람이 차렷 자세로 마주보고 섰을 때 양쪽의 등이 휘듯이 각각 그 形勢의 上間關係를 말한 것이다.

  姜夔는 續書譜에서 “서로 읍하고 등지며, 왼쪽에서 자세를 취하면 오른쪽에서 같이 응하며 위에서 일어나면 아래에서 엎드리게 하여 점과 획 사이를 각각 이치에 맞게 베풀어 놓는 것을 말한다”5) 하였다.  이 말은 初學者가 結句를 터득하는데 비교적 중요한 것이다. 漢字는 대개 字形이 4각에 속하지만 그 點劃은 결코 한결같지 않아서 向背, 大小 長短, 左右가 모두 일정하지 않다. 만약 글자를 쓸 때 점획이 서로 照應되지 않으면 서로 排斥하거나 방해가 되어 결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보인다. 물론 힘의 按配에 있어서 똑같이 균형만 이루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되면 글씨가 판에 박힌 듯 機械的인 雰圍氣가 되어 藝術性이 喪失될 것이며 創作의 바탕인 氣韻生動이 드러날 수 없다. 萬一 巧妙 하면서도 合理的으로 점획을 按配하여 중심을 잃지 않게 한다면 제각기 韻致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한글자의 서로 상대되는 두획이 向이면 모두 向을 취해야 하고 背면 다같이 背를 취해야지 하나는 향이고 하나는 배일 수는 없다. 또한 각 글자마다 主劃이 있는데 그 나머지 筆劃은 賓劃으로 主가 되는 劃을 돌봐야 한다. 非字를 예를 들면 우측 세로획이 주가 되고 왼편 세로획이 빈이 된다. 그러니까 왼편 세로획을 그을 때 먼저 우측 세로획을 고려해야 한다. 또 劍, 斜의 글자는 아래가, 懸, 壁같은 자는 위가, 伐, 怏같은 글자는 우측이, 筆, 要같은 자는 아래 부분이 좀더 넉넉해야 한다. 그리고 삼수변의 경우 조금 짧아야 하고 右側 傍의 획수가 적으면 삼수변이 길어야 할 것이다.   劉熙載6)는 書槪에서  “글씨는 陰陽의 법을 兼備해야 하니 대개 침착하며 답답한 듯 함은 陰이고 빼어나고 豪放豁達함은 陽이다” (書要兼備 陰陽二法 大凡沈着屈鬱 陰也 ; 奇拔豪達 陽也)고 했다. 이는 음양의 뜻을 진일보하여 서예의 품격과 특징에까지 확대하여 설명한 말이다. 사실 글씨는 두 가지 음양의 기운을 겸비해야 한다.  첫째는 고상한 풍격과 정신이 담겨 있어서 글씨로 하여금 힘이 착실하여 종이를 꿰뚫는 듯 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는 바탕이 堅實 하면서도 浩蕩한 기운이 있어야 하며 생각과 마음은 精微한데 까지 이르러야 迫力이 커질 것이다.  陰陽의 두 가지를 兼備하려면 착실한 공부도 필요 하지만 藝術的인 素質이 더욱 必要하다. 그래서 글씨에는 神采가 있기 마련이다.

  이외에 글자를 서로 돌아다보고 모이거나 흩어지게 하고 오므리거나 펼치기도 하여 서로 讓步하는 가운데 정리가 있게 함은 글씨를 쓰는 이가 스스로 攄得 하고 摸索하여 자기의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은 본인의 노력이다.


3.  疎   密


  疏密은 글자의 짜임세와 布白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點劃의 거리가 먼 것을 疎라하고, 거리가 가까운 것을 密이라 한다. 서예는 한 글자내의 布白과 글자와 글자 사이의 間隔과 줄과 줄 사이의 餘白에 대해 點劃間의 (虛實, 向背, 間架, 平正 連貫, 挪讓, 變化, 附和雷同, 大小, 長短, 寬窄, 斜正) 등 중에서 특히 疏密의 關係를 매우 중요시한다.7)  이러한 藝術的 規律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점획의 분포가 비로소 또렷하여 神采가 飛躍하고 모양도 제각기 달라 미적인 藝術效果를 낳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關鍵은 疎한곳에 密한 風貌가 있고, 密한곳에는 疎한 情趣가 있는데 있으니, 이렇게 되면 疎한곳은 虛하거나 散漫하지 않고 密한곳은 답답하지 않게 된다.8)

  姜夔는 續書譜에서 “글씨는 疎로서 風神을 삼고 密로서 氣老를 삼는다”9)  하여 예컨대 “佳字의 네 개의 가로획과 川자의 세로획, 魚字의 넉점, 畫字의 아홉 개의 가로획 같은 것은 반드시 붓을 대는 곳이 動靜, 均整하여야 훌륭한 것이니 疎해야 하는 곳에 疎하지 않으면 옷이 襤陋한 거지처럼 보일 것이고, 密해야 할 곳에 密하지 않으면 반드시 調疎하게 된다”10)  라고 했다. 이것은 結字의 자체에 疏密의 規律이 있음을 明確하고 具體的으로 闡明한 것이다. 初學者들은 疏密이 제대로 멋을 이루고 高低가 서로 情趣가있고, 虛實이 서로 照應 하는데 到達하려면 평소에 前人의 墨迹과 法帖을 많이 보면서 소밀의 理致를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익숙해지고 技巧가 생겨 意在筆先하고 筆斷意連하여 그 奧妙함을 다할 것이다.  



4. 書藝美學과 詩文


   文人畵의 始祖로도 알려졌고 詩文에 뛰어나 詩佛이라 불려지는 王維는 일찌기 詩, 書, 畵 三絶을 강조했다. 우선 詩하면 精神世界, 哲學, 文學, 思想等의 단어들이 떠오르고 書하면 人品, 人格修養, 心性陶冶, 倫理, 造形的 表現等이 뇌리를 스치고, 畵하면 繪畵, 文人畵, 墨畵, 四君子等의 단어들이 연상될 것이다. 모름지기 서예가 더욱 발전하려면 詩文에서 書學의 理論을 찾아야 할 것이다. 揚雄은 法言.問神篇에서 “무릇 말이라는 것은 마음의 소리이고 글씨라는 것은 마음의 그림이다”11) 라고 하였다. 이 말이 淵源이 되어 書與其人 또는 文字香 書卷氣가 서에 풍겨야 한다고 逆說 하였다. 이것은 詩文에 學識이 많아 거기에서 우러난 香氣가 품어져 內在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書藝美學과 詩文의 관계를 볼 때 서예미학은 詩文美學으로부터 많은 影響을 받았다. 시문미학의 審美原則, 理論範疇, 述語 및 鑑賞, 批評方法등의 진행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았고 이를 吸收 하였다.  시문미학의 思無邪와 文質彬彬등의 심미원칙으로 자기의 審美理想을 논하였으며, 또한 詩文批評의 標準을 應用하여 이를 書藝批評에 導入하였다.   “孔子는 詩 三百篇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악함이 없다”라 했고, 또한 “바탕이 外觀보다 나으면 야스럽고 외관이 바탕보다 낳으면 화사하다, 외관과 바탕이 잘 어우러진 뒤에 君子라 할 수 있다”12) 라 하였는데, 張懷瓘은 이 시문미학으로 서예를  평하였다.  이른바 骨豊․肉潤의 경지에 이르러 힘과 아름다움이 兼備하여야 한다는 것을 强調한 말이라 하겠다.  서예미학은 다채로운 시문미학의 述語와 範疇를 採用하여 審美 規律을 밝혔다.  曾涤雲은 用筆의 着力과 不着力을 해석하면서 “힘이 있으면 굳센 형세를 취하고, 힘이 없으면 자연의 맛을 얻는다. 힘이 있으면 韓愈의 文章과 같고, 힘이 없으면 陶淵明의 詩와 같다. 힘이 있으면  王羲之가 말한 錐劃沙와 같은 것이요, 힘이 없으면 印印泥와 같은 것이다.”13)   라 했고 孫過庭은 書譜에서 陸機의 文賦에 있는 “생각이 즐거운 곳에 머물면 웃음이 나고 바야흐로 슬픈 것을 말하면 恨歎이 나온다” 14)  라는 것을 빌려서 涉樂方笑, 言哀已嘆이라고 바꾸어 말했다.  이것은 書藝가 情感을 傳達하는 表現을 根本으로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豊坊은 書訣에서 沈着痛快라는 詩論으로 서예를 평하면서, “옛사람이 시의 묘한 것을 논하면서, 침착하고 통쾌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오직 글씨 또한 그러하다. 沈着痛快하지 않으면 살찌고 탁하여 韻致가 不足하며, 沈着痛快하지 않으면 性質이 粗雜하여 법도가 제멋 대로다”15) 라 했다. 書藝美學은 서예의 審美 規律을 검토할 때 항상 詩文과 比較하여 말하곤 한다.  張紳은 書法通譯에서 “옛사람이 글씨를 씀이 마치 文章을 짖는 것과 같다. 문장을 지음에는 字法, 章法, 篇法이 있고 終篇의 結句는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응하는바 首尾相應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점은 한글자의 法度가 되고, 한 글자는 이에 終篇의 主人이 되니 일어나고 엎드리고 숨고 나타나는 變化와 陰陽의 向背 等에 모두 意味와 形態가 있다. 먹을 사용하고 붓을 運用함에 있어서도 또한 이러한 뜻이 있어야 하니, 진하고 흐리고 마르고 潤澤하고 살찌고 파리하고 늙고 어린것들이 모두 調和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뜻의 능함이 있어야 하고, 形勢가 정해져야 비로소 書藝라 말할 수 있다”16) 라 했다.

  張懷瓘은 六體書論에서 王羲之의 글씨를 評하여 말하길 “종과 북을 울리는 것 같으니, 詩經의 雅와 訟에서 얻은 것 같다. 情趣의 그윽하고 깊음은 詩經의 表現 수법인 比와 興의 수법을 나타낸 것이다” 17)라고 했다. 18)


 

Ⅴ. 自吟詩로의 書藝作品 構成



  우리말의 70% 以上이 漢文임을 勘案 할 때 한문을 모르면 國語 純化는 遙遠한 것이다. 말의 정한 것은 글이요 글의 정한 것은 詩일진데, 특히 文字를  藝術로 表現 하는 書藝人들이 시를 모르고서야 어찌 온전한 書藝家라 하겠는가?

  多幸히 근래에 적지 않은 서예가들이 作詩法을 硏究하고 同參하는 것을 볼 때, 머지 않아 他人의 詩文을 模寫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自覺하게 될 것이다. 筆者는 自作詩로의 作品構成의 便利함과 當爲性을 간단히 논하고 隸書로 實在 構成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體制에 맞게 添削과 變形의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1. 當爲性과 便利함


  自吟詩로의 書藝作品에 當爲性과 便利함은 無數히 많지만 公募展에 出品할 때면 대개 先人들의 詩集에서 無作爲로 골라 쓰다보니, 印刷의 誤謬로 인하여 誤脫字가 非一非再 할뿐 아니라, 괜찮은 체제를 잡고 보면 이미 다른 사람들이 수없이 使用한 시임을 깨닫고 反復하여 詩集을 뒤적이는 것이 普通이다. 또한 結婚式이나 回甲집, 開館式, 入住式 같은데 適合한 내용이 없어서 墨藏寶鑑을 뒤적이는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이다. 오히려 그 시간에 作詩法을 배워서 適材 適所에 본인이 전해주고 싶은 말을 詩文으로 적어서 써주고 그 深奧한 뜻을 說明해 준다면, 받는 이로 하여금 기쁨이 배가될 것이며, 作品에 文字香 書卷氣는 자연히 베어 있을 것이다. 文人畵도 마찬가지여서 예를 들어 石蘭을 하나 쳐서 畵題 글씨에 石蘭이 내뿜는 香氣와, 畵幅에 담겨있는 作家로서의 感情, 所藏할 분에게 하고싶은 珠玉같은 단어들을 짧게 적어 준다면 그 뜻은 書作과 比肩할 것이다. 各種 公募展에서 文人畵 畵題를 살펴보면 大部分 詠物詩選等에서 베끼다 보니 系列別로 같은 畵題가 한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 斯界에 最高로 일컬어지는 秋史 金正熙 先生은 詩, 書, 畵를 모두 兼했기 때문에, 그 名聲을 현재까지 떨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歲寒圖等의 그림은 元代 四大家中의 一人인 倪贊(예운림)의 影響을 본받았다손 치더라도 그가 남긴 業積은 永遠히 歷史에 記錄될 것이다.



2. 實際 構成의 例


  書藝作品 중에서 行草는 縱, 橫의 定型이 없기 때문에 一. 二. 三이나 大小, 上下, 左右等의 글자들이 섞여 있어도 章法에 있어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篆, 隸, 楷書의 경우는 □안에 넣다 보면 虛와 實이 나타나게 됨을 알 것이다.  그 동안 筆者가 自吟詩로 출품했던 작품을 2점 選擇하여 圖表를 보면서 長, 短點을 比較 分析 하겠다.



〈圖11〉                                  〈圖12〉

<圖11〉해석; 가을바람 쓸쓸하고 기러기 날아갈 때        商風蕭瑟雁行時

       밝고 흰 저 달은 그림으로 옮기기 어렵네.          明白銀蟾畵不移

       곡식 이어진 풍성한 들녘엔 구름이 언덕을 수놓고   豊野穀連雲繡塢

       산 가득 펼쳐진 단풍 빛은 울타리로 스며드네.      滿山楓展彩侵籬

       쇠잔한 한 점의 별 술잔에 영롱하고                殘星一點瓏樽酒

       길고 외로운 피리소리 시를 살찌우네.              長笛孤聲澤賦詩

       초목은 무정하게 나부끼며 떨어질 때               草木無情飄零際

       봄에 나서 열매맺고 찬 겨울 기약하네.19)          春生秋實冷冬期


〈圖11〉과 〈圖12〉의 差異點을 살펴보면 〈圖11〉의 첫째 줄에서 明白이 皎潔로 바뀌었고 셋째 줄의 一點이 數點으로, 넷째 줄의 冷冬이 惹霜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明白으로 썼을 경우 白字옆에 山과 더불어 右腰가 虛했으나 皎潔(희고 깨끗한)로 바꾸어 줌으로써 허함을 補完 하였다.  또한 셋째줄 冷冬 두자가 허한 것을 惹霜으로 바꾸어 보완하였다.

〈圖13〉                                〈圖14〉

〈圖13〉해석; 초목이 고운 빛을 서로 다투기 시작할 때    草木爭姸麗色初

        봄 성의 찬란한 꽃 그윽한 옛터 수놓았네.          春城花爛繡幽墟

        이때에 술 들고 좋은 친구 찾아오면               今時攜酒良朋到

        취한 후 시 읊으며 한결같은 흥취 펴리라.          醉後加吟一興舒


〈圖13〉과 〈圖14〉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草木을 草綠으로 바꾸었고 一興을 逸興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木을 綠으로 바꾸어 첫머리의 허을 면했고 끝 부분의 一을 逸로 바꾸어 왼쪽 上段을 實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이 作品 體制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自吟詩의 長點이다. 만일 他人의 詩를 썼을 때, 書藝家 마음대로 비록 平仄과 韻律을 맞추어 바꾸었다손 치더라도 이는 分明 誤,脫字 是非 아니면 그 作者의 後孫에게 저작권법에 의한 커다란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덧 붙인다면, 남의 시를 베껴 쓴다면 作者의 雅號나 姓銜字를 반듯이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書藝人 雅號나 姓名만 쓰는 것은 남의 詩를 自身이 直接 짖고 쓴 것으로 解釋되어 剽竊 是非에 휘말릴 것은 明若觀火 하므로 操心해야 할 것이다.



3. 添削과 推敲


  得一字 勝千金이란 말이 있다. 文章도 마찬가지겠지만 詩에서는 한 글자를 바꾸므로써 詩내용 전체가 살아나 名句 또는 驚句로 變貌한다.

  唐代의 詩人 賈島가 말을 타고 가다가 聞得 詩句가 떠올라 “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새들은 연못가 나무에서 잠을 자고, 스님은 달 아래서 문을 미네”. 라고 지은 후 고민을 하는데 偶然히 이를 본 韓退之가 2句의 推字를 敲字로 고쳐주어 僧敲月下門이라 하여 “스님은 달 아래서 문을 두드리네”로 바꾸어 주어 훗날 글자를 바꾸거나 添削하는 것을 推敲(퇴고)란 말이 생겼다 한다.  글귀를 찾는 것은 호랑이를 더듬는 것 같고, 知人을 만나는 것은 神仙을 만나는 것 같다.“覓句如探虎 逢知似得仙”란 말도 시를 짖다보면 고심 끝에 得意하여 지은 시를 지인 이 한두 자를 고쳐주어 그 시가驚句로 바뀔 때면 그 기쁨은 가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筆者가 作詩法에 入門할 때 지은 시를 蘇秉敦先生께서 添削해 준 것을 한편 예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詩題; 小春雅會  押韻; 淸, 城, 聲

     起  於焉老葉曉霜淸  어언간 시들은 잎에 새벽이슬 맑더니,

     承  斜日眼展不夜城  지는 해 눈앞에 펼쳐지니 불야성을 이루었네.

     轉  菊酒傾杯忙寒氣  국화술잔 추운 날씨에 바삐 기우리니

     結  醉中興致放歌聲  취한 후 흥이 나면 큰소리로 노래하세.


위 시를 老葉을 秋菊으로 바꾸고 斜日을 揚月로, 眼展을 眼前으로 菊酒傾杯를 詩酒飮觴으로 添削하니 拙作이 美品으로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於焉秋菊曉霜淸  어언 가을 국화에 새벽이슬 맑은데

       揚月眼前不夜城  눈앞에 달빛 드날리니 불야성을 이루었네.

       詩酒吟觴忘寒氣  술 마시며 시 읊으니 추운 기운 다 잊었고

       醉中興致放歌聲  취한 후 흥이 나면 큰소리로 노래하세.


아마도 老葉을 秋菊으로 바꾼 것은 가을하면 제일먼저 菊花가 聯想되어야 할 것이고, 지는 해 보다는 秋月揚名煇에 不夜城은 안성맞춤일 것이다. 起句에서 菊字가 나왔기 때문에 疊字를 避하기 위해서 轉句에 菊酒를 詩酒로 바꾸었고 忙寒氣도 忘자로 바꾸니 이시는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흔히 三上이라는 말이 있으니 詩句를 構想 하기에는 馬上 ,枕上, 廁上이 第一이라 하지만, 詩想이 문득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했다가 追後에 다시 吟味하는 習慣이 必要할 것이다.20)


4) 作品素材의 多樣性


自吟詩로의 書藝作品을 할 경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작품의 내용 면에서 소재는 실로 극히 多樣하다 하겠다. 卽 詩題란 우리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주위의 환경이나 풍경 이외에도 그 作家의 思想과 經驗도 시로 표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人間俗世를 超越한 仙境이나 四次元의 世界까지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 하겠다.

  이렇다 할 적에 書藝 作品의 크기에 따라서 그 글자수도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하며 그 내용도 適材 適所에 따라서 自由 自在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長點이다. 예를 들어 자손에게 병풍을 한 폭 남겨 주어 그 후예들이 대대로 물려 줄 수 있는 내용으로 작품을 하려면 막상 그리 쉽지만은 않겠다.

  이때 先祖들의 遺訓이 담긴 詩文이 있는 집안이야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대부분 불가에서는 父母恩重經이나 般若心經을 우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自吟詩를 지을 수 있는 書藝家라면 아마도 선조의 훌륭한 업적을 기리고 또한 자신이 後孫에게 남겨 주고 싶은 말들을 作詩하여 解釋과 함께 물려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各種 公募展에 출품한 작품의 體制를 살펴보면 가을인데도 봄의 시를, 겨울인데도 여름 시를 베껴 써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近者에 詩․書․畵를 갖춘 분이 드물다 하지만 9월 13일~26일 까지 佳珍畵廊에서 열린 月田 張遇聖 老師의 작품에서 보여준 뛰어난 현대 감각과 시․서․화의 함축미는 우리 젊은 작가가 본받아야 할 과제일 것이다. 이 분의 작품 2점과 작품에 들어있는 文字香을 위하여 실어 본다.

〈圖15〉

북망산 꼭대기 삭풍은 차가웁고, 가시덤불 가로질러 조각달 비추이네.

무덤 위 도깨비불 번쩍번쩍 지나가고, 머언 나무 부엉이 처량한 울음.

적막한 곳 외로운 넋은 말이 없고, 인간세상 인연이야 한바탕 꿈이려니.

가소로운 인생이야 필경은 헛것인걸, 아옹다옹 쓸데없이 싸워서 무엇하리.21)

〈圖16〉

 

무리에서 떨어진 거위 한 마리, 홀로 황량한 들판에 섰네.

크게 불러도 대답 없고 뛸 수도 없어, 날아보려 애쓰지만 날개에 힘은 없구나.

날 지고 바람 급해 들고양이 앞에서니, 가엾도다! 이 거위 장차 어디로 갈까?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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