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書藝作品 構成의 意義


      

   書藝作品의 構成에는 紙面의 모양과 크기를 于先 選擇한 후 좋은 文章이나 詩의 字數를 계산하여 書體(篆, 隸, 楷, 行, 草)를 정한다음 集字를 하거나 硬筆로 間架와 餘白을 어울리게 써본후에 實技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재료(紙, 筆, 墨, 硯)도 중요하겠지만 마음의 平正을 찾아서 심정의 변화 없이 初志一貫되게 써 내려가야만 行氣爽朗하고 精緻 工整하여  飄逸秀麗한 作品이 나올 것이다.

   서예에 처음 입문할 때 누구나 點. 劃을 먼저 시작하여 用筆의 藏露 ,方圓, 遲速, 曲直, 剛柔등을 익힌 후 한자의 計白當黑, 知白守黑등의 결구 법을 배우고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章法이라 하여 글자의 大小, 長短, 粗細, 濃淡, 肥瘦, 輕重, 斜正, 輕重, 行留, 布白等 全體文章에 흐름의 統一感과, 낙관글씨와 落款의 위치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 자기의 자신 뿐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虛實相間함이 一瀉千里 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審査의 基準이나 作品鑑賞法도 이와 같을 진데 어찌 一點 一劃을 소홀히 하랴?

一劃論을 說破한 明末 淸初의 石濤는 일찍이 老, 壯의 無爲 自然觀과 孔, 孟에 陰陽의 造化를 깨닫고 “太古의 순박함이 순화해서 一劃의 법이 확립되었다. 일획의 법은 모든 사물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니, 그런 까닭에 나는 일획으로써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1) 고 말했듯이 作品構成에 있어서 一劃뿐 아니라 一字의 位置나 어울림은 실로 엄청나다 하겠다.

 

1. 餘    白


   西洋의 繪畵를 제외하고 書藝와 文人畵 作品에서의 餘白의 필요성은 작가라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작품 할 紙面 그대로를 벽이나 책상에 놓고 앉으나 서나 그 면을 바라보며 글씨나 그림을 수 백번 메워 (胸中成竹)보다가 偶然得書 하여 일사천리로 써 내려갔을 때, 劃以外의 모든 공간도 하나의 자연스러운 造化를 이룰 것이다. 藝舟雙輯에서 鄧石如가 말하기를 字劃이 성근 곳에서는 말을 달리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하고 밀 한곳에서는 바람도 통할 수 없게 채워쓰고 항상 “白을 재어서 黑을 놓을 때에는 훌륭한 멋이 나온다.”2) 했고 笪重光은 書筏에서 “黑의 量度를 나누고 白의 虛靜을 편다”3)했다.  

  작품 전체의 置陳布勢로 말하면 知白守黑은 하나의 중요한 부분이다. 일폭중에서 字와 字, 行과 行間의 소밀이 적당하고 점획에서 정감이 있으며, 上下相通하고 정신과 기운이 始終如一 한다면 神采飛逸하고 俊美雄建하여 鑑賞者로 하여금 지극한 맛을 느끼게 할 것이다. 한 폭의 훌륭한 작품은 有墨處에 정채가 뛰어날 뿐 아니라 無墨處에 더욱 정신이 비약하여 볼수록 음미할 가치가 있다. 黑, 白과 虛實의 법을 초월하여 붓이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정신이 존재하고 붓이 이미 이르렀으나 기운이 다하지 않은 절묘한 경지라 말할 수 있다. 경험이 풍부하고 기법이 능숙한 서예가는 知白守黑의 妙한 境地를 깊이 인식하여 간결하면서도 側倒多安하여 한 점의 군 획도 없을 것이다.4)


2.   向    背

 

  向背란 글씨의 點劃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向은 顔體의 月, 同, 門等과 같이 서로 마주보고 向勢를 취함을 말함이고, 背는 亅字와 같이, 사람이 차렷 자세로 마주보고 섰을 때 양쪽의 등이 휘듯이 각각 그 形勢의 上間關係를 말한 것이다.

  姜夔는 續書譜에서 “서로 읍하고 등지며, 왼쪽에서 자세를 취하면 오른쪽에서 같이 응하며 위에서 일어나면 아래에서 엎드리게 하여 점과 획 사이를 각각 이치에 맞게 베풀어 놓는 것을 말한다”5) 하였다.  이 말은 初學者가 結句를 터득하는데 비교적 중요한 것이다. 漢字는 대개 字形이 4각에 속하지만 그 點劃은 결코 한결같지 않아서 向背, 大小 長短, 左右가 모두 일정하지 않다. 만약 글자를 쓸 때 점획이 서로 照應되지 않으면 서로 排斥하거나 방해가 되어 결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보인다. 물론 힘의 按配에 있어서 똑같이 균형만 이루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되면 글씨가 판에 박힌 듯 機械的인 雰圍氣가 되어 藝術性이 喪失될 것이며 創作의 바탕인 氣韻生動이 드러날 수 없다. 萬一 巧妙 하면서도 合理的으로 점획을 按配하여 중심을 잃지 않게 한다면 제각기 韻致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한글자의 서로 상대되는 두획이 向이면 모두 向을 취해야 하고 背면 다같이 背를 취해야지 하나는 향이고 하나는 배일 수는 없다. 또한 각 글자마다 主劃이 있는데 그 나머지 筆劃은 賓劃으로 主가 되는 劃을 돌봐야 한다. 非字를 예를 들면 우측 세로획이 주가 되고 왼편 세로획이 빈이 된다. 그러니까 왼편 세로획을 그을 때 먼저 우측 세로획을 고려해야 한다. 또 劍, 斜의 글자는 아래가, 懸, 壁같은 자는 위가, 伐, 怏같은 글자는 우측이, 筆, 要같은 자는 아래 부분이 좀더 넉넉해야 한다. 그리고 삼수변의 경우 조금 짧아야 하고 右側 傍의 획수가 적으면 삼수변이 길어야 할 것이다.   劉熙載6)는 書槪에서  “글씨는 陰陽의 법을 兼備해야 하니 대개 침착하며 답답한 듯 함은 陰이고 빼어나고 豪放豁達함은 陽이다” (書要兼備 陰陽二法 大凡沈着屈鬱 陰也 ; 奇拔豪達 陽也)고 했다. 이는 음양의 뜻을 진일보하여 서예의 품격과 특징에까지 확대하여 설명한 말이다. 사실 글씨는 두 가지 음양의 기운을 겸비해야 한다.  첫째는 고상한 풍격과 정신이 담겨 있어서 글씨로 하여금 힘이 착실하여 종이를 꿰뚫는 듯 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는 바탕이 堅實 하면서도 浩蕩한 기운이 있어야 하며 생각과 마음은 精微한데 까지 이르러야 迫力이 커질 것이다.  陰陽의 두 가지를 兼備하려면 착실한 공부도 필요 하지만 藝術的인 素質이 더욱 必要하다. 그래서 글씨에는 神采가 있기 마련이다.

  이외에 글자를 서로 돌아다보고 모이거나 흩어지게 하고 오므리거나 펼치기도 하여 서로 讓步하는 가운데 정리가 있게 함은 글씨를 쓰는 이가 스스로 攄得 하고 摸索하여 자기의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은 본인의 노력이다.


3.  疎   密


  疏密은 글자의 짜임세와 布白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點劃의 거리가 먼 것을 疎라하고, 거리가 가까운 것을 密이라 한다. 서예는 한 글자내의 布白과 글자와 글자 사이의 間隔과 줄과 줄 사이의 餘白에 대해 點劃間의 (虛實, 向背, 間架, 平正 連貫, 挪讓, 變化, 附和雷同, 大小, 長短, 寬窄, 斜正) 등 중에서 특히 疏密의 關係를 매우 중요시한다.7)  이러한 藝術的 規律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점획의 분포가 비로소 또렷하여 神采가 飛躍하고 모양도 제각기 달라 미적인 藝術效果를 낳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關鍵은 疎한곳에 密한 風貌가 있고, 密한곳에는 疎한 情趣가 있는데 있으니, 이렇게 되면 疎한곳은 虛하거나 散漫하지 않고 密한곳은 답답하지 않게 된다.8)

  姜夔는 續書譜에서 “글씨는 疎로서 風神을 삼고 密로서 氣老를 삼는다”9)  하여 예컨대 “佳字의 네 개의 가로획과 川자의 세로획, 魚字의 넉점, 畫字의 아홉 개의 가로획 같은 것은 반드시 붓을 대는 곳이 動靜, 均整하여야 훌륭한 것이니 疎해야 하는 곳에 疎하지 않으면 옷이 襤陋한 거지처럼 보일 것이고, 密해야 할 곳에 密하지 않으면 반드시 調疎하게 된다”10)  라고 했다. 이것은 結字의 자체에 疏密의 規律이 있음을 明確하고 具體的으로 闡明한 것이다. 初學者들은 疏密이 제대로 멋을 이루고 高低가 서로 情趣가있고, 虛實이 서로 照應 하는데 到達하려면 평소에 前人의 墨迹과 法帖을 많이 보면서 소밀의 理致를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익숙해지고 技巧가 생겨 意在筆先하고 筆斷意連하여 그 奧妙함을 다할 것이다.  



4. 書藝美學과 詩文


   文人畵의 始祖로도 알려졌고 詩文에 뛰어나 詩佛이라 불려지는 王維는 일찌기 詩, 書, 畵 三絶을 강조했다. 우선 詩하면 精神世界, 哲學, 文學, 思想等의 단어들이 떠오르고 書하면 人品, 人格修養, 心性陶冶, 倫理, 造形的 表現等이 뇌리를 스치고, 畵하면 繪畵, 文人畵, 墨畵, 四君子等의 단어들이 연상될 것이다. 모름지기 서예가 더욱 발전하려면 詩文에서 書學의 理論을 찾아야 할 것이다. 揚雄은 法言.問神篇에서 “무릇 말이라는 것은 마음의 소리이고 글씨라는 것은 마음의 그림이다”11) 라고 하였다. 이 말이 淵源이 되어 書與其人 또는 文字香 書卷氣가 서에 풍겨야 한다고 逆說 하였다. 이것은 詩文에 學識이 많아 거기에서 우러난 香氣가 품어져 內在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書藝美學과 詩文의 관계를 볼 때 서예미학은 詩文美學으로부터 많은 影響을 받았다. 시문미학의 審美原則, 理論範疇, 述語 및 鑑賞, 批評方法등의 진행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았고 이를 吸收 하였다.  시문미학의 思無邪와 文質彬彬등의 심미원칙으로 자기의 審美理想을 논하였으며, 또한 詩文批評의 標準을 應用하여 이를 書藝批評에 導入하였다.   “孔子는 詩 三百篇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악함이 없다”라 했고, 또한 “바탕이 外觀보다 나으면 야스럽고 외관이 바탕보다 낳으면 화사하다, 외관과 바탕이 잘 어우러진 뒤에 君子라 할 수 있다”12) 라 하였는데, 張懷瓘은 이 시문미학으로 서예를  평하였다.  이른바 骨豊․肉潤의 경지에 이르러 힘과 아름다움이 兼備하여야 한다는 것을 强調한 말이라 하겠다.  서예미학은 다채로운 시문미학의 述語와 範疇를 採用하여 審美 規律을 밝혔다.  曾涤雲은 用筆의 着力과 不着力을 해석하면서 “힘이 있으면 굳센 형세를 취하고, 힘이 없으면 자연의 맛을 얻는다. 힘이 있으면 韓愈의 文章과 같고, 힘이 없으면 陶淵明의 詩와 같다. 힘이 있으면  王羲之가 말한 錐劃沙와 같은 것이요, 힘이 없으면 印印泥와 같은 것이다.”13)   라 했고 孫過庭은 書譜에서 陸機의 文賦에 있는 “생각이 즐거운 곳에 머물면 웃음이 나고 바야흐로 슬픈 것을 말하면 恨歎이 나온다” 14)  라는 것을 빌려서 涉樂方笑, 言哀已嘆이라고 바꾸어 말했다.  이것은 書藝가 情感을 傳達하는 表現을 根本으로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豊坊은 書訣에서 沈着痛快라는 詩論으로 서예를 평하면서, “옛사람이 시의 묘한 것을 논하면서, 침착하고 통쾌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오직 글씨 또한 그러하다. 沈着痛快하지 않으면 살찌고 탁하여 韻致가 不足하며, 沈着痛快하지 않으면 性質이 粗雜하여 법도가 제멋 대로다”15) 라 했다. 書藝美學은 서예의 審美 規律을 검토할 때 항상 詩文과 比較하여 말하곤 한다.  張紳은 書法通譯에서 “옛사람이 글씨를 씀이 마치 文章을 짖는 것과 같다. 문장을 지음에는 字法, 章法, 篇法이 있고 終篇의 結句는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응하는바 首尾相應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점은 한글자의 法度가 되고, 한 글자는 이에 終篇의 主人이 되니 일어나고 엎드리고 숨고 나타나는 變化와 陰陽의 向背 等에 모두 意味와 形態가 있다. 먹을 사용하고 붓을 運用함에 있어서도 또한 이러한 뜻이 있어야 하니, 진하고 흐리고 마르고 潤澤하고 살찌고 파리하고 늙고 어린것들이 모두 調和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뜻의 능함이 있어야 하고, 形勢가 정해져야 비로소 書藝라 말할 수 있다”16) 라 했다.

  張懷瓘은 六體書論에서 王羲之의 글씨를 評하여 말하길 “종과 북을 울리는 것 같으니, 詩經의 雅와 訟에서 얻은 것 같다. 情趣의 그윽하고 깊음은 詩經의 表現 수법인 比와 興의 수법을 나타낸 것이다” 17)라고 했다. 18)


 

Ⅴ. 自吟詩로의 書藝作品 構成



  우리말의 70% 以上이 漢文임을 勘案 할 때 한문을 모르면 國語 純化는 遙遠한 것이다. 말의 정한 것은 글이요 글의 정한 것은 詩일진데, 특히 文字를  藝術로 表現 하는 書藝人들이 시를 모르고서야 어찌 온전한 書藝家라 하겠는가?

  多幸히 근래에 적지 않은 서예가들이 作詩法을 硏究하고 同參하는 것을 볼 때, 머지 않아 他人의 詩文을 模寫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自覺하게 될 것이다. 筆者는 自作詩로의 作品構成의 便利함과 當爲性을 간단히 논하고 隸書로 實在 構成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體制에 맞게 添削과 變形의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1. 當爲性과 便利함


  自吟詩로의 書藝作品에 當爲性과 便利함은 無數히 많지만 公募展에 出品할 때면 대개 先人들의 詩集에서 無作爲로 골라 쓰다보니, 印刷의 誤謬로 인하여 誤脫字가 非一非再 할뿐 아니라, 괜찮은 체제를 잡고 보면 이미 다른 사람들이 수없이 使用한 시임을 깨닫고 反復하여 詩集을 뒤적이는 것이 普通이다. 또한 結婚式이나 回甲집, 開館式, 入住式 같은데 適合한 내용이 없어서 墨藏寶鑑을 뒤적이는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이다. 오히려 그 시간에 作詩法을 배워서 適材 適所에 본인이 전해주고 싶은 말을 詩文으로 적어서 써주고 그 深奧한 뜻을 說明해 준다면, 받는 이로 하여금 기쁨이 배가될 것이며, 作品에 文字香 書卷氣는 자연히 베어 있을 것이다. 文人畵도 마찬가지여서 예를 들어 石蘭을 하나 쳐서 畵題 글씨에 石蘭이 내뿜는 香氣와, 畵幅에 담겨있는 作家로서의 感情, 所藏할 분에게 하고싶은 珠玉같은 단어들을 짧게 적어 준다면 그 뜻은 書作과 比肩할 것이다. 各種 公募展에서 文人畵 畵題를 살펴보면 大部分 詠物詩選等에서 베끼다 보니 系列別로 같은 畵題가 한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 斯界에 最高로 일컬어지는 秋史 金正熙 先生은 詩, 書, 畵를 모두 兼했기 때문에, 그 名聲을 현재까지 떨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歲寒圖等의 그림은 元代 四大家中의 一人인 倪贊(예운림)의 影響을 본받았다손 치더라도 그가 남긴 業積은 永遠히 歷史에 記錄될 것이다.



2. 實際 構成의 例


  書藝作品 중에서 行草는 縱, 橫의 定型이 없기 때문에 一. 二. 三이나 大小, 上下, 左右等의 글자들이 섞여 있어도 章法에 있어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篆, 隸, 楷書의 경우는 □안에 넣다 보면 虛와 實이 나타나게 됨을 알 것이다.  그 동안 筆者가 自吟詩로 출품했던 작품을 2점 選擇하여 圖表를 보면서 長, 短點을 比較 分析 하겠다.



〈圖11〉                                  〈圖12〉

<圖11〉해석; 가을바람 쓸쓸하고 기러기 날아갈 때        商風蕭瑟雁行時

       밝고 흰 저 달은 그림으로 옮기기 어렵네.          明白銀蟾畵不移

       곡식 이어진 풍성한 들녘엔 구름이 언덕을 수놓고   豊野穀連雲繡塢

       산 가득 펼쳐진 단풍 빛은 울타리로 스며드네.      滿山楓展彩侵籬

       쇠잔한 한 점의 별 술잔에 영롱하고                殘星一點瓏樽酒

       길고 외로운 피리소리 시를 살찌우네.              長笛孤聲澤賦詩

       초목은 무정하게 나부끼며 떨어질 때               草木無情飄零際

       봄에 나서 열매맺고 찬 겨울 기약하네.19)          春生秋實冷冬期


〈圖11〉과 〈圖12〉의 差異點을 살펴보면 〈圖11〉의 첫째 줄에서 明白이 皎潔로 바뀌었고 셋째 줄의 一點이 數點으로, 넷째 줄의 冷冬이 惹霜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明白으로 썼을 경우 白字옆에 山과 더불어 右腰가 虛했으나 皎潔(희고 깨끗한)로 바꾸어 줌으로써 허함을 補完 하였다.  또한 셋째줄 冷冬 두자가 허한 것을 惹霜으로 바꾸어 보완하였다.

〈圖13〉                                〈圖14〉

〈圖13〉해석; 초목이 고운 빛을 서로 다투기 시작할 때    草木爭姸麗色初

        봄 성의 찬란한 꽃 그윽한 옛터 수놓았네.          春城花爛繡幽墟

        이때에 술 들고 좋은 친구 찾아오면               今時攜酒良朋到

        취한 후 시 읊으며 한결같은 흥취 펴리라.          醉後加吟一興舒


〈圖13〉과 〈圖14〉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草木을 草綠으로 바꾸었고 一興을 逸興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木을 綠으로 바꾸어 첫머리의 허을 면했고 끝 부분의 一을 逸로 바꾸어 왼쪽 上段을 實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이 作品 體制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自吟詩의 長點이다. 만일 他人의 詩를 썼을 때, 書藝家 마음대로 비록 平仄과 韻律을 맞추어 바꾸었다손 치더라도 이는 分明 誤,脫字 是非 아니면 그 作者의 後孫에게 저작권법에 의한 커다란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덧 붙인다면, 남의 시를 베껴 쓴다면 作者의 雅號나 姓銜字를 반듯이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書藝人 雅號나 姓名만 쓰는 것은 남의 詩를 自身이 直接 짖고 쓴 것으로 解釋되어 剽竊 是非에 휘말릴 것은 明若觀火 하므로 操心해야 할 것이다.



3. 添削과 推敲


  得一字 勝千金이란 말이 있다. 文章도 마찬가지겠지만 詩에서는 한 글자를 바꾸므로써 詩내용 전체가 살아나 名句 또는 驚句로 變貌한다.

  唐代의 詩人 賈島가 말을 타고 가다가 聞得 詩句가 떠올라 “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새들은 연못가 나무에서 잠을 자고, 스님은 달 아래서 문을 미네”. 라고 지은 후 고민을 하는데 偶然히 이를 본 韓退之가 2句의 推字를 敲字로 고쳐주어 僧敲月下門이라 하여 “스님은 달 아래서 문을 두드리네”로 바꾸어 주어 훗날 글자를 바꾸거나 添削하는 것을 推敲(퇴고)란 말이 생겼다 한다.  글귀를 찾는 것은 호랑이를 더듬는 것 같고, 知人을 만나는 것은 神仙을 만나는 것 같다.“覓句如探虎 逢知似得仙”란 말도 시를 짖다보면 고심 끝에 得意하여 지은 시를 지인 이 한두 자를 고쳐주어 그 시가驚句로 바뀔 때면 그 기쁨은 가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筆者가 作詩法에 入門할 때 지은 시를 蘇秉敦先生께서 添削해 준 것을 한편 예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詩題; 小春雅會  押韻; 淸, 城, 聲

     起  於焉老葉曉霜淸  어언간 시들은 잎에 새벽이슬 맑더니,

     承  斜日眼展不夜城  지는 해 눈앞에 펼쳐지니 불야성을 이루었네.

     轉  菊酒傾杯忙寒氣  국화술잔 추운 날씨에 바삐 기우리니

     結  醉中興致放歌聲  취한 후 흥이 나면 큰소리로 노래하세.


위 시를 老葉을 秋菊으로 바꾸고 斜日을 揚月로, 眼展을 眼前으로 菊酒傾杯를 詩酒飮觴으로 添削하니 拙作이 美品으로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於焉秋菊曉霜淸  어언 가을 국화에 새벽이슬 맑은데

       揚月眼前不夜城  눈앞에 달빛 드날리니 불야성을 이루었네.

       詩酒吟觴忘寒氣  술 마시며 시 읊으니 추운 기운 다 잊었고

       醉中興致放歌聲  취한 후 흥이 나면 큰소리로 노래하세.


아마도 老葉을 秋菊으로 바꾼 것은 가을하면 제일먼저 菊花가 聯想되어야 할 것이고, 지는 해 보다는 秋月揚名煇에 不夜城은 안성맞춤일 것이다. 起句에서 菊字가 나왔기 때문에 疊字를 避하기 위해서 轉句에 菊酒를 詩酒로 바꾸었고 忙寒氣도 忘자로 바꾸니 이시는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흔히 三上이라는 말이 있으니 詩句를 構想 하기에는 馬上 ,枕上, 廁上이 第一이라 하지만, 詩想이 문득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했다가 追後에 다시 吟味하는 習慣이 必要할 것이다.20)


4) 作品素材의 多樣性


自吟詩로의 書藝作品을 할 경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작품의 내용 면에서 소재는 실로 극히 多樣하다 하겠다. 卽 詩題란 우리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주위의 환경이나 풍경 이외에도 그 作家의 思想과 經驗도 시로 표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人間俗世를 超越한 仙境이나 四次元의 世界까지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 하겠다.

  이렇다 할 적에 書藝 作品의 크기에 따라서 그 글자수도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하며 그 내용도 適材 適所에 따라서 自由 自在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長點이다. 예를 들어 자손에게 병풍을 한 폭 남겨 주어 그 후예들이 대대로 물려 줄 수 있는 내용으로 작품을 하려면 막상 그리 쉽지만은 않겠다.

  이때 先祖들의 遺訓이 담긴 詩文이 있는 집안이야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대부분 불가에서는 父母恩重經이나 般若心經을 우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自吟詩를 지을 수 있는 書藝家라면 아마도 선조의 훌륭한 업적을 기리고 또한 자신이 後孫에게 남겨 주고 싶은 말들을 作詩하여 解釋과 함께 물려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各種 公募展에 출품한 작품의 體制를 살펴보면 가을인데도 봄의 시를, 겨울인데도 여름 시를 베껴 써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近者에 詩․書․畵를 갖춘 분이 드물다 하지만 9월 13일~26일 까지 佳珍畵廊에서 열린 月田 張遇聖 老師의 작품에서 보여준 뛰어난 현대 감각과 시․서․화의 함축미는 우리 젊은 작가가 본받아야 할 과제일 것이다. 이 분의 작품 2점과 작품에 들어있는 文字香을 위하여 실어 본다.

〈圖15〉

북망산 꼭대기 삭풍은 차가웁고, 가시덤불 가로질러 조각달 비추이네.

무덤 위 도깨비불 번쩍번쩍 지나가고, 머언 나무 부엉이 처량한 울음.

적막한 곳 외로운 넋은 말이 없고, 인간세상 인연이야 한바탕 꿈이려니.

가소로운 인생이야 필경은 헛것인걸, 아옹다옹 쓸데없이 싸워서 무엇하리.21)

〈圖16〉

 

무리에서 떨어진 거위 한 마리, 홀로 황량한 들판에 섰네.

크게 불러도 대답 없고 뛸 수도 없어, 날아보려 애쓰지만 날개에 힘은 없구나.

날 지고 바람 급해 들고양이 앞에서니, 가엾도다! 이 거위 장차 어디로 갈까?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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