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結   論



  요즈음 書藝家라면 누구나 美術人(서양화, 한국화, 공예, 조각, 디자인 등)들과 접촉 할 때가 많을 것이다. 서예가 미술의 한 분야로 존재하는 한 많은 미술인과의 교류는 持續될 것이다.

  美術人들이 書藝를 바라보는 눈은 美術界의 제일 낮은 分野로 取扱하기 일쑤여서 筆者도 많은 言爭을 한 적이 있다. 대체로 서양화 같은 경우, 작품을 하는데 있어서 재료비가 서예 보다 많이 든다는 것은 인정하나 號當 價格을 懸隔하게 차이를 두고 얘기 할 때는 화가 치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들이 작품을 하기 위하여 투자한 시간과 정열보다 서예가들은 書作의 一劃을 얻기 위하여 그들 보다 더 많은 時間과 投資를 했음에도 국민들에게나 美術人들에게 외면 당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自古로 詩․書․畵 三絶이라 했거늘 그들이 과연 이런 말을 들어보기라도 했는지 의심스럽다. 이렇게 되기까지 서예인 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自省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은 敎育制度의 問題點을 指摘하지 않을 수 없겠다. 各 大學의 美術 大學에서 수많은 畵家들을 每年 排出하여도 그들은 大體的으로 就職이나 일자리가 많지만 書藝科를 卒業한 후에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 큰 問題로 擡頭되고 있다.

  앞으로 書藝人 들이 살아 남으려면 體系的인 理論이 定立되고 書藝學으로 발전하여 적어도 書藝家라면 詩文에 能通하여 모든 國民들이 어려워하고 궁금해하는 漢文이나 漢詩는 書藝家에게 가면 모든 궁금증이 解消될만한 資質을 갖추어 믿음을 심어 준다면, 수많은 국민들이 서예를 배우려 同參할 것이며 書藝科를 卒業한 학도들이 대우받는 시대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서예 이론을 전공하여 博士學位를 받으시는 분들이 漸次 增加함은 곧 서예가 서예 학으로 발전될 것을 예견하는 것이어서 많은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며, 늦은 감은 있지만 敎育部의 爲政者들도 생각을 한번 돌이킬 때가 아닌가 한다.

  國語의 70%以上을 점하고 있는 漢文을 外面하고, 나아가 書를 畵로 나아가기 전의 기본으로 생각을 轉換해야 할 것이다. 國民의 政府 들어서 漢文을 初等學校 敎科書에 싣자는 움직임이 일었을 때 많은 서예인 들이 큰 기대를 한 적이 있었으나 한글 학회 일부 교수들의 반대에 부딪쳐 다시 後退한 것은 痛嘆할 일이라 하겠다.

  詩作은 人生에 있어서 事物을 낳는 큰 神靈의 作用이다. 詩 없는 世上이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理論을 밝히는 學問과 도를 깨닫는 宗敎들도 産靈인 것이나, 시는 그 어느 것보다도 큰 산령의 작용인 것이다.

  특히 孔子는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 할 수 없고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가 없다(不學詩無以言 不學禮無以立)고 했다. 이는 시로서 민심과 풍속을 바로 잡고 예로서 人間關係(Human relation) 改善과 道德의 體系를 바로잡으려고 弟子敎育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于先 漢詩를 익히기 위한 要諦요 捷徑은 첫째로 한시 중에서 唐詩를 많이 읽고 吟味하고 暗記하는 方法이다. 漢詩는 漢代 劉向의 說苑에서 일정한 해석이 없다(詩無通詁 易無通吉) 했고, 흔히 시는 그 맛을 얻을 뿐이요 가히 해독할 수는 없다(詩可得味 不可得解)라 했으며, 蘇東坡는 讀書萬卷始通神이라 읊었으며, 朱熹는 讀書百篇義自見이라 하였으니 解釋에 重點을 두지 말고 多讀에 重點을 두면서 공부하여야 한다.

  둘째는 作詩를 해보는 것이다. 작시법을 알고 시를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과는 감동을 주는 것이 전혀 다른 것이다. 또한 自吟詩를 體制로하여 書藝作品을 해보지 않고서는 진정한 書卷氣 文字香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셋째는 한시의 先覺者를 스승으로 모시고 꾸준히 修學하거나 훌륭한 詩友들과 자주 만나 듣고 보고하여 切磋 琢磨 하는 것이다. 詩會에 처음 참석하면 다소 어렵게 느껴지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겠으나 하루 이틀 한해 두해가 쌓이면서 귀가 열리고 문득 문득 閃光처럼 떠오르는 珠玉같은 詩語들이 많아질 것이다.

  嚴羽는 滄浪詩話에서 詩禪一致說을 주장(大抵禪道惟在妙悟 詩道亦在妙悟) 했으니 壁面七年에 無念無想으로 어느 날 문득 得道하는 것이나, 시를 배우고자 하는 자는 먼저 五俗(俗體, 俗意, 俗句, 俗字, 俗韻)을 제거하고 四不(不怒, 不露, 不暗, 不疎)을 警戒해야 한다고 했으니 一脈相通하지 않는가?

  賈島는 ‘獨行潭底影이요 數息樹邊身이라.’ 즉 홀로 물 속에 그림자와 함께 가고, 자주 나뭇가에 몸을 기대 쉬네, 라고 짓기를 3년이나 고심한 끝에 얻어서 말하기를 三句를 三年만에 얻었으니 한번 읊으니 두 줄기 눈물 흐르네. 친구들이 만일 좋다 하지 않으면 고향 가을 산에 돌아가 누으리라(二句三年得 一吟雙淚流 知音如不賞 歸臥故山秋)했으니, 과연 詩人 다운 관조의 소리가 아니던가.

  이렇듯 어렵게 得句한 自吟詩를 우리 書藝家들이 그 詩를 吟味하면서 一筆 揮紙한다면 錦上添花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筆者가 本 論考를 쓰게된 동기도 여기에 있으며, 微賤한 筆者에게 쓸 수 있는 용기와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摩河 宣柱善 先生님과 玄岩 蘇秉敦 先生님께 감사 드리며, 필자를 위해 敎務에 바뿐 가운데도 선뜻 나서서 編輯을 도와준 沙隱 陳漢雄 學友님께도 感謝 드린다.

參  考  文  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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