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련설(愛蓮說)  주돈이(周敦 )

 

水陸草木之花가 可愛者甚蕃하니, 물과 땅에 있는 초목의 꽃은 사랑 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晉陶淵明은 獨愛菊하고 自李唐來로

 

世人이 甚愛牡丹이라. 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당나라 때부터는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매우 사랑한다.子獨愛

 

蓮之出於 泥而不染하고, 濯淸漣而不妖하고, 中通外直하며,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잔

 

잔한 물에 씻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의 속은 비어 있고 겉은 곧으며, 不蔓不枝하고, 香遠益淸하며, 亭亭淸植하여 可遠觀이

 

요, 而不可褻玩焉아로다. 넝쿨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꼿꼿이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

 

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만만하게 다룰 수 없음을 사랑하노라子謂菊은 花之隱逸者也요, 내가 평하건대,  국화는 은일을 상징

 

하는 꽃이다. 牡丹은 花之富貴者也요, 모란은 부귀를 사랑하는 꽃이요,蓮은 花之君子者也라. 연꽃은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다.

 

라! 菊之愛는 陶後鮮有聞이요, 아아! 국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연명 이후로는 들어본 일이 드물고,蓮之愛는 同子者何人고? 연꽃

 

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牡丹之愛는 宜乎衆矣리라.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많으리라.

 

<古文眞寶>

 

많을 번 牡모란 모  丹꽃 란, 붉을 단  漣잔물결 련 , 妖요염할 요蔓넝쿨 만 褻함부로 설, 더러울 설  玩놀 완   鮮 드물 선, 고울 선濯 빨 탁  泥진흙 니   (水물 수+於어조사 어)  染물들 염 陶질그릇 도晉진나라 진 唐당나라 당   宜마땅할 의, 옳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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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蓮說 周茂叔(주무숙)

水陸草木之花(수륙초목지화)이,可愛者甚蕃(가애자심번)이나물과 육지에 나는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晉陶淵明獨愛菊(진도연명독애국)하고, 自李唐來(자리당래)로,世人甚愛牡丹(세인심애모단)이나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매우 모란을 좋아했다.

 

予獨愛蓮之出어(진흙어-삼수변+어조사어)泥而不染(여독애련지출어니이부염)하며,濯淸漣而不妖(탁청련이부요)하며,中通外直(중통외직)하며,不蔓不枝(부만부지)하며,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진흙(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香遠益淸(향원익청)하며,亭亭靜植(정정정식)하야,可遠觀而不可褻翫焉(가원관이부가설완언)하노라.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予謂菊(여위국)은,花之隱逸者也(화지은일자야)오, 牡丹(모단)은, 花之富貴者也(화지부귀자야)오.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蓮(연)은,花之君子者也(화지군자자야)라하노니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

 

噫(희)라! 菊之愛(국지애)는,陶後鮮有聞(도후선유문)하니 蓮之愛(연지애)는,同予者何人(동여자하인)고 牡丹之愛宜乎衆矣(모단지애의호중의)로라.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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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甲子

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

閼逢 旃蒙 柔兆 疆圉 著雍 屠維 上章 重光 玄黓 昭陽

알봉 전몽 유조 강어 저옹 도유 상장 중광 현익 소양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困敦 赤奮若 攝提格 單閼 執徐 大荒落 敦牂 協洽 涒灘 作噩 閹茂 大淵獻

곤돈 적분약 섭제격 단알 집서 대황락 돈장 협흡 군탄 작악 엄무 대연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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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광(張顯光, 1554~1637), 여헌선생 속집(旅軒先生 續集). 제6권 잡저(雜著)

구설(究說)

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

閼逢 旃蒙 柔兆 疆圉 著雍 屠維 上章 重光 玄黓 昭陽

알봉 전몽 유조 강어 저옹 도유 상장 중광 현익 소양

 

첫번째는 알봉(閼逢)인데 알(閼)은 기운이 처음 발하여 통하지 못한 것이요 봉(逢)은 때를 잃지 않은 것이니, 이 기운이 비록 미미하나 때는 잃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두번째는 전몽(旃蒙)인데 전(旃)은 기운이 조금 드러난 것이요 몽(蒙)은 밝지 못한 것이니, 이 기운이 조금 드러났으나 아직 밝음에 미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세번째는 유조(柔兆)인데 유(柔)는 기운이 견고하게 정해지지 못한 것이요 조(兆)는 처음 징험하여 가리켜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이 기운이 비록 견고하게 정해지지는 못하나 조짐을 보아 징험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네번째는 강어(强圉)인데 강(强)은 기운이 비로소 견고하게 정해진 것이요 어(圉)는 이미 범위가 있는 것이니, 이 기운이 이미 견고하게 정해져서 바야흐로 역량(力量)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다섯번째는 저옹(著雍)인데 저(著)는 기운이 근기(根基)가 있는 것이요 옹(雍)은 충후(充厚)함이니, 이 기운이 이미 완고(完固)함에 이르러 바야흐로 장차 충후해짐을 말한 것이다.

여섯번째는 도유(屠維)인데 도(屠)는 기운이 비로소 꽉 찬 것이요 유(維)는 사방(四方)의 귀퉁이이니, 기운이 바야흐로 꽉 차서 사방의 귀퉁이에 두루 가득해짐을 말한 것이다.

일곱번째는 상장(上章)인데 상(上)은 성함이 지극한 뜻이요 장(章)은 공(功)이 이루어져 밝은 것이니, 이 기운이 성하고 지극해서 공이 이루어지고 교화가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다.

여덟번째는 중광(重光)인데 중(重)은 미루어 지극히 하는 뜻이요 광(光)은 밝음이 더욱 드러난 것이니, 이 기운이 단지 밝을 뿐만 아니라 또 더욱 발양(發揚)됨을 말한 것이다.

아홉번째는 현익(玄黓)인데 현(玄)은 기운이 십분(十分)에 이른 것이요 익(黓)은 어둠이니, 기운이 극도로 가득 차서 빛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열번째는 소양(昭陽)인데 소(昭)는 밝음이 나타나는 뜻이요 양(陽)은 자라나는 양이니, 이미 회복한 양이 이에 이르러 더욱 밝아짐을 말한 것이다.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困敦 赤奮若 攝提格 單閼 執徐 大荒落 敦牂 協洽 涒灘 作噩 閹茂 大淵獻

곤돈 적분약 섭제격 단알 집서 대황락 돈장 협흡 군탄 작악 엄무 대연헌

 

첫번째는 곤돈(困敦)인데 곤(困)은 궁핍한 뜻이요 돈(敦)은 소생(蘇生)함으로 향하는 기틀이니, 옛 운(運)이 이미 다하고 새 기틀이 다시 일어남을 말한 것이다.

두번째는 적분약(赤奮若)인데 적(赤)은 양(陽)의 색깔이요 분약(奮若)은 떨쳐 일어남이니, 양이 동하는 기틀이 이에 이르러 더욱 분발함을 말한 것이다.

세번째는 섭제격(攝提格)인데 지지(地支)가 세번째에 이르러 형세와 지위가 이미 커져서 마땅히 십이지(十二支)의 추기(樞機)가 될 것이니, 마침내 섭제(攝提)라는 별이 북두(北斗)의 앞에 있어서 12방위(方位)의 중요함을 관장함과 같기 때문에 섭제격이라고 칭한 것이다.

네번째는 단알(單閼)인데 단(單)은 쇠하고 박(薄)한 뜻이요 알(閼)은 아직 통하지 못한 양기(陽氣)이니, 이때에 이르면 남은 음(陰)이 쇠하고 적어지므로 통하지 못하던 양(陽)이 통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섯번째는 집서(執徐)인데 집(執)은 견고하고 치밀한 뜻이요 서(徐)는 이끌어 통창(通暢)하게 하는 상(象)이니, 기세가 성하고 자라남을 말한 것이다.

여섯번째는 대황락(大荒落)인데 대황(大荒)은 변경(邊境)이요 낙(落)은 이름이니, 기세가 장성(壯盛)하여 교화가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일곱번째는 돈장(敦牂)인데 돈(敦)은 성대함이요 장(牂)은 해침이니, 모든 기세가 이미 성대함에 이르면 반드시 해치고 줄어드는 기미가 있는바, 이 때가 바로 그러한 때인 것이다.

여덟번째는 협흡(協洽)인데 협(協)은 화하고 고름이요 흡(洽)은 충족함이니, 노양(老陽)이 바야흐로 창성하고 작은 음이 숨어 있어서 온갖 구역이 화합하여 대화(大和)가 흡족한 시절임을 말한 것이다.

아홉번째는 군탄(涒灘)인데 군(涒)은 물이 깊고 넓은 것이요 탄(灘)은 물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십이지가 협화(協和)함에 이르고 또 금(金)으로써 이으니, 마치 물이 이미 깊고 넓은데 또다시 쉬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열번째는 작악(作噩)인데 작(作)은 성취함이요 악(噩)은 엄하고 긴(緊)함이니, 물건이 모두 견고하고 진실해서 각각 성명(性命)을 정함을 말한 것이다.

열한번째는 엄무(閹茂)인데 엄(閹)은 거두어 닫음이요 무(茂)는 번화(繁華)함이니, 번화한 것이 탈락되어 물건의 빛이 어두워짐을 말한 것이다.

열두번째는 대연헌(大淵獻)인데 대연(大淵)은 물이 모인 것이요 헌(獻)은 받들어 올림이니, 금(金)이 반드시 물을 낳아서 한 해의 공을 마침을 말한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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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음악>

오음(五音) 궁(宮), 상(商), 각(角), 치(緻), 우(羽)의 다섯 음계를 이르는 말.

 

십이율(十二律)의 음이름. 황종(黃鐘), 대려(大呂), 태주(太簇), 협종(夾鐘), 고선(姑洗), 중려(仲呂), 유빈(蕤賓), 임종(林鐘), 이칙(夷則), 남려(南呂), 무역(無射), 응종(應鐘)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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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hwp

고구려 역사(요약)

고구려(高句麗, 기원전 37년경~668년)는 백제,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의 고대 국가 중 하나이다. 지역적으로는 현재의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약 700여 년 동안 지배했던 국가이다. 장수왕 이후 국호를 고려(高麗)로도 불렀으나, 대체로 고구려로 알려져 있다.

<지도출처:http://kr.blog.yahoo.com/tjs5899/>

1. 건국

고구려는 일찍이 부족 국가로 압록강 중류 동가강(佟佳江) 유역을 중심으로 흥기한 예맥계통의 고구려인이 기원전 3세기경부터 부족 연맹 국가의 기틀을 다진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 고구려는 부여 및 한군현(漢郡縣)과의 투쟁 속에서 성장하였고, 비옥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복 활동을 벌였다.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고구려는 왕족인 계루부(桂婁部)를 포함한 소노부(消奴部), 절노부(絶奴部),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등 다섯 부족으로 이루어진 연맹 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세기 초부터 이미 왕호를 제정하고 예(濊)와 한(漢)의 창해군(滄海郡)을 없애고, 기원전 75년 한의 속현인 현도군을 압록강 유역에서 몰아내는 등 부족 연맹체를 굳혔다.

고구려는 이후 본격적인 고대 국가로서 건국하게 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따르면 기원전 37년 부여계인 동명성왕(東明聖王)이 졸본(卒本)에 도읍해 나라의 이름을 고구려로 한 것이 기원이며, 《위서(魏書)》에 따르면 흘승골성(紇升骨城)에 도읍했다 한다. 그러나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에 언급된 건국 신화 혹은 그 이후의 여러 가지 정황에 의해, 고구려는 멸망한 고조선(古朝鮮) 및 부여(夫餘) 출신의 유이민과 그 지역의 토착 세력이 결합해 이뤄진 국가로 추정되는 등, 건국연대가 더 높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한다. 3년에는 국내성(國內城)으로 천도하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2. 성장

53년에 즉위한 태조대왕(太祖大王) 때에 이르러 고구려의 5부족은 중앙 행정 단위인 5부로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고구려는 내부 자치권을 제외한 군사권과 외교권이 왕에게 귀속되는 고대 국가로 발전하였다. 옥저(沃沮)를 복속시키는 등 고대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고구려의 진정한 건국은 태조왕 때로 본다. 그는 주위의 여러 부족을 정복하여 동으로 옥저·동예(東濊)를 공격하고, 남으로는 살수(薩水)에 미치고, 북으로는 부여(夫餘)를 압박하고, 서로는 한의 요동군·현도군과 대립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1세기에서 2세기에 걸쳐 고구려는 고대 정복국가로서의 위세를 떨치게 되었다.

태조왕 이후에도 각 부족은 서서히 중앙 귀족으로 흡수되었고, 197년에 즉위한 산상왕(山上王) 때에 이르러서는 왕위의 형제상속이 배제되고 부자상속제가 확립되어 왕권이 더욱 강해졌다. 이러한 왕권 강화의 배경에는 영토 확장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약탈 경제 위주였던 고구려가 동해안의 옥저를 복속시키고 한군현에 대한 약탈을 행하면서 경제적으로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복 활동은 244년 위나라(魏)의 관구검(毌丘儉)이 침공하면서 일시적으로 위축되었다.

빈농이 늘어나고 귀족의 노예가 되는 자유민이 증가하자, 고국천왕(故國川王) 때의 명재상 을파소(乙巴素)는 194년에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하여 빈농을 구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한편 후한(後漢) 말기에 중국이 3국으로 분열되어 혼란했던 시기, 요동 일대는 공손씨(公孫氏)의 세력권에 있었다. 북부 중국의 위(魏)가 공손씨를 정복하고, 그 세력이 동쪽으로 뻗쳐오자 242년에 고구려 동천왕(東川王)은 압록강 어귀의 서안평(西安平)·구련성(九連城) 지방을 공략했다. 그 2년 뒤에 위나라 장군 관구검의 침입을 받아 싸웠으나 마침내 수도 환도성(丸都城)이 함락되어 동천왕은 옥저로 피난 간 일이 있다.

4세기에 이르러 중국이 오호 십육국 시대로 혼란해짐을 틈타 고구려의 정복 활동이 활발하게 재개되었는데, 미천왕(美川王)은 위(魏)를 이은 진(晋)의 세력이 미약해진 틈을 타서 311년에 서안평을 점령하고 뒤이어 낙랑군(樂浪郡) 및 대방군(帶方郡)을 복속시킴으로써 한반도에서 중국의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였다. 이로써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 지역을 벗어나 대동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어 경제적인 자원을 풍부히 얻게 되고 남쪽의 백제 등과 국경을 맞대게 되어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아직 지방의 흩어져있는 힘을 조직적으로 통합하지 못하여 그 다음 왕인 고국원왕 치세인 342년에는 선비족 모용씨가 세운 전연(前燕)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수도가 일시적으로 함락되고, 371년 백제 근초고왕의 침공으로 인해 왕이 전사하는 등 큰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

<지도출처:http://hope.keumdang.ms.kr/>

3. 융성

백제와 북방 민족의 양면 협공을 견디던 고구려는 소수림왕(小獸林王)때에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구려의 내부적인 개혁을 통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성하고 중흥을 시도하였다. 소수림왕은 372년 전연(前燕)을 멸망시킨 전진(前秦)과 우호관계를 맺고 새로 전래된 불교를 받아들여 이를 국가적인 종교로 삼게 되고, 태학(太學)을 세워서 관리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삼았다. 한편으로는 율령(律令)을 반포하여 집권적인 체제를 확립하였다. 이와 같이 고구려가 국가체제를 정비하던 시기는 바로 백제가 평양성을 공격했던 근초고왕(近肖古王) 때로, 전성기를 이룬 시기였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5세기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과 장수왕(長壽王) 대에 이르러서는 적극적인 대외 팽창을 꾀하여 대규모의 정복 사업을 단행하였다. 391년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후 고구려는 서쪽으로 후연(後燕)을 공격하여 요동을 모두 차지하고 요서의 일부 또한 확보하였으며, 이어서 등장한 북연(北燕)과도 친선관계를 수립하였다. 북쪽으로는 부여 및 숙신(肅愼), 비려(碑麗)를 복속시켰으며, 남쪽으로는 백제를 쳐서 한강 이북을 빼앗아 위축시키고, 왜(倭)와 가야(伽倻)의 침공을 계기로 신라를 보호국화하는 한편 바다를 건너 침공해 온 왜를 섬멸했다. 또한 가야를 공격하여 전기 가야 연맹을 해체시키기에 이르렀다. 동으로는 읍루(挹婁)를 정벌하였고, 동예(東濊)를 완전히 병합하였다. 또한 광개토대왕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영락(永樂)이라는 연호(年號)를 써서 중국과 대등함을 과시했다. 그의 업적은 지금의 만주 통구(通衢)에 있는 거대한 광개토대왕릉비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413년에 즉위한 장수왕 때에는 대흥안령 일대의 초원 지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중국 대륙의 남북조와 각각 교류하면서 대립하고 있던 두 세력을 조종하는 다면(多面) 외교 정책을 써서 중국 대륙을 견제하였다. 또 427년(장수왕 15)에 평양성(平壤城)으로 수도를 옮겼고, 이에 백제는 큰 위협을 느껴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신라와 433년에 동맹을 맺어 고구려 세력에 대항코자 하였다.

고구려의 압력을 피할 수 없게 된 백제의 개로왕(蓋鹵王)은 북중국의 북위(北魏)에 사신을 보내 위군의 내원(來援)을 청한 일까지 있었다. 이에 장수왕은 승려 도림(道琳)을 백제에 간첩으로 보내어 경제적 혼란을 일으킨 다음 교묘히 백제 침공의 태세를 갖추었다. 475년 고구려는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함락하였고, 이와 함께 신라를 쳐서 죽령(竹嶺)까지 차지하여 죽령 일대로부터 남양만을 연결하는 선까지 그 판도를 넓히는 적극적인 남하 정책을 펼쳤다. 이와 같이 계속된 대외 팽창으로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였다.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정치 제도를 완비한 강대국을 형성하여 중국의 제국들과 거의 대등한 지위에서 힘을 겨루게 되었다.

파일:Three Kingdoms of Korea Kor.png

494년 고구려 전성기 때의 지도

4. 쇠퇴와 멸망

고구려는 6세기 들어 점차 쇠퇴하기 시작헸다. 안원왕(安原王) 때에 이르러서는 왕위 계승을 놓고 왕족들 간에 내전이 벌어졌다. 이러한 내분을 틈타 551년 백제와 신라가 연합군을 조직하여 대대적인 고구려 침공을 감행, 한강 유역을 점령하였다. 동일한 시기에 북쪽에서는 돌궐(突厥)이 발흥하였다.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고구려는 신라와 밀약을 맺고 신라와 백제 간 동맹을 깨트리는 한편, 돌궐의 침공에 대항하였다. 돌궐과의 전쟁이 교착 상태에 이르자 고구려는 다시 한강 유역을 수복하기 위해 신라를 공격하였다.

이때 수(隋)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고구려에게 복속을 강요했는데 고구려가 이를 완강히 거부하자, 수는 598년, 612년, 613년, 614년에 각각 침공하기에 이른다. 598년 수나라의 초대 황제인 수 문제는 고구려가 임유관을 선제 공격하자 이를 계기로 30만 육군과 10만 수군을 보내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하지만 요동에 다다르기도 전에 장마로 인해 돌림병이 돌고 군량미도 떨어졌으며, 수군도 풀랑을 만나 본토로 퇴각하였다.

612년 수 양제는 113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출병하였다. 수 양제는 내호아를 수군대장으로 임명하여 평양성으로 곧장 향하게 하고, 육군은 요동성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요동성 군사들과 백성들의 끈임없는 저항으로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결국 수 양제는 우중문과 우문술을 각각 우장군과 좌장군으로 임명하여 30만의 별동대를 평양으로 직접 보냈다. 그러나 고구려의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이 살수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살수대첩). 결국 수는 이 전쟁의 충격으로 멸망하였으며, 고구려도 국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고구려는 수나라를 뒤이은 당(唐)나라와도 대치하였다. 고구려는 당의 침공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았는데,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이 공사를 감독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이에 위협을 느낀 중앙 귀족들이 연개소문을 제거하려 하자 연개소문은 642년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榮留王)을 비롯한 귀족들을 모두 살해하고, 보장왕(寶臧王)을 왕으로 세운 뒤 스스로 대막리지(大莫離支)가 되어 정권을 쥐었다. 연개소문은 대외 강경책을 펼쳐 648년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645년 당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이 침공했으나, 안시성(安市城)에서 양만춘 장군의 활약으로 격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에도 당나라는 고구려를 침공해 왔으나 그 때마다 연개소문이 격퇴하였다. 하지만 동맹국인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패망하자 고구려는 국제적인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백제를 멸망시킨 그 이듬해인 661년(보장왕 20년)에 평양성을 공격한 나·당 연합군을 고구려 군민이 막아내었다.

그러나 그 후 고구려의 국내 사정은 변모를 거듭하였다. 당이 융성 일로를 걷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고구려의 국력은 쇠퇴해 가고 있었다. 60여 년에 걸친 수·당과의 전쟁으로 백성의 생활은 파탄에 직면했고, 국가 재정은 탕진되었다. 그 위에 동맹국인 백제의 멸망과 고구려 지배층의 내분은 더욱 그 국력을 약화시키고 있었다.

666년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죽자 그의 아들 연남생(淵男生)·연남건(淵男健)·연남산(淵男産) 형제는 막리지(莫離支) 자리를 둘러싸고 서로 내분이 일어났다. 그 결과 남생은 국내성으로 쫓겨난 뒤 당 고종에게 항복하였으며,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는 신라에 투항하였다. 결국 668년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에게 멸망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멸망 이후 검모잠(劍牟岑), 안승(安勝) 등의 고구려 부흥 운동이 지속되었으며, 안시성과 요동성 및 일부 요동의 성들은 고구려 멸망 이후인 671년까지 당나라에 항전하였다. 또한 보장왕도 말갈과 함께 복국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결국 698년 옛 고구려의 장수 출신인 대조영(大祚榮)이 만주 동부의 동모산(東牟山) 일대에서 발해(渤海)를 건국하면서 고구려 부흥 운동은 일단락되고, 고구려는 발해에 계승되었다.

한편 10세기에 들어서 후고구려(後高句麗)와 고려(高麗)가 각각 고구려의 계승국 임을 자처했는데, 이는 고구려의 영향력이 이 때에도 남아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자료출처:위키백과>

고구려 역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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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연보

 

孔子  年譜
       
년대 월일 나이 내력
-551 11월 경자 출생  穀梁傳
-551   출생  史記
-552 10월 21일 출생  곡부 이름 丘 字 仲尼
-550   3살 아버지 사망
-546   7살 晉 楚 宋 魯 정전 협정 맺다
-543   10살 子路(仲由) 출생
-537   16살 閔子騫 (閔損) 출생
-534   19살 宋출신인 幷官氏와 결혼
-533   20살 아들 鯉 출생    魯 委吏 벼슬
-529   24세 어머니 사망
-527   26세 어머니 大祥 의식 행함함
-523   30세 苒求(子有) 출생
-522   31살 鄭子産 죽다 顔回(顔淵)출생
-521   32세 端木賜(子貢) 출생
-517   36살 魯에서 齊로 망명
-516   37살 齊에서 魯로 귀환 후진 교도
-510   43살 子路 閔子騫 苒由 등 孔子敎團 형성
-509   44살 有若(有子) 출생
-508   45살 卜商(子夏) 출생
-507   46살 言偃(子游) 출생
-506   47살 曾參(曾子) 출생
-504   49살 顓孫師 (子張) 출생
-501   52살 中都의 宰가 되다
-500   53살 晏子 죽다
-498   55살 魯 의 司職을버리고 列國에 周遊하다
-492   61살 손자 伋(子思) 출생
-484   69살 아들 鯉 50세 죽다
-482   71살 顔淵 41세로 죽다
-480   73살 子路 죽다
-479 4월 己丑 74살 노쇠하여 죽다
 

출처 : 경산 대동
글쓴이 : 이 선형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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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해 보시길...

 

- 현재 획수가 가장 많은 한자는 공식적으로는 龍자가 네개 있는 모양자가
[말 많을 절]龍부수-48획(총 64획)자 가장 획수가 많은 한자 입니다.

- 또 획수가 많은 한자는 [절]자 이외에도 64획에 [정]자가 또 있고
일본에서 인명에 사용된(만든자?) 중에는 그 이상[たいと(Tai-To)](84획) 자도 있으나
공식적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일본자전(和製漢字の辞典)에 등록되어 있는자 임.)

- 부적등에 사용된 글자나 일부 만들어서 사용된 것 등은
기본적으로 자전에 없는 자들로 공식적이라할 수 없으며,

- 종합 해볼 때 한자 중 가장 획수가 많은자는 龍자가 네개 쓰인
(말많을 절(多話(多言))로 알고 있으면 될 듯 하며, 유효한 것으로 생각 합니다.


* 참고로 중국싸이트(네이버지식인 같은) 등의 최 다획 한자
질문에도 역시 64획인자가 공식적으로 최다 획수자로 보입니다.


中國字中,筆劃最多的字應該就是 」字囉!筆劃總共是64劃
,注音是「ㄓㄜˊ」,意思是「多話(多言)」。            
另外,一個筆劃最多的字就是 」啦!筆劃也是64劃,注音是
「ㄓㄥˋ」,但這個字的意思尚且不明,還有待考察吧!

當然,上面只是筆劃最多的「中文字」,如果是指「漢字」的話,則
屬日本漢字「 」的筆劃最多,達84劃唷!很可怕吧!這個
字很少見,日語是讀作「たいと」(Tai-To),據說是日本人的苗字
(姓氏)喔!聽說在日本「生命保險公司」中的人名資料和東京都的
電話簿中發現的,但是否屬實還待確認。

그리고

雨-44(우렛소리 , 우레 ) 이체자 (추정) (128획: 최다획수)가 있습니다.

==========================

괴이한 한자들 풀이

1. 중국 陝西 biang biang麵의 [biang 3]자 (56획) 

2. 一(한 )의 이체자 추정


3. 口-23 譸(속일 )의 이체자



4. 鳥-25 鸓(날다람쥐 )의 이체자


5. 日本한자: [たいと taito] (84획)


6. 雨-44(우렛소리 , 우레 ) 이체자 추정. (128획: 최다획수)

7. 巛-21 河(물 )의 이체자


8. 爪-17 戀(사모할 )의 이체자



9. : 集(모을 )의 이체자를 잘 못 올린 것으로 보임.

* 참 고

-출처: 대만 이체자 자전外 웹검색

-관련 답변내용 여기클릭 참고

[출처] 최다 획수 한자|작성자 임정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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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위중립서(答韋中立書)-유종원(柳宗元)

二十一日(이십일일) : 이십일 일에
宗元白(종원백) : 유종원이 아룁니다.
辱書云(욕서운) : 보내주신 글에서
欲相師(욕상사) : 저를 스승으로 삼겠다고 하셨으나,
僕道不篤(복도불독) : 저는 도를 두텁게 닦지 못하고
業甚淺近(업심천근) : 학업도 매우 천박하여
環顧其中(환고기중) : 어디를 둘러 보아도
未見可師者(미견가사자) : 스승으로 삼을 만한 점이 없습니다.
雖嘗好言論(수상호언론) : 비록 언론을 좋아하고
爲文章(위문장) : 글을 쓴다고 해도
甚不自是也(심불자시야) : 스스로 매우 부족하게 여겨집니다.
不意吾子自京都(불의오자자경도) :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선생이 경사로부터
來蠻夷間(래만이간) : 오랑캐 고장인 영주로 오셔서
乃幸見取(내행견취) : 다행히도 스승으로 선택하셨으니,
僕自卜固無取(복자복고무취) : 저는 스스로 스승이 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假令有取(가령유취) : 설령 스스으로 삼았다고 해도
亦不敢爲人師(역불감위인사) : 다른 사람의 스승은 감히 되지 못합니다.
爲衆人師(위중인사) : 보통 사람들의 스승도
且不敢(차불감) : 감히 못할 것이어늘
況敢爲吾子師乎(황감위오자사호) : 어찌 선생의 스승이 감히 될 수 있겠습니까?

孟子稱人之患(맹자칭인지환) : 맹자는 “사람들의 폐단은
在好爲人師(재호위인사) :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는 데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由魏晉氏以下(유위진씨이하) : 위진시대 이후로는
人益不事師(인익불사사) : 사람들이 더욱 스승을 모시지 않게 되어
今之世(금지세) : 요즈음에는
不聞有師(불문유사) : 스승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도 못했고,
有輒譁笑之(유첩화소지) : 또 있다고 하여도 모두가 비웃고
以爲狂人(이위광인) : 미친 사람이라고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獨韓愈奮不顧流俗(독한유분불고류속) : 그러나 한유만은 분연히 유속을 돌보지 않고
犯笑侮(범소모) : 비웃음과 모욕을 무릅쓰면서
收召後學(수소후학) : 후진을 불러 모으고
作師說(작사설) : <사설>을 지은 뒤
因抗顔而爲師(인항안이위사) : 엄숙한 얼굴을 하고 스승이 되었던 것입니다.
世果群怪聚罵(세과군괴취매) : 그러자 세상 사람들은 과연 떼를 지어 이상하게 여기며 욕하고
指目牽引(지목견인) : 손가락질 곁눈질하며, 서로 사람들을 끌어다
而增與爲言詞(이증여위언사) : 쓸데없는 말만 부풀려 놓았습니다.
愈以是得狂名(유이시득광명) : 한유는 이 때문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며
居長安(거장안) : 장안에 있다가
炊不暇熟(취불가숙) : 밥도 익기 전에
又挈挈而東(우설설이동) : 황급히 동쪽으로 떠났는데,
如是者數矣(여시자수의) : 이렇게 하기를 수 차례나 하였습니다.
屈子賦曰(굴자부왈) : 굴원의 부에서 이르기를
邑犬群吠(읍견군폐) : “마을의 개들이 떼를 지어 짓는 것은
吠所怪也(폐소괴야) : 이상하게 보이는 사물에 대해서이다.”라고 했습니다.
僕往聞庸蜀之南(복왕문용촉지남) : 이전에 제가 듣기는 “용과 촉 지방의 남쪽에는
恒雨少日(항우소일) : 항상 비가 오고 햇빛나는 날이 드물어
日出則犬吠(일출칙견폐) : 해가 뜨면 개들이 짓는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予以爲過言(여이위과언) : 저는 과장된 말로 여겼었는데
前六七年(전육칠년) : 육 칠년전
僕來南二年冬(복래남이년동) : 제가 남쪽지방으로 온 지 두 번째 해
幸大雪(행대설) : 겨울에 큰 눈이 내려
踰嶺(유령) : 오령 너머
被南越中數州(피남월중수주) : 남월의 몇 주가지 덮은 일이 있었는데,
數州之犬(수주지견) : 그때 여러 주의 개들은
皆蒼黃吠噬狂走者累日(개창황폐서광주자누일) : 모두 놀라 짓고 물고 하면서 며칠 동안 미쳐 돌아다니다가
至無雪乃已(지무설내이) : 눈이 그친 뒤에야 잠잠해졌습니다.
然後始信前所聞者(연후시신전소문자) : 그제서야 저는 전에 들었던 얘기를 믿게 되었습니다.

今韓愈旣自以爲蜀之日(금한유기자이위촉지일) : 지금 한유는 스스로를 촉 땅의 해로 생각하게 되었지만,
而吾子又欲使吾爲越之雪(이오자우욕사오위월지설) : 선생은 또 나를 남월의 눈으로 만들려고 하니
不以病乎(불이병호) : 이 어찌 해가 안 되겠습니까?
非獨見病(비독견병) : 더욱이 저만 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亦以病吾子(역이병오자) : 선생 또한 입게 됩니다.
然雪與日(연설여일) : 하지만 해와 눈에게
豈有過哉(기유과재) : 어찌 잘못이 있겠습니까?
顧吠者犬耳(고폐자견이) : 본시 짓는 것은 개들일 뿐이나
度今天下(도금천하) : 생각건대 요즈음 세상에
不吠者幾人(불폐자기인) : 짖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而誰敢衒怪於群目(이수감현괴어군목) : 어느 누가 감히 군중들 눈을 돌게 하고 이상하게 함으로써
以召鬧取怒乎(이소료취노호) : 소란을 불러들이고 분노를 자초하려 하겠습니까?

僕自謫過以來(복자적과이래) : 저는 폄적된 이후
益少志慮(익소지려) : 뜻이 더욱 적어지고,
居南中九年(거남중구년) : 남쪽에서 거처한 9년 동안
增脚氣病(증각기병) : 각기병이 심해져서
漸不喜鬧(점불희료) : 점점 복잡한 일은 좋아하지 않게 되었으니,
豈可使呶呶者(기가사노노자) : 어찌 떠들썩하게 함으로써
早暮咈吾耳騷吾心(조모불오이소오심) : 밤낮으로 내 귀를 귀찮게 하고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 있겠습니까?
則固僵仆煩憒(칙고강부번궤) : 그렇게 된다면 저는 정말 번잡함에 쓰러져
愈不可過矣(유불가과의) : 더더욱 잘 지내지 못할 것입니다.
平居望外遭齒舌不少(평거망외조치설불소) : 평소에소 뜻하지 않게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적지 않은데,
獨欠爲人師耳(독흠위인사이) : 더욱이 남의 스승이 되는 데에는 결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抑又聞之(억우문지) : 또 듣건데
古者重冠禮(고자중관례) : 옛날에 관례를 중시한 것은
將以責成人之道(장이책성인지도) : 그것으로써 성인의 도를 추궁하려고 했던 것이니,
是聖人所尤用心也(시성인소우용심야) : 이것은 성인들이 특히 마음을 썼던 일이나
數百年來(수백년래) : 수백 년간
人不復行(인불부행) : 사람들은 다시 행하지 않았습니다.
近者孫昌胤者獨發憤行(근자손창윤자독발분행지) : 그러다가 요즈음 손창윤이란 사람이 분연히 관례를 행하려고 했습니다.
旣成禮(기성례) : 그는 예를 치른 뒤
明日造朝(명일조조) : 다음 날 조정에 나가
至外廷(지외정) : 외정에 이르러
薦笏(천홀) : 홀을 손으로 들어 올리고서는
言於卿士曰(언어경사왈) : 경사들에게 이르기를,
某子冠畢(모자관필) : “내 자식이 관례를 행하였소.”라고 말하였으나
應之者咸憮然(응지자함무연) : 응대하던 사람들은 모두 멍청히 있기만 했습니다.
京兆尹鄭叔則(경조윤정숙칙) : 경조윤 정숙칙이
怫然曳笏却立曰(불연예홀각립왈) : 성을 내면서 홀을 당기고 뒤로 물러나 서서 이르기를
何預我邪(하예아사) : “그것이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라고 하자
廷中皆大笑(정중개대소) : 외정의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기까지 하였습니다.
天下不以非鄭尹而怪孫子何(천하불이비정윤이괴손자하재) : 세상에서는 정숙칙을 비난하지 않고 손창윤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왜 그랬겠습니까?
獨爲所不爲也(독위소불위야) : 그가 홀로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今之命師者大類此(금지명사자대류차) : 지금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려하는 것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吾子行厚而辭深(오자행후이사심) : 선생의 덕행은 두텁고 언사는 깊어
凡所作皆恢然有古人形貌(범소작개회연유고인형모) : 지은 문장이 고인의 모습을 갖춘 듯 넓으니
雖僕敢爲師(수복감위사) : 설사 제가 스승이 된다 하여도
亦何所增加也(역하소증가야) : 보탤 것이 어찌 있겠습니까?
假而以僕(가이이복) : 가령 저로서는
年先吾子(년선오자) : 나이가 선생보다 많고
聞道著書之日(문도저서지일) : 도에 관하여 듣고 문장을 쓰기 시작한 날자가
不後(불후) : 조금 이르다 하여,
誠欲往來言所(성욕왕래언소문) : 정말로 선생이 왕래하며 서로의 지식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則僕固願悉陳中所得者(칙복고원실진중소득자) : 저는 기꺼이 심득한 전부를 펼쳐 보이겠으니
吾子苟自擇之(오자구자택지) : 선생께서 스스로 선택하여
取某事去某事則可矣(취모사거모사칙가의) :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일은 가능하겠습니다.
若定是非(약정시비) : 만약 시비를 정하여
以敎吾子(이교오자) : 선생을 가르치는 일은,
僕才不足而又畏前所陣(복재부족이우외전소진자) : 저의 재주도 부족하고 앞서 말한 것도 두려워
其爲不敢也決矣(기위불감야결의) :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감히 하지 못하겠습니다.

吾子前所欲見吾文(오자전소욕견오문) : 전에 선생이 보시고자 했던 내 글은
旣悉以陳之(기실이진지) : 이미 모두 보여드렸지만
非以耀明于子(비이요명우자) : 결코 그대에게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聊欲以觀子氣色(료욕이관자기색) : 단지 선생의 기색을 살펴
誠好惡何如也(성호오하여야) : 진실된 호오의 심정이 어더한가를 알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今書來言者皆太過(금서래언자개태과) : 오늘 보내신 글은 모두 너무 과분합니다.
吾子誠非佞譽誣諛之徒(오자성비녕예무유지도) : 선생은 분명 허황하게 칭찬하거나 거짓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며
直見愛甚故(직견애심고) : 그저 제 글을 좋아하심이 심하기 때문에
然耳(연이) :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始吾幼且少(시오유차소) : 과거 내가 젊었을 적에는
爲文章(위문장) : 글을 지음에
以辭爲工(이사위공) : 문사에 기교를 다하였으나,
及長(급장) : 조금 나이 든 이후에야
乃知文者(내지문자) : 문장이란
以明道(이명도) : 성인의 도를 밝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固不苟爲炳炳烺烺(고불구위병병랑랑) : 진실로 문장은 구차히 겉만 아름답고 화려하게 짓거나
務采色夸聲音(무채색과성음) : 문채에 힘쓰고 성률을 과식함으로서
而以爲能也(이이위능야) : 능사를 삼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凡吾所陳皆自謂近道(범오소진개자위근도) : 대체로 제가 말한 바는 모두 제 스스로 도에 가깝다고 여기고 있으나,
而不知道之果近乎遠乎(이부지도지과근호원호) : 과연 정말로 도레 가까운지 아니면 멀리 떨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吾子好道而可(오자호도이가오문) : 선생은 성인의 도를 좋아하여, 제 글을 좋게 보셨으니
或者其於道不遠矣(혹자기어도불원의) : 혹 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故吾每爲文章(고오매위문장) : 그러므로 저는 매범 문장을 지을 적마다
未嘗敢以輕心掉之(미상감이경심도지) : 감히 가벼운 마음으로 짓지 않았으니
懼其剽而不留也(구기표이불유야) : 글이 경박하여 남게 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 때문이며,
未嘗敢以怠心易之(미상감이태심이지) : 감히 태만한 마음으로 쉽게 여기지 않았으니
懼其弛而不嚴也(구기이이불엄야) : 글이 허술하여 엄숙하지 않음을 두려워한 때문이며,
未嘗敢以昏氣出之(미상감이혼기출지) : 감히 혼미한 정신으로 글을 짓지 않았으니
懼其昧沒而雜也(구기매몰이잡야) : 글이 애매모호하여 번잡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때문이며
未嘗敢以矜氣作之(미상감이긍기작지) : 감히 오만한 자세로 짓지 않았으니
懼其偃蹇而驕也(구기언건이교야) : 글이 제멋데로여혀 교만해지는 것을 려워한 때문입니다.
抑之欲其奧(억지욕기오) : 또 억누르는 것은 글을 보다 심오하게 하려 함이고,
揚之欲其明(양지욕기명) : 발양하는 것은 글을 명백하게 하려 함이며,
疏之欲其通(소지욕기통) : 소통하게 하는 것은 글을 통창하게 하려 함이며,
廉之欲其節(렴지욕기절) : 살펴서 짓는 것은 글을 절제있게 하려 함이며,
激而發之欲其淸(격이발지욕기청) : 자극하여 분발시키는 것은 글을 맑게 하려 함이며,
固而存之欲其重(고이존지욕기중) : 단단함을 보존하는 것은 글을 중후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此吾所以羽翼夫道也(차오소이우익부도야) : 이는 제가 성인의 도를 보좌하는 방법입니다.

本之書(본지서) : 그리고 <서경>에 근본을 두어
以求其質(이구기질) : 질박함을 구하며
本之詩(본지시) : <시경>에 근본을 두어
以求其恒(이구기항) : 장구함을 구하며
本之禮(본지예) : <예기>에 근본을 두어
以求其宜(이구기의) : 적절함을 구하며
本之春秋(본지춘추) : <춘구>에 근본을 두어
以求其斷(이구기단) : 결단력을 구하며
本之易(본지역) : <역경>에 근본을 두어
以求其動(이구기동) : 움직임의 이치를 구하니
此吾所以取道之原也(차오소이취도지원야) : 이는 제가 도의 근원을 찾는 방법입니다.
參之穀梁氏(참지곡량씨) : 또 <곡량전>을 참고하여
以厲其氣(이려기기) : 그의 기세를 단련시키며,
參之孟荀(참지맹순) : <맹자>와 <순자>를 참고하여
以暢其支(이창기지) : 글의 출로를 트이게 하며,
參之莊老(참지장로) : <장자>와 <노자>를 참고하여
以肆其端(이사기단) : 글의 단서를 개척하며,
參之國語(참지국어) : <국어>를 참고하여
以博其趣(이박기취) : 글의 정취를 넓히며,
參之離騷(참지리소) : <이소>를 참고하여
以致其幽(이치기유) : 글의 유심함을 다하고,
參之太史公(참지태사공) : <사기>를 참고하여
以著其潔(이저기결) : 글의 간결함을 밝힙니다.
此吾所以旁推交通而以爲文也(차오소이방추교통이이위문야) : 이는 제가 여러 가지를 널리 참작하고 두루 통찰함으로써 글을 짓게 되는 방법입니다.

凡若此者(범약차자) : 이와 같은 방법들이
果是邪(과시사) : 과연 옳은 것입니까?
非邪(비사) : 틀린 것입니까?
有取乎(유취호) : 취할 것이 있습니까?
抑其無取乎(억기무취호) : 취할 것이 없습니까?
吾子幸觀焉擇焉(오자행관언택언) : 선생께서 보신 뒤 선택하여
有餘(유여) : 틈이 있으면
以告焉(이고언) :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苟亟來以廣是道(구극래이광시도) : 만약 선생께서 자주 와서 성인의 도를 넓히고자 한다면
子不有得焉(자불유득언) : 선생은 소득이 없다 하더라도
則我得矣(칙아득의) : 나는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니
又何以師云爾哉(우하이사운이재) : 어찌 스승 운운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取其實而去其名(취기실이거기명) : 알맹이는 취하고 껍데기는 버리되
無招越蜀吠怪而爲外廷所笑(무초월촉폐괴이위외정소소) : 남월과 촉땅의 개들의 괴상한 짖음이나 외정의 비웃음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則幸矣(칙행의) : 다행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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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诗词中的常用典故


1投笔:《后汉书》载:班超家境贫寒,靠为官府抄写文书来生活。他曾投笔感叹,要效法傅介子、张骞立功边境,取爵封侯。后来投笔就指弃文从武。如辛弃疾《水调歌头》:莫学班超投笔,纵得封侯万里,憔悴老边州。
2
长城《南史 檀道济传》,檀道济是南朝宋的大将,权力很大,受到君臣猜忌。后来宋文帝借机杀他时,檀道济大怒道:乃坏汝万里长城!”后来就用万里长城指守边的将领。如陆游的《书愤》:塞上长城空自许,镜中衰鬓已先斑
3
楼兰:《汉书》载;楼兰国王贪财,多次杀害前往西域的汉使。后来傅介子被派出使西域,计斩楼兰王,为国立功。以后诗人就常用楼兰代指边境之敌,用()楼兰指建功立业。如王昌龄的《从 行》“青海长云暗雪山, 疆域遥望玉门关。黄沙百战穿金甲, 不破楼兰终不还。”李白的《塞下曲》“五月天山雪,无花只有寒。苗中闻折柳, 春色未曾看,晓战随金鼓, 宵眠抱玉鞍。愿将腰下剑, 直为斩楼兰。”
4
折腰《宋书 隐逸传》载,陶渊明曾作彭泽县令,因不肯为五斗米折腰向乡里小儿而弃官归隐。折腰意为躬身拜揖,后来喻指屈身事人,而诗人常反其义用之。如李白《梦游天姥岭留别》:安能摧眉折腰事权贵,使我不得开心颜?”
5
化碧《庄子外物》载,苌弘是周朝的贤臣,无辜获罪而被流放蜀地。他在蜀地自杀后,当地人用玉匣把他的血藏起来,三年后血变成了碧玉。后来人们就常用化碧形容刚直中正的人为正义事业而蒙冤受屈。
6
鸿雁《汉书 苏武传》,匈奴单于欺骗汉使,陈述苏武已死,而汉使者故意说汉天子打猎时射下一只北方飞来的鸿雁,脚上拴着帛书,是苏武写的。单于只好放了苏武。后来就用红雁”“雁书雁足鱼雁等指书信、音讯。如晏殊《清贫乐》:红笺小字,说尽平生意。红雁在云鱼在水,惆怅此情难寄。
7
尺素古乐府《饮马长城窟行》:客从远方来,遗我双鲤鱼,呼童烹鲤鱼,中有尺素书。后来尺素就用作书信的代称。如秦观《踏莎行》:驿寄梅花,鱼传尺索,砌成此恨无重数。郴江幸自绕郴山,为谁流下潇湘去?”
8
青鸾《仙海经》载,西王母每次出行,都先让一只青鸾报信。后人便用青鸾”“青鸟借指传递书信的人。如李商隐《无题》:彭山此去无多路,青鸟殷勤为探看。
9
双鲤古乐府《饮马长城窟行》:客从远方来,遗我双鲤鱼,呼童烹鲤鱼,中有尺素书。后来双鲤就用作书信的代称。如李商隐《寄令狐郎中》;蒿云秦树久离居,双鲤迢迢一纸书。
10
、五柳陶渊明《五柳先生传》载:宅边有五柳树,因以号为焉。后来五柳就成了隐者的代称。如王维《辋川闲居赠裴秀才迪》“寒山转苍翠, 秋水日潺湲。倚仗柴门外, 临风听暮蝉。渡头余落日,墟里上孤烟。 负值接舆醉, 狂歌五柳前。”

11东篱陶渊明《饮酒》:采菊东篱下,悠然见南山。后来多用东篱表现辞官归隐后的田园生活或娴雅的情致。如李清照《醉花阴》:东篱把酒黄昏后,有暗香盈袖
12
三径陶渊明《归去来兮辞》中有:三径就荒,松菊犹存的句子,后来三径就用来指代隐士居住的地方。如白居易《欲与元八卜邻先有是赠》:明月好同三径夜,绿杨宜作两家春。
13
劳歌本指在劳劳亭送客时唱的歌。劳劳亭旧址在南京,是古代著名的送别之地。劳歌后来成为送别歌的代称。如许浑《谢亭送别》:“劳歌一曲解行舟, 红叶青山水急流。 日暮酒醒人已远, 满天风雨下西楼。

14长亭古代驿站路上约隔十里设一长亭,五里设一短亭,供游人休息和送别。后来长亭成为送别地的代名词。如柳永《雨霖铃》:寒蝉凄切,对长亭晚,骤雨初歇。
15
南浦屈原《楚辞 河伯》:送美人兮南浦。南浦指南面的水滨,古人常在南浦送别亲友,后来常用来指称送别地。白居易《南浦别》:南浦凄凄别,西风袅袅秋。
16
阳关王维《送元二使安西》;渭城朝雨浥轻尘,客舍青青柳色新。劝君更尽一杯酒,西出阳关无故人。后来就把送别时唱的歌曲称作围城阳关
17
柳岸古人送别有折柳的习俗,后来就用柳岸指送别的地方。如柳永《雨霖铃》:今宵酒醒何处,杨柳岸晓风残月。
18
风骚原指《诗经》的《国风》和《楚辞》的《离骚》,后泛指优秀的文学作品或指文采。如毛泽东《沁园春》:秦皇汉武,略输文采;唐宗宋祖,稍逊风骚。
19
雕虫语出汉代杨雄《法言》:童子雕虫篆刻,状夫不为也。后来比喻微不足道的技术,多指文学技巧。如李货李贺的南园》“寻章摘句老雕虫, 晓月当帘挂玉弓。不见当年辽海上, 文章何处哭秋风?
20
鸿鹄;《史记 陈涉世家》载,秦末农民起义军领袖陈涉少有鸿鹄之志,后揭竿起义大泽乡。后来就以鸿鹄比喻有远大志向。如吴潜《八声甘州》:矫首看鸿鹄,远举高 飞。
21
杜鹃:俗称布谷,又叫子规、杜宇、望帝。望帝传说是蜀地的君主,名叫杜宇,后来禅位退隐,不幸国亡身死,死后魂化为鸟,暮春苦啼,以致口中流血。后来多用杜鹃来渲染哀怨悲凄的气氛或思归的心情。如辛弃疾《定风波》:百紫千红过了春,杜鹃声苦不堪闻。又如李白《蜀道难》:又闻子规啼夜月,愁空山。又如天样的《金陵驿》“合离宫转夕晖,孤云漂泊复何依,山河风景原无异,城郭人民半已非。满地芦花和我老,旧家燕子傍谁飞!从今别却江南路,化作啼鹃带血归。”

22鹧鸪鹧鸪的鸣叫声似说行不得也哥哥后多用来衬托处境的艰难或心情的惆怅。如辛弃疾《菩萨蛮》:江晚正愁余,山深闻鹧鸪。
23
黍离诗经 黍离》中有彼黍离离的句子,是说东周大夫经过西周故都,看到长满禾黍,由此悲叹宫室宗庙的毁坏。后来常用黍离表示对国家昔盛今衰的痛惜伤感之情。如许浑《登洛阳故城》:禾黍离离半野蒿,昔人城此岂知劳?”
24
桑榆《淮南子》:日西垂,景在数端,谓之桑榆’“桑榆指日落时余光所照之处,后比喻垂老之年。如王勃《滕王阁序》:东榆已失,桑榆非晚
25
商女牧《泊秦淮》:商女不知亡国恨,隔江犹唱后庭花。商女即歌女,后以此为 不顾国家存亡而醉生梦死的典故。如王安石《桂枝香》:至今商女,时时犹唱,后庭遗曲。
26
杜康《说文解字》中说:古代的杜康(也叫少康)发明制作了箕帚和高粱酒。后就用杜康作为酒的代称。如曹操《短歌行》:何以解忧?唯有杜康。
27
瑟瑟愿为绿色宝石的名称,后来借指绿色。

chenxishuguang@sohu.com

 

百聯詩 序文 解釋

  夫漢詩云者吾東傳統之悠久學問也이나 光復之後文敎政策盲從西歐之風하야 旣失傳統之文學久且遠矣余以幼時學習詩文於龍雲崔先生之門이나 而尙今未達하여 尤可恧也이나 今有好古之徒하야 而來乞受敎也今世罕見하니 豈不讚之哉余雖不敏이나 敢不辭讓하여 精選善對之句하야 而編寫成策曰 百聯詩라하고 使之爲學習之敎材하니 尙有初學者之少補也夫인저

                     歲在靑狗五月念五日 李海炯

무릇 한시라 으르는 것은 우리 동방 전통의 유구한 학문이다. 그러나 광복이후에 문교정책이 서구의 풍속을 맹목적으로 따라서 이미 전통의 학문을 잃어버린지 오래고 또한 멀다. 내가 어렸을 때 시문을 최룡운선생의 문하에서 학습하였으나 오히려 지금까지 통달하지 못하여 더욱이 가히 부끄럽다. 그러나 요즈음 옛 것을 좋아하는 무리가 있어 찾아와 가르침 받기를 애걸함은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무니 어찌 그들을 칭찬하지 않겠는가? 내 비록 영민하지 못하나  감히 사양할 수 없어서 대련 구절이 좋은 글귀를 정밀히 선정하여 써서 편집하고 책을 완성하여 이르기를 백련시라하고 이것으로 하여금 학습의 교재로 삼으니 또한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적게나마 도움이 있을진저.                                

 

                                                 해는 갑술년 오월 이십오일 이해형




근친간(近親間)의 호칭(呼稱)

 

 

 

초당춘수(草堂春睡) - 조석진  우리의 전통 사회에서 상호간에 일컫던 호칭(呼稱)은 다소 복잡할 만큼 아주 세밀하게 발전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전통 사회가 대가족제도하에서 공동체(共同體)의 일원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구성원간의 세밀한 구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호칭법(呼稱法) 자체가 하나의 문화 수준이 될 정도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전통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일상에서는 지나칠 만큼 단순하게 축소됨으로 인해 의사전달마저 불분명해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며느리가 시부모를 타인에게 일컬을 때 '할아버지'나 '할머니'로 부르는 잘못은 그 이유가 어떠하던 간에 상호간의 관계에 혼돈과 무지를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근친간의 상호 호칭과 사회적인 대인 관계의 호칭에 대한 바른 정립으로 기본적인 인간 관계가 상호 신뢰 속에 올바로 유지될 수 있는 계기를 삼고자 합니다. 특히 자타간의 호칭(呼稱)은 그 근간(根幹)이 타인의 존대(尊對)와 자신의 겸손(謙遜)으로 표현되어 온 미풍양속(美風良俗)의 한 일면을 볼 수도 있기에 그 가치가 더욱 크다 할 것입니다. 시대적 조류를 무시한 무조건적인 전통 고수(固守)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호칭에 대한 바른 정립에서부터 교양(敎養)을 갖춘 공동체 사회의 건전한 인간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영부인(令夫人)', '영애(令愛)', '영식(令息)' 등의 호칭이 일반 개인 사이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 권위주의의 폐해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근친간(近親間)의 호칭(呼稱)

 

 

대상주체

자신이 대상자를
부를 때

대상자에게 자신을
말할 때

자신이 타인에게
대상자를 말할 때

타인이 자신에게
대상자를 말할 때

조부
(祖父)

할아버지
할아버님
祖父님(조부님)

小孫(소손)
孫不肖子
(손불초자)

祖父(조부)
王父(왕부)
老祖父(노조부)

祖父丈(조부장)
王大人(왕대인)

조모
(祖母)

할머니
할머님
祖母님(조모님)

小孫(소손)
孫不肖子
(손불초자)

祖母(조모)
王母(왕모)
老祖母(노조모)

王大夫人
(왕대부인)
尊祖母(존조모)

부(父)

아버지
父主(부주)

小子(소자)
不肖子(불초자)
不孝子(불효자)

嚴親(엄친)
老親(노친)
家親(가친)

春府丈(춘부장)
春丈(춘장)
春堂(춘당)

모(母)

어머니
慈主(자주)

小子(소자)
不肖子(불초자)
不孝子(불효자)

母親(모친)
慈親(자친)

慈堂(자당)
萱堂(훤당)
大夫人(대부인)

부모동시

부모님
兩位(양위)
兩堂(양당)

孤哀子(고애자)
{父母喪中}

兩親(양친)
父母(부모)

兩堂(양당)
兩位(양위)

부(夫)
- 남편

당신, 여보
서방님
夫君(부군)

妻(처), 小妻(소처)
拙妻(졸처)
愚妻(우처)

남편
家夫(가부)
家君(가군)

夫君(부군)
賢君(현군)
令君子(영군자)

처(妻)
- 아내

당신, 여보
마누라
夫人(부인)

拙夫(졸부)
家夫(가부)
夫(부)

內子(내자)
제댁, 안사람
荊妻(형처)

夫人(부인)
令夫人(영부인)
閤夫人(합부인)

자(子)
- 아들

애, 큰애, 작은애
{이름}

애비, 애미, 나,
부모, 우리

家豚(가돈)
家兒(가아)
자식

자제
令息(영식)
令胤(영윤)

녀(女)
- 딸

애, 女兒(여아)
{이름}

애비, 애미, 나
부모, 우리

女息(여식)
女兒(여아)
家嬌(가교), 딸

따님
令愛(영애)
令嬌(영교)

대상주체

자신이 대상자를
부를 때

대상자에게 자신을
말할 때

자신이 타인에게
대상자를 말할 때

타인이 자신에게
대상자를 말할 때

손자
(孫子)

{이름}
孫兒(손아)


할아버지
祖父(조부)

家孫(가손)
孫兒(손아)
孫女(손녀)

令孫(영손)
賢孫(현손)
令抱(영포)

형(兄)

형님
伯兄(백형)
仲兄(중형)

저, 동생, 아우
舍弟(사제)

家兄(가형)
舍伯(사백)
舍仲(사중)

伯氏(백씨)
伯氏丈(백씨장)
仲氏(중씨)

형수
(兄嫂)

아주머니
兄嫂氏(형수씨)
兄嫂主(형수주)


嫂弟(수제)

兄嫂氏(형수씨)

令兄嫂氏
(영형수씨)

제 (弟)
- 동생

{이름}
동생, 아우

나, 兄(형)
舍兄(사형)
家兄(가형)

아우, 동생
舍弟(사제)
家弟(가제)

제씨(제씨)
令弟氏(영제씨)
令季氏(영계씨)

제수
(弟嫂)

弟嫂氏
季嫂氏(계수씨)
아주머니


生(생)

弟嫂(제수)
季嫂(계수)

令弟嫂氏
(영제수씨)
令季嫂氏
(영계수씨)

자(姉)
- 누나

누나, 누님
언니
姉主(자주)

저, 나
동생
舍弟(사제)

姉氏(자씨)
妹氏(매씨)

令姉氏
(영자씨)

매(妹)
-누이동생

동생, 누이
{이름}


오빠, 오라비
舍兄(사형)

내누이
舍妹(사매)
누이동생

令妹氏(영매씨)

대상주체

자신이 대상자를
부를 때

대상자에게 자신을
말할 때

자신이 타인에게
대상자를 말할 때

타인이 자신에게
대상자를 말할 때

백부
(伯父)

큰아버지
큰아버님
伯父님(백부님)

저, 조카
舍姪(사질)
從子(종자)

舍伯父(사백부)
舍仲父(사중부)

伯玩丈(백완장)
玩丈(완장)

백모
(伯母)

큰어머니
큰어머님
伯母님(백모님)

저, 조카
舍姪(사질)
從子(종자)

舍伯母(사백모)

伯母(백모)부인
仲母(중모)부인

숙부
(叔父)

작은아버지
仲父님(중부님)
叔父님(숙부님)

조카
舍姪(사질)
從子(종자)

舍叔(사숙)
仲父(중부)
季父(계부)

叔父丈(숙부장)
仲父丈(중부장)
季父丈(계부장)

숙모
(叔母)

작은어머니
叔母님(숙모님)

조카
舍姪(사질)
從子(종자)

舍叔母(사숙모)

尊叔母(존숙모)
尊叔母夫人
(존숙모부인)

외조부
(外祖父)

외할아버지,
외할아버님
外祖父主
(외조부주)

저,
外孫(외손)
杵孫(저손)

外祖父(외조부)
外王父(외왕부)

外王尊丈
(외왕존장)
外王大丈
(외왕대장)

외조모
(外祖母)

외할머니, -님
外祖母主
(외조모주)

저,
外孫(외손)
杵孫(저손)

外祖母(외조모)

外王大夫人
(외왕대부인)

외숙
(外叔)

외숙님, 외삼촌
內舅主(내구주)

저,
生姪(생질)

鄙外叔(비외숙)
鄙表叔(비표숙)

貴外叔(귀외숙)
貴表叔(귀표숙)

장인
(丈人)

丈人(장인)어른
聘丈(빙장)어른
外舅主(외구주)

저,
外生(외생)

鄙聘丈(비빙장)

貴岳丈(귀악장)

장모
(장모)

丈母님(장모님)
聘母님(빙모님)
外姑主(외고주)

저,
外生(외생)

鄙聘母(비빙모)

尊聘母夫人
(존빙모부인)

 

 

 

사회생활에서의 호칭

  잘 아는 사람에 대한 호칭


부모의 친구, 친구의 부모, 또는 부모처럼 나이가 많은 남녀어른(자기보다 16년 이상 연장자)에게는 '어르신·어르신네'라 한다.

자기가 존경하는 웃어른이나, 직업이 선생님인 남녀어른에게는 '선생님'이라 해도 된다.


자기와 11년 내지 15년 사이에 드는 연상·연하자와의 관계에는 서로 '노형(老兄)'이라고 한다.
자기와 6년 내지 10년 사이에 드는 연상·연하자와의 사이에는 서로 '형님, 형'이라 한다.
5, 6년 전후 정도의 연령차가 나는 친숙한 사이에는 이름을 부르거나 '자네'라 한다.

학교선배나 같은 일을 하는 연상사에게는 '선배님·선배'라고 한다.

상대가 위치한 직책명에 '님'을 붙여 '○○님'이라고 한다.
친구나 잘 아는 사람과의 관계로 부르는 경위에는 '○○아버님·○○누님'이라 한다.
미성년자나 아이들, 또는 어린 사람들이 친구 입장에서 말할 때는 이름을 부르거나 '너·얘'라 한다.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호칭


60세 이상의 남녀노인에게는 '노인어른, 노인장'이라 한다.
남의 노인에게 할아버지나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자신의 부모처럼 나이가 많은 남녀어른에게는 '어르신, 어르신네'라 한다.
자기가 존경할 만큼 점잖거나 나이가 많은 남녀에게는 '선생님'이라 할 수도 있다.


칭하기가 거북한 남자에게는 '선생, 노형'이라 한다.

자기와 동년배인 남자끼리는 '형씨'라 한다.
형씨라 부를 동성간이나 이성간에는 '댁'이라고도 한다.
'어르신네, 선생님'이라 부를 수 없는 기혼여자에게는 '부인'이라고 한다.

자기보다 16년 이상 연하자로서 청장년(靑壯年)인 남자에게는 '젊은이, 청년'이라 한다.

미성년이거나 미혼인 남자와 여자에게는 '총각, 아가씨'라 한다.

학생 신분인 남녀에게는 '학생'이라 한다.

미성년인 어린 아이들에게는 '소년, 얘'라고 한다.


연상이든 연하든 불문하고 통칭하여 '아저씨, 아주머니'라 하거나

'선생님, 사모님'이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나이를 따져서 벗할 나이면 벗을 하고, 그러기 어려운 상대면 경어를 써야지,

나이가 한 살만 많아도 '형님'이라 하면 나이에 얽매이게 되어 사회에서도 벗을 삼기가 어려워지며

한 살이라도 위인 사람이 공연히 나이를 내세우게 된다.

  자기에 대한 호칭


웃어른이나 여러 사람에게 말할 때는 '저, 제가'라고 한다.
같은 또래나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는 '나'라고 하고,

자기 쪽을 남에게 말할 때는 '우리, 저희'라 한다.

 

자기를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는 아랫 사람이 나를 부르는 호칭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손자에게는 할애비·할미, 자녀에게는 애비·애미, 아우에게는 형 등의 호칭을 사용한다.

  사돈 사이의 호칭


자녀 배우자(며느리, 사위)의 부모를 호칭. 지칭하는 말 중에서 밭사돈이 밭사돈을 부르는 말은

'사돈어른' , '사돈'으로 부른다.
상대방이 나이가 위일 때는 '사돈어른' 아래일 때는 '사돈'으로 부르도록 하고 ,

나이가 비슷한 친밀한 정도에 따라 적절히 쓰도록 한 것이다.


당사자에게 지칭하는 말은 호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사돈이 여러 사람이어서 혼란이 생길 때는 '(지역이름)' 사돈 어른' , '(지역이름) 사돈'을 쓸 수 있다.

 

이것은 아래의 다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쪽 사람에게 지칭할 때는 '사돈', ' ○○(외)할아버지'를 쓰도록 한다.
사돈 쪽 사람에게는 '사돈어른'. '사돈'을 적절히 사용하고, '○○ (외)할아버지'도 사용할 수 있다.

밭사돈이 안사돈을 부르는 말은 '사부인'으로 부른다.
안사돈은 나이가 적어도 어려운 상대이므로 '사돈댁'의 존칭인 '사부인'을 표준안으로 정했다.

지칭어로는 당사자에게는 '사부인'을 그대로 쓰고,

그 밖의 사람에게는 '사부인', '○○ (외)할머니'를 쓰기로 한다.


안사돈이 안사돈을 부르는 말은 '사부인', '사돈'으로 부른다.

나이가 아래이고 친밀한 사이이면 '사돈' , '사부인' 으로 하도록 한 것이다

당사자에게 지칭하는 말은 호칭어를 그대로 쓰고, 그 밖의 사람에게는 '사부인',

'○○ (외)할머니'를 쓰도록 한다.


안사돈이 밭사돈을 부르는 말은 '사돈어른'으로 부른다.

나이가 차이가 많거나 친밀한 경우에는 '밭사돈'을 쓸 수도 있다.

지칭어로는 당사자에게는 '사돈 어른' 그 밖의 사람에게는 '사돈 어른 (밭사돈)' , '○○ (외)할아버지'를 쓰기도 한다.


자녀 배우자(며느리, 사위)의 삼촌 항렬인 사람을 부르는 호칭어도 부모의 호칭어와 같다.

지칭어 로는 당사자에 대하여 호칭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그 밖의 사람에게는 호칭어와

 '○○ 작은(외) 할아버지' 등과 같은 관계말을 사용하도록 한다.


동기 배우자(형수, 매부, 올케 등)의 동기에 대한 호칭어. 지칭어는 말하는 사람의 성별에는 관계 없이 상대방이 남자인가 여자인가에 따라 구별된다.

남자를 부르는 말은 '사돈','사돈 도령', '사돈 총각'으로 한다.
이 관계는 나이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전체를 총괄하는 말로 '사돈'을 쓰고

미혼이면 상황에 따라 '사돈 도령'과 '사돈 총각'으로 부르면 된다.

'사돈 총각'은 낮추는 말이라는 여론이 있으나, 결혼할 나이의 남자에게는 '사돈 총각'이 더 어울리고 실제로 많이 쓰이는 말이기 때문에 당사자에 대한 지칭어는 호칭어를 그대로 쓰고, 그 밖의 사람에게 호칭어와 조카에 기댄 말인 '○○ (외)삼촌'을 지칭어로 쓸 수 있다.


여자를 부르는 말은 '사돈, 사돈 처녀, 사돈 아가씨'로 한다.

남자를 부를때와 같이 상황에 따라 적절히 구별하여 쓸 수 있다.

지칭어로는 당사자에게는 호칭어를 그대로 쓰고, 그 밖의 사람에게는 호칭어와 조카에 기댄

'○○고모(이모)'등과 같은 관계말을 쓰도록 한다.


자녀 배우자(며느리, 사위)의 조부모는 부르는 사람과 대상의 성별에 관계없이

'사장어른'을 호칭어로 한다.
전통적으로 '사돈'은 같은 항렬 이하를 ,'사장'은 위 항렬을 가리키는 말이라서 '사장어른'로 한다.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여 할머니를 부르는 말로는 '안사장 어른'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지칭어 로는 당사자에게는 호칭어인 '사장 어른'을 그대로 쓰고, 그 밖의 사람에게는 '사장어른' 과 '○○ (시,처)조부모'와 같은 관계말을 쓰도록 한다.

 

자녀 배우자의 조부모보다 한 항렬이 높으면 '사장 어른' 앞에 '노'를 붙여 '노사장 어른'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동기 배우자(형수, 매부, 올케 등)의 부모도 남녀 구분없이 '사장어른'으로 부르도록 한다.
지칭어로는 당사자에게는 '사장어른' 그 밖의 사람에게는 '사장어른'과 조카의 이름에 기댄

'○○ (외)할아버지' ,'○○ (외)할머니'와 같은 관계말을 쓰도록 한다.


자녀 배우자(며느리,사위)의 동기와 조카, 동기 배우자(형수, 매부, 올케)의 조카와 같이

아래 항렬은, 말하는 사람의 성별과는 관계없이 상대방이 여자인가 남자인가에 따라

호칭어와 지칭어가 달라진다.


아래 항렬의 남자를 부르는 말은 나이와 상황에 따라 '사돈', '사돈 도령', '사돈 총각'으로

적절히 부르도록 한다.
상대방이 항렬이 낮더라도 나이가 더 많거나 이름을 부르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사돈으로 예우를 하는 것이 전통이다.

지칭어로는 당사자에게는 호칭어를 쓰고, 그 밖의 사람들 에게는 호칭어와 손자, 손녀에 기댄

'○○ (외, 고종,이종)사촌 형' 등과 같은 관계말을 적절히 쓰도록 한다.


아래 항렬의 여자를 부르는 말은 '사돈', '사돈 처녀' , '사돈 아가씨'로 한다.
나이와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정하여 부르도록 한 것이다.

지칭어는 당사자에게는 호칭어를 그대로 쓰고, 그 밖의 사람에게는 호칭어와 손자, 손녀에 기댄

'○○ (외,고종,이종) 사촌 언니' 등과 같은 관계말을 지칭어로 쓰도록 한다.

 

 

 

 

나이(年齡)별 호칭

나이별

호 칭

호칭에대한 설명(내 용)

2-3세

해제 (孩提)

 어린아이

15세

지학 (志學)

 15세가 되어야 학문에 뜻을 둔다는 뜻

20세

약관 (弱冠)

 남자는 스무살에 관례를 치루어 성인이 된다는 뜻

30세

이립 (而立)

 서른살 쯤에 가정과 사회에 모든 기반을 닦는다는 뜻

40세

불혹 (不惑)

 공자는 40세가 되어서야 세상일에 미혹함이 없었다는
 데서 나온 말

50세

지천명 (知天命)

 쉰살에 드디어 천명을 알게 된다는 뜻

60세

이순 (耳順)

 육순 (六順) 논어에서 나온 말로 나이 예순에는생각하
 모든 것이 원만하여 무슨 일이든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
 는 뜻.

61세

환갑 (還甲)

 회갑 (回甲) 예순하나가 되는 해의 생일

62세

진갑 (進甲)

 회갑 이듬해, 즉 62세가 되는 해의 생일

70세

고희 (古稀)

 두보의 곡강시에서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 (人生七十
 ;古來稀)에서 유래된 말.

71세

망팔(望八)

 팔십세를 바라본다는 뜻

77세

희수 (喜壽)

 오래살아 기쁘다는 뜻. 喜자의 약자가 七자로 이루어져  77을 뜻함

80세

산수 (傘壽)

 傘자가 八十을 의미함

88세

미수 (米壽)

 여든 여덟살의 생일. 米자는 八十八의 합성어임

90세

졸수 (卒壽)

 졸(卒)자를 구와 십의 파자로 해석

91세

망백 (望百)

 91세가 되면 100살까지 살 것을 바라본다하여 망백

99세

백수 (白壽)

 百(100)에서 一을 빼면 99, 즉 白자가 됨

100세

기이지수
(期臣頁之壽)

 사람의 수명은 100년을 1期로 하므로 기라하고, 이(臣  頁)는 양(養)과 같은 뜻으로 곧 몸이 늙어 기거를 마음
 대로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의탁한다는 뜻.

 

 


▒ 漢字語로 表現 한 나이 ▒


옛날이나 지금 고령층에서는 나이를 말할 때에
비슷한 또래에서는 12지의 띠를 말하거나
또는 나이를 지칭하는 한자어를 많이 쓴다.
나이를 말하는 한자말에도 용어가 다양하여 몇살을 말하는지
관심있게 생각하지 않으면 분간하기 쉽지는 않다.

이에 용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제시해 본다.

혹 미흡함이 있어도 이해하여 주시고 보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학헌 / 양규봉 제공 )




Ⅰ. 나이와 생일을 지칭하는 말들


1. 만 60세 - 환갑(還甲), 환역(還歷), 육순(六旬)
회갑(回甲), 화갑(華甲), 주갑(周甲)
:

[還-돌아올 환, 甲-첫째 천간 갑, 歷-지낼력, 旬-열흘 순, 華-빛날 화, 回-돌아올 회, 周-두루 주]

還甲, 回甲 - 태어난 해의 갑이 다시 돌아옴
還歷 - 연역이 한바퀴 돌아옴.
六旬 - 10을 나타내는 旬자를 써서 10이 6번 즉 60세를 뜻함.
다시말하면 태어 난 해의 간지(干支)로 돌아간다는 뜻이죠.
華甲 - 화(華)자를 파자(破字)하면 십(十)자 여섯 번과 일(一)자가 되어 61세라는 뜻.


2. 만 61세 - 진갑(進甲 ):
[進-나아갈 진] ∼ 환갑보다 한 해 더 나아간 나이라는 뜻


3. 66세 - 미수(美壽):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라는 뜻


4. 고희(古稀 - 70세):
古稀(고희), [古-옛/ 稀-드물다/ 壽-목숨 장수 오래 살다]
古稀는 杜甫)의 시 `곡강(曲江)`의 구절 "人生七十古來稀 "
(사람이 태어나 70세가 되기는 예로부터 드물었다)"에서 유래하였다.
즉 사람이 칠십까지 살기가 예로부터 드물었다는 뜻



5. 71세 - 망팔(望八)
:
팔십살을 바라 본다는 뜻.
71세가 되면 이 제 80세까지 바라보게 되죠.


6. 77세 - 희수(喜壽):
희(喜)자를 초서(草書)로 쓸 때 "七十七" 처럼 쓰는 데서 왔다.
일종의 파자(破字)죠.


7. 80세 - 산수(傘壽):
산(傘)자의 약자(略字)가 팔(八)을 위에 쓰고 십(十)을 밑에 쓰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8. 81세 - 반수(半壽)::
반(半)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十一"이 되는 데서 半壽.


9. 81세 -망구(望九):
구십살을 바라 본다는 뜻이니, 81세에서 90세까지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말이다.
`할망구`라는 말 들어 보셨죠? `할망구`의 어원이 ~망구`이다.


10. 88세 - 미수(米壽):
미(米)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十八"이다.
혹은 농부가 모를 심어 추수를 할 때까지 88번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데서 여든 여덟살을 표현한다.


11. 90세 - 졸수(卒壽), 동리(凍梨):
졸(卒)의 속자(俗字)가 아홉 구(九)자 밑에 열 십(十)자로 사용하는 데서 유래하였고.


12. 90세 - 동리(凍梨) -동리(凍梨):언[凍]배[梨]의 뜻은.
90세가 되면 얼굴에 반점이 생겨 언 배 껍질 같다는 말이다.


13. 91세 - 망백(望百):
71세 때 80을 바라보았다면 91세면 백살을 바라 봐야 되겠지요?
100살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14. 99세 - 백수(白壽):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백(白)자가 되므로 99세를 나타낸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15. 100세 - 상수(上壽):
期 臣頁 之壽(기이지수),
사람의 수명은 100년을 1期로 하므로 기(期)라 하고,
이(臣頁)는 (신하신 + 머리혈)두글자의 합성어로
'턱이' 자 이다. COM에 없는 글자임.
양(養)과 같은 뜻으로 곧 몸이 늙어 기거를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의탁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높은 나이라는 의미는?)


16. 108세 - 다수(茶壽):
茶 자를 풀어보면 열 십 자가 두 개이니 20이고
아래 八+十+八이니까 모두 합하면 108세가 됨
즉 20+88=108 의 재미있는 파자(破字) 풀이 이다.


17. 111세 - 황수(皇壽):
(황제와 같이 우러러보는 높은 나이는?)


18. 120세 - 천수(天壽):

天壽(천수) 하늘이 준 타고난 수명(天命)을 다 했다는 의미이다.


Ⅱ. 공자(孔子)의 인격수양 과정에서 사용한 말들


19. 15세 - 지학(志學):
공자(孔子)가 15세에 학문(學文)에 뜻을 두엇 다는 데서 유래..
즉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라는 뜻


20. 20세 전후한 남자 -약관(弱冠):
요즘은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원복(元服 ; 어른되는 성례 때 쓰던 관)식을 행했다 고 한다.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編)에 "二十日弱 하니, 冠이라"하여 `20세는 약(弱)이라 해서 갓을 쓴다' 는 뜻인데,
그 의미는 갓을 쓰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은 약하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혼인할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21. 30세 - 이립(而立), 입지(立志):
공자(孔자)는 30세에 자립(自立)했다고 말 한데서 유래하였다.
즉 뜻을 세워 정진하는 나이라는 뜻이다.


22. 40세-불혹(不惑):
공자(孔子)는 40세에 모든 것에 미혹(迷惑)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예기(禮記) 강사(强仕)에 "四十日强 而仕"라는 구절이 있다.
"마흔살을 강(强)이라 하는데, 이에 벼슬길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이 말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즉 매사 유혹에 끌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다.


23.50세-지명(知命), 지천명(知天命):
공자(孔子)가 50세에 천명(天命; 인생의 의미)을 알았다는 뜻.
즉 천명을 깨달아 알게 되는 나이라는 뜻
知命은 知天命을 줄인 말이다.


24. 60세 - 이순(耳順):
공자는 나이 60이 되자, 학문의 완숙 경지에 이르러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곧바로 그 말뜻을 알게 되었다.
나의 귀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순종하는 기관이 되었다.
즉 남의 말을 들으면 그 즉시 옳고 그름(是非)을 판단할 수 있었다는 유래에서 나온 말이다.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순화시켜 순리대로 이해하는 나이라는 뜻이다.


25. 70세 - 종심(從心):
공자(孔子)가 70세에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
從心所欲 不踰矩에서 따온 준말.
즉 인격완성(人格完成)의 나이라는 뜻이다.


Ⅲ. 기타


태여난 생일 날이 아닌 일반적인 연령을 가리키는 말들

26. -(태어났을 때)- 남자아이 - 농경(弄璟) :
예전에는 아들을 낳으면 구슬[璟]장난감을 주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고 아들을 낳은 경사를 농경지경(弄璟之慶)이라고 한다.
27. -(태어났을 때)- 여자아이 - 농와(弄瓦) :
마찬가지로 딸을 낳으면 실패(瓦)장난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딸을 낳은 경사를 농외지경(弄瓦之慶)이라고 한다.


28. - 2 ~ 3세 - 제해(提孩):
제(提)는 손으로 안는다는 뜻이다.
해(孩)는 어린아이란 뜻이죠.
아기가 처음 웃을 무렵(2 ~ 3세)을 뜻하는 것이다.
해아(孩兒)라고 쓰기도 한다.


29. -10세 미만 - 삼척동자(三尺童子):
주(周)나라의 척도에 1척(尺)은 두 살 조금 지난 아이의 키를 뜻한다.
그래서 10살이 채 못된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6척은 15세(2.5 x 6)를 뜻한다.


30. - 16세 - 과년(瓜年):
과(瓜)자를 파자(破字)하면`八八'이 되므로 여자 나이 16세를 나타낸다.
특별히 16세를 강조한 것은 옛날에는 이 때가 결혼 정년기였기 때문이다.


31. - 20세를 전후한 왕성한 나이의 여자 - 방년(芳年):
꽃다울 방(芳) 나이 연(年)를 뜻한다.


32. - 48세 - 상년(桑年):
상(桑)의 속자(俗字)는 `十'자 세 개 밑에 나무 목(木)을 쓰는데, 이를 파자(破字)하면 `十`자 4개 와 `八`자가 되기 때문이다.


33. - 64세 - 파과(破瓜):
과(瓜)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八`이 되는 데 여자는 8+8해서 16세를 과년이라 한다.
남자는 8×8로 64세를 말하고 벼슬에서 물러날 때를 뜻하는 말이다.


 


출처 : 장인영감
글쓴이 : 영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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