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구름이라는 것은 뭉게뭉게 피어나 한가롭게 떠다니지. 산에도 머물지 않고 하늘에도 매이지 않으며 동서(東西)로 떠다니며 그 자취가 구애받는 곳이 없네. 잠깐 사이에 변화하니 처음과 끝을 헤아릴 수 없지. 뭉게뭉게 성대하게 퍼져나가는 모양은 군자가 세상에 나가는 것 같고 슬며시 걷히는 모습은 고결한 선비가 은둔하는 것 같네. 비를 내려 가뭄을 소생시키니 어짊이요, 왔다가는 머물지 않고 떠날 때는 연연해 않으니 통달한 것이네. 색이 푸르거나 누르거나 붉거나 검은 것은 구름의 본래 색이 아니네. 오직 아무런 색깔 없이 흰 것이 구름의 정상적인 색이지. 덕이 이미 저와 같고 색이 또한 이와 같으니, 만약 구름을 사모하여 배운다면 세상에 나가서는 만물에 은택을 주고 집에 머무를 때는 마음을 비워, 그 하얀 깨끗함을 지키고 그 정상에 거하겠지. 그리하여 아무 소리도 없고 색도 없는 절대 자유의 세계[無何有之鄕]로 들어가면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알 수 없을 것이네. 이와 같다면 옛사람이 얻고자 했던 실제와 가깝지 않겠는가? 夫雲之爲物也, 溶溶焉洩洩焉. 不滯於山, 不繫於天, 飄飄乎東西, 形迹無所拘也. 變化於頃刻, 端倪莫可涯也. 油然而舒, 君子之出也, 斂然而卷, 高人之隱也. 作雨而蘇旱仁也, 來無所着, 去無所戀通也. 色之靑黃赤黑, 非雲之正也. 惟白無華雲之常也. 德旣如彼, 色又如此, 若慕而學之, 岀則澤物, 入則虛心, 守其白處其常, 希希夷夷, 入於無何有之鄕, 不知雲爲我耶, 我爲雲耶. 若是則其不幾於古人所得之實耶.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거사어록(白雲居士語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