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란 무엇인가
洪瑀欽(嶺南大學校敎授)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연말 나는 《月刊書藝文化》의 편집주간인 정태수씨를 만나 書藝와 漢詩의 관계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교환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정씨는 나에게 서예인들이 참고할 수 있는 한시론을 집필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시를 강의하기 위해 영남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한 졸저《漢詩論》의 요지를 간추려 그 청탁에 응하기로 하였다. 모쪼록 서예인들의 작품창작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한시론에 대해 연재를 시작하니 독자제현께서는 참고해 주기 바란다.
Ⅰ.詩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참으로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강구되어 왔고 또 수많은 대답을 시도해 왔다. 그 대답들 가운데서 시의 實狀을 가장 간단하면서도 적절하게 간파했다고 여겨지는 몇 사람의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詩論의 源泉이 된 舜의 정의
舜은 중국 전설시대의 황제인 黃帝․ 顓頊․ 帝嚳․ 요임금[堯帝]를 계승하여 帝位에 올랐던 임금이었다1). 그는 세계문학역사상 최초로 시에 대한 개념을 정의한 바 있다. 그는 「詩는 志를 말한 것이다.」2)라고 하였다. 이 말은 漢文學史上 가장 오래된 論詩 格言이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詩의 실상을 통찰한 내용으로 만고불변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옛날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詩를 論한 문인치고 이 격언을 인용하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 舜의 정의를 보충한 종영(鍾嶸)의 견해
漢文學史上 詩의 品格에 관해 처음으로 論究했던 사람은 위진남북조시대 梁나라의 종영이었다. 그는 漢代以來의 詩를 上 ․ 中 ․ 下 三等級으로 분류하여《詩品》이란 詩評書를 남겼다. 그는 《詩品》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詩의 生成原理에 관한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氣가 事物을 움직이고 사물이 사람을 感動시키기 때문에 性情이 흔들리고 들끓어 춤과 읊조림으로 형상화된다.」3)
여기서 「氣가 事物을 움직인다.」는 것은 시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만물, 즉 對象에 관한 문제이며, 「事物이 사람을 感動시킨다」는 것은 對象과 시인의 交感을 뜻함이며, 「性情이
흔들리고 들끓는다.」는 것은 대상과 자아가 교감함으로써 心像(志)이 이루어짐을 뜻함이며, 「춤과 읊조림으로 形象化한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이루어진 心像(志)을 동작이나 언어로 표현함을 이름이다. 위의 내용을 다시 연결시키면 「詩란 對象과 시인의 交感에서 얻어진 性情(志)을 言語로 표현한 것」 으로 요약할 수 있다.
종영(鍾嶸)의 이 견해는 詩의 개념을 완전무결하게 정의한 名言으로써 위로는 舜의 詩論을 보완한 동시에 아래로는 唐 ․ 宋 ․ 明 ․ 淸代를 거치면서 구체화된「情景交融論」의 근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3) 性理學자 주희(朱熹)의 정의
朱熹(1130-1200)는 南宋의 학자로서 性理學을 集大成한 동시에 문학에 대해서도 투철명 료(透徹明瞭)한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그는 《詩經》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詩集傳》을 편술하면서 지난날 전해오던 《毛詩》의 序文을 後人의 위작(僞作)으로 단정하고 새로 《詩集傳》의 序文을 쓸 정도의 詩論家였다. 그는 그 서문에서 「詩는 어떻게 해서 지어지는가?」, 「詩란 무엇인가?」 등의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고요함[靜]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性인데 그 性이 物에 감동되는 것은 性에서 일어난 欲[情] 때문이다. 대개 性에서 欲[情]이 일어나게 되면 생각[思]이 없을 수 없고, 말[言]이 있은 뒤에 말[言]으로 다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한숨과 탄식으로 나타내게 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자연스러운 음향(音響)과 절주(節奏)가 생겨나 능히 억제할 수 없음이 있게 된다. 이것이 詩가 지어지는 까닭이다.」1)
는 「詩는 어떻게 해서 지어지는가?」(詩何爲而作也)에 대한 自答이며, 「詩는 詩人이 마음으로 事物을 感覺하여 언어로 形象化한 것」2)은 「詩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이 두 가지 해답은 과정과 결과의 관계에 놓여지는 내용으로서 後者는 前者를 요약해 놓은데 불과한 것이다. 이 주희(朱熹)의 시에 대한 개념(槪念) 정의(定義)는 앞에서 소개한 종영(鍾嶸)의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
이상 우리는 舜 ․ 鍾嶸 ․ 朱熹 세 사람이 시의 개념에 대하여 정의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舜은 詩人의 「志」(心像)에 중심을 둔 불완전한 정의를 내렸던 것이며, 종영과 주희는 詩의 五大生成要件을 기본으로 한 「自我(詩人)와 對象(事物)이 서로 어울림(交感)에서 이루어진 心像(志)을 言語(韻語)로 形象化(表現)한 것」이란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鍾 ․ 朱 兩氏가 내린 시의 개념 정의를 完整한 것으로 믿고 그 내용의 줄거리와 갈래를 따라 이 글을 전개해 나가기로 하겠다.
2.「漢詩」란 무엇인가?
한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시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는 동시에 한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1) 「漢詩」는 中國歷代의 詩를 總稱하는 말이다.
「漢」은 西紀前 206年에 건국되어 西紀後 219年에 멸망한 中國歷史上에 존재했던 한 王朝의 명칭이다. 漢 以前에는 堯帝가 다스린 唐, 舜이 다스린 虞를 비롯하여 夏․ 殷․ 周․ 秦이 있었으며, 漢 以後에는 魏晉南北朝 ․ 隋 ․ 唐 ․ 宋 ․ 元 ․ 明 ․ 淸 ․ 中華民國으로 이어져 왔다. 그런데 이 漢은 前代文化를 계승, 정비, 발전시킴으로 말미암아 중국문화의 기반을 완성시킨 왕조였으며, 漢 以後의 歷代王朝들은 漢이 이룩해 둔 문화를 바탕으로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학술, 예술 등 모든 제도를 운영해 왔다. 따라서 뒷날 사람들은 중국 역대의 문화를 총칭하여 「漢文化」라 일컫게 되었다.
「漢文學」이니 「漢詩」니 하는 말들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한시는 漢代 만의 詩가 아니라 한대 이전의 시와 이후의 시를 포함한 中國歷代의 詩를 總稱함이다.
周代의 《詩經》과 《楚辭》, 漢代의 樂府詩 ․ 賦 ․ 五言古詩 ․ 七言古詩, 唐代의 五七言 近體詩, 宋代의 詞, 元代의 散曲 等을 「漢詩」란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흔희 五七言 古詩나 近體詩만을 한시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2) 「漢詩」는 漢字와 漢語와 漢詩 形式을 빌어 표현한 詩다.
비록 中國에서 中國人이 쓴 詩라 하더라도 漢字와 漢語와 漢詩形式을 응용하여 쓴 詩가 아니면 「漢詩」라 할 수 없다. 元代의 蒙古語文으로 쓰여진 중국인의 시, 淸代의 滿洲語로 쓰여진 중국인의 시가 있다면 그러한 시는 한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를 빌어서 표현한 詩라 하더라도 漢語文法에 맞는 漢語와 漢詩形式을 갖추어 쓰지 아니한 시는 한시가 아니다. 新羅의 鄕歌나 高麗의 景幾體歌 등이 한시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함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漢字와 漢語와 漢詩 形式을 빌려 쓴 詩는 비록 中國人이 쓴 詩가 아니라도 「漢詩」일 수가 있다.
山僧貪月色, 산중의 스님이 달빛을 탐내어,
幷汲一甁中. 샘에 비친 달빛을 병 속에 퍼 담았네.
到寺方應覺, 절에 와서 바야흐로 깨닫고 보니,
甁空月亦空. 병도 비고 달 또한 간 데 없다네.
예컨대 위의 시는 高麗文人 白雲 李奎報(1168〜1241)의 詩 <詠井中月>이며,
呼童烹茗一甌濃, 아이 불러 차 끓이니 한 항아리 짙은 향기,
睡起園林午後風. 잠깨어 일어남에 정원 숲엔 오후 바람.
知是落花前夜雨, 알겠다. 떨어진 꽃 지난 밤 비로 인해,
小溝添水沒鳧翁. 작은 시냇물 불음에 오리들 떠다니네.
이 시는 日本 鎌倉室時代의 僧侶文人 雪村友梅(1281〜1346)의 詩 <和友人翁字>다. 이들은 비록 漢人(中國人)이 아니라도 漢字 ․ 漢語 ․ 漢詩形式을 借用하여 이와 같이 훌륭한 漢詩를 썼던 것이다.
따라서 「漢詩」란 단순히 「漢代의 詩」, 「漢人의 詩」, 「漢字로 表現한 詩」가 아니라 「漢字와 漢語와 漢詩形式을 사용하여 지은 詩」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漢人(中國人)이 아닌 어떤 외국인도 한시를 지을 수 있고, 漢詩人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漢詩에 담겨 있는 사상이나 감정이 中國的인 것인가 그렇지 아니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3. 《漢詩論》의 敍述方法
1) 漢詩論의 類型
우리는 누구나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는 漢詩論의 자료들이 전해오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漢詩資料들은 편의상 格言類, 詩話類, 論著類로 구분할 수가 있다.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⑴ 格言類의 詩論
「詩는 뜻을 말한 것」(詩, 言志)1)
「詩는 志(뜻)가 指向하는 바이다. 마음에 있을 때는 志지만 말로 나타내면 詩가 된다.」(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2)
「《詩經》에 실려 있는 三百篇의 詩를 한마디 말로 요약하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음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3)
등은 「格言類」에 해당하는 詩論의 例들이다.
이 格言類의 詩論들 가운데는 詩의 本質을 예리하게 설파한 명언들이 많다. 그르나, 이러한 詩論들은 論議의 原因과 根據를 제시하지 아니한 包括的이며 直觀的이며 거두절미(去頭截尾)한 설파이므로 그 이면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란 여간 어렵지 아니하다.
그것들은 흡사 끝없는 苦行과 修道를 통해 道를 깨달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그 제자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佛理를 깨우쳐 주기 위해 제시했던 한 송이의 연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 연꽃은 석가모니불이 체험했던 전체적인 佛理와 佛論을 암시하고 있는 꽃이었다. 이미 道를 터득한 석가모니의 입장에서 보면 佛道를 가장 간단하고 정확하고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는 이 한 송이의 연꽃을 능가할 그 무엇이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연꽃을 바라본 대부분의 佛弟子들은 그것이 도대체 불리의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모두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석가모니불만 우러러 보았다고 한다. 한 송이의 연꽃을 통해서 그 오묘난측(奧妙難測)한 佛道를 일시에 깨닫는 데는 매우 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詩, 言志」 등을 통해서 詩의 전체적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한 송이의 연꽃을 통해서 불리를 깨닫는 것만큼이나 힘이 드는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詩를 가르치면서도 詩를 몽롱한 존재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는 詩論이다.
⑵ 詩話類의 詩論
「詩話」란 詩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수필식으로 쓴 詩論이다. 宋代 歐陽修의《六一詩
話》는 詩話의 효시다. 作家 ․ 主題 ․ 風格 ․ 作法 ․ 逸話 ․ 聲律…… 등등 詩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면 그 무엇이라도 詩話의 대상이 된다.
「대개 詩를 지음에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법이니 책과 관계가 있는 것만이 아니며, 詩에는 특별한 情趣가 있는 법이니 理와 관계가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지 아니하고 理를 궁구하지 아니하면 그 지극함에 이르지 못한다. 이른바 理의 길을 거치지 아니하고 說法에 빠지지 아니한 詩가 上品의 詩다. 詩란 情性을 吟詠한 것으로서 盛唐時代 詩人들은 오로지 興趣를 노래함에 있었으니 羚羊이 나무에 뿔을 걸어 잠을 잘 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음과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그 오묘함은 透徹玲瓏하여 무엇으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공중의 소리와 같기도 하고, 형상 속의 색채와도 같고, 물속의 달과 같기도 하고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도 같아서 말은 다함이 있으나 뜻은 끝나지 아니하는 것이다.」1)
이것은 詩의 情趣를 자세하게 설명한 내용이며,
「晁貫之란 사람이 杜與를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詩를 남겨 놓고 돌아왔다.
草堂不見浣溪老, 草堂을 찾았으나 浣溪 늙은이 만나지 못해,
折得靑松渡水歸. 푸른 솔가지 꺾어 물을 건너 돌아왔네.」
라는 <草堂>詩가 지어진 유래와 그 詩를 간단히 적어둔 拾遺錄이다.
이와 같이 詩話는 詩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거나 다 言及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詩論 전체에 대한 구조적인 윤곽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詩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고서도 그 이야기들이 놓여질 자리를 매겨 주지 못하고 있음이 흠이다. 흡사 끈 떨어진 구슬이나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과도 같이 혼잡하고 산만한 詩論들이다. 詩論을 얽을 수 있는 재료이긴 하나 아직 구체적인 체계를 갖춘 詩論은 아니다.
⑶ 論著類의 詩論
格言類 詩論과 詩話類 詩論에 이어서 나온 것이 論著類詩論이다. 논저류의 시론은 근래의 詩論家들이 통일된 체계와 일관된 논리에 입각하여 쓴 시론이다.
《漢語詩律學》2), 《詩詞曲格律論》3), 《塡詞名解》4), 《中國詩的神韻格調及性靈說》5), 《詩言志辨》6), 《支那詩論史》7), 《中國韻文通論》8) 등은 그러한 例에 속한다.
2) 漢詩論의 對象
漢詩論은 廣義的인 漢詩論과 狹義的인 漢詩論으로 구분될 수 있다. 광의적인 한시론은 한시에 관한 문제이기만 하면 그 무엇이든지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한시의 類形, 漢詩의 歷史, 漢詩의 鑑賞 등도 거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협의적인 한시론은 주로 한시의 生成原理를 논의하는 시론이다. 그러므로 그 논의의 대상은 몇 가지 갈래로 한정되어질 수가 있다.
「詩란 自我(詩人)와 對象(事物)이 서로 엇갈림(交錯)에서 이루어진 心像(覺悟)을 詠語(韻語)로 形象化(表現)한 것」1)
은 협의적인 詩論이 무엇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의 단서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첫째, 自我(詩人)에 대한 문제; 둘째, 對象(事物)에 대한 문제; 셋째, 自我와 對象의 엇갈림(交感)에 대한 문제; 넷째, 心像(志)에 대한 문제; 다섯째, 形象化(表現)에 대한 문제는 협의의 한시론이 추구할 다섯 가지 논의의 대상이다.
洪瑀欽(嶺南大學校敎授)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연말 나는 《月刊書藝文化》의 편집주간인 정태수씨를 만나 書藝와 漢詩의 관계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교환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정씨는 나에게 서예인들이 참고할 수 있는 한시론을 집필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시를 강의하기 위해 영남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한 졸저《漢詩論》의 요지를 간추려 그 청탁에 응하기로 하였다. 모쪼록 서예인들의 작품창작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한시론에 대해 연재를 시작하니 독자제현께서는 참고해 주기 바란다.
Ⅰ.詩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참으로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강구되어 왔고 또 수많은 대답을 시도해 왔다. 그 대답들 가운데서 시의 實狀을 가장 간단하면서도 적절하게 간파했다고 여겨지는 몇 사람의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詩論의 源泉이 된 舜의 정의
舜은 중국 전설시대의 황제인 黃帝․ 顓頊․ 帝嚳․ 요임금[堯帝]를 계승하여 帝位에 올랐던 임금이었다1). 그는 세계문학역사상 최초로 시에 대한 개념을 정의한 바 있다. 그는 「詩는 志를 말한 것이다.」2)라고 하였다. 이 말은 漢文學史上 가장 오래된 論詩 格言이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詩의 실상을 통찰한 내용으로 만고불변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옛날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詩를 論한 문인치고 이 격언을 인용하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 舜의 정의를 보충한 종영(鍾嶸)의 견해
漢文學史上 詩의 品格에 관해 처음으로 論究했던 사람은 위진남북조시대 梁나라의 종영이었다. 그는 漢代以來의 詩를 上 ․ 中 ․ 下 三等級으로 분류하여《詩品》이란 詩評書를 남겼다. 그는 《詩品》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詩의 生成原理에 관한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氣가 事物을 움직이고 사물이 사람을 感動시키기 때문에 性情이 흔들리고 들끓어 춤과 읊조림으로 형상화된다.」3)
여기서 「氣가 事物을 움직인다.」는 것은 시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만물, 즉 對象에 관한 문제이며, 「事物이 사람을 感動시킨다」는 것은 對象과 시인의 交感을 뜻함이며, 「性情이
흔들리고 들끓는다.」는 것은 대상과 자아가 교감함으로써 心像(志)이 이루어짐을 뜻함이며, 「춤과 읊조림으로 形象化한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이루어진 心像(志)을 동작이나 언어로 표현함을 이름이다. 위의 내용을 다시 연결시키면 「詩란 對象과 시인의 交感에서 얻어진 性情(志)을 言語로 표현한 것」 으로 요약할 수 있다.
종영(鍾嶸)의 이 견해는 詩의 개념을 완전무결하게 정의한 名言으로써 위로는 舜의 詩論을 보완한 동시에 아래로는 唐 ․ 宋 ․ 明 ․ 淸代를 거치면서 구체화된「情景交融論」의 근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3) 性理學자 주희(朱熹)의 정의
朱熹(1130-1200)는 南宋의 학자로서 性理學을 集大成한 동시에 문학에 대해서도 투철명 료(透徹明瞭)한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그는 《詩經》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詩集傳》을 편술하면서 지난날 전해오던 《毛詩》의 序文을 後人의 위작(僞作)으로 단정하고 새로 《詩集傳》의 序文을 쓸 정도의 詩論家였다. 그는 그 서문에서 「詩는 어떻게 해서 지어지는가?」, 「詩란 무엇인가?」 등의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고요함[靜]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性인데 그 性이 物에 감동되는 것은 性에서 일어난 欲[情] 때문이다. 대개 性에서 欲[情]이 일어나게 되면 생각[思]이 없을 수 없고, 말[言]이 있은 뒤에 말[言]으로 다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한숨과 탄식으로 나타내게 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자연스러운 음향(音響)과 절주(節奏)가 생겨나 능히 억제할 수 없음이 있게 된다. 이것이 詩가 지어지는 까닭이다.」1)
는 「詩는 어떻게 해서 지어지는가?」(詩何爲而作也)에 대한 自答이며, 「詩는 詩人이 마음으로 事物을 感覺하여 언어로 形象化한 것」2)은 「詩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이 두 가지 해답은 과정과 결과의 관계에 놓여지는 내용으로서 後者는 前者를 요약해 놓은데 불과한 것이다. 이 주희(朱熹)의 시에 대한 개념(槪念) 정의(定義)는 앞에서 소개한 종영(鍾嶸)의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
이상 우리는 舜 ․ 鍾嶸 ․ 朱熹 세 사람이 시의 개념에 대하여 정의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舜은 詩人의 「志」(心像)에 중심을 둔 불완전한 정의를 내렸던 것이며, 종영과 주희는 詩의 五大生成要件을 기본으로 한 「自我(詩人)와 對象(事物)이 서로 어울림(交感)에서 이루어진 心像(志)을 言語(韻語)로 形象化(表現)한 것」이란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鍾 ․ 朱 兩氏가 내린 시의 개념 정의를 完整한 것으로 믿고 그 내용의 줄거리와 갈래를 따라 이 글을 전개해 나가기로 하겠다.
2.「漢詩」란 무엇인가?
한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시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는 동시에 한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1) 「漢詩」는 中國歷代의 詩를 總稱하는 말이다.
「漢」은 西紀前 206年에 건국되어 西紀後 219年에 멸망한 中國歷史上에 존재했던 한 王朝의 명칭이다. 漢 以前에는 堯帝가 다스린 唐, 舜이 다스린 虞를 비롯하여 夏․ 殷․ 周․ 秦이 있었으며, 漢 以後에는 魏晉南北朝 ․ 隋 ․ 唐 ․ 宋 ․ 元 ․ 明 ․ 淸 ․ 中華民國으로 이어져 왔다. 그런데 이 漢은 前代文化를 계승, 정비, 발전시킴으로 말미암아 중국문화의 기반을 완성시킨 왕조였으며, 漢 以後의 歷代王朝들은 漢이 이룩해 둔 문화를 바탕으로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학술, 예술 등 모든 제도를 운영해 왔다. 따라서 뒷날 사람들은 중국 역대의 문화를 총칭하여 「漢文化」라 일컫게 되었다.
「漢文學」이니 「漢詩」니 하는 말들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한시는 漢代 만의 詩가 아니라 한대 이전의 시와 이후의 시를 포함한 中國歷代의 詩를 總稱함이다.
周代의 《詩經》과 《楚辭》, 漢代의 樂府詩 ․ 賦 ․ 五言古詩 ․ 七言古詩, 唐代의 五七言 近體詩, 宋代의 詞, 元代의 散曲 等을 「漢詩」란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흔희 五七言 古詩나 近體詩만을 한시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2) 「漢詩」는 漢字와 漢語와 漢詩 形式을 빌어 표현한 詩다.
비록 中國에서 中國人이 쓴 詩라 하더라도 漢字와 漢語와 漢詩形式을 응용하여 쓴 詩가 아니면 「漢詩」라 할 수 없다. 元代의 蒙古語文으로 쓰여진 중국인의 시, 淸代의 滿洲語로 쓰여진 중국인의 시가 있다면 그러한 시는 한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를 빌어서 표현한 詩라 하더라도 漢語文法에 맞는 漢語와 漢詩形式을 갖추어 쓰지 아니한 시는 한시가 아니다. 新羅의 鄕歌나 高麗의 景幾體歌 등이 한시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함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漢字와 漢語와 漢詩 形式을 빌려 쓴 詩는 비록 中國人이 쓴 詩가 아니라도 「漢詩」일 수가 있다.
山僧貪月色, 산중의 스님이 달빛을 탐내어,
幷汲一甁中. 샘에 비친 달빛을 병 속에 퍼 담았네.
到寺方應覺, 절에 와서 바야흐로 깨닫고 보니,
甁空月亦空. 병도 비고 달 또한 간 데 없다네.
예컨대 위의 시는 高麗文人 白雲 李奎報(1168〜1241)의 詩 <詠井中月>이며,
呼童烹茗一甌濃, 아이 불러 차 끓이니 한 항아리 짙은 향기,
睡起園林午後風. 잠깨어 일어남에 정원 숲엔 오후 바람.
知是落花前夜雨, 알겠다. 떨어진 꽃 지난 밤 비로 인해,
小溝添水沒鳧翁. 작은 시냇물 불음에 오리들 떠다니네.
이 시는 日本 鎌倉室時代의 僧侶文人 雪村友梅(1281〜1346)의 詩 <和友人翁字>다. 이들은 비록 漢人(中國人)이 아니라도 漢字 ․ 漢語 ․ 漢詩形式을 借用하여 이와 같이 훌륭한 漢詩를 썼던 것이다.
따라서 「漢詩」란 단순히 「漢代의 詩」, 「漢人의 詩」, 「漢字로 表現한 詩」가 아니라 「漢字와 漢語와 漢詩形式을 사용하여 지은 詩」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漢人(中國人)이 아닌 어떤 외국인도 한시를 지을 수 있고, 漢詩人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漢詩에 담겨 있는 사상이나 감정이 中國的인 것인가 그렇지 아니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3. 《漢詩論》의 敍述方法
1) 漢詩論의 類型
우리는 누구나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는 漢詩論의 자료들이 전해오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漢詩資料들은 편의상 格言類, 詩話類, 論著類로 구분할 수가 있다.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⑴ 格言類의 詩論
「詩는 뜻을 말한 것」(詩, 言志)1)
「詩는 志(뜻)가 指向하는 바이다. 마음에 있을 때는 志지만 말로 나타내면 詩가 된다.」(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2)
「《詩經》에 실려 있는 三百篇의 詩를 한마디 말로 요약하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음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3)
등은 「格言類」에 해당하는 詩論의 例들이다.
이 格言類의 詩論들 가운데는 詩의 本質을 예리하게 설파한 명언들이 많다. 그르나, 이러한 詩論들은 論議의 原因과 根據를 제시하지 아니한 包括的이며 直觀的이며 거두절미(去頭截尾)한 설파이므로 그 이면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란 여간 어렵지 아니하다.
그것들은 흡사 끝없는 苦行과 修道를 통해 道를 깨달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그 제자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佛理를 깨우쳐 주기 위해 제시했던 한 송이의 연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 연꽃은 석가모니불이 체험했던 전체적인 佛理와 佛論을 암시하고 있는 꽃이었다. 이미 道를 터득한 석가모니의 입장에서 보면 佛道를 가장 간단하고 정확하고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는 이 한 송이의 연꽃을 능가할 그 무엇이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연꽃을 바라본 대부분의 佛弟子들은 그것이 도대체 불리의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모두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석가모니불만 우러러 보았다고 한다. 한 송이의 연꽃을 통해서 그 오묘난측(奧妙難測)한 佛道를 일시에 깨닫는 데는 매우 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詩, 言志」 등을 통해서 詩의 전체적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한 송이의 연꽃을 통해서 불리를 깨닫는 것만큼이나 힘이 드는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詩를 가르치면서도 詩를 몽롱한 존재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는 詩論이다.
⑵ 詩話類의 詩論
「詩話」란 詩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수필식으로 쓴 詩論이다. 宋代 歐陽修의《六一詩
話》는 詩話의 효시다. 作家 ․ 主題 ․ 風格 ․ 作法 ․ 逸話 ․ 聲律…… 등등 詩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면 그 무엇이라도 詩話의 대상이 된다.
「대개 詩를 지음에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법이니 책과 관계가 있는 것만이 아니며, 詩에는 특별한 情趣가 있는 법이니 理와 관계가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지 아니하고 理를 궁구하지 아니하면 그 지극함에 이르지 못한다. 이른바 理의 길을 거치지 아니하고 說法에 빠지지 아니한 詩가 上品의 詩다. 詩란 情性을 吟詠한 것으로서 盛唐時代 詩人들은 오로지 興趣를 노래함에 있었으니 羚羊이 나무에 뿔을 걸어 잠을 잘 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음과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그 오묘함은 透徹玲瓏하여 무엇으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공중의 소리와 같기도 하고, 형상 속의 색채와도 같고, 물속의 달과 같기도 하고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도 같아서 말은 다함이 있으나 뜻은 끝나지 아니하는 것이다.」1)
이것은 詩의 情趣를 자세하게 설명한 내용이며,
「晁貫之란 사람이 杜與를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詩를 남겨 놓고 돌아왔다.
草堂不見浣溪老, 草堂을 찾았으나 浣溪 늙은이 만나지 못해,
折得靑松渡水歸. 푸른 솔가지 꺾어 물을 건너 돌아왔네.」
라는 <草堂>詩가 지어진 유래와 그 詩를 간단히 적어둔 拾遺錄이다.
이와 같이 詩話는 詩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거나 다 言及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詩論 전체에 대한 구조적인 윤곽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詩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고서도 그 이야기들이 놓여질 자리를 매겨 주지 못하고 있음이 흠이다. 흡사 끈 떨어진 구슬이나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과도 같이 혼잡하고 산만한 詩論들이다. 詩論을 얽을 수 있는 재료이긴 하나 아직 구체적인 체계를 갖춘 詩論은 아니다.
⑶ 論著類의 詩論
格言類 詩論과 詩話類 詩論에 이어서 나온 것이 論著類詩論이다. 논저류의 시론은 근래의 詩論家들이 통일된 체계와 일관된 논리에 입각하여 쓴 시론이다.
《漢語詩律學》2), 《詩詞曲格律論》3), 《塡詞名解》4), 《中國詩的神韻格調及性靈說》5), 《詩言志辨》6), 《支那詩論史》7), 《中國韻文通論》8) 등은 그러한 例에 속한다.
2) 漢詩論의 對象
漢詩論은 廣義的인 漢詩論과 狹義的인 漢詩論으로 구분될 수 있다. 광의적인 한시론은 한시에 관한 문제이기만 하면 그 무엇이든지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한시의 類形, 漢詩의 歷史, 漢詩의 鑑賞 등도 거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협의적인 한시론은 주로 한시의 生成原理를 논의하는 시론이다. 그러므로 그 논의의 대상은 몇 가지 갈래로 한정되어질 수가 있다.
「詩란 自我(詩人)와 對象(事物)이 서로 엇갈림(交錯)에서 이루어진 心像(覺悟)을 詠語(韻語)로 形象化(表現)한 것」1)
은 협의적인 詩論이 무엇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의 단서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첫째, 自我(詩人)에 대한 문제; 둘째, 對象(事物)에 대한 문제; 셋째, 自我와 對象의 엇갈림(交感)에 대한 문제; 넷째, 心像(志)에 대한 문제; 다섯째, 形象化(表現)에 대한 문제는 협의의 한시론이 추구할 다섯 가지 논의의 대상이다.
출처 : ♡ : 시.서.화가 있는 박병금의 곳간 : ♡
글쓴이 : 참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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