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는 평측이 동일한 두 글자가 한 박자가 되며, 이를 서로 엇갈려 배치함으로써 시의 리듬감을 낳습니다.

즉, 平平으로 시작하였으면, 그 다음에는 仄仄이 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다시 平平이 옵니다.

이제 5언 절구를 예로 들어봅시다.

平平/仄仄/平 (入韻式)

이것이 한 句를 형성합니다. 5번째 글자는 韻을 맞춘 것인데, 5언절구의 경우 첫 구는 운을 맞춰도 되고, 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운을 맞출 경우에는 반드시 평성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운을 맞추지 않는다면 仄聲이 되어야 합니다. 5번째 글자는 한 글자에 지나지 않지만 다음 句로 넘어가기 위한 休止符가 되기 때문에 약간 멈춰서 호흡을 정돈하므로 역시 한 박자를 이루는 것입니다.

첫 구에 운을 맞추는 것을 入韻式이라 하며(또는 引韻이라 하기도 함) 맞추지 않는 것을 不入韻式이라 합니다. 만약 첫 구의 마지막 글자가 仄聲이라면 이는 不入韻式으로 짓겠다는 표시입니다. 운을 맞추려면 반드시 평성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측성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3번째 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3번째 句에서는 원래 운을 맞추지 않으므로 측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구에 만약 운을 맞추지 않고 측성을 쓴다면, 그 3번째 글자는 그와 상대되는 평성이어야 합니다.

平平/平仄/仄 (不入韻式)

즉, 위와 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두 번째 글자가 평성이면 平起式이라 하고, 측성이면 仄起式이라고 합니다. 왜 하필 두번째 글자로 이를 구분하는가 하는 것은 뒤에서 설명.

위에서 예를 든 것은 두번째 글자가 평성이므로 평기식입니다. 그럼 측기식의 예를 들어보면,

仄仄/平平/仄 (不入韻式)

이와 같이 됩니다. 그럼 入韻式은 어떤 것인가 하면,

仄仄/仄平/平 (入韻式)

이와 같이 됩니다. 3번째 글자와 5번째 글자의 평측은 달라야 하기 때문에, 3번째 글자가의 평측이 바뀌게 됩니다.

5언절구는 측기식이 正格이며, 不入韻式이 대다수입니다. 여기서 正格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다만, 古人들이 평기식보다는 측기식을 많이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두번째 句로 넘어갑시다. 두번째 句에서는 평측이 뒤바뀝니다.

(1) 평평/평측/측 (平起式/不入韻式)
(2) 측측/측평/평

이와 같이 됩니다. (1)의 3번째 글자가 평성인 것과 (2)의 3번째 글자가 측성이 된 것은 5번째 글자의 평측과 달라야 하기 때문에 바뀐 것입니다.

(1) 평평/측측/평 (平起式/入韻式)
(2) 측측/측평/평

仄起式은 혼자 해보세요. 외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평측만 2글자씩 번갈아 배치하면 됩니다. 그리고 3번째와 5번째 글자는 평측이 달라야 합니다.

3번째 구는 2번째 구와 粘(점)을 이루어야 합니다. 즉, 짝수구의 평측이 같아야 합니다.

(1) 평평/측측/평 (平起式/入韻式)
(2) 측측/측평/평
(3) 측측/평평/측

즉, (2)와 (3)의 짝수구의 평측이 동일해야 합니다.

(4)는 당연히 아래와 같이 되어야겠죠.

(4) 평평/측측/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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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정격의 운율을 다룬 것이고, 이를 다 지키기는 어렵기 때문에 몇가지 허용사항을 두고 있습니다.

■ 一三五不論, 二四六分明. ■ (오언시는 1.3/ 2.4만 해당)

즉, 1.3.5의 평측은 논하지 않고, 2.4.6의 평측만 분명히 한다는 뜻인데, 2.4.6은 의미가 분절되는 지점이고 평측이 바뀌는 지점이기 때문에 반드시 평측을 따라야 합니다. 5언시의 경우에는 1.3은 평측을 따지지 않고, 2.4만 분명히 하고, 5번째 글자는 운을 맞추는 자리이기 때문에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韻은 거의 대부분은 평성으로만 맞춥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도 韻字는 평성을 기준으로 하여 논한 것입니다. 측성을 韻字로 할 수도 있으나, 이는 거의 드문 경우입니다.

위와 같은 허용사항을 두되, 다음과 같은 제약조건이 있습니다.

■孤平不許■

5언시의 2번째 글자, 7언시의 4번째 글자가 평성인 경우 그 좌우의 글자가 측성으로 둘려 싸이면 안됩니다.

(1) 측평측측평 (평기식/입운식)

위에서 1번째 글자는 원래 평성이어야 하나, 1.3.5불론에 따라 논하지 않고 측성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때 2번째 글자가 평성인데, 그 좌우의 글자가 모두 측성으로 둘려져 있어 평성이 외롭게 되버립니다. 이를 孤平이라 하는데, 이는 피해야 합니다. 즉, 1번째 글자를 평성으로 하던가, 3번째 글자를 평성으로 하던가 해서, 고평을 피해야 합니다. 이때는 3번째 글자와 5번째 글자의 평측이 같아도 상관없습니다. 위에서는 정격을 논한 것이고, 여기서는 변칙을 논하는 것이므로 별개의 것입니다.

■ 下三平, 下三仄 ■

이것 역시 1.3.5불론을 적용할 때 피해야 할 사항입니다. 5언시나 7언시의 마지막 세글자가 연달아 평성이거나 연달아 측성이면 안됩니다. 운율이 단조로와지기 때문입니다.

(1) 평평측측측 (평기식/불입운식)

아래 세글자가 연달아 측성이므로 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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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에 설명한 정격에 따라 시를 지으면 고평이니, 하삼평이니 이를 고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평과 하삼평 등의 제약조건은 단지 1.3.5불론/2.4.6분명이라는 허용사항을 적용할 때에만 적용되는 제약조건입니다.

7언시는 5언시를 연장해서 생각하면 됩니다.

-청련거사-

論詩(시를 논하네)

 / 이규보 

 

             論   詩

作詩尤所難(작시우소난) 시 지음에 특히 어려운 것은
語意得雙美(어의득쌍미) 말과 뜻이 아울러 아름다움을 얻는 것.
含蓄意苟深(함축의구심) 머금어 쌓인 뜻이 진실로 깊어야
咀嚼味愈粹(저작미유수) 씹을 수록 그 맛이 더욱 순수하나니.
意立語不圓(의립어불원) 뜻만 서고 말이 원할치 못하면
澁莫行其意(삽막행기의) 껄끄러워 그 뜻이 전달되지 못한다.
就中所可後(취중소가후) 그 중에서도 나중으로 할 바의 것은
彫刻華艶耳(조각화염이) 아로새겨 아름답게 꾸미는 것뿐.
華艶豈必排(화염기필배) 아름다움을 어찌 반드시 배척하랴만
頗亦費精思(파역비정사) 또한 자못 곰곰이 생각해볼 일.
攬華遺其實(람화유기실) 꽃만 따고 그 열매를 버리게 되면
所以失詩眞(소이실시진) 시의 참뜻을 잃게 되느니.
爾來作者輩(이래작자배) 지금껏 시를 쓰는 무리들은
不思風雅義(불사풍아의) 풍아의 참뜻은 생각지 않고,
外飾假丹靑(외식가단청) 밖으로 빌려서 단청을 꾸며
求中一時耆(구중일시기) 한때의 기호에 맞기만을 구하는구나.
意本得於天(의본득어천) 뜻은 본시 하늘에서 얻는 것이라
難可率爾致(난가솔이치) 갑작스레 이루기는 어려운 법.
自揣得之難(자췌득지난) 스스로 헤아려선 얻기 어려워
因之事綺靡(인지사기미) 인하여 화려함만 일삼는구나.
以此眩諸人(이차현제인) 이로써 여러 사람을 현혹하여서
欲掩意所匱(욕엄의소궤) 뜻의 궁핍함을 가리려 한다.
此俗寢已成(차속침이성) 이런 버릇이 이미 습성이 되어
斯文垂墮地(사문수타지) 문학의 정신은 땅에 떨어졌도다.
李杜不復生(이두불복생) 이백과 두보는 다시 나오지 않으니
誰與辨眞僞(수여변진위) 뉘와 더불어 진짜와 가짜를 가려낼겐가.
我欲築頹基(아욕축퇴기) 내 무너진 터를 쌓고자 해도
無人助一簣(무인조일궤) 한 삼태기 흙도 돕는 이 없네.
誦詩三百篇(송시삼백편) 시 삼백편을 외운다 한들
何處補諷刺(하처보풍자) 어디에다 풍자함을 보탠단 말인가.
自行亦云可(자행역운가) 홀로 걸어감도 또한 괜찮겠지만
孤唱人必戱(고창인필희) 외로운 노래를 사람들은 비웃겠지.

위의 시는 고려시대의 문신이며 문학가였던 백운거사 이규보의 시입니다. 보시다시피 시를 시로 논한 작품으로 당시 시인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거의 1000년에 가까운 지난 시절의 통박이지만 여전히 그 의미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시는 한양대학교의 정민교수님의 저서 [한시미학산책-도서출판 솔]에서 발췌하였으며, 번역 또한 정민교수님의 역입니다.
 도산 달밤에 핀 매화(陶山月夜詠梅)


                                             퇴계(退溪) 이황(李滉)


                       獨倚山窓夜色寒  /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기운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  매화나무 가지 끝에 둥근 달이 떠 오르네

                   不須更喚微風至  /  구태여 부르지 않아도 산들바람도 이니

                   自有淸香滿院間  /  맑은 향기 저절로 뜨락에 가득 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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