尙干曁候 反致
垂問 愧惧交幷 以審
公有掃煩之興 不勝缺然 非徒校正
重事 倚諸博洽群情 所屬有重
於此者 幸十分商量 以待秋風
得如鄙意 如此不得不告 伏惟
照亮 適遠行初還 舊病重發 未
得細細修復 姑謹數日 就敍一一
謹上復 陽元
오히려 안부를 묻는 글이 도리어 오니 부끄러움과 송구스러움이 아울러 교차하여 살펴보니 공께서 번거러운 흥을(잔치인듯) 쓸었다고 하니 서운함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교정하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의 정을 널리 모았을 것입니다.
부탁하신 일의 중함이 이러하니 바라건데 십분 헤아리시어 가을이 되기를 기다려야. 저의 뜻을 얻을 수 있을듯하여 이와 같이 부득이 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데 살펴주시고 밝혀 주십시오.
마침 먼 곳을 돌아오다 보니 옛 병이 다시 발병하여 세세하게 소식 아뢰는 겨를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우선 수일 내로 삼가 나아가 하나하나 아뢰겠습니다.
삼가 답장 올립니다.
양원(陽元) 1526∼1592
자는 백춘(伯春), 호는 노저(鷺渚) · 남파(南坡) · 쌍부(雙阜). 선성군의 현손이고 이원군(利原君) 학정(鶴丁)의 아들이다.
1555년(명종 10) 생원 · 진사 양시에 입격하였으며 이듬해 알성문과에 등제했다. 한림 · 남상 · 호당 · 전랑 · 사인 · 검상 등을 역임하고 1563년(명종 18) 선계변무(璿系辨誣) 차 서장관으로 연경에 파견되었다. 이 때 상사(上使) 김주(金澍 : 1512∼1563)가 병사하자 공이 대신하여 외교 절충한 결과 명나라 황제를 감동시켜 수백년간 묵었던 국가의 숙원인 선원세계(璿源世系)를 개정할 것을 수락받고 문서를 받아 돌아왔다. 이에 명종대왕은 대단히 기뻐하며 통정대부로 특별히 승진토록 명하였다. 이조참의 부제학으로 누진되었다.
후에 경상 · 전라 · 평안도 관찰사 · 송경유수 ·삼조판서 · 대사헌을 역임하고 1589년(선조 22)에는 홍문관 대제학 · 예문관 대제학에 임명되어 문형(文衡 : 大提學)을 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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