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
기원전 14세기(지금으로부터 약3500년)전에서 기원전 11세기 상대 후기에 통용되던 글자체이다. 복사, 은허문자, 계문, 은계, 서계라고도 한다. 19세기 말 하남성 안양 소둔촌의 농지에서 출토되었다. 왕의영, 맹정생, 왕양, 유악, 나진옥 등의 학자들을 통해 연구되었다. 현재까지 출토된 갑골문은 약 15만 편인데 그 중 단자의 수는 5000자 정도이나 해석된 것은 1500자 정도이다. 내용은 복사와 비복사로 분류하며 특색은 그림의 요소가 강하며 필획이 가늘고 강하고 한자가 아직 정형화되지 않았으며 자형의 크기가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대부분 한글자가 하나의 칸을 차지하지만 합문현상도 적지 않다. 어떤 글자는 자형에 표음성분이 출현한다(예;娶,酒,牧 등)

금문
종정문이라고도 하며 상주시대 청동기에 새겨진 한자로 특히 주대(서주)에 통용되었던 표준 자체이다. 왜 금문이라 하면 고대인들은 동(銅)을 금(金)이라 칭했기 때문이다. 주조방법의 차이에 따라 글자가 오목하게 들어간 것은 음문, 볼록하게 나온 것은 양문이라 한다.또한 관과 지라고도 하여 종정문을 종정관지라고 한다. 즉 종정은 청동의 재료이고 관지는 주조방법이다. 갑골문을 기초로 발전되어 초기 금문은 갑골문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며 오히려 더 상형적이고 더 보수적이다. 후기의 금문이 상형성이 점점 감소하여 선화, 부호화되는 경향이 있으며 필획이 갑골문보다 둥글고 살지며 자형또한 크다. 또한 자형의 정도가 상당히 정형화되었으며 전체 자형은 상하로 긴 특징을 가지며 자형의 크기도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현존하는 최장의 명문은 모공정이다.

대전
금문의 기초 위에서 변화된 자체로 필획이 균형이 잡혔고 선화와 부호화의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체 자형이 상하로 긴 직사각형(장방형)이며 크기 또한 균일하다. 자형 구조가 금문보다 더욱 합리적이다. 주로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에서 통용되었으며 소전과 상대되는 명칭이며 주문(籒文;중국 最古의 字書인 사주편에서 통용된 자체)이라고도 한다. 대전의 원모를 살펴볼 수 있는 현재 유일한 자료는 기원전8세기 진나라의 석고문(石鼓文)이다. 현재 고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육국문자
한무제 말년 노의 공왕이 공자의 고택벽에서 발견한 고서에 사용된 문자이다. 이 책들은 전국시기에 씌어진 것들이며 문자는 전국시대 제노齊魯지역에서 사용된 문자였다. 다시말해 지리와 정치적 이유로 당시 관동6국(제,초,연,한,위,조)에서 사용한 문자는 진나라에서 사용하던 문자와 달랐다. 현존하는 육국고문의 자료는 설문해자(500여자)와 삼체석경의 잔석과 전국시대에 사용되던 병기,도기,전폐(화폐),새인(도장),증백(비단),죽간이며 그 중 수량이 많은 죽간이 가장 중요하다. 육국고문의 가장 큰 특징은 간체자가 유행하며 후세에 일부가 채용되기도 하였다.필법이 육국마다 다르며 어떤 것은 차이가 매우 컸다. 또한 조충서라고 하여 새와 벌레로 글씨를 쓰는 예술자체가 유행하였다.

소전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후 ‘서동문자’라는 정책을 시행해서 소전을 표준자체로 하는 법령을 제정하여 전국적으로 한자규범화작업을 실시하였다. 소전은 대전과 대비되는 명칭으로 진대에 통용되었으며 진전이라고도 한다. 소전은 여전히 상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전으로부터 갑골문, 금문을 인식할 수 있다. 현존하는 소전의 자료로는 진시황이 각지를 순시할 때 세운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역산각석 등의 비석이 있으며 진나라의 법정 문자 교본으로 창힐편, 원력편, 박학편(;;세편을 합해서 삼창이라고 함)등이 있다. 또한 설문해자의 표제자 9353개가 있다. 비석이 소전의 중요한 자료이다. 소전은 진대와 서한 초기에만 사용되었고 서한 중기에는 예서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역대의 인장에도 소전을 사용하였으며 전은 인장의 또다른 호칭으로 사용되며 이외에 소전은 서예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소전의 특징은 필획이 선화되었고 굵기가 같으며 둥글고 긴 선을 사용하며 밀도도 균형적이다. 상형정도가 감소하였고 한자체계의 부호성이 강화되었다(-한자발전과정중 나타나는 주요 경향). 대다수 한자의 자형이 통일되어 하나의 한자는 하나의 자형만을 갖으며 크기가 완전히 일치하며 상하로 긴 직사각형으로 사각형인 한자의 특징이 기본적으로 형성되었다. 이전의 자체보다 간화되었다.

예서
소전이 간화된 형태로 전국시대 후기에서 진대에 걸쳐 형성되어 한대에 통용된 자체이다.진예와 한예로 구분할 수 있으며 진예는 초기의 예서로 고예라고도 하며 진대의 도량형등에 남아있다. 한예는 가로로 긴 편방형이며 필획에 파세와 도법이 있고 금예라고도 한다. 파세란 가로획, 왼쪽삐침, 오른쪽삐침에 파도와 같은 기복이 있다는 것이고 도법이란 왼쪽, 오른쪽삐침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 서예에서의 예서는 주로 한예를 가리킨다. 이는 동한 시기 비각(예기비,조전비,서협송,사진비,장천비,희평석경 등)에 많이 남아 있다.
예변
소전에서 예서로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변화를 말한다. 한예의 형성 원인이며 한자의 상형성이 소멸되고 부호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한자 구조 또한 간화되어 서사속도가 향상됨으로써 한자가 보다 완벽하게 언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해주었다. 예변은 한자 성질의 변화를 촉진시켜 표의문자에서 의음문자(표의 겸 표음문자)로 변화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세가지 예변이 있다. 먼저, 형변은 소전의 둥글고 긴 필획이 각이 진 직선의 필획으로 변화한 것으로 고예정, 예정이라고도 한다. 이는 소전의 상하로 긴 자형(장방형)이 예서에서는 좌우로 긴 자형(편방형)으로 바뀌는 변화를 가져왔다. 생변이란 필획이 생략되고 합병된 것을 의미하며 와변은 구조를 잘못 파악하여 편방을 잘못 변화시킨 것이다.즉 소전의 동일한 형체를 예서의 여러 형태로 분화시키거나 소전의 여러 가지 형체를 혼동하여 예서의 한가지 형체로 변화시킨 것을 의미한다.

해서
진서眞書,정서正書라고도 한다. 해楷는 모범,표준의 의미로 해서라고 하는 이유는 위진 이후부터 현재까지 약1700여 년 동안 통용되는 표준자체이므로 해서라고 하는 것이다. 예서를 기초로 변화발전된 것으로 기본 필획과 구조는 예서와 같으며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해서의 자료는 매우 풍부하다. 해서는 파세와 도법이 없고 마지막에 잠시 멈추었다가 붓을 돌려 마무리한다. 자형은 정방형이며 간결하고 명확하다. 또한 글자마다 개성이 두드러져 어떤 것은 최우로 넓적하고, 어떤 것은 상하로 길며, 어떤 것은 위는 넓고 아래는 좁은 형태를 나타낸다. 예서는 밖으로 분산되며 해서는 안쪽으로 수축되고 집중된다.

초서
예서,해서와 동시에 통용된 보조 자체로 초草는 거칠다는 뜻이다. 초서는 필법이 간략하고 자유로운 것, 즉 초솔草率한 것에서 명칭을 얻게 되었다. 초서는 광의와 협의의 초서로 나눌 수 있는데, 광의의 초서란 어떤 자체든지 거칠게 흘려 쓴 것은 모두 초서로 보는 것이고, 협의의 초서는 특정한 자체, 즉 한대에 형성되어 예서와 해서의 보조자체가 된 자체만을 가리킨다. 초서는 다시 장초, 금초, 광초로 나누어진다. 장초는 거칠게 쓴 예서에서 발전되었고 동한의 장제가 제창했다고 전해지며 특징은 필획의 연결이 자유롭고 자형의 크기가 기본적으로 일치하며 글자마다 분리되어 있으며 한 글자는 하나의 초서 필법을 가지며 마무리할 때 파세가 있어 한예의 구조와 형식을 반영하고 있다. 여전히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동한 말기부터 진(삼국시대)대까지가 장초의 흥성시기이며 원 명대에도 장초의 중흥시기가 있었다. 금초는 장초에서 발전한 초서로 진대 왕희지, 왕헌지 부자를 통해 널리 유행되었고 글자들끼리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자형의 크기나 모양이 자유롭고 융통성 있으며 동일한 글자라도 여러 가지 필법이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필획과 필법이 극도로 간화되어 서사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서 소수의 문인이나 학자들 사이의 교류도구로 사용되다가 점차 예술품으로 변화되었다. 광초는 대초라고도 하며 금초를 기초로 발달한 극단적인 초서이다. 광초는 마음대로 자형을 고치고 필획을 증감하고 필획의 꺽음과 연결도 아무런 규칙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일필휘지一筆揮之,용사비무龍蛇飛舞,일필서一筆書 등으로 표현되며 의사소통의 가치는 거의 없고 예술적 가치만 존재한다.

행서
해서와 금초의 중간적 자체로서 현재의 행서는 금초를 기초로 발전했다. 쓰기 힘들고 속도가 느린 해서의 단점과 알아보기 힘든 초서의 단점을 보완했다. 해서에 가깝게 쓰인 것을 행해라고 하고 초서에 가깝게 쓰인 것을 행초라고 한다. 행서의 자료는 매우 많으며 그 중 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모범으로 공인된 행서작품은 왕희지가 쓴 난정서이다. 행서의 특징은 자유롭고 빠르게 쓸 수 있어 해서의 초서화라고, 해서와 비슷하며 규정에 맞게 쓰기 때문에 글자가 독립적이고 구별하기 쉽다는 점에서 초서의 해서화라고 한다. 행서의 가치는 실용적 가치가 매우 높아서 해서의 주요 보조 자체가 되었으며 사용범위가 가장 넓었으며 일반인들은 서신, 기록, 자료의 필사, 문장의 초고 등에 대부분 행서를 사용하였다. 또한 서예에서도 아주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출처 : 관묵헌(觀墨軒)
글쓴이 : 석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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