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이 조선조 과거시험에서 어떤 문제로 시험을 보았는지 궁금한 경우가 많다.

문과과거시험에서는, 두가지 형식으로 시험을 치루는데 한가지는 講經(경서를 외움)이고 또 한가지는 製述(詩, 賦를 지음)이다.  이 두가지 형식을 함께 치르는 것이 아니고 응시자가 두 방법 중에 하나를 고른다. 각각의 시헝방식을 거쳐 각 16인, 合 32인과 두 방식을 합쳐 그 중 우수자 1인 도합 33인이 합격을 한다. 이 33인의 합격자는 다시 策問이란, 요즘으로 치면 논술문제의 형식 시험을 거쳐 등위가 매겨지는데  갑과(3인), 을과(7인), 병과(23인) 등으로 구분된다. 이에따라 벼슬의 품계가 정해진다.

과거시험에 쓰여진 詩의 형식을 소개한다.

 

責索頭 - 金 炳 淵 (김삿갓으로 알려진 인물로 과체시를 매우 많이 남겼다) 


我股雖斷無索處 劍事燕南水東流 

英雄已許好懇談 鬼神何關空髑髏

逢場爾若不開口 失手男兒還自羞 

資吾西入責在誰 秦索其時樊將軍

靑山督亢竝書裏 白日阿房同劍投 

瀛兒還柱亦足快 何故將軍怨語啾

魂歸北亡每受嘲 事去西天猶載讐 

難忘千古勇士元 無怪渠心恨悠悠

山東俠月至今白 有口荊卿言欲酬 

千金爾諾假手苦 一劍吾行知己由

函中兩目亦親見 敗則其天誰怨尤 

佳人無復斷手恨 處士何會刎頸憂 

今雖有頭更何用 草木空山同腐朽 

人形本非斷復續 俗語誠云恩反仇

樊家七族盡殞首 此亦於秦能索否 

當初胡奈大膽傾 畢竟空然朽骨求

頭還故國爾何妨 好擲咸陽丘秋草 

 

‘머리를 돌려 달라함을 책망함’


내 다리가 비록 잘려서 찾을 곳이 없건만.

劍戟은 燕 남쪽에 동으로 흐르는 물과 같이 사라 졌구나.

영웅이 이미 즐거이 마음을 허락했으니.

귀신은 어찌 공연히 해골을 구하는가?

만난 자리에서 그대가 만약 입을 열지 않았으면.

실수했던 이 사나이는 돌이켜 스스로 부끄러워 하였을 것을!

나를 도와 서쪽 가게 함은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진 나라도 그 당시에 번 장군을 찾고 있었으니.

청산에는 督亢 땅과 아울러 서류 속에 비수 빼어들고,

대 낮에 아방궁에서 동시에 칼을 던졌다.

영가 아이(秦始皇) 기둥을 돌아감에 역시 발이 빨랐으니,

匕首와 英勇한 혼은 이에 가을 단풍 잎 따라 가버렸네.

烏頭死가 지나간지 오래 된 戒文의 저녁에, 무엇 때문에

장군은 원망하는 말을 啾啾히 하는고?

나의 혼이 북망산에 돌아가서 매번 嘲笑를 받았고,

일은 끝났지만 서쪽 하늘에는 오히려 원수가 건재하니! 

천고의 용사의 머리를 잊기 힘드니,

그 큰마음의 한이 유유함은 괴이치 안도다.

山東의 俠氣를 품은 달은 지금도 희건만,

입 가진 荊卿도 한마디하여 대답하고자 하노라.

천금같은 그대 승낙은 나의 수고를 빌렸으니,

칼 하나에 몸을 맡긴 나의 떠남은 오로지 지기 때문이다.

함 속에서 부릅뜬 두 눈이 역시 친히 보았듯,

실패한즉 하늘의 뜻이니 누구를 원망할 건가?

佳人은 다시 손 자른 한이 없건만,

처사는 무엇 때문에 목 찌른 煩悶을 모으는 고?

오늘 비록 목이 있다한들 다시 무엇에 쓰리오?

초목이 우거진 빈 산에서 함께 썩고있을 것을

사람의 형체는 본시 끊었다 다시 잇지 못하는 법,

옛말에 진실로 은혜를 돌이켜 원수로 갚는다하더니.

樊家의 칠족이 모두 머리를 잘리었으니,

이 역시 진 나라에서 찾을 수 없구나.

당초에 어찌 대담하게 마음이 움직였더니,

필경 공연히 마른 뼈만 구한단 말인가?

그대 머리 고국에 돌아왔으니 무엇이 꺼릴 것 있겠는가?

함양 언덕에 가을 풀 속에 잘 던져 있거늘...........




 책삭두 해의


이는 전국 말기 연 태자 단(丹)이 협객 형가(荊軻)를 시켜

진왕 政을 치게 한 고사를 주제로 한 김 삿갓의 科體詩다.

다음은 그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구절이다. 형가와

燕, 太子 단이 秦王을 암살할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


督亢땅의 지도와 족자 속에 감추었던 비수를 갖고 荊軻가

秦王을 만난 자리에서 왼 손으로 진왕의 멱살을 잡고 오른

손으로 비수를 들고 진왕을 위협하여 진나라가  빼앗은 땅

을 되돌려 받기를 서약 받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물건 하나가 더 필요하다고 형가는 태자에게 말한

다. 그것은 진나라에서 대역죄를 짓고 연 나라에 도망해

온 장군 樊於期(번오기)의 머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를 대단히 불쌍히 여긴 연 태자는 후대하고 있었다.

태자는 차마 그것은 못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형가가 번 장군을 찾아가서 말하기를 "내가 그대와

연 태자를 위하여 목숨을 놓고 진왕을 치려고 함을 아시오?"

번오기  왈 “예, 잘 압니다." 

형가 "그러면 그대는 무엇으로 나에게 보답하겠오?" 번 오기

는 울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소이다.

그저 이 목숨 하나로 갑겠소.” 형가 "내가 그대에게 꼭 필요

한 물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오?"

번오기 "이 번오기가 비록 어리석어도 어찌 그거야 모르겠오?

또 그렇게 쉬운 일이 다시 어디 있겠오?"

그 자리에서 칼을 빼어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

그 머리를 갖고 연 태자에게 왔을 때 너무 불쌍한 번 오기의

목을 보고 연 태자는 크게 통곡을 하였다.


이리하여 형가는 번 오기의 목을 함에 넣고 진 왕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 함을 풀어 진 왕에게 보인다.

또 한번은 형가를 위한 연회자리에서 형가가 술김에 술 딸

던 여인의 손이 너무 예뻐서 그 손을 한번 만진 것을 연

태자가 보고 사람을 시켜 그 만진 손을 잘라 쟁반에 바쳐

형가에게 선사하였다 한다.

진 왕은 공포에 뒷걸음질치고 형가는 비수를 들고 진 왕 쪽

으로 돌진하며 열려있는 함에는 번 오기의 머리가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형가의 계획은 실패를 하고 형가는 거기

서 참혹한 죽음을 당한다.


그런 후, 죽어서 지하에서 두 사람의 혼이 만나서 번 오기가

荊軻에게 ‘나의 원수를 갑지도 못하며 내 목을 가져갔으니

돌려내라, 이 주제로 삿갓이 과 체시를 지었다.

이 내용은 형가가 대의를 내 세워서 번오기를 꾸짖는다는

내용으로 드라마틱한 구성, 초현실적인 영의 세계에서 죽은

원혼들의 恨歎을 리얼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이밖에 현재 전해 내려오고 있는 삿갓의 科體詩(公領詩)는

무려 207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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泣風樹 -重峯  趙憲 (1544~92)


元來至誠本愛日。没身追慕能成功。

事生如或誠未盡。觸物興感心何窮。

阿誰獨爲風樹泣。緬懷千古欽皐公。

生平事親思竭孝。擬盡子職全天衷。

掦名志欲顯父母。負笈千里遊西東。

三牲榮養志未就。西山落日還悤悤。

養生雖欲做大事。歸來其奈萱闈空。

哀哀一身何所恃。孑立天地撫遺躬。

無端風樹攪余懷。看來不耐憂忡忡。

入地靈根深幾尺。空餘弱枝凌蒼穹。

根猶親兮枝猶子。忍見孤樹搖悲風。

樹雖欲靜風不止。子雖欲孝親已終。

天長地久永有憾。樹兮子兮將無同。

泫然相對泣不休。淚痕着樹成枯叢。

下車豈止動聖容。剩起群哲相磨礱。

伊人孝思實維則。風聲萬古何渢渢。

至今誠感猶未歇。聞風亦足驚群蒙。

安得龍眠畫爲圖。遍掲天下開盲聲。

 

출처 : 樂川詩社 (요천시사)
글쓴이 : 宜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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