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藝 美學의 意義
書藝 美學은 각 시대의 서예 창작과 그의 경험을 개괄하고 총결한 藝術 美學이다.
또한 書藝術의 독립과 自足의 系統이고, 當 時代와 그 이후의 書藝術 實踐에 영향과 방향을 提示해 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독특한 結構와 體裁를 갖추고 發展하는 동아시아 문화권 특유의 學問 분야이다.
그러므로 書藝 美學을 이해하지 않으면, 동아시아 美學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동아시아 藝術 精神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書藝 美學은 西歐에는 없는 독특한 藝術 美學이다.
書藝 美學은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文字를 변화시켜, 情感 의식을 표현하는 부호 형식으로 만들어진 藝術이다. 西洋 文字는 단지 뜻만 表現하여 개념을 전달하는 작용을 하는 文字이지만, 書藝는 문자의 형체를 자유롭게 창조하여 영활하게 情感을 전달하는 藝術의 부호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세계의 藝術 마당에서 아마도 그 위치를 대신할 수 있는 藝術은 없을 것이다.
文字가 藝術의 情感 부호의 형식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다음의 중요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文字는 象形에서 비롯되었는데, 書藝의 美는 이런 象形을 기초로 하여 변화된 線과 結構, 그리고 章法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각종의 象形的 圖畵는 모방과 변화를 가져오면서 순수하게 추상적인 線과 結構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이 독자적인 藝術의 표현 형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書藝는 書寫 공구인 毛筆을 사용하여, 線을 가볍고, 무겁고, 더디고, 급하게 표현하면서 강하고 부드러운 것을 서로 섞고, 굵고 가는 것을 조화시켜 자유로운 藝術의 의미를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바로 蔡邕이 말한 “붓이 부드럽기 때문에 奇怪함이 여기서 생기게 된다.”1)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宗白華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許愼은《說文解字≫序文에서 文字의 정의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倉頡이 처음 글자를 만듦에 대개 形象의 형태에 의거하였기 때문에 이를 文이라고 하였다. 그 뒤에 형태와 소리가 서로 더해지면서 이를 字라고 하였는데, 字라는 뜻은 불어나서 점차로 많아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文과 字는 서로 상대적인 것이다. 書라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글씨의 임무는 바로 같게 하는 것이므로, 쓰여져 나온 글씨는 모름지기 같아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心中에서 사물의 형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點과 劃으로 사물 형상의 근본을 표현하는데, 이것은 또한 사물의 형상에 있는 文으로 하나의 사물 안에서, 또는 物象과 물상이 서로 관계를 갖는 속에서 이루어진 조리로, 즉 長短ㆍ大小ㆍ疏密ㆍ虛實ㆍ應接ㆍ向背 등의 규율과 결구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文을 파악할 수 있는 동시에, 또한 사람에게 그들 정감의 반응을 반영할 수 있다.
이렇게 정감에서 文이 생기고, 文에서 정감이 생기는 文字는 곧 예술의 경지를 승화할 수 있으며, 또한 藝術의 가치를 갖추고 美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2)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몸체를 이루면서, 변화가 풍부한 공간 단위를 이루며 표현력이 매우 강한 藝術의 매개체가 되었다.
書藝의 美란 형체를 초월하여 묘사하는 筆劃을 자유롭게 전개하고, 그것을 하나씩 서로 섞어서 하나의 형체인 文字를 구성하여 紙面上에서 펴낸다. 그리고 이것으로써 음악이나 무용과 마찬가지로 정감을 펴내고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반적인 形式美는 항상 정지되어 있고 정식화 규격화되어 현실적인 생명감이 있어서 풍부한 생명의 암시와 표현력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線을 위주로 하는 書藝는 이러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藝術이다. 그래서 書藝는 획일적이고 일률적으로 대칭을 이루는 형식미가 아니고, 매우 다양하고 유동적인 자유로운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書藝의 한 글자 또는 한 행 나아가서는 한 폭의 작품은 모두 창조와 변혁이 있으며, 더욱이 개성이 있는 것으로 기계적인 중복과 법도에만 얽매여서 쓴 것이 아니다. 또한 書藝는 흑백을 서로 사이에 두고 線의 결구로 자아 인격을 완성되게 표현하면서, 文人의 정신 문화를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藝術인 것이다.
2. 書藝 美學의 對待 關係
書藝術의 휘황한 발전 道程은 깊은 역사적 論理를 반영하여 나온 것이며, 또한 그 역사적 論理의 일부분은 書藝術의 思惟 체계에서 나타낸 것이다.
곧 이러한 書藝 思惟의 논리상에서 서예의 藝術 哲學이 생산되었으며, 서예의 美學이 구성되어졌다.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여기에서는 서예 미학상의 對待 關係에 대하여 논하여 보고자 한다. 對待 關係라 함은 서로 相對를 대립ㆍ견제하는 개념이 아니라, 相互 竝立ㆍ補完하여 相生하는 개념을 말하는 것이다.
(1) 方 과 圓
書藝에서 方筆은 折로써 運筆하는 것으로, 行筆은 끊어진 듯 하면서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고, 圓筆은 轉으로써 운필하는 것으로 行筆은 계속하여 끊어짐이 없는 것을 말한다.
方筆은 方正하고 雄峻한 美가 나타나고, 圓筆은 宛轉ㆍ渾穆한 美가 나타난다. 漢碑중에서 《張遷》《景君》이 方筆이고, 《石門頌》《楊淮表》가 圓筆이 된다.
先秦 書藝를 보면, 甲骨文은 方折이 많고 金文ㆍ秦篆은 圓轉이 많다. 해ㆍ행ㆍ초에서 楷書는 方筆이 많고, 行草는 圓筆이 많으며, 歐書는 方筆, 顔ㆍ虞書는 圓筆이며, 褚書는 大字가 方을 이용하고, 小字는 圓을 이용했다.3) 이외에 形體는 方과 같으나 圓筆을 사용한 것은 《鄭文公》《爨龍顔》등이 있다.
그러나, 方과 圓의 서예 법칙은 깊은 對待性이 나타난다. 그 하나는, “圓筆은 神采가 원만해야지 정체되어서는 안되고, 方筆은 통쾌하고 方正해야지 뭉쳐 있어서는 안된다.”4)고 하지만, 方ㆍ圓을 막론하고 모두 실제적으로 서로 소통되고, 정체되지 않으며 뭉치지 않아서 그 神采가 교류하고 오묘함이 통해야 한다. 두 번째는, 서예에서 方과 圓은 응당 서로 교류되고 이용되어져야 하며, 神采가 변화하고 對待性이 있어야 한다.
“方筆은 해서를 쓸 때 사용하고, 圓筆은 행서를 쓸 때 사용한다.”5) 이 말은 대략적으로, 해서는 圓筆이 없어서 아늑한 운치가 없으며, 行草는 方筆이 없어서 雄剛한 神采가 없으니, 서로 그것들을 이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妙함은 方圓을 竝用함에 있으니, 方體에 圓筆을 사용하거나 圓體에 方筆을 사용한다거나, 혹은 필법은 方으로 하고 章法은 圓으로 한다든지 해야, 神采가 밝아져서 사람들에게 존중되어진다. 이것은 높은 경지에서만이 方과 圓의 對待關係를 장악할 수 있고, 서예의 神妙한 정취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康有爲는 “서예의 妙는 전적으로 運筆에 있는데, 方圓을 다하여 능숙함을 조절해야 스스로 巧妙함이 있다.”6)고 하였다.
(2) 曲 과 直
서예의 曲과 直은 對待性이 있으며, 方과 圓의 對待 關係가 진일보 발전되고 보충된 것이다.
金文ㆍ小篆을 볼 때, 완곡하게 통하는 曲線美를 볼 수 있고, 曲線과 直線이 상호 보완하여 이루어진 美感을 느낄 수 있다. 역사의 변화에 따라 象形性이 풍부한 曲線은 平直한 필획으로 분해되고 變換되었는데, 예를 들면 ‘日’字는 원래 둥근 해를 상징하는 曲線이었으나, 후에 四획으로 분해되여 이루어졌다. 또 ‘女’字는 원래 앉아 있는 女體의 곡선으로 나타났으나, 후에 直筆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곡선이 직선으로 변했을 망정 그 획 가운데에 곡선을 함유하고 있다.
隸書는 곡선의 美가 波磔의 美로 변화되었는데, 蠶頭燕尾式의 波磔 중에는 曲折된 波로 전해져 온다.
楷書의 출현은 또 한 차례 대 변혁이 있었는데, 形體는 더욱 方正하게 되었으며 필획은 平直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서의 平直한 필획 중에는 여전히 곡선의 美를 구비하고 있으며, 隸書 波磔의 그러한 곡선미를 담지 않고 一波 三折의 정체로 변화되어졌고, ‘無垂不縮, 無往不收’, ‘堅劃橫下, 橫劃堅下’, ‘藏頭護尾’등의 내함의 美로 변화되었다. 즉 “해서의 필획에는 직선중에 곡선의 미가 포함되어 있다”7)고 姜白石은 말한다.
그러나, 章草에서 今草ㆍ狂草까지의 전개 과정을 보면, 篆書적 요소의 선획은 더욱 더 彎曲해졌고, 곡선의 강도는 더욱 증가하였으며, 전ㆍ예ㆍ해서의 거리를 타파하고 圓筆化된 평형방식으로 고도의 자유스러움과 무궁한 美感으로 전개되었다.
劉熙載는 “書에서 곡선은 그 형체에 직선이 있어야 하고, 직선은 그 이치에 곡선이 있어야 한다.”8)고 하여, 서예의 曲과 直의 對待 關係를 강조하고 美妙한 서예의 審美 정취를 나타내었다.
(3) 遲 와 速
遲는 ‘緩’, ‘遲澁’이라고도 칭하고, 速은 ‘急’, ‘疾’, ‘捷速’등으로도 칭한다.
運筆에서 느림(遲)에는 穩重ㆍ沈着ㆍ端莊함에 힘있는 것을 취한다. 그러나 遲重한 맛이 있으려면 遲澁에 전념해야 하며, 神氣ㆍ風采를 잃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速과 상호 보완하여 행해야 한다.
운필에서 빠름(速)에는 勁利ㆍ飛動ㆍ風神의 현란함을 취한다. 그러나 捷速한 맛이 있게 하려면 急疾에 전념해야 하고, 失勢ㆍ失態할 수 있으므로 遲와 상호 보완하여 실행해야 한다.
단지 遲速의 對待 關係는 각각 똑같이 절반씩으로 한다거나, 엇비슷하게 기계적 배합이어서는 안되며, 가일층한 풍부한 내함이 있어야 한다. 王羲之는 遲와 速의 對待性의 원칙을 제시하였는데, “매 글자마다 十遲五急이 필요하다.”9)고 하여, 遲를 위주로 하고 急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또 “무릇 書는 沈靜함을 귀하게 여기고, 뜻이 筆前에 있어야 하며, 글자의 자취는 마음 뒤에 놓아야 하고, 작품을 하기 전에 생각을 결정해야 잘 이루어진다. 下筆은 急하게 하지 말고 모름지기 느려야 한다.”10)고 하였다.
또, 康有爲는 “행필하는 법은 十遲五急, 十曲五直, 十藏五起, 十起五伏인데 이렇게 하면 그 오묘함이 곡진하다.”11)하였으며, 蔡邕도 “빠른 필세와 澁한 붓을 귀하게 여긴다.”12)고 하였다.
만약 운필중에 疾勢와 澁筆의 관계를 대대적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遲急의 오묘함일 것이다. 그러나 단지 행필에는 緩과 疾이 있을 뿐만 아니라, 澁과 滑로 나누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緩과 滑은 쉽지만 疾과 澁은 익히기가 쉽지 않으므로, 얼마간의 수련이 있고 난 후에 라야 사용할 수 있다.
(4) 輕 과 重
서예는 부드러운 毛筆로 輕運重行하는 가운데, 輕重用筆의 大比ㆍ錯綜하므로써 무한하고 풍부한 韻律이 형성되며, 신묘한 기량이 많이 출현되고 변화가 무궁한 境界가 나타난다.
輕과 重의 용필에서의 다름은 작품의 질감상에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가볍게 용필하면 紙面과의 접촉이 적어서 필획이 가늘면서 민첩하고, 무겁게 용필하면 지면과 닿는 면이 많아서 필획이 굵고 무겁다. 輕은 가늘고 강해서 빼어나게 아름답고 풍모가 초탈하며, 重은 풍성하고 살쪄 있어서 침착하고 온후하다.
金文에서 그 예를 든다면, 《齊仲姜鎛》《王孫鐘》의 銘文은 一분의 붓으로 빼어나게 표현해낸 것으로, 물이 흐르는 것과 새가 가볍고 경쾌하게 나르는 美感이 있으며, 그리고 《散氏盤》《兮甲盤》은 三분의 붓으로 엄숙하고도 뚜렷하여 푸른 산이 찬란히 빛나 보이고, 웅장기이하여 소박하고 두터운 미감이 있다.
南齊의 王僧虔은 “組하되 重하지 않고 細하되 輕하지 않아야 한다.”13)고 하여, 운필은 경중하고 변화를 추구하여, 風采가 시원 대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예의 輕重을 구사함에도 풍채가 생기 활발하고 서로 조화로워야 한다. 즉 “一切의 서예는 輕함을 숭상한다.”14)하는데, 이것은 重이 없는 것이 아니라, 重이 변화하여 輕이 된다는 것이며 輕중에 重을 포함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것은 서예의 輕重 관계를 높은 기량으로 파악했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
(5) 肥 와 瘦
肥와 瘦는 일반적으로 자획의 肥瘦를 가리킨다.
살찐 것은 肉이 많다는 것이고, 마르다는 것은 骨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肥와 瘦와 骨과 肉은 서로 상관 관계가 있다. 骨을 사용하여 體로 하고 肉을 사용하여 用으로 하여, 骨과 肉이 고르게 균형을 잡아서 氣脈이 관통하고, 드물고 평평한 곳은 肥로써 채우고, 빽빽하고 기운 곳은 瘦로써 제어한다.
肉이 많고 骨이 적으면 이를 ‘墨猪’라 하고, 骨이 많고 肉이 적으면 ‘枯藤’이라 한다. 그래서 肉은 많고 骨이 적다거나 骨이 많고 肉이 적은 것은 모두 서예의 病이다. 骨法은 엄숙해야 하고, 肉法은 경건해야 좋은 서예라고 할 수 있다.
骨과 肉에서 骨을 主로 하고 肉을 次로 삼아야 한다. 서예에서는 瘦硬함을 귀하게 여겨야 神采가 통한다 하니, 서예 창작과 감상에서 염두에 두어야할 것이다.
黃庭堅은 살찐 글자에는 모름지기 骨이 있어야 하고, 마른 글자에는 반드시 肉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마치 人體의 肥瘦의 美에 풍부한 예술 언어가 있듯이, 서예 미학의 肥瘦美도 外在하는 形質과 內在하는 정신이 겉과 속에 존재하는 무궁한 美로 빛날 수 있을 것이다.
(6) 大 와 小
大字, 즉 필획이 많은 글자는 쓸 때 자연히 크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小字를 비교하여 적정한 크기로 써야 한다. 小字, 즉 필획이 적은 글자를 쓸 때에는 자연히 작게 쓰여지게 된다. 그러므로 쓸 때에는 大字를 생각해서 균형있게 써야 한다. 그래야만 上下 각각의 글자가 서로 어울리게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서예 미학 중에서 大와 小의 예술적 처리의 一面이며, 大小 관계의 對待性의 관계이다.
行草書의 관계에서는 大小의 관계가 가지런하지 않고 서로 들쑥 날쑥하는 이치를 귀하게 여기고 있는데, 徐浩는 “大小가 균정하면 俗에 가까워지고, 逸氣가 적다.”15)고 하여, 大小가 서로 대칭되지 않아야 하고 서로의 字體가 원만하게 조화로움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예의 結體는 大小의 오묘함이 있는 것으로, 각각의 字形에 따라 크거나 작거나 혹은 굵거나 가늘게 하여, 생기가 활발하고 정취가 자연스러워서 일맥 상통하게 美妙함을 갖추어야 한다.
(7) 疏 와 密
疏와 密은 서예에서 結體 時에 안배의 성김과 긴밀함을 가리킨다.
서예에서 빽빽하게 하려고 할 때에는 너무 핍박하고 막히게 하여 우아한 자태를 잃게 해서는 안되며, 성기게 할 때에는 엉성하고 쓸쓸하게 되지 않도록 하여 정신과 風采가 유지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성긴 곳에도 빽빽한 풍채가 있어야 하며, 빽빽한 곳에도 성긴 맛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성긴 곳에서도 공허하고 한산한 느낌이 들지 않으며, 빽빽한 곳에서도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게 된다.
또한 姜蘷는 “글씨는 성긴 것으로 풍채를 삼고, 빽빽한 것으로 원숙한 경지를 이룬다.”16)하였다. 성기어야 할 때 성기게 하지 않는다면 초라하고 답답하게 되며, 빽빽하여야 할 때 빽빽하지 않으면 엉성하게 된다.
鄧石如는 이것을 비유하여 말하길, “획의 성긴 곳은 말이 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빽빽한 곳은 바람도 지나갈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17)라고 하였다. 만일 疏와 密이 조화를 이루고, 멀고 가까움이 어울리고, 높고 낮음이 정취를 이루며, 虛와 實이 호응을 이루게 하려면, 古人의 墨跡과 法帖을 관찰하여 익숙하게 한 후에 그 妙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8) 虛 와 實
老子 哲學 중에서 ‘有’와 ‘無’는 하나의 範疇이어서, ‘有’와 ‘無’를 설명할 때 有ㆍ無를 서로 의존하여 이용한다. 무형의 물건도 큰 작용을 낳을 수 있지만 일반인은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래서, 老子는 ‘無’의 작용을 특별하게 드러내어 이를 설명하였다. 서예에서도 마찬가지로, ‘有와 無’는 ‘虛와 實’과 ‘黑과 白’의 예술적 처리와 통하고 있다. 왕희지는 “實한 곳은 法을 드러내고, 虛한 곳은 神을 감춘다.”18)하여 虛와 實이 相生하는 妙理를 도출하고 있고, 虛한 곳의 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또 등석여의 “항상 黑으로써 白을 계산한다.”19)라는 논리는 서예 미학에서의 虛白의 중요 작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虛實의 운필 과정의 對待 관계는 곧 指掌ㆍ腕肘ㆍ필획의 관계와 상호 부합한다.
운필에는 虛實이 필요한데, 특히 行草를 쓸 때의 허실은 특별히 귀하게 여긴다. 운필이 虛하지 않으면 원만하고 일탈됨이 부족하고, 운필이 實하지 않으면 沈着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서체의 필획에도 虛實이 있다. 篆劃은 實에 충실하고 八分劃은 虛에 충실하며, 왕희지는 實에 가까우며 헌지는 虛에 가깝다.
實하게 운필함은 虛를 위한 것이며, 實한 곳은 모두 영활하고 虛함으로써 實하게 되는 것이니, 끊긴 곳은 계속 이어짐을 구비하고 있다. 古人의 書를 볼 때, 字外에 필획이 있고 筆意가 있으며 筆力이 있어서, 章法의 妙를 다하고 있다.
(9) 主 와 客
主筆과 客筆은 서로 대립하는 듯 하면서 통일되어 있다. 즉 서예의 對待 關係에 있는 것이다. 楷書로 예를 들면, 姚孟起는 “楷書를 쓸 때 主客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20)고 하였다.
‘日’字를 분석하여 설명하면, 左竪는 客으로 가볍고 짧아야 하고, 右竪는 主로 무겁고 길어야 하며, 中劃은 客으로 虛하고 완만하며, 下劃은 主로써 實하고 굳세어야 한다. 또 草書를 예로 들면, 먼저 쓰는 것은 主가 되고, 나중에 쓰는 것은 客이 되어, 반드시 主客이 바라보며 起伏이 서로 이어져서, 성긴 곳은 변화를 취하고 빽빽한 곳은 고아하고 힘차야 한다.
이와 같이 書體 중에는 각기 다른 특색의 主客이 있지만, 主筆을 확립하는 작용은 일치한다. 古人은 “글자를 쓸 때에는 主筆이 있어야 기강이 흩어지지 않는다.”21)하여, 매 글자마다 主劃을 세워서 布局ㆍ결구ㆍ조직 등을 主劃의 좌우에서 조화롭게 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써 四面의 호흡이 상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예 미학의 원리는 山水畵 美學과 통하는 면이 있다. 산수화에서 만학 천봉을 紙面 가득 채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主峰을 정해서 세우고 그 나머지는 客峰들을 그려 넣어야 전체에 혈맥이 유통되고 호흡이 상통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것이 어찌 산수화 미학뿐이겠는가? 기타의 예술에서도 이것은 第一의 哲理가 아니겠는가!
(10) 離 와 合
古代 書家가 말하기를, 서예의 요체는 “妙는 合할 수 있는 데 있고, 神은 떨어질 수 있는데 있다.”22)고 하였다. 離와 合은 바로 서예의 神妙한 경지에 있는 것이며, 서예의 要訣이 되는 것이고, 서예의 중요한 對待 關係가 된다.
離ㆍ合의 法은 古代 書論 중에서 간혹 結字나 章法을 가리키기도 한다.
結體ㆍ章法은 두 가지 병폐가 왕왕 있는데, ‘散에서 오는 염려’와 ‘結에서 오는 病’으로 散(離)은 집중되지 못하는 것이며, 結(合)은 벗어 버리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古人은 서예의 연결되는 곳에서 章法을 볼 수 있고, 떨어지는 곳에서 意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특히 왕희지는 “左로 돌고 右로 기울면 변화가 몽롱하여, 모양이 끊어진 것 같다가 다시 이어지고, 勢가 기운 것 같으나 바로 서 있는 것은 妙手가 離合하기 때문이다.”23)고 하였다. 그리고 歐陽詢의 結字 三十六法이 있는데, 그 중 몇 가지24)는 이 離合에서 착안한 것이라 한다.
이것들은 모두 이 離合의 美妙함을 연구한 것이며, 이것은 字形의 완전한 美의 예술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고, 문자의 部首 偏旁에도 이 離合의 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離合의 法은 고대 서론에서 虛實의 말과 종종 가깝게 쓰인다.
즉, 서예의 秘法은 이 離合사이의 神妙함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이것은 離하면서 虛하고 虛하면서 離하며, 合하면서 實하고 實하면서 沈着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離合을 겸비하고 虛實을 같이 하면 여기에 서예의 神妙함이 있다는 것이다.
(11) 奇 와 正
正은 서예의 단아 엄숙하고 침착 견실하며 소박하고 질박함을 말하고, 奇는 서예의 교묘하고 미려하며 기복이 많고 변화무쌍함을 가리킨다.
書藝家는 왕왕 正으로 奇에 들어가고, 奇에서 다시 正으로 돌아오는, 하나의 대대 관계의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즉 平正을 구하다가 平正을 알면 險絶을 추구하고, 그것을 장악하면 다시 平正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맨 나중의 平正과 시작할 때의 平正은 다른 것이며, 시작할 때의 平正은 ‘結構가 죽은 法’이고 마지막의 平正은 ‘變通을 융합하여 나오는 것’으로 ‘높은 수준의 기묘함에 복귀하는 과정을 거친 平正’을 말하는 것이다.
明의 項穆은 奇와 正의 관계를 중시하여, “서예의 要旨는 正ㆍ奇에 있다.”25)하면서, “奇는 正의 내부에 이어지는 것이며, 正은 奇 가운데 벌려있는 것이다. 正하면서 奇가 없으면, 비록 장엄하고 沈實하다 할지라도, 소박함이 지나쳐서 그것은 少文일 뿐이다. 奇하고 正하지 않으면, 비록 웅장하여 시원스럽고 미려하다 할지라도, 기교함이 너무 많고 단아함이 부족하다.”26)고 논하였다.
(12) 雅 와 俗
雅의 뜻은 規範ㆍ文明ㆍ좋은 것을 가리키며, 俗은 속세ㆍ범속ㆍ유행하는 풍습 등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俗은 결국 싫어하고 참을 수 없게 하며, 雅는 사랑 받고 동경하게 한다.
서예에서는 士氣(선비의 기개)를 으뜸으로 삼고 그 高雅함을 구하려고 한다.
作家는 언제나 俗氣가 없이 고상하고 고아함을 추구하고, 書卷氣를 추구하며, 高士의 韻致를 추구한다.
黃庭堅은 蘇東坡의 서예를 칭찬하여 말하기를, “東坡의 簡札은 字形이 온화하여, 俗氣가 한 점도 없다.”27)고 하였다. 여기에서의 雅는 脫俗한 것이며, 字形이 온화 돈독한 가운데 書卷氣가 가득차 있고, 성정이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을 말한다.
書家는 晉人 서예의 雅韻을 최고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晉人의 초탈 신묘한 흉금과, 風雨가 흩어지고 꽃이 피어나는 듯한 藝術 境界와, 희석되어 한산한 듯한 神韻 등이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후세의 서예가로 하여금 최고의 典範으로 받들어 추구하게 한다.
서예의 발전 과정에서, 처음에는 俗氣가 있었으나 후에 高雅하게 되어, 俗에서 雅로 되는 경우가 있다. 民間 藝術은 민간 서민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나, 서예가는 항상 그 민간 세속의 서예에서 영양을 흡수하고, 다듬고 공력을 더하여 자기만의 書藝 風格을 형성하면서 서예 발전을 촉진시킨다.
또 隸書도 세속 민간에서 생산된 것으로 後에 서예가가 다듬고 숙련시켜서 마침내 雅의 境界에 달한 것이다.
이렇듯, 어떤 사람도 처음에 시작하는 서예부터 고아함을 이룰 수는 없다. 단지 평범하고 범속한 것에서 시작하여 고난과 시련의 과정 속에서 초탈한 고아의 美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즉 俗氣가 있는 것에서부터 古雅美가 있는 것이며, 雅는 俗에서 나오고, 또 俗은 雅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13) 陰 과 陽
陰陽이라는 것은 서예의 점과 획을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가로 획에 있어서 윗획을 陽이라 하고, 아래 획을 陰이라 한다. 세로 획에 있어서도 왼쪽 획을 陽이라 하고, 오른쪽의 획을 陰이라 한다.
이와 같이 설명한 것은 단지 陰陽에 대한 간단한 설명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이런 것들만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劉熙載는 “글씨를 쓸 때에는 陰陽의 두 가지 법칙을 겸비해야 한다. 무릇 가라앉아 있으면서 굴복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을 陰이라 하고, 기발하고 호탕하여 활달한 것을 陽이라 한다.”고 하였다.28) 이것은 陰陽의 뜻을 서예의 풍격과 특징에까지 확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글씨를 쓸 때에는 두 가지 氣韻을 겸해야 한다.
하나는 고상한 풍격과 정신이 담겨 있어서 글씨에 힘이 着實하고 氣韻에 여지가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여지는 반드시 着實함에서 구해야지 지면을 떠나서는 안된다.
두 번째는 바탕이 견실하면서 호탕한 기운이 있어야 하며, 생각과 마음은 정미한 곳까지 이르러야 박력이 커질 것이다. 정미하다는 것은 글자의 안에서 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말하며, 박력이 크다는 것은 글자의 밖에서 기세가 드높은 것을 말한다.
만약 陰陽 중에서 하나만을 추구하여 쓴다면, 절대로 훌륭한 글씨를 이루지 못하니, 이 두가지 특색을 조화시켜야만 비로소 좋은 서예가 될 수 있다고 하겠다.
3. 書藝 美學의 範疇
(1) 品 格
書藝 美學에서 品格은 書藝家의 人品ㆍ흥취ㆍ포부ㆍ氣槪 등을 가리킨다. 이외에 品格은 전통 書論 중에서는 왕왕 서예의 品第ㆍ格調 등을 가리키기도 하다.
미학은 논리학과 떨어질 수 없는 동반의 관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政治學》에서 “美는 일종의 善이며, 그 때문에 快感이 일어나는 것이며, 그래서 그것이 善이다.”라고 말했다. 美는 필수적으로 善과 상관한다. 善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文章의 아름다움은 반드시 도덕의 고상함과 관련이 있으며, 그래서 ‘道德 文章’이라 칭한다.
서예 미학은 品格을 특히 소중히 여기고 人品을 중시한다. 서예 작품이 비록 아름답다할지라도 그 인물이 천박하면 그의 작품도 홀시한다. 반면에 品格이 고결하고 서예도 탁월하면 人品을 그 서예보다 더 중요시한다. 서예의 美醜․ 高下는 작가 인품의 美醜․高下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서예 미학의 특징이며, 수 천년의 전통도 서예 미학의 일종의 심리 정세로 형성되었다. “書는 사람이 중요하다.”29) 董其昌이 말하기를 蔡京은 “서예는 米南宮과 비슷하나, 그 사람이 書를 가리었다.”30)하였다. 宋四家는 본래 蘇軾ㆍ.黃庭堅ㆍ米芾ㆍ蔡京을 가리키나, 단지 蔡京의 品格이 낮아서, 후대인은 蔡襄으로 그를 대신하였다. 이렇듯 전통 서예 미학 중에서 人品을 중요한 審美 標準으로 삼았다.
品格과 서예의 관계는 선인들이 십분 풍부하게 논술하였고, ‘혹은 사람으로써 書를 중히 여긴다, 혹은 사람 때문에 書를 경시한다’는 것이 심미의 기준이었다.
또 書法의 특징에서 출발하는 것도 있다. 揚雄은 “書는 心畵이다.”31)라고 제기하였다. 이런 관점은 後代 서예가의 찬동과 호응을 얻었는데, 최후에는 ‘書如其人’의 말로 발전하였다. 劉熙載는《藝槪》에서 “書는 같은 것이다. 그 학문과 같고, 그 재능과 같고, 그 뜻과 같아서 그 사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32)고 하였다. 朱長文은 이미 이런 각도에서 顔眞卿을 평가하였다. “魯公은 忠烈之臣이라 말할 수 있다.”33), “그가 일으킨 筆翰에서는 강건하고 웅특함이 나타나고 서체는 엄중하여 법을 구비하였으며, 忠信義士와 같아서 바른 빛을 조정에 세웠으며, 대인으로 임하였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揚子가 말한 ‘書는 心畵가 된다’는 것은 魯公에 대한 말이다.”34)고 하였다. 柳公權이 “心正則筆正”35)하듯이, 心正―人正―筆正―書正이다. 다시 말하면 ‘品格’은 일종의 內涵의 審美 範疇라고 할 수 있다.
品格은 전통적인 서예 감상 중에서는 왕왕 品第ㆍ等級ㆍ格調를 가리킨다. 張懷瓘은《書議》에서 “오늘 비로소 그 品格을 기록한다.”36) 淸 陣介祺는 “書畵는 품격으로 나누어지는데, 전부 그 筆에 있다.”37) 項穆은 《書法雅言》에서 “품격은 5등급으로 나누는데, 正宗ㆍ大家ㆍ名家ㆍ正源ㆍ傍流이다.”고 하였다. 唐 李嗣眞《書後品》에서 나누었는데, 그 중 ‘逸品’은 李嗣眞이 창작한 것이 되었다. 이외에 여러 서론가들은 제각각의 등급을 정했었는데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2) 筆 力
書藝 美學에서의 筆力은 글자의 점획의 형태 중에서 체현해낸 ‘力’의 체득을 가리킨 것이다.
南齊의 王僧虔《答竟陵王書》에서 “張芝․索靖․韋誕․鐘會․二圍는 전대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옛날과 지금은 다르다. 그 우열을 판별할 수 없지만, 단지 筆力의 절륜만을 보았다.”38)고 하여, 王僧虔은 여기에서 일단의 書藝 審美의 비밀을 도출하였는데, 즉 서예 미학의 표준이 古今이 다르다는 것이고, 사람에 따라 선호도가 같지 않아서 다르다는 것이며, 단지 그 筆力이 어떠한가를 보았다는 것이지만, 당연히 優劣을 가리는 하나의 공통 표준이라는 것이다. 筆力이 약한 것은 결코 좋은 서예 작품이 아니다. 筆力이 강건하면 그 미묘함이 나타나고, 筆力이 絶倫하면 서예 수준의 높음이 바로 나타나는 것이다. 소위 ‘力透紙背’, ‘入木三分’등이 모두 필력이 강건함을 칭찬한 것이다
劉熙載《藝槪》에서 “右軍 서예를 두 마디로 평한다면, 힘은 만 명의 장부를 굴복시키고, 韻은 千古까지 높다.”39)고 하였다. 그가 ‘力’과 ‘韻’ 二字로 집어내어 평가한 것을 의미 심장하게 음미할 필요가 있다. 筆力은 萬 사람을 굴복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곧 왕희지에게 書聖이 된 까닭을 말한 것이겠고, 그의 서예는 大洋이 넘치는 힘의 미감이 충만하며, 필력은 웅장하고 강건하여, 千 세대를 넘어서 萬 사람을 굴복시킬 만하다는 것이다. 필력이 웅건하면 글자에 골격을 갖추는 것이니, 형세의 미묘함이 살아나게 된다.
또 唐 太宗도 《論書》에서 筆力을 제창하였다. 그는 “나는 古人의 書를 임하는데 있어서, 단지 그 形體만을 배우지 않고 오직 그의 骨力을 구하려고 한다. 形勢는 자연히 생기는 것이다.”40)라고 하였다. 이는 서예의 오묘한 이치를 깊이 터득한 것이다. 劉熙載는 李世民의 이 말에 십분 찬동하여 말하기를, 骨力과 형세는 서예가가 당연히 중시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筆力이 웅건하면, 字形에 입체감이 있어서 形勢美를 갖추고, 또 字形에 생명력을 갖추어서 살아있는 生命美가 나타난다. 그러나 병든 態勢는 창백하여 생기가 없다. 일찌기 漢代 蔡邕은《九勢》에서 “下筆할 때 힘을 이용하면 筋骨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다.”41)고 하였다.
자연의 美는 陰陽적 역량의 작용에 있고, 사람의 筋肉美는 생명의 활력이 있으며, 서예술의 美 역시 한 점의 획、 하나의 線條에 집중하는 힘에 있다. 글자마다 힘의 집중이 있다면, 작품 전체에 웅건한 힘이 넘쳐날 것이다. 筆力의 審美는 많은 기교의 美感을 가져다 줄 것이며, 用筆 방법의 미묘함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밖에 좋은 면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褚書를 예로 든다면, 그의 草書의 筆力은 제압하기가 매우 어렵고 기교는 풍부하였는데, 그것은 모름지기 大力이 있어서 運筆力을 좋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예 미학 범주의 ‘筆力’의 ‘力’은, 전통 서예 중에서 왕왕 骨과 연관해서 骨力을 말하고, 筋과 연결해서 筋力을 말한다. 이것은 筆力과 서예의 骨體ㆍ筋肉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위부인은《筆陳圖》에서 “筆力이 좋으면 骨이 많고, 筆力이 좋지 않으면 肉이 많다. 骨이 많고 肉이 적으면 ‘筋書’라 하고, 肉이 많고 골이 적으면 ‘墨猪’라 한다. 힘이 있고 筋이 풍부하면 聖的이고, 힘이 없고 筋도 없으면 病的이다.”42)라고 하였다. 이 말은 筆力과 骨力에 대한 설명으로, 글씨에는 筆力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부인은 “点은 돌이 떨어지는 것처럼 해야 한다.”43)고 하여, 하나의 점도 운동의 역량을 응축시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역량은 예술가의 內心적인 표현이며, 이미 내면에 있는 강한 힘이고, 뛰어난 氣韻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骨이라 한다.
骨은 곧 筆墨이 지면에 힘있게 突出되어 표현되는 것이며, 내면으로부터 발휘되는 力量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하여 沈尹黙은,“관건은 執筆의 요령에 있다.”말한다. 古人은 이를 위하여 노력하고 경험을 축적하였다. 그것이 指實․掌虛․腕平․肘起 등이다. 나아가서는, 어깨를 풀고 전신의 氣力을 이용하여야 그 작용을 발휘할 수 있으며, 붓과 손이 서로 호응하여 뜻에 따라 輕重을 구사하며, 전신의 氣를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글자 중에 筆力이 표현될 것이라는 것이다.
(3) 意 象
意象은 현실의 형상에 대하여 관찰과 기억을 통하여, 독자적인 경영․정련․가공을 거쳐서, 작품 중에 새로운 형상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형상은 현실을 관찰한 미학을 표현하는 것이며, 작가의 叡智를 통한 선택과 정감을 모아서 내보이는 것이다.
蔡邕은《九勢》에서“書는 自然에서 시작한다.”44)
고 하였다. 서예는 본시 文字를 쓰는 藝術이며, 文字의 창조는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하늘을 우러러 象을 관찰하고, 땅을 굽어보아 法을 관찰하며,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여 文字를 창조하였다. 서예 또한 자연 속의 만물에 대한 形象과 그 형상의 美를 조리 정연하게 作品에 용해시키는 것이다.
古人은 대자연의 美는 사람이 심신을 통하여 느낀 것이며, 직접적인 것이고 가장 보편적인것이며 가장 풍부하고 위대한 美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자연 만물의 형상미에서 書藝美를 창조하고, 또 거기에서 書藝美를 비교하였다.
그래서 作家는 천지 만물 중에서 審美 意象을 구하여 작품을 창작한다. 張旭은 妙手를 體得한 작가이다. 그는 公主와 擔夫가 길을 다투는 것을 보고서, 孤蓬驚沙함을 보고, 公孫 大郞의 劒舞를 관찰하고서, 거기에서 서예의 妙理를 터득했으며 意象을 얻었다고 한다.
懷素 또한 독특한 慧眼을 갖춘 사람인데, 그는 夏雲寄峰과 飛鳥出林、 驚蛇入草를 관찰하여 서예의 意象을 구할 수 있었고, 조맹부는 ‘子’字、 ‘不’字를 쓸 때 새가 날아가는 것을 생각하고, ‘爲’字、 ‘女’字는 쥐가 장난치는 상황을 떠올렸다 한다. 이렇듯 서예가는 자연 만물의 意象을 살펴서 풍부한 서예적 內涵을 구비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에서 書藝 意象을 살피고 自然美처럼 다양성과 변화를 표현해내야 한다. 자연에서 서예 意象을 찾을 때, 또 하나 대자연의 걸출한 작품인 人體중에서 靈感을 섭취해야 한다. 인체 형태는 남성의 陽剛美와 여성의 陰柔美가 나타나고, 각종 자태의 變化美와 和諧와 협조의 美가 나타나며, 얼굴 표정의 풍부함、 내심 감정 표현의 다양성、 사상적 지혜와 心靈의 미묘함과, 사람의 풍부한 美와 깊은 內涵의 美를 표현해야 한다. 자연에서 書藝 意象을 구할 때는, 여러 만물에는 자연스럽고 엄정한 질서가 있는 데 그것을 찾아야 한다.
서예술의 意象美는 천지가 잉태한 것, 예컨대 雨露의 부드러움에서 생성된 것 등을 찾아야 하고, 비록 작가가 높은 뜻을 구축했다 하더라도 자연의 天趣를 표현해내야 한다.
천지가 만물을 기르고, 낳고, 가꾸어내듯이 계절과 기후가 다르고, 기운이 다르며, 사물의 아름다움이 제 각각이나 그의 질서는 정연하다. 서예 중의 意象은 억지로 긁어모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연 만물의 形象美처럼 일정한 秩序性을 표출해내야 한다.
자연에서 書藝 意象을 찾으려면, 그 자연의 표면 현상을 취하지 말고 그 배후의 깊이 감추어진 것을 찾아서 자연의 정신을 체득하고, 그 내면의 정신을 반영해야 한다. 자연은 生生不息의 운동 가운데 존재하므로 자연 만물의 美 또한 그러한 生生不息의 運動중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萬物美 배후에 內藏된 精神이다. 서예 중의 힘ㆍ勢 또한 필획의 운동 중에 생명을 표현하고 정신을 묘사한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서예는 筆力을 중히 여기면 근육의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 하였듯이, 서예가 勢를 중히 여기듯이 運動도 중히 해야 한다.
書論이 시작된 이후 줄곧 이 勢의 개념을 이용하였는데,《草書勢》《篆勢》《九勢》등, 모두 意象 중에서 필수적으로 勢를 얻어야 한다고 제시하였고, 구속되지 않는 생기발랄한 精神을 표현해냈다. 그리고 모두 충만한 서예중의 운동에 대하여 기술하였으니, 이는 ‘動’은 세계의 진정한 정신이며, 만상이 하나같이 운동 중에 있기 때문이다. 陰陽의 두 가지 힘의 작용과 勢의 왕래는 제지할 수 없으며, 乾坤 陰陽 運動을 체현하고 있다.
서예가는 意象을 구할 때, 우주의 ‘動’의 정신을 본받아야할 뿐 아니라, 動의 節奏와 韻律까지도 체득하여야 한다. 동시에 節奏美와 韻律의 자연스러움을 파악해야 하며, 이를 서예작품에 표출해야한다.
(4) 形 質
形質은 서예의 形體를 가리키는 것으로, 점획의 長短ㆍ高下ㆍ多寡ㆍ結構에서 이루어진 字形이며, 또 分行ㆍ布白 등으로 이루어진다.
서예 미학은 形質의 美를 중히 여기며, 형질의 美는 서예 外在의 美이다.
書藝學史上 수많은 서예가는 이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形質美의 규율을 찾아왔다. 갑골문의 方折 契刻하고 懸針 垂露한 필치、 龜甲上의 疏密 調和적인 布白은 고대인의 서예미이다. 西周 金文의 肥筆波磔하고 錯落 自然한 결체와 渾然 天成한 포백은 周代人의 서예미이다. 그리고 秦代의 균일한 玉筋、 엄밀 정제된 결체、 綜橫 균칭한 포백은 秦代人의 서예미이며, 그 후의 漢代에는 蠶頭燕尾한 紛飜波操함과, 晉人의 행운유수한 線條과 唐人의 장중한 結體, 宋人의 寫意한 자태, 明人의 求趣한 자형, 淸人의 尙朴한 結字 등은 오직 하나만을 위한 形質美이며, 서예가 창조한 形質美이다.
서예가마다 각자 자기만의 독창적인 형질미를 추구한다. 王羲之 父子의 서예는 不同한 형질미가 있으며, 顔眞卿、 柳公權의 서예 역시 각자의 형질미가 있으며, 宋四家 蘇ㆍ黃ㆍ米ㆍ蔡도 서로 같지 않은 形質과 美妙함을 갖췄다.
黃庭堅은 結構美에 취하게 하는 형체로써, 그는 스스로 찬양한《瘞鶴銘》중에서 美妙한 構形을 보고 放射式의 결자방법을 창출하였다. 이렇게 古人은 꽃에서 꿀을 모으듯이 前人의 형질미를 자세히 감상하고 자기만의 美의 형질을 창조해냈다.
서학사상에서 무수한 서예가는 유유히 그리고 깊이 있게 탐구하는 道程上에서, 부단히 美를 창조하는 방법 및 비결을 창출해내었다.
明代 項穆은《書法雅言》에서 形質에 대해서 상술하였다.
그는“사람들은 書에서 마음의 形質을 얻으면 손이 호응하여 千形萬狀을 이루니, 中和를 언급하고 肥를 말하며 瘦를 설명한다.”45)하여 形質을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는 “形質이 마른 것은 淸勁을 숭상하여 마른 것에 편중하는 것이다. 마른 것은 骨氣가 강건하고 字體에 많은 형태를 포함한다. 形質이 살찐 것은 독특한 공교함이 풍부하여 살찐 것에 편중하는 것이다. 살찐 것은 字體가 美硏한 형태이나 骨氣가 약하다.”46) 또 형질이 中和한 것은 “부족함을 수련하여 法度에 합당하고 輕重이 조화로우며, 陰陽의 뜻을 얻어 剛柔가 균제한다. 不肥 不瘦하고 不長 不短하니, 단아한 美가 되었다. 이것이 中行의 書이다.”47)라고 하였다.
그는 肥瘦에서 形質을 분석 해부하는 시각이었고, 書藝 形質을 人體의 형질로 비유하려 하여, 그러한 것이 사람들에게 하나의 계시가 되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古人은 우리에게 풍부한 유산을 물려주어서 연구 감상할 수 있게 하였으며, 거기로부터 새로운 美의 形質을 창조하게 하였다.
물론, 서예 중의 形質美는 外在的이니만큼, 반드시 神采美와 상호 융합되어야 보다 나은 창조물이 나올 것이다.
(5) 神 采
神采는 작품 중에 표출해 내는 精神ㆍ風采를 가리키며, 서예 미학 범위중의 하나이다.
古代의 書論에서는 神采를 ‘精氣神’ 또는 ‘風神’이라 칭하고 있다.
서예의 神采는 초목과 같이 생기가 있고, 금수와 같이 생기 활발하며, 사람의 정신과 같이 초연하고 대범하여 시원스럽다. 또 초목의 생기는 울울창창 무성한 나무처럼 나타나고, 향기 방창한 꽃처럼 만발함이다. 금수의 생기 발랄함은 솟구치듯 뛰어 오르는 호랑이의 위용과 용의 풍채같이 보이는 것이며, 사람의 정신ㆍ풍채는 心靈이 언어에서, 意態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서예가는 비록 한 폭의 文字를 쓰지만, 文字는 이미 개념을 표현하는 부호가 아니고 물상의 結構와 생기 활발한 勢態를 표현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비약하는 정신의 血肉이 있는 생명이다.
그러면 서예가는 어떻게 하면 ‘神采’를 획득할 수 있는가?
古人은 “글씨를 쓸 때 精ㆍ氣ㆍ神으로 主를 삼는다. 落筆處는 力量이 있어야 하며, 橫勒處는 波折이 필요하며, 轉捩處는 圓勁이 요구되며, 直下處는 提頓이 필요하며, 挑趯處는 挺拔해야 하며, 承接處는 沈着해야 하며, 映帶處는 含蓄해야 하고, 結局處는 回顧해야 한다. 이것들을 장악하여 따르면 여러 어려운 것들이 손안에 들어 와서, 옷을 벗듯 기개가 드높을 것이며, 기뻐 춤추듯 활달할 것이다.”48)고 하여 筆法을 장악해야 볼 수 있고, 힘을 들여 글씨를 써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으며, 최후에는 처연한 마음으로 落筆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자에 生命을 부여해야 하고, 生命은 形象을 부여해야 하며, 形象은 動作과 情感을 부여 해야 한다고 한다. 서예는 사람처럼 骨筋血肉이 필요하며, 形體가 건실하고 온전해야 한다. 그리고 난 후 氣韻이 충족하고 神氣가 온전해야 하며, 動靜의 상태를 구비해야 하고, 剛柔의 정감을 표해야 한다.
또한, 자연을 길게 한 것은 수려한 선비와 같고, 짧게 한 것은 날쌔게 달리는 사람 같으며, 마른 것은 산 연못의 수척함 같고, 살찐 것은 떠돌아다니는 사람처럼, 기울어진 것은 술 취한 신선처럼, 강한 것은 武士처럼, 아름다운 것은 美女와 같이, 단아한 楷書는 賢士처럼 해야 한다. 따라서 각각 形象을 구비하면 각각 같지 않은 風神이 나타나며, 또한 각각의 不同한 神采가 나타나는 것이다.
(6) 氣 韻
氣韻은 서예 미학 범주의 하나이며, 서예중의 生起ㆍ氣勢ㆍ韻味ㆍ韻致 등을 가리킨다.
서예가는 節奏化ㆍ韻律化된 意象을 뽑아내야 하고, 또 그 변화가 스스로 自我에 들어야 하고, 線條의 律動을 통하여 나타난 節奏를 전달하여야 하고, 감상자로 하여금 音樂感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美趣가 무궁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美感이 있어야 한다.
中國畵論 중에 謝赫의 “六法”에는 첫머리에 ‘氣韻生動’이 있는데, 서예 미학도 氣韻의 有無ㆍ高下ㆍ厚薄으로 분류하여 판단한다. 서예 작품은 氣韻을 얻어서 氣韻 生動ㆍ氣韻 高逸한 것을 최고로 삼고 있다. 예를 들면, 劉熙載가《藝槪》에서 王右軍의 書藝을 평하는데 있어서 ‘力’을 기준하는 외에, ‘韻’으로도 品評하여 ‘韻高千古(기운이 천고에 드높다)’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타 다른 예술중의 氣韻을 이해하려면, 먼저 서예의 氣韻을 장악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康有爲도 “무릇 藝術에서 오로지 氣韻을 얻는 것이 가장 어렵다.”49)고 하였다.
그러면, 現代의 美學家나 藝術家는 ‘氣韻’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宗白華는 “氣韻은 宇宙에서 고동치는 만물이 지닌 氣의 節奏이며 和諧이다. 繪畫는 氣韻이 있으면 감상자에게 音樂感을 줄 수 있다.”50)고 했으며, 氣韻의 해석을 “氣라는 것은 마음에 따라 운필하는 것이며, 의혹이 없이 象을 취하는 것이다. 韻은 자취를 감추고 形을 세워야 하며, 俗됨이 없는 遺를 구비해야 한다.”51)고 하였다. 이것은 예술가는 對象의 정신 실체를 파악해야 하며, 對象의 요점을 취해야 하며, 동시에 形象을 창작할 때 자기의 筆跡을 숨겨야 하며, 감상자로 하여금 자기의 技巧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形象은 감상자로 하여금 풍부한 상상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서예 작품의 氣韻은 일종의 節奏요 韻律로서, 서예가는 자기의 지혜을 통하여 節奏化ㆍ韻律化의 자연을 통찰 장악하여, 서예 작품 중에 표현해야 한다. 한 점 한 획에 節奏가 있고, 한 자의 結構에 節奏가 있고, 行間에 節奏가 있고, 한 폭의 작품에 節奏가 있으면, 節奏ㆍ韻律化한 ‘小自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節奏와 韻律중에 나타낸 生氣ㆍ氣勢ㆍ韻味ㆍ韻致가 있으면 감상자는 일종의 音樂感을 얻을 수 있으며, 풍부한 聯想과 무궁한 字體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張旭은 북소리를 듣고서, 춤추는 자태를 보고서, 마치 行筆의 輕重 遲速의 境界를 통할 수 있었으며, 이렇게 나타나는 절주와 운률미에서 서예의 氣韻을 체득하였다 한다.
확실히 서예와 춤사위와의 相似点은 無聲의 樂이요 有形의 춤이다.
서예의 上下로 구부러졌다 그치고 계속하여 늘어나는 線條도 旋律ㆍ和聲ㆍ節奏등과 같은 音響 結構와 같이 美感을 환기시키고 감정을 표출시킨다. 또 書藝 線條 중 경쾌한 波磔과 파동치는 韻律은 변화하는 춤사위 동작과 같이 감정을 풀어내는 것이다.
古代 서예 미학에서는 ‘氣’를 ‘內氣’와 ‘外氣’로 나눈다.
內氣는 한 글자에 氣勢가 있고 韻味가 있다는 말이며, 外氣는 글자와 글자、 行과 行 나아가서 한 폭의 작품에도 서로 연관되는 氣勢ㆍ韻味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內氣는 매 글자마다 氣勢ㆍ韻味가 있어야 하므로 점획간에 정미하고 美妙함이 있어야 하고, 그 疏密ㆍ輕重ㆍ肥瘦등으로 和諧을 조정하고, 균일하지 않게 하여 韻致가 있어야 하다. 外氣는 작품에 氣勢ㆍ韻味가 있어야 하고, 아주 높은 예술 수완이 있어야 하고, 서예의 對待 關係를 순렬하게 운용해야 하며, 그의 虛實ㆍ疏密ㆍ管束ㆍ承接ㆍ錯綜 등을 안배해야 한다.
古代 書家는 ‘氣’를 설명하면서 왕왕 ‘精氣神’과 연관하여 말한다.
蔡襄은 “學書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神ㆍ氣만을 취하면 佳作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형상만 모사하는 體勢는 비록 그 형상은 비슷할지라도 精神이 없으니, 이는 書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고 하였다. 또 淸 朱和羹은 “글씨를 쓸 때 精ㆍ氣ㆍ神을 主로 삼아야 한다.”52)하였는데, 이것은 서예의 風采 神韻의 因素이며, 반드시 서예에는 生氣가 드러나고, 생명의 율동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예 미학 중의 ‘氣’는 ‘骨氣’와 상관 관련이 있다.
劉熙載는“書의 요지는 ‘骨氣’ 二字로 총괄할 수 있다. 骨氣를 洞達(통달)이라 말할 수 있는데, 가운데를 통하면 이를 ‘洞(통)’이라 하고 邊를 통과하면 ‘達’이라 한다. 洞達은 字의 疏密 肥瘦가 모두 좋아야 한다.”53)라고 하였는데, 이는 서예 범주의 하나인 ‘神采’와 같이 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서예에서 ‘墨韻’을 설명하는데, 墨의 神采ㆍ韻味를 가리킨다. 濃墨을 사용하면 묵의 색채가 진하게 일어나고 氣韻이 깊고 두터우며, 淡墨을 사용하면 화려하고 神采가 빛나게 일어나고 원기가 충만하다. 이것 역시 높은 기법이 필요하며 對待的 처리가 요구된다.
(7) 情 性
情性은 서예 미학 범주의 하나로써, 서예에서 드러난 精神ㆍ意趣 등을 전달하는 것을 가리키며, 作家 情性이 작품상에서 드러나 표현되는 것이다. 서예는 形質뿐 만 아니라, 筆情墨性도 마찬가지로 중하게 여겨야 美妙함을 지닐 수 있다.
揚雄은 “書는 心畵이다.”54)라고 하였다. 이 말은 역사가 이어지면서 파란을 야기시켰고, 각 시대의 서예 무대상에서 모두 이 말이 맴돌 듯이 회자되어, 서로 共鳴하고 있다.
또한 蔡邕은 “書는 흩어 놓는 것이다. 書를 하려면 먼저 회포를 풀고, 情感으로 임하여 그 性情에 맡긴 연후에 書를 한다.”55)고 하였으며, 劉熙載는 《藝槪》에서 “書는 心學”, “글씨를 씀은 마음의 뜻을 쓰는 것”에 대하여 긍정할 뿐만 아니라, “筆性墨情은 사람의 性情을 근본으로 한다. 이는 性情을 다스리는 것이고 書의 첫째 임무임”56)을 큰 소리로 외쳐, 많은 공감을 얻었다. 또, 康有爲는 《廣藝舟雙楫》에서 “사람의 情을 옮길 수 있다면, 그것이 書의 최고가 된다.”57)고 하였다.
서예가는 情性으로 本을 삼으면 볼 수 있으며, 용해되어 書에 들어가면 筆性墨情을 이룰 것이며, 진정한 서예가의 진정한 창작이 될 것이며, 작품 중에서 능히 筆性墨情을 감상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서예가의 情性을 반추시킬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감상자의 진실한 감상을 아는 것이리라. 孫過庭은 서예가의 慧眼으로 王羲之의 서예 중에는 筆墨情性의 美妙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韓愈는 그 문장가의 叡智로써 張旭의 草書 중의 美妙한 筆墨情性을 깨달았던 것이다. 書의 노예의 書作은 形質이 없을뿐더러, 本家 面目도 없다. 즉, 그의 筆墨情性에는 ‘自我’가 존재치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예가는 자기의 性靈을 발휘하고 形質을 통하여 書를 표현해 내야 한다. 서예가는 가치있는 形質로 情性을 서술하고, 뜻을 쓰며, 회포를 남기고, 자기의 情性을 장악하여 점획 또는 선획 중에 그것을 용해시켜야 한다.
서예가의 筆墨性情이야말로 千變萬化하고 巧妙가 무궁한 것이다.
元代의 陳繹曾은 《翰林要訣》에서 지적하기를 “喜怒哀樂은 각기 分數가 있다. 喜는 氣가 화창하고 字體는 부드러우며, 怒는 氣가 굵고 소홀하며 字勢는 험악하고, 哀는 氣가 우울하고 답답하며 字는 수축되고 제한적이고, 樂은 氣勢가 평온하고 字는 미려하다. 情은 重輕에 있으며, 字의 斂舒 險麗 역시 淺深에 있으며, 변화가 무궁하다.”58)라고 하였다. 소위 이것은 情性의 喜怒哀樂과 字의 斂舒險麗는 일정한 관련이 있고, 무궁한 변화가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筆墨情性은 千變萬化하고 靈活多變하여 그 妙함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서예술의 精髓라 할 수 있을 것이다.
(8) 神 化
神化는 ‘出神入化’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서예 技藝의 성숙한 초월함을 가리키는 것으로, 마음이 하고자 하는대로 행동해도 거리낄 바 없고, 불꽃의 순청색처럼 造詣가 깊은 境界에 다다름을 말한 것이다.
서예 미학은 變化를 소중히 여긴다. 世間 萬物은 고르게 변화하고, 日月星辰도 변화하며 運行하고, 寒暑晝夜는 서로 帶를 옮기면서 지속되며, 風雷雲雨는 모였다 흩어지며, 山岳河海는 솟으며 흐르니, 이것이 천지간의 變化이다.
또 高士는 휘파람을 불며 지나고, 美人이 춤추며 소매사이로 흘겨보고, 혹은 기쁨이고 혹은 슬픔이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니, 이것이 人情의 變化이다.
서예는 天地萬物間에서 그 意象을 찾고 變態가 무궁함을 귀하게 여기니, 變化가 막급한 것이다. 서예는 필히 변화로움을 좋아하고 만유의 妙象을 다 할 수 있으며, 조화의 神工을 얻을 수 있다. 孫過庭은 《書譜》에서 말하기를, “數劃을 함께 그어도 그 모습이 각각 다르기 마련이고, 여러 점을 찍어서 가지런히 늘어놓아도 그 形勢는 서로 틀리는 법이다. 하나의 점획은 한 字의 規格을 이루고, 한 字는 한 폭의 書를 이루는 規準이 된다. 그리하여 違背하고 있어도 서로 犯域을 안해야 하고, 의좋게 있어도 똑같지 않으며, 淹留한다고 해서 언제나 느린 것이 아니고, 보낸 것이라 하여 언제나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燥한 맛을 띠었다가 금방 潤하고, 濃했다가 다시 枯해지니, 規矩를 方圓에서 묻히게 하고 鉤와 繩을 曲直에 숨게 하여, 금방 나타났는가 하면 금방 숨어 버리고, 나선 듯 하다가도 들어 앉은 듯하여, 붓끝에서 變態를 다하고 感情의 조화를 紙上에서 맞춘다.”59)고 하였다. 서예는 필법상 점획상에서, 結體ㆍ布白上 모두 變化가 좋은 것을 중히 여긴다. 붓끝에서 형태가 변하고 지면상에서 情感의 조화를 함유하고 있으니, 이는 서예가의 造詣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서예의 神化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대로 해도 장애되는 것이 없으며, ‘變化를 구하는 것’과 ‘法度를 합하는 것’과는 서로 對待 關係가 있다. 變化는 法度를 합할 뿐 만 아니라 法度를 정밀히 숙련하는 것이다. 만일 필법에 익숙하지 못하면 心手를 믿지 못할 것이니, 더욱 어떻게 神化를 말하겠는가? 필법이 숙련되고 법도에 장애가 없다면, 능히 心手雙暢하는 神化의 境界에 이를 것이다. 당연히 法度의 거리가 없다는 것은 有法에서 無法으로, 다시 無法에서 有法에 이르는 것이니, 이런 높은 차원에 다다름을 가리키는 것이며, 法度에서 變化로,다시 變化에서 法度에 이르는 높은 차원의 理致에 다다름을 의미한다.
서예가 神化에 이르는 것은 각고의 수련을 통해야 하며 고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9) 意 境
意境은 생활 形象의 객관적인 묘사와 情感 이상의 주관적인 吐露는 대대적 예술의 境界이다. 서예 미학 범위의 하나로 되어진 意境은 서예 작품 중의 形質과 神采의 유기적 融合을 가리키며, 情感과 理趣는 對待的 結合이며, 서예의 독특 무궁하고 매력적인 境界이다.
서예는 서예가가 감상한 천지자연의 物象ㆍ秩序ㆍ韻律과, 신묘한 깨달음과 현묘한 理致로 인생을 參通하고, 자신의 叡智로 천지산천 또는 만물 중에서 意象을 찾는 것이며, 또 자기의 용해된 情感에서, 点劃 線條의 節奏를 통하여, 墨采의 운률에서 자아 생명의 情調적인 율동에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造化와 心靈의 응결이며, 形質과 神采의 융합이며, 감정과 理趣의 종합이다. 이러함이 서예 意境의 創構이다.
意境은 美學家가 계속하여 반복해서 토론할 하나의 문제이며, 藝術 審美를 연구하는 자도 명쾌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서예적 意境의 연구는 더욱 박약한 환경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晉人의 行草書 중에서 意境을 분석한다거나, 혹은 모종의 사고체계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晉人의 행초서는 보옥같은 美的 意境을 창조하였다. 歐陽修는 “나는 항상 魏晉이후의 筆墨遺跡을 즐겁게 감상하는데, 그들의 思考는 아주 높다란 봉우리였고 그들이 지닌 意態는 무궁무진하다”60)고 찬탄하였다.
그러면 무엇이 意境인가?
宗白華는 “宇宙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色相ㆍ질서ㆍ절주ㆍ和諧를 관찰하고, 그것을 빌어서 자신의 가장 깊은 心靈에 반추하여 본다. 實景이 변해서 虛境이 되고, 形象으로 시작하여 상징으로 되며, 인류 최고의 心靈을 具體化하고 肉身化하는 것, 이것이 바로 ‘藝術 境界’이다. 또한 예술 경계는 美의 주인이다.”61)라고 하였다. 서예의 意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면 意境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宗白華는 藝術 意境의 특징은 ‘道’‘無’‘白’의 세가지 면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의 道는 형이상의 원리로서 ‘藝’와 능히 合할 수 있다. 道의 생명은 氣로 나아가고 氣의 표현은 道를 시사한다. 예술 의경을 작품으로 표현하려면 질서의 網을 통과해야 하고 몽롱한 理致에서 섬광처럼 빛을 발해야 한다. 이 질서의 망은 각자의 뜻이 組織되어진 선ㆍ점ㆍ光ㆍ색ㆍ형체ㆍ음성이며, 혹은 文字가 형성한 和合의 예술 형식이다. 이것으로써 意境을 표출하여야 한다.
둘째의 無는 일체 예술의 境界적인 典型이다. 書法 또는 畵法 모두는 마치 춤을 추며 날아가려는 형상이다. 無는 최고의 운률ㆍ절주ㆍ질서ㆍ이성이며, 동시에 최고의 생명ㆍ행동ㆍ力量ㆍ熱情이다. 이것은 모든 예술 표현의 窮究의 상태일 뿐 아니라 우주 창조 과정의 상징이다. 이러한 無를 통하여 현묘한 理致의 境界를 具象化ㆍ肉身化하여야 한다. 서예는 곧 無聲 有形의 즐거운 춤이다.
세 번째로 서예는 虛空의 餘白을 신묘하게 처리하여 動蕩적인 意境을 잘 전달할 수 있다. 神明속의 깊은 내면을 투영, 形象외의 초월함을 餘白에 표현되게 하여, 虛實은 서로 相生하며 無劃處에 妙境이 이루어져서, 글씨는 餘裕 峻秀하며 공간은 調和 生動하게 한다.
그리하면, 창작 중에 진정한 藝術 意境이 솟아난다. 意境은 자연주의적인 현실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며 추상적인 空想의 구조도 아니다. 그것은 생활 속의 깊은 思惟와 풍부한 體驗중의 짙은 情感ㆍ思想의 創造性이 분출되어 나오는 것이다.
(10) 書 風
書風은 서예 작품의 風格을 가리킨다.
書風은 일종의 표현 형태이며 작품상에서 표출해 나오는 대표적인 특징을 말한다. 작가의 주관적인 특징과 작품의 내용 및 筆墨의 기교를 통하여 形質ㆍ神采등이 융화되어 나타나는 독특한 풍모이다.
서예에서는 자기의 面目과 精神ㆍ風采가 있는 것을 최고로 여기며, 남의 것을 따라 하는 ‘奴書’를 가장 배척한다. 왜냐하면 作家는 前人을 융합하고 변화를 연구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風格을 표현해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명한 예술적 개성을 갖추어야 하고, 독창적인 風格을 갖추어야만 진정한 作家라 말할 수 있다. 서예사상 서예가들은 각기 다른 경지를 열었으며, 깊이 연구하여 스스로 터득해서 각종 風格을 형성하였으니, 마치 기묘한 꽃들이 그 풍모를 다투는 듯하고 서로 다른 산봉우리가 솟아 있는 형상이다. 蕭衍은 《古今書人優劣評》에서 이러한 비유방법을 통하여 三十여명의 서로 다른 風格을 갖춘 서예가를 논평하였는데, 鐘繇의 書는 백조가 구름속에서 노니는 것 같고, 기러기들이 바다에서 희롱하듯, 行間의 빽빽하며 무성하고 實한 곳은 지나기 어렵다 하였고, 王羲之의 書는 字勢가 雄逸하여 龍이 天門에 뛰어 오르듯, 범이 風闕에 누워있는 듯하여 歷代의 보물이니 영원히 교훈으로 여겨야 한다고 하였으며, 蔡邕의 書는 骨氣가 통달하여 상쾌한 것이 神力이 있는 듯하다고 하였다.
비록 정밀한 분석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서예가들의 書風의 특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鐘繇의 書風은 농익어 부드럽게 펼쳐지고, 疏密이 분명하여 안개가 퍼지고 구름이 뭉치듯 하고, 구름에 백조가 노밀며 群鴻이 바다에서 희롱하는 듯 하다.
王羲之는 鐘繇를 배우고 蔡邕ㆍ梁鵠ㆍ張旭 등의 장점을 취하여 體勢를 精硏하고, 古法에서 보완하는 한편 漢魏의 朴質한 서풍으로 姸美하고 流便한 書體를 창출하여 神妙함에 이르렀으니, 마침내 ‘書聖’에 이름하였다. 이밖에 數千年의 書學史上 서예가는 각종 風格을 창안하였으니 그것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書風은 시대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시대가 다르게 형성된 書風은 각기 그 특징이 있다.
漢代의 서예는 氣勢의 雄厚함을 표현해 냈고, 魏晉 南北朝의 서예는 소쇄한 神韻을 표현했으며, 隋唐서예는 法度를 숭상하고 높였으며, 宋人의 서예는 寫意를 推尊하였으며, 明人의 서예는 雅趣를 중히 여겼으며, 淸代는 또 소박하고 질박함을 숭상하였다.
또 古人들은 唐代를 경계로 해서, 서예를 兩大부분으로 나누려 하였는데, 거기에는 각기 다른 특색이 나타난다. 王澍는 “唐以前의 書는 風骨이 안으로 모아지고, 宋以後의 書는 精神을 밖으로 확장시켰다.”62)하였으며, 康有爲는 이를 典型으로 하여 논하기를, 서예는 “唐을 경계로 하여, 唐以前의 書는 密하고 唐以後의 書는 疏하며, 唐以前의 書는 茂하고 唐以後의 書는 凋하며, 唐以前 書는 舒하고 唐以後의 書는 迫하며, 唐以前 書는 厚하고 唐以後 書는 薄하다. 唐以前 書는 和하고 唐以後 書는 爭, 唐以前 書는 澁하고 唐以後 書는 滑, 唐以前 書는 曲하고 唐以後 書는 直, 唐以前 書는 縱하고 唐以後 書는 斂하다.”63)고 분류하였다. 서풍은 시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한 시대에는 한 시대의 書家가 있고 한 시대의 書風이 있다.
또 書風은 지역이 다름에 따라 다른 특색이 나타난다.
東周때는 열국의 분쟁으로 제후들은 패권을 다툼으로써 文字의 形이 다르고 書風 또한 다른 유파들이 점점 드러났다. 예를 들면 齊國의 金文書風은 대부분 엄정하고 강직한 美, 楚國의 金文書格은 變動流利의 美가 있다. 魏晉이후 南北의 書風도 다른 특징이 있다. 南宋 趙孟堅은《論書》에서, 晉宋이후는 서풍이 남북으로 갈렸는데, “北은 方이 많고 소박하며, 隸體가 있어 晉의 高雅함이 없다.”64)고 하였다. 淸代의 阮元은 《南北書派論》에서 “東晉ㆍ宋ㆍ齊ㆍ梁ㆍ陳은 南派이며, 趙ㆍ燕ㆍ魏ㆍ齊ㆍ周ㆍ隋는 北派이다. 南派는 鐘繇로부터 圍瓘과 王羲之ㆍ獻之 등 智永ㆍ虞世南까지이며, 北派는 鐘繇로부터 圍瓘ㆍ索靖 등 歐陽詢ㆍ褚遂良까지이다.”65)고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阮元 등이 분류하여 논한 書風은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이라 할 수 없으며, 단순히 지리적 위치 때문에 다르다고 극단적으로 논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書風은 본시 모두 각각 다른 모습이어야 하고, 다른 面目을 갖추지 못하면 오래 存在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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