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작품 감상하는 법(마하 선주선)

 
창작 과정에서 늘 점과 획이 모여 글자를 이루고 또 한 글귀를 이루고 난 후에 어떠한 풍격이 생김을 알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감상 습관은 의외로 부분적인 한 점, 한 획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청의 포세신은 기만(氣滿)을 주장하였다. 그것은 한 점, 한 획보다는 한 폭에 흐로는 기운이 가득해야 함을 피력한 것이다. 기만은 곧 신채(神采)라 볼 수 있는데, 사실 서예의 도는 신채가 으뜸이다.

동기창은 "첩(帖)을 대하는 것은 마치 낯선 사람을 갑자기 대하는 것과 같으니 그 손, 발, 얼굴들을 대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내심으로 그 행동거지와 웃음, 말 그리고 정신들을 관찰해야 한다. 장자가 이른바 목격(目擊)에 도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듯이...."라고 하였는데 작품의 감상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전체의 흐름을 보고 차차 획, 점, 결구, 장법, 문장 따위를 뜯어보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 하겠다.
감상은 자신이 서예에 대하여 체득하고 있는 정도에 따라서 그 깊이가 다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른 예술도 그렇기는 하겠지만 서예는 자신이 직접 해 보지 않고서는 감각적, 피상적으로 글씨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분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올바른 감상을 하기 위한 중요한 기본 요건을 몇 가지 들어보려 한다.


첫째, 서예의 기법에 대한 습득이다.

글씨를 공부하는 데 끊임없이 실기를 연마하는 것은 우선 그 기법을 터득하기 위함이다. 집필, 운필, 결구 등 그 기본을 익히는 피나는 과정이 없으면 자신의 정도를 남과 비교해 볼 수 없어 더 이상 진보할 수 없고, 또 남의 글씨 쓰는 마음속을 읽지 못한다. 한 작품을 대했을 때 자신하고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실감하며 여러모로 시도하여 보는 것이 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하는 길이다.


둘째, 고전을 비롯한 남의 작품을 많이 감상하는 것이다.

안고수비(眼高手卑)라는 말이 있다. 눈은 높은데 손이 거기에 따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실 눈이 트이지 않으면 그 자라에 안주하여 더 발전할 소지나 의욕이 없을 것이다. 남의 작품에서 느끼는 선질, 결구, 공간포백에 대하여 연구, 분석하고, 명작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것들을 많이 보면 볼수록 안목이 높아지게 된다. 안목이 높아졌다는 것은 한 작품의 허와 실을 집어낼 수 있다는 의미이며 그런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손도 더불어 다소나마 따라가게 된다.


셋째, 문자(한자)와 문장에 대한 지식이 쌓여야 한다.

작품이 소재는시, 문장 말고도 교훈, 풍류, 길상문자(吉祥文字) 등이 쓰인다. 작품을 할 적에 문장의 의미도 모르고 그리듯 쓴다면 그 작품 속에서 그 마음이 흐드러지게 펼쳐질 수 없다. 또한 하나의 문장을 쓴 작품을 대할 때 그 문장을 알고 썼는지 모르고 썼는지 판별할 수 있다. 그 필획의 흐름이나 먹의 농도 등을 살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작가의 감흥이나 감정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미루어 헤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이해도 없이 필획이나 결구, 장법 등만 본다면 그것은 차원이 낮은 감상일 수 밖에 없다.


네째, 서예의 이론 방면에 눈을 떠야 한다.

서예사와 여러가지 서론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정통 서법의 계보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서예사의 흐름을 잘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한 작품을 대할 때 그 글씨가 어느 시대 누구의 서풍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를 단숨에 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법서와 속서를 가리는 길이기도 하며, 그것을 기조로 하여 작가의 개성이 어떠한 양상으로 격조있게 표현되었느냐 하는 것을 짚어보는 관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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