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의 이름은 유방(劉邦)이었다. 방(邦)은 당시에 국(國)으로 바꿔 써야했다. <<논어>>에 "何必去父母之邦"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한나라의 석경에서는 "何必去父母之國"으로 바꿔서 썼다.
2. 한나라 문제의 이름은 유항(劉恒)이었다. 이로 인하여 한나라 때 항산(恒山)은 상산(常山)으로, 달에 산다는 항아(姮娥)는 상아(女+常娥)로 바꿔 불렀다.
3. 한나라 광제의 이름은 유수(劉秀)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수재(秀才)를 무재(茂才)로 불렀다.
4. 한나라 명제의 이름은 유장(劉庄)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장자(庄子)는 엄자(嚴子)로 바꿔 불렀다. 뿐만아니라 당시 장(庄)씨는 전부 엄(嚴)씨로 성을 바꾸었다.
5. 한나라 경제의 이름은 유계(劉啓)였다. 이로 인하여 24절기중 원래 계칩(啓蟄)으로 불리던 절기는 경칩(驚蟄)으로 바뀌게 된다.
6. 당태종의 이름은 이세민(李世民)이었다. 이로 인하여 육부(六部)중 삼국시대부터 수나라때까지 탁지부(度支部), 민부(民部)라고 불리던 부서는 호부(戶部)로 개칭되었으며, 이후 청나라까지 호부로 불리운다.
7. 송나라의 재상 문언박(文彦博)의 원래 조상의 성씨는 경(敬)이었다. 그런데, 후진(後晋)의 고조의 이름이 석경당(石敬塘)이므로 피휘하여 "文"으로 성을 바꾸었다. 이후 후한이 들어서면서 다시 성을 "경"으로 회복하였다. 그런데, 송(宋)이 들어선 후 송태조 조광윤의 할아버지인 조경(趙敬)의 이름을 피휘하여 다시 문(文)으로 성을 바꾸어야 했다.
8. 청나라 강희제의 이름은 현엽(玄燁)이었다. 이로 인하여 현이나 엽이라는 글자를 쓸 때는 반드시 마지막 한 획을 덜 써야 했다. 그리고, 천자문에서 처음 시작하는 천지현황(天地玄黃)이 청나라때에는 천지원황(天地元黃)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자금성의 북쪽문은 원래 현무문(玄武門)이었는데, 강희제 이래로 이름이 신무문(神武門)으로 바뀌었다.
9. 옹정제(雍正帝)때 예부시랑인 査嗣廷(무협소설가 김용의 선조)은 강서성에서 과거시험문제를 내면서 <<대학, 우전지2장, 석신민>>에 나오는 "유민소지(維民所止)"를 시험문제로 제출하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유민소지의 유(維)와 지(止)가 옹정(雍正)의 머리를 자른 글자라고 옹정제에게 고변하였다. 옹정제는 이를 듣고, 사사정의 직위를 박탈하고 죄를 물었으며, 결국 사사정은 옥사한 후 육시시중의 벌을 받게 된다.
10. 옹정제는 성인인 공자의 이름인 구(丘)를 피휘하기 위하여 새로 글자를 만들어 구(邱)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전까지 구(丘)로 쓰던 성은 모두 구(邱)로 바꾸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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